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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학자들을 추모함

최근 통일신학의 선구자들 몇몇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화선 목사와 이영빈 목사는 독일에서 사망하였다. 송기득 교수와 손규태 교수는 지난 9월에 우리 곁을 떠났다. 이화선과 이영빈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시작한 인물들이라면, 송기득과 손규태는 신학자로서 평화통일의 민족적, 신학적 과제를 진지하게 모색한 이들이었다.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공부한 이영빈 목사는 한국신학대학 출신의 이화선 목사와 함께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간 대화”를 성사시켰다. 이 모임은 해외 교포 기독자들과 조선그리스도련맹 지도자들의 대화 모임으로, 첫 모임은 1981년 11월 비엔나에서 열렸다. 이영빈은 2018년 12월 14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소천했으며, 이화선은 그보다 1년 앞서 소천, 두 사람 다 프랑크푸르트에 묻혔다.

이젠 고인이 된 통인운동가들. 이화선 목사, 이영빈 목사, 송기득 교수, 손규태 교수(왼쪽부터)

두 사람은 통일운동의 방식에서 갈등을 빚기도 하였으나, 1950년대 후반 체코의 로마드카 교수와 독일의 이반트 교수가 주도하여 창립한 기독교평화회의(Christian Peace Conference)의 한국인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이영빈은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에서 발행한 정기간행물 「통일과 기독교」에서, 이화선은 개인 잡지 「화해」를 통해 기독교와 맑시즘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조선그리스도교련맹과 접촉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부터 ‘프로코뮤니스트’(procommunist)로 몰린 적이 있다.

불과 세 달 전에는 송기득 교수와 손규태 교수가 사망했다. 두 신학자는 우리 민족의 통일과 한반도의 평화에 관해서 깊은 성찰이 담긴 다수의 글을 남겼다. 송기득은 북미주기독학자회에서, 손규태는 재일대한기독교회가 주최한 ‘조국의 평화통일과 선교에 관한 기독자 도쿄회의’에서 주제강연을 맡기도 했다. 남과 북은 1972년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원칙을 담은 7‧4 남북 공동성명을 채택했는데, 두 사람은 각각의 주제강연에서 무엇보다도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는 원칙을 중시하였다. 사상적 차원에서의 민족대단결은 기독교와 주체사상 또는 기독교와 맑시즘의 차이를 초월해야 하는데, 손규태는 주체사상의 인정 문제, 송기득은 주체사상의 수용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이었다.

통일운동, 통일신학의 선구자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경험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과제도 남겼다. 그 경험을 배우고 그들이 남긴 과제를 맡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이것은 통일신학의 선구자들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통일에 관하여 그들이 남긴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도 필요하다. 한국 기독교는 1970년대 후반 이후 우리 사회에서 남북 화해 및 통일운동을 선도해왔으나, 기독교계의 통일 사료(문서, 포스터, 사진, 영상 등)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대학이나 기관은 한 군데도 없다. 이러고도 그들이 구축해놓은 통일신학의 기반이, 한국교회가 축적해온 통일선교의 전통이 유지될 수 있을까?

김흥수 / 기독교사상 주간, 목원대 명예교수

*이 글은 <기독교사상> 12월호 권두글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는 것입니다. -편집자 주

김흥수  kimhskore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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