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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빛광성교회 목사가 아닌 '민통선 시인'으로

24일 주일 오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 이임예식이 열렸다. 차도 사람도 발디딜 틈 없이 들어찼지만 1부 예배 김창인 목사(광성교회 원로)의 설교도, 2부 축하의 순서도 간결하게 지나갔다. 정 목사의 은퇴사마저도 “그저 성경 재료로 요리한 것뿐인데 맛있게 먹어주셔서 감사하다. 무익한 종인데 많은 양무리 맡겨주신 것뿐이다”며 “성도들, 두 딸과 아들이 된 두 사위, 그리고 아내 송점옥의 기도와 수고에 감사하고 칭찬하고 싶다”는 비교적 간결함으로 끝났다.

정성진 목사 이임예식이 24일 오후 거룩한빛광성교회에서 열렸다. ⓒ유코리아뉴스

바로 3부 시낭송을 위해서다. 시 낭송은 무려 1시간 가까이 길게 이어졌다. 이임식에 무슨 시낭송 시간을 넣은 것도 그렇고 어떤 시를 낭독하나 봤더니 하나같이 정 목사가 지은 시다. 거기다 교우들이 곡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는 거다. 잠시 듣고 말리라 했더니 점점 시 속에 빨려 들어간다.

“나도 가끔은 시인이 되고 싶다 그리움이 밀려올 때 어머니가 그리울 때 첫사랑이 떠오를 때 숲길을 홀로 걸을 때 완행열차의 기적 소리를 들을 때 시 한 수로 감동을 주는 소월이 되고 싶고 시 한 줄로 감동을 주는 영랑이 되고 싶다 나도 가끔은 시인이 되고 싶다.”(‘나도 가끔은 시인이 되고 싶다’ 중에서)

무엇보다 ‘어머니’라는 시어가 다가왔다. 정 목사에게 어머니는 어떤 분일까. 그러고 보니 그의 시 여러 곳에 어머니가 등장한다.

“예순아홉 고개를 다 넘지 못하고 가신 어머니 어머니가 사십에 낳은 막내 쉰아홉 고개를 힘겹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새벽안개 길 같이 알 수 없는 내일을 향해 조심스레 발을 내딛습니다 당신은 그 길을 어떻게 걸으셨는지요 무엇이라도 돈 되는 일이라면 움직이셨지요 이마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고 머리 위엔 떡 광주리를 이시고 먼 철길 걸어와 산 입에 거미줄을 걷어 내셨습니다.”(‘사무치는 그리움’ 중에서)

“엄마는 바다 아내로도 자식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엄마는 깊고 넓은 바다”(‘엄마는 채울 수 없는 바다’ 중에서)

정 목사의 어머니는 고 윤덕희 권사.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원로)의 설명에 따르면 윤 권사는 땅 400평을 봉헌해 도일교회를 세운 분이다. 정 목사는 어머니 윤 권사가 돈 되는 일이면 뭐든지 하셨던, 심지어 떡 광주리를 이고 다니며 파는 일도 하셨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가 사십 세에 낳은 막내아들 정 목사에게 어머니, 아니 ‘엄마’는 평생 사무치는 그리움일 것이다.

아내에 대한 진솔한 느낌과 고백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오늘도 전화 속 아내는 무표정했다 전화를 하자니 반응이 두렵고 전화를 안 하자니 후환이 두렵다 밥상머리에 앉으니 할 말이 궁하고 실없는 소리로 적막을 끊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 구석에 쪼그리고 있는 너의 모습이 마음을 짠하게 하고 쳐다보지도 않고 외면하는 마음이 야속하기만 하다 손을 잡으면 돌아눕고 벽을 쌓는다 침대의 간격은 건널 수 없는 바다 남자는 항상 강하고 저 혼자 잘 사는 존재라 생각하지만 나도 때로는 엄마! 외치며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위로 받고 싶은데 위로해야 할 아내가 웅크리고 있다 우울하지만 우울할 수도 없는 소년이 엉거주춤 눈물을 훔친다.”(‘우울증 앓는 아내’ 중에서)

정 목사의 아내 송점옥 사모는 이날 정 목사와 함께 환하게 교우들의 축하를 받았다.

민통선마을 해마루촌에서 정성진 목사와 아내 송점옥 사모. 거룩한빛운정교회 제공

무엇보다 정 목사의 시가 울컥 와닿았던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내면에 대한, 곧 스스로에 대한 진솔함 때문이다.

“주님! 나는 설교 기계입니다 돌아서면 또, 돌아서면 또, 설교를 토해야 하는 설교 기계입니다. 주님! 나는 설교 기계입니다 때로는 기름이 떨어져 기계가 헛돌기도 하고 쇳소리가 나오는 낡은 기계입니다.”(‘어떤 고백’ 중에서)

“여느 날과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면도를 하다가 갑자기 ‘어디로 가지’ 생각이 드는 순간 가슴을 베이고 말았다.”(‘은퇴 유감’ 중에서)

그의 시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재남은 ‘언어의 간결성’을 높게 봤다. 관념적 언어, 언어의 유희 같은 게 없이 솔직 담백한 고백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의미다. “시는 삶이다 그래서 시는 사람이다”(‘시(詩)는’ 중에서)는 정 목사의 고백처럼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존재를 몽땅 그 시에 투영하기 때문이리라. 그의 시가 곧 그 자신이기 때문이리라.

그의 시는 최근 『나도 가끔은 시인이 되고 싶다』(예영커뮤니케이션)는 시집으로 묶여져 나왔다. 시집에는 정 목사가 직접 찍은 예쁜 꽃과 나무도 중간중간 수놓아져 있다.

서문에서 정 목사는 자신이 고등학교 때 문예부에 들어가 학예부장을 했지만 글솜씨에서만큼은 한 번도 칭찬을 듣지 못했노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소월, 영랑, 청마가 좋아서 지금도 37년 전 종로서적에서 구입한 『한국의 명시』를 끼고 살 정도다. 그는 “흠모하는 시인들에 대해 모독이 될까 봐 시인이라는 이름은 거절하렵니다. 그러나 남은 생애 시를 짓는 마음으로 살아가렵니다”라고 수줍게 밝히고 있다.

정성진 목사의 이임을 축하하고 있는 최일도 목사. ⓒ유코리아뉴스

고훈 목사는 이날 축시를 통해 정 목사를 이렇게 묘사했다.

“지금은 그만해도 족하여 쉬어도 좋으련면 한국교회를 버팀목으로 지키시다 스스로 버팀목 되어 통일 한반도 꿈 기도로 품고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시는 겸손한 비움의 선지자 사람을 존경하고 꽃을 사랑하며 우리의 가슴을 울리며 주님을 노래하는 민통선의 물매돌 시인 다윗이여!”

그는 이미 경기도 연천 민통선마을인 해마루촌에 입주했다. 수도원도 지었다. 한반도를 위한 기도 처소로 삼기 위해서다. 그는 언젠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북한선교는 무조건 하는 거야. 독일 사람들처럼 우리의 염원이 하늘에 닿아야 하나님께서 (남북을) 열어주시지 지금 우리는 너무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 그러니까 무조건 북에 줘야 해.”

한반도의 잘린 허리 한가운데서 스스로 한반도를 위한 제물이 되어 써내려갈 그의 시편은 또 어떤 것일까.

 

정성진 목사는 1997년 1월 경기도 일산에 거룩한빛광성교회를 개척하고 지금까지 24개 교회를 분립, 개척했다. 외부 회계법인에 회계를 맡기는 등 재정 투명공개, 6년마다 담임목사직 신임 투표로 교회 개혁의 모델을 제시했고, 지난해엔 65세 조기은퇴를 선언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쥬빌리 공동대표, 미래목회포럼 이사장, 평화통일여대 이사 등 교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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