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이곳에 있던 옛 태화관 별유천지 6호실에서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 지도자 33인이 민족대표 명의로 ‘독립선언서’를 발표함으로 3·1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들 세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와 이념의 차이를 넘어 대동단결하여 손을 잡고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23일 오전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 기념비 앞에서 열린 3·1운동100주년 기념비 제막식. 기념비 안내문을 쓴 역사학자 이덕주 감신대 명예교수가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안내문을 직접 읽었다. 안내문은 이렇게 끝난다. “3·1운동 직후 이완용 소유였던 옛 태화관을 구입하여 태화여자관을 설립한 후 100년 동안 사회복지 사업을 펼쳐온 감리회태화복지재단이 제공한 터에 민족의 화합과 평화통일, 그리고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기념비를 세운다.”

항일 3·1운동의 발원지였던 태화관이 3·1운동 직후 친일파의 수장이었던 이완용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는다. 마치 1948년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도 친일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날 제막식에서는 그 ‘미완의 혁명’에 대한 아쉬움과 각오가 그대로 묻어나왔다.

박남수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는 인사말에서 “우리에게 종교 화합은 늘 1919년에 머물러 있었다”며 “이렇게 종교연합의 상징을 후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기념비를 통해 새로운 미래, 새로운 100년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고도 했다.

부끄럽게도 기자가 태화관 터를 찾은 건 이날이 처음이다. 별로 관심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굳이 찾아나설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미완의 혁명’, ‘제2의 독립’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완성하는 일은 어쩌면 이렇게 새까맣게 잊고 있는, 저 구석에 처박아 놓은 역사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일깨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과보고에서 원철 스님(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은 “기념비 하나 없이 100주년을 보낸다면 무슨 낯으로 선열들을 보겠나, 그 마음으로 건립운동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기념비는 올 4월 19일 1차 준비모임을 시작으로 NCCK 총무와 조계종 총무원장 면담, 6차례의 회의, 연석회의, 종단별 모금운동 등을 거쳐 12월 23일 제막식을 갖게 된 것이다.

전명구 태화복지재단 대표이사는 축사에서 태화복지재단이 1921년 한국 최초 사회복지관으로 출발했다는 점을 설명하며 “온 국민이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라고 이 터를 제공했다”면서 “오늘 이 기념비가 독립운동을 계승하는 주춧돌이 되고, 온 국민이 역사를 바로 알고 민족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념비 건립을 주도한 이만열 전 역사편찬위원장은 “자그마한 기념비를 돌아보면서 민족의 자주 독립과 통일, 세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기릴 동시대의 이웃들과 먼 후대의 자손들을 그려보면서 감사를 드린다”며 “그들이 이 비문에 나타난 ‘아,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도다’의 기원에 따라 아직도 이루지 못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세계의 공존공영을 이뤄주실 것으로 기대,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종교인연합 3·1운동 100주년기념비 건립 취지문’을 낭독한 박차귀 천도교여성회본부 회장은 “선배 종교인들은 침략과 억압으로 위장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정의에 바탕을 둔 참된 평화를 꿈꾸었다”며 “그후 백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오늘 우리는 평화롭지 못하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로서 우리 민족의 아픔과 시련은 여전히 남아 있고 일본과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불신과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취지문은 “백 년 전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꿈꾸었던 평화 세상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날 선배들이 ‘독립너머 평화’를 불렀듯 오늘 우리는 ‘통일너머 평화’를 외쳐야 할 것이다. 백 년 전 ‘선한 의지’ 하나로 작은 힘을 함께 모아 큰일을 이루었던 선배들의 도우심이 민족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오늘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며 끝을 맺고 있다.

이날 3·1운동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엔 기독교에서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김명혁 한복협 명예회장, 이흥정 NCCK 총무, 윤은주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 불교에선 원행 조계종 총무원장을 대신해 덕조 조계종 사회부장, 천도교에서 송범두 천도교 교령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비 제막식이 열린 이날 하늘은 흐린 날씨에다 미세먼지까지 더해 잔뜩 찌푸려 있다. 거기다 기념비 제막식 장소가 길목인 까닭에 지나가는 차량 소리로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다. 100년 전 시대의 어둠을 환하게 밝혔던 3·1운동의 시작 때도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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