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성씨의 구치소 일기(2013년 1월 21~31일)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이 날은 “탈북자 1만명 정보 통째로 北에 넘긴 정황”이란 대문짝만한 제목을 단 D일보의 1면 단독보도를 시작으로 모든 언론이 유우성씨를 ‘엄청난 간첩’으로 기정사실화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한 날이다.

그날 일기에서 우성씨는 “억울하다” “죽고 싶다”는 절망적인 심경을 그대로 일기장에 토해놓고 있다. 왜 안그랬을까. 아마 당해보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억울함의 100분의 1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디 우성씨뿐이겠는가. 국정원 같은 권력에 의해, 법에 의해 억울하게 범죄자로 내몰린 사람이…. 우성씨는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권력·정보기관의 공작에 희생당하고 있는 하나의 상징 아이콘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말이다. -편집자 주

2013년 1월 21일(월)

1월 19일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았다. 1월 17일경 1차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았었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미칠 것 같다. 내 인생에서 2013년 1월 21일을 지우고 싶다.

오늘 아침 방송에서 서울시청 탈북자 공무원 간첩 잡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간절히 기도했건만 끝내 뉴스가 나왔다. 그것도 KBS1 뉴스에서 방송되었다. 나는 이제 혼자서 국정원과 대한민국 언론과 싸워야 한다. “나는 정말 억울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험난한가? 죽어버리면 몸과 마음이 다 편하지 않을까? 나중에 사회 나가면 나는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 2013년 1월 21일자 우성씨의 구치소 일기. 이날은 모든 언론들이 우성씨를 간첩으로 기정사실화해 대대적으로 보도한 날이다. 이날부터 우성씨의 일기장엔 "정말 억울하다" "죽어버리면 편하지 않겠는가"라는 표현이 자주 눈에 띈다.

나는 혼자다. 34세 동안 살면서 이젠 나의 생명의 마지막 끝이 아닌가 싶다.
사회에서는 내일부터 나에 대하여 엄청 떠들 것이다.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과연 나의 결백, 억울함을 찾을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 같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이고 진실은 이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슈가 사람의 생명을 좌우지하고 언론이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결코 약자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미래가 없다. 살아있는 식물인간이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사람으로 사는 건 너무 힘들다.

내일 아침 9시 또 출정(검찰에 가서 조사받는 것을 뜻하는 듯-편집자 주)이 있다. 하루가 한 달보다 길고 지금의 이 시간이 1년보다 길다.

제발 살려주세요. 나 정말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하늘에 계시는 엄마, 그리고 몸이 아픈 아버지, 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모든 화살이 날 죽이려고 합니다. 살고 싶지 않습니다. 죽으면 편할 것 같아요.
내 인생에서 없어야 하는 1월 21일.
하나님 살려 주세요.

2013년 1월 30일(수)

며칠째 진술서와 1월 27일까지 국정원 조사 때문에 정신을 못차렸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이메일, 편지를 써보냈다. 특히 1월 25일 김찬선 신부님 편지 받아보고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 된 건 나 본인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잘못됐다. 2004년(우성씨가 대한민국에 입국한 해. 자신이 북한에서 태어난 화교신분을 자백하지 않은 것을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편집자 주)에 솔직히 말씀드리고 사회에 나와야 했었다. 지금 와서 후회가 많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은 너무 억울하고 뭐라고 표현할지 모르겠다. 동생(당시 여동생 가려씨는 우성씨의 권유로 2012년 10월 말에 대한민국에 입국했고 국정원이 운영하는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의 거짓말이 원망스럽다. 그러나 동생이 지금 어떻게 조사받고 있는지 겁나고 무섭다. 동생이 나이도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수사관 원하는 대로 거짓 진술할 것 같다. 하느님, 제발 불쌍한 동생 구해주이소. 제발, 동생 좀 구해주세요.

요즘은 자꾸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나를 잊고 살 거다. 결코 기억해주는 사람 없이 나는 소리 없이 없어질 것 같다. 창밖에 햇빛이 눈부시게 창살로 빛을 뿌린다. 밖의 세상이 너무 그립다. 죽도록 그립다.

음력 설이 며칠 안남았다. 혼자서 설을 보내야할 아버지가 너무 불쌍하다. 평생 악하게 안살고 평범하게 살아온 우리 아버지, 왜 이렇게도 고생 많으실까? 못난 아들 만나서 안할 고생 다하는 것 같다.
동생을 아버지 곁에 그냥 함께 있게 뒀어야 하는데... 내가 미친 놈이다. 죽일 놈이다. 죽도록 후회되지만 소용이 없다. 결국 시간은 뒤로 돌릴 수 없다. 내 운명 중에 내게 지금의 길이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꾸 주위 환경이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더욱 힘들고 그 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 매일 아침이 무섭고, 날이 밝는 것이 싫다. 너무 싫다. 계속 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위축되어 자신감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옛날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오늘 아침에 신부님께서 보내주신 성경책을 받았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제발, 이 지옥에서 저를 살려주시고 당신의 도구로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앞으로 나가면 하느님의 충실한 아들로써 일하고 생활하며 전도하겠습니다. 불쌍한 동생을 좀 구해주옵소서. 동생이 홀로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고 벅찹니다. 하느님께서 옆에서 지켜주시고 함께 해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힘없이 저물어 갑니다. 나의 생명도 말라가는 화분 속 생물처럼 잎이 다 떨어지고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정착 생활 9년 정말 길고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치소에서 지내는 20일, 마치 1년 아니 10년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얼마 더 있을지도 모르겠고 힘없고 연약한 내가 과연 이 싸움에서 나의 결벽을 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정말 형을 받고 여기서 살아야 할지... 하느님, 살려주세요. 무릎꿇고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불쌍한 나의 동생과 저를 살려주세요.’

2013년 1월 31일(목)

오늘은 2013년 1월의 마지막 날이다. 해마다 1월 10일 전 새해 계획을 세우고 트리를 하는데 올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언제면 이 구치소에서 풀려나고 또 한국에서 살 수 있을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말해도 내 말을 법에서 안들어 준다.

나는 힘없고 빈약한 작은 돌이다. 나한테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다. 그리고 나를 믿어주고 내가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하고 기다려주시는 신부님 등 좋은 분들, 그러나 그들도 막강한 검사의 힘 앞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기도의 힘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 계심을 믿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고 의지다.

나는 오늘 긴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목요일이어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옆에 방 살인수, 사람을 죽이고 사형에 처한 아저씨와 함께 샤워를 같이 했다. 너무 무서웠지만 함께 씻을 땐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씻었다. 사실 무서웠다.

그리고 나 여기 너무너무 싫다. 매일과 같이 이 모든 것이 악몽이라고 혼자서 자신한테 거짓말을 한다. 때로는 허벅지를 꼬집어 보기도 한다. 꿈이면 얼마나 좋겠냐고. 나는 요즘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아무 생각도 없다. 모든 것이 다 귀찮고 숨쉬기도 힘들다. 난 옛날에 어떤 사람이었나?

혹시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을 해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내가 지금 우울증에 걸린 건 아닐까?

나도 꿈이 있었다. 한국에서 돈 많이 벌고 키 크고 이쁜 아가씨 만나서 애도 많이 낳고 누구보다도 와이프한테 잘해주고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눈앞에서 보였다가 한순간에 다 사라졌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다.

나는 정말 헛똑똑이다. 한마디로 바보, 멍청이, 병신이다. 빛깔 좋은 개살구고 내용은 하나도 없고 텅빈 놈이다. 머리도 안좋고 내 인생은 굴곡이 너무 많다. 이제 34세밖에 안됐는데 내가 받아들이기는 너무 무겁고 힘든 사항들이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또 내 운명은 왜 이렇게 안좋은지 미치겠다. 너무 힘들고 자꾸 눈물이 난다. 그동안 정말 일도 하고 밤에는 공부도 하며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가족들 위해 나름대로 아들 역할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이렇게도 불공평한 건지 모르겠다. 그것도 사랑하는 나의 친동생 거짓말(우성씨에 대한 간첩혐의 기소는 모두 합신센터 조사에서 나온 여동생의 진술 때문이다. 우성씨와 변호인들은 여동생의 진술이 강압과 회유에 의해 조작됐다고 주장했고 여동생은 지난해 4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잘 살게 해주겠다’는 국정원 수사관의 말에 속아서 허위 진술을 했다고 폭로했다)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나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다.

엄마, 하늘에 계시는 불쌍한 우리 엄마. 동생을 보호해주고 우리 남매를 부디 구해주세요. 슬픈 마음에 오늘도 이렇게 몇 자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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