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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최근 ‘사랑의 불시착’이란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돌풍을 타고 북한에 불시착해 벌어지는 남녀 간의 로맨스를 다룬 내용이었다. 여기, 북한 땅에 불시착한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소설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의 주인공 알란 칼손과 그의 친구 율리우스다. 101세 생일날 열기구를 타다가 바다에 떨어진 두 사람은 우연히 농축 우라늄을 몰래 운반하고 있던 북한 화물선에 구조되어, 그 길로 북한에 끌려가게 된다. 알란이 자신을 핵무기 전문가라고 거짓 소개한 까닭이다. 

▲소설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열린책들)

이 소설은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후속작이다. 전작이 스탈린, 마오쩌둥, 트루먼, 김일성 등 20세기 정치 지도자들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이번에는 김정은, 트럼프, 앙겔라 메르켈, 블라디미르 푸틴 등 21세기 정치 지도자들을 등장시켰다.

알란은 농축 우라늄으로 플루토늄을 대체하고자 계획하는 김정은을 그럴듯하게 속인다. 고작 인터넷에서 찾은 화학식 몇 개로 말이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와 그들이 자랑삼는 핵기술을 그렇게 풍자한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들통 날 거짓말, 위기에 처한 두 사람을 마침 유엔안보리 특사로 파견된 발스트룀 스웨덴 외무장관이 도와준다. 과거 스웨덴 정부가 북한 억류 외국인 석방을 도왔던 몇 차례 사건을 기억나게 하는 장면이다.

알란과 그의 친구는 조용히 북한을 탈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북한이 밀반입한 농축 우라늄 4kg을 들고 도망친다. 추정컨대, 이때부터 작가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알란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훔쳐 온 핵가방을 전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를 직접 만나 보고는 마음을 바꾼다. 골프와 가짜뉴스에만 관심 있는 무식하고 무례한 정치 지도자 앞에서 우라늄의 ‘우’도 꺼내지 않고 돌아선다. 그러면서 “태평양 양편에 하나씩 서 있는, 아무 쓸데 없는 두 개의 혹덩이”라고 북한과 미국의 두 지도자를 싸잡아 비난한다.

실제로 이 소설을 읽었다고 알려진 앙겔라 메르켈은 그나마 말이 통하는 지도자로 등장한다. 알란은 두 차례나 자신의 손에 들어온 농축 우라늄을 모두 독일에 넘긴다. 하지만 그 역시도 총선을 앞두고 선거를 의식한 행동이었음이 밝혀지는 대목에선 조금 씁쓸해진다. 소설엔 이 밖에도 국제정치를 이끄는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가령, 베나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두 개의 혹덩이 못지않게 대책 없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갖은 권모술수로 세계를 이간질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묘사된다.

그마저도 한국은 북핵 문제의 당사자치곤 지나치게 짧게 등장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인들과 러시아인들은 제각기 한국인들이 무얼 원하는지 안다고 주장하면서, 당사자의 의견을 묻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인들은 어느 공산주의자를 북쪽의 권좌에 앉혔고, 미국인들은 어느 반공주의자로 하여금 남쪽의 권력을 쥐게 했다. 북쪽의 사내는 온 나라가 자기 것이라 생각했고, 남쪽의 사내도 똑같이 생각했다. (생략)”

하지만 이 소설을 가장 공감하며 읽은 쪽은 한국 독자들이 아닐까. 농축 우라늄을 통해 핵무기를 만들고자 하는 김정은, 크게 관심 없는 트럼프, 남한 등지에서 정보전을 펼치며 북한을 주시하는 세계 각국의 비밀 요원들, UN에서 벌어지는 표면적인 논의와 물밑 싸움까지, 읽을수록 눈과 마음을 떼기 어렵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인생처럼, 북핵을 소재로 한 코미디 같은 상황이 가까이서 보는 우리에겐 비극적 현실인 까닭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1년이 흘렀다. 북미관계는 암울하고 남북관계도 밝지 않다. 하지만 101세 노인 알란이라면 이렇게 낙관해보지 않을까? “그래, 지금 상황이 다소 암울하다는 것,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암울한 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잖아? 자, 진득하게 기다려보자고 바람의 방향이 바뀔 테니까. 아니면 다른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본문 39p) 

정지연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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