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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통일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2019년, 그렇게 바라던 한반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 평화의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한 해였던 것 같다. 다시 북한과 미국이 우리가 사는 한반도를 볼모로 갈등과 대결을 벌일 것이라는 우려도 높아간다. 이런 가운데 남남갈등은 또 얼마나 심한가. 오죽하면 ‘초갈등 사회’라는 단어까지 등장할까. 우리는 과연 언제쯤 공존과 화해를 내용으로 하는 평화를 이 땅에서 맛볼 수 있을까. 이 땅에 발딛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이 코너를 빌어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에 대해 평소 생각들을 정리해 봤다.

우선 북한 인권이다. 북한 인권은 흔히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시금석처럼 이용돼 왔다. 진보는 북한 인권을 외면하고 보수는 앞장서 외쳐왔던 것이다. 그러나 인권 문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엄한 존재라는 보편적 인식 때문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 내용이다. 어느 체제에도 예외일 수가 없다. 우리 사회도 결국 인권 문제가 4·19혁명을 촉발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 6·29선언을 끌어내지 않았는가. 북한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권 문제를 적극 거론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북한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게 하고 그럼으로써 체제를 견고하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 다음, 대북 지원은 ‘무조건’, ‘무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움은 받는 사람이 기분 좋아야 진짜 도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조건이나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 그저 퍼줘야 한다. 상황이 안 좋아서 지원을 못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공식 기구를 통해서만 지원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려고만 들면 우회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상황이 안 좋다는 말은 좋은 핑계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전도에 때가 없듯이 지원에도 때가 없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돕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우월감, 추종하는 마음 모두 내려놔야 한다. 정부는 정부의 관점으로, 군인은 군인의 관점으로, 정당은 정당의 전략과 방법으로 북한을 대하지만 교회는 절대적으로 예수 관점과 예수 방법으로 대해야 한다. 거기엔 북한을 적대시 하거나 얕잡아 보는 관점이 끼어들 수 없다. 북한을 추종하는 의식도 발붙일 수 없다. 모든 사람을 품고 사랑하셨던 예수의 방법만이 있을 뿐이다. 통일만큼 신앙의 본질,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가 발현될 수 있는 좋은 환경도 드물다.

통일은 또한 평화통일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북한과 ‘한 판 붙자’는 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6·25 때와 다르다. 한 판 붙으면 한 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된다. 가공할 무기들이 우리 모두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게 만든다. 전쟁은 결코 안 된다. 한국교회는 무조건 평화를 외쳐야 한다. 전쟁이 대세가 되더라도 끝까지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마 5:9). 평화는 결과만이 아니라 통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남한 사회 안에서부터 만들어 가야 한다.

흡수통일은 안 된다. 올해는 독일통일 30주년이 되는 해다. 서독과 동독은 경제력이 4배 차이가 났을 때 통일했지만 그럼에도 동독 시민들은 2등 국민이란 낙인을 지금까지도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남북의 경제력은 44배 차이가 난다. 무슨 수로 그 차이를 극복한다는 말인가. 점진적인 통일만이 답이다. 그걸 위해 상당 기간 북한을 돕고 일으키는 수고를 우리는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독일통일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지만 그 선물이 선물이 되기까지는 서독교회의 쉼없는 지원이 있었다.

의식(이념)을 양보해야 한다. 통일(統一)은 말 그대로 다른 것들을 하나로 합치는 일이다. 획일보다는 조화가 어울리는 말이다. 통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는 자기 도그마에 갇히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니 나를 반대하는 사람은 타도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네 편, 내 편’ 따로 논다. 끊임없이 분열하면서 통일을 한다고 말한다. 말로는 통일이지만 실제로는 반통일인 것이다. 통일은 다 끌어안는 것이다. 대중과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대중의 눈높이에서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 내가 쓰는 용어부터 순화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대중을 움직여가는 것이 바로 통일운동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통일은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해야 한다. 보수를 배제한 진보만의 통일도, 진보를 배제한 보수만의 통일도 절름발이, 아니 오히려 그 과정에서 끊임없는 분열과 대결의 사생아만 태어날 뿐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큰 사람만이 품을 수 있다. 진보든 보수든 상대방을 품는 사람이 큰 사람이다. 반면 끊임없이 상대방을 비하하고 배제하는 것은 스스로 작은 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통일은 반드시 진보와 보수가 함께 가야 한다. 내가 ‘오지랖 넓다’는 오해와 비판을 받아가면서도 대형교회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도,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상임위원장과 평화통일연대 이사를 맡아오는 것도 그 일환이다. 통일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고, 구부러진 것들은 펴주고, 그래서 모든 영역들이 건강하게 세워져가는 일이기도 하다. 나 혼자가 아닌 다 함께, 빨리빨리가 아닌 서서히, 대충대충이 아닌 온전하게 이뤄야 하는 작품인 것이다.

통일은 간절히 원할 때 이뤄진다는 것이다. 통일이 이뤄지는 필요충분조건으로 흔히 바람(염원), 능력, 환경을 꼽는다. 능력도 환경(국제환경)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바람 자체가 잦아드는 것 같다. 간절히 원하지도 않는데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횡재 외에는 없다. 그런 횡재는 처음엔 대박인 것 같지만 결국 패망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는 별로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의 소원’이란 노래는 이제 ‘황성옛터’만큼이나 전설의 노래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통일을 횡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의 기도 속에, 우리의 노래 속에, 우리의 꿈과 의식 속에 통일이 첫 자리를 차지할 때 마침내 하늘도 감동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마음으로 올해에도 북한이 바라다 보이는 민통선 마을 해마루촌에서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모을 것이다.

 

정성진/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상임위원장, 평화통일연대 이사

정성진  pastor@kwangsu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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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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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20-01-13 22:32:51

    북한방문하면 제일먼저 하는게 조선중앙텔레비죤 문진혁방송원을 만나 같이 셀카찍기~!!!!!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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