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외 기고 포토뉴스
독일 시민단체에게서 통일의 미래를 배우다독일통일 연수를 다녀와서

2019년은 독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된 해고, 올해 2020년은 독일통일 30주년이다. 나는 2019년 11월 30일부터 12월 8일까지 7박 9일동안 ‘독일시민사회 경험을 넘어 한국 NPO 역량쌓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연수에 다녀왔다. 평화문제연구소가 주관하고 독일 한스자이델재단이 협력하며 (재)통일과나눔이 후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통일 관련 NPO의 전문성을 제고하는 한편, 민간통일운동의 인적자원을 육성해 나가기 위하여 시민사회단체 소속 실무급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모집에 선발되어 참가할 수 있었다. 선발된 참가자들은 통일교육, 사회통합, 남북교류, 북한인권으로 분류할 수 있는 단체들 4개씩 총 16개 단체에서 활동하는 1981년생 이하의 청년들이었다. 평소에 잘 만날 수 없었던 다른 분야의 실무자와 활동가들을 가까이 만나며 각자의 고민을 들을 수 있어서 더욱 풍성한 시간이었다.

본 글을 통하여 연수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독일 시민사회단체와 통일의 현장에서 배운 내용과 주관적인 의미를 정리하며 우리의 과제를 제언하려 한다. 먼저 독일 현지에서 방문한 곳들 중에서 기억에 깊이 새겨진 내용들을 추려서 회고해 보겠다.

12월 2일(월) 오전 드레스덴 작센주 정치교육원에서 만난 부원장에게 통일 후 구동독 지역의 시민교육에 대해 배웠다. 정치교육의 최상위 목표는 주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을 높이는 것이라고 하면서, 참석자에게 어떤 생각을 주입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정치교육원은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때 그대로 노출시키고, 그것에 대해 양자가 충분히 이야기하고 합의하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이들이 가진 정치적 중립성은 정당을 뛰어 넘는다는 뜻이었다.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헌법에 위배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도 이런 건전한 정치교육원이 마을 곳곳마다 세워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수 참가자들과 단체사진

2일(월) 오후에는 라이프치히대학 극우주의와 민주주의연구센터의 한 젊은 교수로부터 독일의 시민사회에 대한 개념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민사회라 하면 우리는 최근 2~30년 동안 생긴 ngo를 생각하지만, 독일은 전통적인 교회, 노조, 정당, 동아리 같은 것들을 시민사회로 여긴다. 이후 거의 모든 강연에서 시민사회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 계속 이야기되었는데, 한국의 시민사회와 비교할 때 이질적이면서 부럽기도 했다. 한편 전후 1949년에 독일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귀찮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고 회고하는 것처럼 우리사회도 조바심 내지 말고 조금씩 진보해가면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3일(화) 오전, 라이프치히 시민재단에서 들은 내용 중에서는 ‘그땐 그랬지’ 카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통일 전후 과정을 오롯이 겪은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공공도서관에서 들려주는 모임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리는 “라때는 말이야”라는 신조어가 생겼을만큼 자기 이야기 많이 하려는 사람을 꼰대 취급하는 정서가 있는데, 독일사회가 성숙하게 보여주고 있는 세대간 소통과 대화의 문화가 부러웠다.

4일(수) 오전, 공산독재희생자단체연합 선임연구원에게서 국가폭력을 기억하고 회복하는 일을 소개받았다. 슈타지의 만행을 밝히고 희생자들을 위한 일을 하다보면 증오와 절망, 인간에 대한 환멸 감정이 들 수도 있고, 피해자나 희생자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면 실무자가 정서적으로 지치거나 우울해질 수 있다. 독일사회라면 사회 시스템적인 지원이 있을 듯해서, 직원이나 활동가들은 자기 심리와 정신 건강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궁금해서 질문했다. 하지만 직원들을 치유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은 없다고 했다. 그러한 시스템은 독일이나 우리나라나 이제 관심을 가지고 기초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니까 사명감을 가지고 25년이나 일을 하고 있”는 연구원에게 경외심이 들었다.

공산독재희생자단체연합 실무자의 강연을 들었다

5일(목) 오전에는 카리타스협회라는 천주교 구호단체에 방문하였다. 타종교인을 배려하는 부분과 비슷한 활동을 하는 6개 기관의 연합체가 본분에 충실하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며 공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6일(금)에 방문한 유로지역 비아드리나 오더강 중부지역협회에서 묵직한 과제를 얻었다. 독일 협회의 부대표를 폴란드인 젊은 청년이 맡고 있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고, 경계에서 협력한다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주민들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내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고, 정치 체제를 넘어서 폴란드와 서독 주민들이 서로 만나고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을 원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감동 받았다. 서로의 이해관계로부터 공동의 목표를 향해가는 형태로 변화되는 것이 우리에게도 당면한 큰 과제다. 폴란드와 동독처럼 남한과 북한도 제도적인 장애물들이 없어지면서 협력의 관계가 깊어질 수 있도록 하려면 지금 무엇부터 해야할까 자문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반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국경을 걸어서 넘어가본 경험이 전혀 없다. 경계에서 협력한다는 것의 의미, 다양한 것을 접하며 사는 장점은 무엇일지 머릿 속으로만 상상할 수밖에 없다. 생각과 존재가 더 넓어지는 것, 능력이 확장되는 것, 내가 타자와 그리고 반도국가가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하며 살고 싶어졌다.

유로지역 비아드리나 오더강 중부지역협회 활동가들

이렇게 7박 9일 동안 독일 통일의 현장에 직접 가서 발로 밟고, 그 역사를 배우고, 활동하는 사람을 만나고 돌아왔다. 독일이라는 공간의 역사와 사회가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르며 거리가 있는지 경험적으로 알 수 있었고, 그에 따른 나와 우리의 과제에 대해 세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었다.

첫째는 기독교의 과제다. 평화통일연대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단체여서, 독일통일 과정에서 독일 기독교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귀가 더 쫑긋해지기도 하면서 마음은 더 움츠러들었다. 독일 기독교는 신구교 차이 없이 사회복지 관련된 일을 전통적으로 맡아서 하고 있으며, 통독 과정과 이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국내교육 때도 통독 과정에서 기독교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사들이 강조하면서, 꼭 함께 덧붙이는 말은 “우리와 다르게...” 또는 “...한국 기독교는 그렇게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한국과 다르게 독일은 기독교가 큰 역할을 했다”는 명제에 반론을 제기하지는 못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한국기독교가 지금과는 다르게 통일운동 초창기에는 긍정적으로 굵직한 역할을 다소 잘 했었기 때문이다. ‘평화통일’이라는 단어만 말해도 잡혀가던 엄혹했던 시기에 한국 기독교계에서 민간분야의 통일운동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어디서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부끄러울 정도다. 독일기독교는 개신교 종교개혁의 발상지이기도 하면서 기독교가 시민사회를 이끌고 정통적인 가치를 지켜왔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해서 더욱 서글펐다. 이번 연수를 통해 한국 기독교의 통일운동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깊이 느낀 것만큼 기독교 통일운동에 더 박차를 가해야겠다는 도전의식이 생긴 것은 다행이다.

둘째는 역사적 과제다. 독일통일의 사례를 참고할 때 주의할 점은 사대성을 지양하고, 역사성을 지향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독일통일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차치하고서라도 그래도 독일은 통일을 이루긴 했고, 우리보다 선진국이라는 이유로 마냥 따라갈 필요는 없다. 어느 독일인 강사가 이야기했듯이 독일 통일 사례는 바람직한 사례는 아니었다. 통독 방식은 top-down이었고, 갑자기 이루어진 통일로 많은 무리수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재 독일통일의 여러 분야 중 제도통합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지만, 사회통합이나 심리통합은 아직 완성 안 되었다고 평가된다. 갈등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이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역사적인 과제다. 우리에게도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보내느냐가 관건이다. 이번에 만난 강사들 중에 나이 예순이 넘은 분들은 자기 인생에서 분단과 통일을 모두 경험했겠구나 싶었다. 그 분들의 얼굴에 있는 주름살을 직접 가까이 보면서 독일의 현재만 볼 것이 아니라, 현재의 독일이 가능하기까지 겪었던 역사적 부침과 질곡 또한 존중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아가 우리에게도 그러한 주름살들이 지금도 생기고 있음을 거울을 보며 깨달았다. 첫날밤에 야경을 보느라 오랫동안 밖에서 돌아다니며 대책없이 맞은 추운 바람 덕에 내 얼굴 피부가 트고 주름살이 더 깊어졌다. 거울을 보며 통일과정이 거칠고 지난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는만큼 더 성숙해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우리나라의 통일이 늦어질수록 분단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통일을 준비하는 시간도 많아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독일보다 통일 준비를 더 많이 더 길게 하고 있으니, 우리의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멋진 통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까지 생겼다.

셋째는 문화적 과제다. 확실히 독일 시민사회의 문화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독일문화 중에 가장 긍정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한스자이델제재단의 김 국장이 대답한 ‘실용주의’ 문화도 그렇고, 토론 문화며 성숙한 시민의식이 우리의 것들과는 격차가 커보였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독일시민들은 허례허식이 없고, 매사에 진지하고 신중해 보였다.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의 문화에서 비롯되는 것 같았다. 독일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갈등을 풀기 위해 서로 접촉하고 많이 이야기하려 한다. 민주주의는 합의를 찾아가고 서로 부딪쳐서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이번 연수 자체가 하나의 민주주의 문화를 실험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의 통일 과정과 통일이후에 대한 합의를 찾기 위해 독일에 와서 함께 어울리며 배우는 시간 자체가 연수식 민주주의의 구현이었다. 또한 무엇보다 우리가 추구할 문화는 젊은 문화, 함께하는 문화라는 점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번 연수에서 강사들에게만 배운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젊은 활동가들에게도 많이 배울 수 있는 경험은 큰 성과였다. 통(通)하여 하나(一)되자는 통일 관련 일을 하면서도 다른 단체에 있는 이들과 소통하는 자리는 거의 없고, 통일관련 세미나나 간담회를 가도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마이크로 듣기는 쉽지 않다. 나는 이번 연수에 함께한 사람들과 오래도록 다양하게 만나가고 싶다. 그래서 먼 훗날에 한국의 통일은 젊은 활동가들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독일 강사님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묻지 못한 질문들이 많다. 한국적 민주주의 상황에서 조언해 주고 싶은 점이 있는지, 독일은 역사적으로 개신교 교회가 타락할 때 어떻게 제어/통제 했는지, 비슷한 단체와의 관계에서 연합과 일치를 위해 어떤 제도적/실천적 노력을 하고 있는지, 비슷한 연령과 경력자와 비교할 때 활동가 분들의 평균 임금 수준은 어떤지, 세대간/계층간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독일 NGO/NPO들은 시민단체로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받고 있는지 등이 궁금했다. 이러한 질문은 계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현장에서 사람들과 만나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우리식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태훈/ 통일교육 강사, 평화통일연대 청년위원장 

김태훈  hooni0320@hanmail.net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