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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 방북 30주년, 민간 주도의 통일운동 이어져한신대 통일평화정책연구원·사단법인 통일의집, 늦봄 방북 30주년 기념 학술대회 개최

“문익환 목사의 이름은 잊혀져 가지만, 그가 물꼬를 튼 민간 주도의 통일운동은 지금도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늦봄 문익환 목사 방북 30년 주년을 기념한 학술대회에서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그 이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로 들린다. 22일 오후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분단을 넘어 평화의 길을 열다’란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는 한신대 통일평화정책연구원과 사단법인 통일의집이 주최했다. 이재정 경기교육감, 백준기 통일교육원장, 정진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100여 명의 참가자는 늦봄의 방북 30주년이 가지는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신대 통일평화정책연구원과 사단법인 통일의집이 공동 주최한 늦봄 문익환 목사 방북 3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22일 오후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기조강연을 맡은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는 문 목사의 방북을 “남한사회의 옥죄던 허구적 정치이념과 반민주적 악법들이 탈우상화되고 탈터부화되는 사건이었으며, 기독교복음의 본질인 ‘화해하라!’는 명제를 목숨을 내걸고 몸으로 행한 실천적 화해 신앙의 사건”이라고 밝혔다. ©유코리아뉴스

이날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는 문 목사 방북의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짚었다. 하나는 군부 독재 시절, 남한 사회의 보이지 않는 족쇄(터부)를 깨부순 정치사회학적 사건이라는 점이다. 김 교수는 “늦봄의 방북사건 긴급 뉴스를 듣는 순간, 귀국 후 늦봄이 안기부에 끌려가 얼마나 큰 고생을 할 것인가 걱정되면서도 민주시민들에게 채워진 족쇄가 풀어지는 내면적 자유와 해방의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문 목사가 자유의 물꼬를 터서 지금까지 민간 주도의 통일운동 세력을 키워갈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문 목사의 방북은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에 불씨를 댕기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실천적 화해신앙을 몸소 실천한 신앙적, 신학적 행위라는 점이다. 김 교수는 “온 나라가 문익환을 ‘빨갱이’, ‘죽일 놈’이라고 했지만,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문 목사는 빨갱이가 되려야 될 수 없는 사람”이라며, “늦봄은 (‘레드 컴플렉스’라는) 우상을 깨고 화해해야 산다는 메시지를 몸으로 증언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문 목사의 방북 이후 일어난 (통일의) 불씨를 남북 당국자들이 거스를 수 없었기에,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합의에까지 이른 것”이라며, “늦봄 평양 방북 30주년을 맞이하면서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자”고 당부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축사에서 “문익환 목사는 1988년에 발표된 한국기독교교육협의회 통일선언문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1989년 평양을 방문했다”며, “그 결과 1991년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기본합의서가 만들어지고 북과 남에서 각각 합의서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교육감은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통일 관련 교과와 현장학습을 시행하는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으며, 통일 교육에 있어서 문익환 목사님에 대한 교육이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백준기 통일교육원장은 문익환 목사의 삶과 민족의 처지를 빗대며 “어려운 길을 걸어왔지만, 절망 속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니 뚜벅뚜벅 쉬지 않고 걸어간다면 새로운 한반도의 미래가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 원장은 또 “문 목사님은 ‘나는 너를 살리고 너는 나를 살리는 통일’을 말씀하시며, 고착화된 마음의 불씨를 누그러뜨리고 상호 이해하는 것이 남과 북이 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며, “통일 문제에 대한 다양한 갈등 목소리를 소음이 아닌 화음으로 조율해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밝혔다. 

정지연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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