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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에게 무엇인가?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내년도 방위비 인상을 과도하게 요구하면서, ‘미국이 한국의 우방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6·25 이후 신생 대한민국을 적화위기에서 구해 준 고마운 존재로, 휴전 이후에도 취약한 한국의 국방력을 보완해 오늘의 번영된 나라를 이루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동맹으로 인식하는 데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미국을 독재정권을 비호하는 세력이요 한반도 분단의 원인제공자이면서 한국전쟁 이후 그 분단을 고착화하는 제국주의자로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그러한 부정적인 인식에 공감하기보다는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이라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들을 대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시위현장에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들고 나와 휘두르는 일단의 군중들에게는 미국이 조국 대한민국보다 자신들을 더 소중히 지켜주고 우러러보며 추종해야 할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최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반감은 이제까지의 국민 정서와는 사뭇 다른 결을 느끼게 한다. 이 시점에 ‘미국은 한국에게 무엇이었나?’라는 질문과 함께 ‘한국은 미국에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1. 대한제국의 명운이 경각에 달려 있던 1905년 9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점령을, 미국은 일본의 한국 점령을 상호 인정한다는 내용)의 주인공인 태프트 육군 장관과 함께 일본, 중국, 필리핀을 경유하는 아시아 순방길에 한국을 방문했다. 고종 황제는 기울어진 국권의 회복을 미국과의 공동수호동맹에 기대고자 앨리스를 극진히 환대했지만, 그녀는 고종 황제를 조롱한 것도 모자라 명성황후를 모신 홍릉에 승마복 차림으로 가서 능을 수호하고 있던 말(馬) 석상에 올라타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녀가 떠난 뒤 2개월 후, 일본은 마침내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여 본격적인 한반도 침략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후 을사보호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의 침략이 가일층 속도를 내고 있을 때, 한국의 외교고문으로 일제의 침략을 찬양하고 선전하던 친일파 미국 언론인 스티븐슨은 1908년 귀국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 전명운 두 열사에 의해 피살되었다.

 

#2.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9월 5일 인천에 상륙한 미군은 다음날 서울에 들어왔다. 미 24군단장이자 주한 미군사령관인 하지 중장은 아베 조선 총독과 조선주둔 일본군의 항복조인식을 거행하고, 조선총독부에 게양된 일장기를 끌어내렸지만, 그 자리에는 태극기 대신 미군 장병들의 거수 경례 속에 성조기가 내걸리게 된다. 그리고 미군정은 당시 여운형에 의해 주도된 건국준비위원회(건준)는 물론 김구 주석으로 대표되는 상해 임시정부(임정)마저 부정하며 한국인에 의한 독립과 건국의지를 짓밟아버린다.

해방 후 서울에 온 마군이 일장기 내리고 성조기 게양하는 장면.

#3.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미군은 일본열도 상륙을 상정하고 OSS(미군전략정보처) 산하에 일본에 쉽게 침투할 수 있는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특수요원을 선발하여 양성한다. 미군들과 같이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적진에 투입되기를 기다리던 이들 특수요원들은, 원자폭탄 투하로 일제가 앞당겨 항복하게 되자 용도 폐기되어 함께 훈련받던 미군 동료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OSS 첩보요원에서 전쟁포로 신분으로 격하되어 수감되고, 해가 바뀐 후에야 뒤늦게 미군 수송선에 실려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다.

 

#4. 6·25전쟁 발발 후 ‘서울 사수’의 공허한 약속을 뒤로한 채 허겁지겁 부산으로 도망한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7월 14일 한국군의 전시작전지휘권(전작권)을 넘겨달라는 맥아더 장군의 요청에 따라 대한민국 국군의 전작권을 유엔 사령관에 이양한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까지 피난갔던 선조가 명나라에게 지휘권을 넘긴 이래 350여 년 만에 다시 일어난 역사의 반복이다. 그후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안보우려를 명분으로 반대하는 장군(‘똥별’)들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일갈하며, 부시 대통령과 회담을 통해 전작권을 2012년 4월 17일자로 회수하기로 합의했지만, 이어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의해 또 다시 기약 없이 미뤄져 버렸다.

 

#5. 1979년 6월 29일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김포공항까지 마중나온 유신체제의 박정희 종신대통령은, 자신을 본체만체 비웃듯 헬기를 타고 동두천 미군기지로 훌쩍 떠나버린 카터에게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국내의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박정희에 맞서,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 카드로 그를 압박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박정희의 심복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스스로 ‘유신의 심장’을 쏘아 쓰러트리고 유신체제의 막을 내리게 한다.

 

최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혁명수비대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추적해 이라크 경내에서 드론으로 폭살했다. 명분은 그들이 미군시설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이라크 의회는 미군 철수를 의결했으나, 미국은 이라크 내 미군 시설 건립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음을 내세우며 철수 주장을 일축하고 계속 주둔할 의지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란은 미국을 ‘최악의 사탄’이라고 부르며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순교’ 이후 닷새 만에 미군기지에 대한 미사일 보복공격을 감행하였다.

미국이 자신들에 적대적인 이란이나 북한을 대하는 태도와 ‘우방인 한국’을 대하는 태도에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때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로 여겨져 왔고 ‘세계경찰’을 자임해 왔던 미국과, ‘America First’를 외치며 극단적인 자국이기주의에 빠져 경쟁국들은 물론 우방국들의 명줄마저 쥐어흔드는 미국은 과연 같은 나라인가?

미국 태평양사령부 사령관 출신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이란과의 전운이 고조된 가운데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남북협력증진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의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북미간 협상의 문은 열려 있지만, 필요하다면 오늘밤이라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일본계 미국인인 그는 혹시 자신을 과거의 ‘조선총독’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한국은 미국에게 공산주의에 맞서 피를 나눠 함께 싸운 우방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국익과 일치될 때의 이야기이고,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존재가 되었을 때는 언제든지 ‘손을 봐서 길들여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지고지선(至高至善)한 미국에 대한 우리의 맹목적인 짝사랑도 눈에 씌운 콩깍지를 조금씩 벗고 균형을 찾아갈 때가 되지 않을까?

신영욱/ 목사, 평통연대 운영위원

신영욱  ywsh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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