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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통일독립운동가KOLOFO칼럼 제483호 특별기고

어렸을 때부터 나는 ‘역사’라면 눈이 반짝 떠지는 아이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들이 오랜 시간 국가의 기틀을 세우고 사상・기술 발전 등을 이루어 가는 모습들을 무척 흥미롭게 여기곤 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해서는 역사와 무관한 전공으로 이 기쁨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 공기업 취업을 위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공부하게 되면서 다시 우리 역사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의문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 ‘한반도의 시작은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하고 진취적인 모습인데, 왜 끝은 외세에 의한 분단이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역사책을 더 찾아 읽고 관련된 강의를 듣다 보니, 우리 역사 속에 되풀이되고 있는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지하듯 1910년 조선은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는 설움을 겪어야만 했다. 일제의 식민 지배 속에서 독립하고자 우리의 선조들은 애국계몽운동이나 무장독립투쟁 등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갑자기 맞이한 해방정국에 혼란과 분열을 겪으며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오늘에 이르고야 말았다. 나는 그것이 준비 없이 맞이한 대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단’이라는 아픔이 한반도에 70여년 넘게 무겁게 자리하고 있음을 체감하게 되니 나에겐 예전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통일’이 더 절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통일’이 바로 한반도의 미래를 여는 핵심열쇠라는 것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과거 독립 이후를 준비하지 않은 선조들의 모습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통일 이후를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청년세대로서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있어서는 또 다시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나는 다시 역사책을 펼쳐 든다.

19세기 조선이 당면했던 과제는 ‘국가기강 확립’과 ‘근대화’였다. 조선의 많은 관료가 청나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신문물을 접했다. 그러나 그들은 ‘근대’(近代)라는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강대국을 따라하는 소위 ‘따라잡기식 근대화’만 추구했다. 그러다보니 조선만의 근대화가 없었다. 1894년에는 개화의 방법론을 두고 갑론을박하며 서로의 주장만을 내세웠다. 조선 관료들의 한계를 타파하면서 새로운 국가의 이상을 나름대로 확립해보고자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이 일어났으나,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갔다. 게다가 훗날 소위 개화파로 깨어 있던 젊은 지식인층마저 대거 친일에 앞장서게 된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역사의식과 사회의식 없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에만 급급하다면, 통일 이후에도 또 다시 강대국만을 바라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통일이 한반도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제2의 독립운동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부터 우선 또래 청년들에게 우리 역사를 많이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내가 소속한 동아리와 단체 등에서 역사 공부모임을 만들어 같이 토론하고, 내 이름 중 마지막 글자인 ‘애(愛)’자를 붙여, ‘애(愛)탄올’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들과 함께 동영상 역사 강의도 만들어 올리고 있다. 청년들이 역사를 바로 알고 통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마음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이제 시작하는 작은 움직임이긴 하지만, 헛된 움직임이 아니기에 진심을 담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노력하고 있다.

과거 민주화와 산업화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기의 시대적 소명은 통일이다. 통일을 맞이하게 될 우리 세대 모두가 ‘통일독립운동가’다. 많은 청년들이 분단 한반도의 역사를 바로 알고 통일과 그 이후 시대를 준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인애/ 기독교 교육재단 연구간사

이인애  korealof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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