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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약화 우려? 변화의 본질과 한국의 전략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30호

한미동맹은 안보가 생명인 한국에서 늘 주목받는 이슈다. 최근 북핵과 지역안보, 방위비분담, 전작권 전환과 주한미군 등 굵직한 문제들이 거론되면서 동맹의 현 상황에 대한 우려가 다시 나오고 있다. 한미동맹 약화 주장은 동맹 존재 자체를 절대시하는 보수론자들이 주로 제기하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작년 11월 국내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동맹이 약화됐냐는 질문에 보수층 80.7%, 중도보수층 71.1%, 중도진보층 41.2%, 진보층 31.3%가 동의했다. 정치 성향에 따라 인식이 판이하며, 그만큼 적확한 평가가 중요하다.

 

한미동맹 약화 주장의 핵심 논거

2018년 북한의 전략적 입장 변화에 따른 남북관계 개선 및 북미 핵협상은 그 전까지 지속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강력한 한미 대응의 패턴을 크게 바꾸었다. 확장억제와 응징보복 같은 동맹의 군사적 수단은 외교적 노력을 지원하는 것으로 국한됐고,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도 축소 또는 중단됐다. 작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핵협상이 주춤하면서 북한은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위협적 언사를 거듭하고 있는데, 만약 북한의 전략적 도발이 재개될 경우 군사대응 수준을 두고 정책적 고민이 커질 수 있다. 약화론자들은 군사대응 능력의 약화와 함께 향후 대응 과정에서 한미의 균열 가능성을 강조한다.

중국의 경제발전에 따른 지역 전략구도 변화는 2010년대 ‘중국몽’(中國夢)이 현실화되면서 더 부각됐다. 중국의 반접근/지역방어(A2/AD) 전략으로 원양작전 능력이 급신장하면서 미국의 동북아전략에 적신호가 켜졌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의 일환으로 인도태평양전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한편, 지역 동맹국인 한・일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정상국가’로서 국제역할 확대 및 군사력 강화를 추구하는 일본은 이에 적극 동참하는 입장인 반면, 한국은 중국 경제와의 상호의존, 사드 보복 등 경험으로 선택에 제약이 있다. 최근 한일간 무역분규가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NIA) 종료 문제로 비화되자 미국이 정색한 것도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의 약화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약화론자들은 이 틈을 지적한다.

방위비분담과 관련된 미국의 강공은 더 직접적 영향을 준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에게 방위비분담액을 4~5배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해지며, 만약 한국이 거절할 경우 주한미군을 줄일 수 있다는 엄포까지 나왔다. 12월에 발표된 국내의 한 여론조사는 한국민들이 한미동맹(92%)과 주한미군(87%)을 지지하지만, 미국의 증액 요구에 반대하는 의견이 압도적(94%)이었고 합의 실패시 미군 감축도 수용한다는 의견도 중간 이상(54%)이었다. 주한미군의 조정 가능성은 장차 한국군의 전작권 전환 과정과 맞물려 현실화될 수도 있다. 약화론자들은 한미 합의대로 주한미군 사령관이 연합사 부사령관이 되면 ‘퍼싱 원칙’이 깨지므로 위험하다고 한다.

한미동맹 약화 주장은 동맹 의제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면서 한미관계가 악화되어 주한미군 축소와 한미 연합방위체제 약화 등 동맹의 군사능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한미동맹과 현존 군사능력을 절대 기준으로 두고 있어 군사위협이나 정치경제 상황 등 외부 변수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북핵 상황이 협상으로 호전 가능성이 있을 때엔 핵 우선 폐기와 훈련 축소에 따른 연합전력 약화를 강조하고, 핵협상 실패와 도발 가능성 국면에선 대북 공격 등 극단적 선택을 둘러싼 이견 가능성을 강조한다. 어찌됐든 위험하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형성과 전개

한미동맹은 한국전쟁 초기 미국의 개입으로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면서 배태됐고, 전쟁 말기 재침 억제를 위해 한국이 강하게 요구하면서 공식 결성됐다. 전쟁 직전 애치슨 선언으로 한국의 방어선 제외를 공표한 미국은 전쟁이 발발하자 입장을 크게 바꿔 공산권 봉쇄를 위한 북한군 격퇴를 당면 목표로 했다. 중국군 개입으로 전세가 다시 악화된 뒤에는 소련과의 일전을 준비(NSC 68)하되 한반도는 중부에서 전쟁을 제한(NSC 48/5)한다는 정책을 채택했다. 당초 미국의 전략은 전쟁 재발만 막으면 된다는 것이었으나,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동맹이 형성되면서 전쟁 억제와 함께 한국의 경제부흥이 가능했다.

한국전쟁 당시 최고 32만 명에 달했던 주한미군은 휴전 후 감축되어 1950~60년대 6만 명 수준을 유지했고, 닉슨 독트린과 카터 당시 감군을 거치면서 4만 명대로 줄었다. 탈냉전 직후인 1990년대 초 미국의 동아시아전략구상(EASI)에 따라 7천 명, 2000년대 초 미국의 이라크전쟁 수행과 한미동맹 조정 과정에서 7천5백 명이 추가로 줄어 현재 2만 8천5백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한국 안보의 주축이라 할 주한미군의 감축은 한동안 미국의 일방적 결정과 통보로 진행되다가 1991년 감군 때 한미간 사전 협의의 형식이 갖춰졌고 2006년 감군 때엔 미측 통보 1년 뒤 2개월 간 실무협의 끝에 한미 합의로 규모와 시기가 결정됐다.

동맹 결성으로 미국이 한국 방위를 책임지면서 대규모 원조가 제공됐고, 초기 미국의 무상 군원은 한국 국방비뿐 아니라 재정의 상당 부분도 충당했다. 1960년대 들어 원조가 줄었지만 베트남전쟁 참전 보상, 그 뒤 1977년까지 한국군 현대화 지원 자금이 각각 제공됐으며, 별도로 1986년까지 유상 군원인 미정부 해외군사판매(FMS) 차관도 제공됐다. 이에 대해 한국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통한 토지・시설 제공과 함께 1974년부터 연합방위력증강사업(CDIP), 1991년 이후 미군 주둔경비 일부에 대한 방위비분담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미국무부의 상대역인 외교부가 분담 협상을 주도하면서 보다 전문적인 협상이 이루어졌다.

한미동맹은 오랫동안 미군 주도, 한국군 지원의 형태로 운영되어 왔다. 1950년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이 유엔사에 이양된 뒤 휴전 후에도 유지됐고, 1978년 한미 정부간 별도 합의로 한미연합사에 재이양됐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한국군 투입과 관련해 반미감정이 증폭되면서 작전통제권 환수가 추진됐고 1994년 평시 작전통제권이 환수됐다.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반미감정이 다시 고조되어 SOFA 개정과 전작권 환수 요구가 터져나왔고, 2006년 한미 정부는 2012년에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는 2014년 조건부 전환으로 수정됐고 현재 3대 조건 충족을 위한 군사적 노력이 진행 중이다.

 

한미동맹 변화의 본질

한미동맹은 동맹의 역사가 깊고 시대적 변화의 와중에서 일정하게 적응해 왔다. 미소 냉전의 전개, 베트남전쟁 참전과 종결, 냉전 종식과 북한 핵문제, 9.11 이후 대테러 전쟁 등 안보질서의 구조적 변화는 모두 동맹과 주한미군, 한미 군사관계에 영향을 미쳐왔다. 동맹의 외생 변수로서 명시적 위협세력인 북한의 군비증강과 핵・미사일 개발은 물론, 구소련・중국 등 글로벌 경쟁자의 존재, 동북아 지역안보 변화와 일본의 재군비 등은 동맹의 포괄적 역할을 규정했다. 미국은 북한의 군사위협에는 한미동맹을 통해, 중국 등 주변국 변화에 대해서는 직접 또는 한・일과의 관계 강화 등을 통해 간접 대응해 왔다.

동맹의 내생 변수로서 한미의 국력 변화와 국민 인식도 점차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초기 한미동맹은 전형적인 후견-피후견 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였지만, 한국의 경제발전과 협력적 자주국방 노선으로 2000년대 들어서는 호혜적인 동반자관계로 변모하고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시혜로부터 한미가 함께 만들어가는 동맹이 된 것이다. 한국민은 미국을 전쟁에서 지켜준 혈맹으로 고마워하면서도 5.18이나 여중생 사망 등 정치사회적 사건, 방위비분담 등 경제적 압력, 사드나 지소미아 등 주변 정세에 따른 압박 등이 과도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다만, 한국민은 한국 안보와 경제 번영이 한미동맹의 지속 발전과 병행 가능하다고 본다.

미국의 입장에서 오랫동안 동북아전략이 한미동맹을 견인해 온 힘이었다면, 최근 몇 년간은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국제관과 대외정책이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제일주의’를 강조하면서 집권한 트럼프는 그동안 대외정책을 통해 기존의 다자질서와 자유무역주의를 배척해 왔다. 그는 해외 동맹국과도 방위공약과 미군 주둔을 무기로 국방비 또는 방위비분담액 증액 압박을 서슴지 않았고, 여기에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영국의 브렉시트나 각국의 ‘각자도생’ 경향과 연관된 구조적 변화로 이해되나, 지난 12월 미의회의 주한미군 규모 동결 결의 등 미국 내의 제어 가능성에 비추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요컨대, 한미동맹은 67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지속 발전해 왔다. 오랜 시절 동맹 안팎의 도전과 요구가 거센 적이 많았지만, 한미 모두 동맹의 유지가 국익에 필수적이라는 관점에서 대응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상 한미는 대한민국 또는 미국의 서태평양상 영토에 대한 공동 대응을 규정하고 있고, 이 점에서 한미동맹의 직접적 지역 역할 또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에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점에서 동맹의 목적 달성과 장기 지속이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며, 아마도 양국은 지금처럼 군사협력의 규모와 양상을 조정하면서 최근 등장한 동맹 약화 주장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선택과 외교전략 방향

한미동맹의 장기 안정적 발전을 위한 우리의 선택은 자명하다. 동맹에 대한 여러 변화요인 또는 도전에 대해 신축적이면서도 포괄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동맹 본래의 목적을 유지해가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동아시아 대륙과 해양 사이, 남북으로 분단된 안보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위협과 침략을 억제함으로써 지역 평화와 안정, 그리고 발전에 기여하도록 실질적인 조정을 해 나가는 것이다. 아마도 영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이나 통일 달성의 경우 동맹의 목적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나, 그 경우에도 사전에 동맹 배제를 전제로 접근한다면 또다른 심각한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

최근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일도양단이 아닌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북핵 협상과 남북관계가 답보 상태에 있지만, 북한이 심각한 전략적 또는 대남 도발을 하지 않는 한 한미 연합훈련 조정과 9.19 군사합의에 따른 적대행위 중단을 유지함으로써 상황 타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 지원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냉전의 유물’이라고 보는 중국에 대해 한국 방위라는 본래의 목적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공격 수단이 아님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미・일에게도 한미동맹의 강화 발전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한중 안보협력이 지역 평화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거센 미국의 방위비분담 압력에 대해 한국민이 바로 동의할 만한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한국으로서는 SOFA 규정에 근거한 항목별 비용분담만이 가능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합의가 되더라도 당장 국회에서 비준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작년 방위비분담 협상이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와 해외장비 정비 비용 문제로 난항을 겪었듯 항목 외 문제에서 타협할 수는 없다. 다만 예컨대 주한미군 기지에 대한 한국의 간접비 부담과 환경오염 치유 등 장차 불가피한 비용부담 용의를 강조함과 아울러 한국군 전작권 전환과정에서의 유연한 협조, 평화 정착시 동맹 발전, 전략동맹으로서의 역할 분담 등 전략적 대화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안보 현실에서 한미동맹의 유지 발전과 함께 다층적 쌍무・다자 안보협력의 추구는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할 과업이다. 한미동맹이 한반도 방위동맹으로서 위상과 능력을 굳건히 한 가운데 한중, 한일, 한러 등 쌍무 협력, 한미일, 한중일 등 소다자 협력, 보다 본격적인 동북아 다자안보대화 등 다자 협력을 함께 모색해 간다면 한반도 및 지역 평화에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추구했던 협력적 자주국방과 균형적 실용외교의 개념은 지금도 유용하다. 필자는 당시 청와대나 문재인정부 국방부에서의 경험을 통해 핵심 수단을 유지하면서도 유연한 협력네트워크 창출을 위한 전략대화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저자 소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장과 대통령비서실 안보정책수석비서관을 역임했고, 문재인정부 첫 2년간 국방부 차관으로 있었다. 현재는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으로 있다.

서주석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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