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진실이 그 민낯을 드러내는 곳은 병상 위에서, 또 감옥 안에서가 아닐까. 둘의 공통점이 있다. 죽음 혹은 절망이 코앞에 닥쳐 있다는 것. 즉, 죽음과 절망 앞에서 인간은 가장 진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고백록이 그렇고 감옥에 갇힌 사람의 편지나 일기가 그렇다. 그들의 글을 읽는 사람이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것도 거기서 묻어나는 절박감, 진실함 때문이다.

여기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우성씨의 옥중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 성실하고 모범적이던 한 탈북자 출신 공무원이 어느 날 아침(그는 2013년 1월 10일 아침, 간첩 혐의로 국정원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됐다) 국가권력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린 직후 세상은 두 종류로 갈렸다. 그를 간첩으로 내몬 세상(D일보 등 언론이 가장 발 빨랐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고 지지해준 목회자와 신부, 동료, 그리고 변호사들.

그는 후자를 믿고 용기를 냈다. 서울구치소에서 써내려간 일기들은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항변이기도 하지만 진실을 위한 싸움의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각오하고 다짐하지만 숱하게 실망하고 절망한다. 그의 절망의 눈빛, 한숨 소리는 그의 일기 행간마다 그대로 배어난다. 마침내 지난 여름, 법정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국정원과 검찰, 주요 언론들이 덮어씌운 ‘간첩 혐의’를 무죄라며 벗겨줬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항소했고 우성씨의 간첩혐의를 입증하겠다며 새로운 증거까지 제시했다. 1년 남짓 싸우는 동안 우성씨도 변했다. ‘국정원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며 그래도 국정원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버리지 않았던 그가 자신과 같은 억울한 희생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끝까지 싸우기로 한 것이다.

그가 이렇게 결심하게 된 데는 지난 연말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변호사들과 보면서다. 국정원의 조작으로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든 경우가 자신 말고도 대한민국 현대사엔 많았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성씨가 끝내 승소하는 것, 그것은 우성씨 개인의 승리로 그치지 않는다. 숱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증거들을 조작해서 간첩을 양산해낸 구조악을 밝혀내는 일이고 그래서 마침내 그들마저 구원하는 일이고, 누구든지 그들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성씨 개인의 일기를 여기에 연재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2013년 2월 7일(목) 맑음

음력설 며칠 안남았다. 중국에서 홀로 설을 보내야 할 아버지가 걱정이 많이 된다. 검찰에서 오늘도 나를 찾지 않았다. 아마 설 끝나면 본격적으로 조사할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책 보고 시간을 보냈다. 운동 시간에는 밖으로 안나갔다. 2평밖에 안되는 작은방이지만 여기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밖에는 무섭다. 1호방 아저씨는 살인수.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불을 피해 나오는 사람들 여러 명을 칼로 찔러 죽인 살인자다. 무섭다.

오늘 아침에 구매한 과자, 과일 등 여러 가지를 받았다. 대한민국은 정말 좋은 나라다. 만약 북한이면 이런 건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다. 북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다. 같은 하늘 아래 어떻게 달라도 이렇게 많이 다를 수 있을까. 역시 대한민국은 민주사회다.

검찰 조사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자꾸 걱정이 된다. 왠지 국정원과 검찰에서 가짜 증거를 만들어 나에게 씌울 것 같다. 한 사람 개인을 희생하여 나라의 명예를 지킬 수 있다면 나 같은 사람은 충분히 희생양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검사는 나를 기소하면 진급도 된다고 한다. 정의보다 중요한 건 진급과 재물이다. 내가 정의를 생각하며 믿었던 자신이 어리석다.

▲ 2013년 2월 7일 우성씨의 구치소 일기 일부. "하루살이" "벌레같은 인생" 등의 표현이 눈에 띈다.

오늘은 접견 온 사람이 없다. 아마 내일은 있을 것 같다. 또한 검찰 조사도 있을 것 같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하루살이같이 느껴진다. 정말 벌레 같은 인생이다.

TV에서 인간극장을 봤다. 24세 청년이 결혼하는 내용이다. 정말 너무 부러웠다. 친구들 노래도 불러주고 하객들도 보였다.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살면서 그동안 쌓아온 인맥과 노력을 하루아침에 다 잃었다. 내 나이 34세. 나보다 열 살 어린 친구도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나한테도 미래가 있을까. 갑자기 너무나 우울해진다.

책을 보면서 자신에게 신심을 잃지 않으려고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그러나 현실은 나에게 너무나 크다. 앞으로 여기서 나간다 해도 나 어떻게 살아갈까. 나에게도 잘못이 많다. 좀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동생을 다른 방법으로 한국에 데려왔어야 했다. 유학이나 아니면 입양으로. 그러나 생각이 짧았고 나는 정말 헛똑똑이다. 한마디로 나는 바보다. 이런 나를 믿고 있는 아버지와 불쌍한 내 동생. 정말 불쌍하다.

나도 나 자신이 가련한 인생이라고 생각이 든다. 엄마가 있었으면 이 모든 상황이 달랐을 건데 다 나 때문이다(우성씨 어머니는 2006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장남으로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밀입북을 했다가 그는 북한에 수차례 드나들면서 보위부의 지령을 받고 접촉했다는 혐의를 쓰고 국가보안법 혐의로 기소됐다-편집자 주). 나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 긴 병에 효과가 없다고 시간이 지나면 나는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질 거다. 그러다 어쩌다 사람들 말수에 올라 욕하든지 아니면 칭찬하든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신경을 안쓸 거다. 어차피 모두 사는 것이 너무 바쁘고 힘들다.

24세에 북한에서 탈북하여 10년 가까이 살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이 많았다. 이제 좀 삶에 대하여 재미를 붙이려고 하는데 다시 또 0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행기 탑승했다가 나만 낙하하여 사막에 떨어진 것 같다. 이 사막을 걸어나가도 나를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또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니까.
2004년 처음 한국에 입국했을 때 나는 나의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멋진 차와 번듯한 직업 아니면 사업을 하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정말 90%까지 왔다. 10%만 더 열심히 하면 10년 뒤 나의 한국에서의 모습은 내가 꿈꾸던 모습과 근사하게 접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다시 0이 되었다. 어쩌면 억울하게 북한 탈북한 지 10년째 되는 날을 여기 구치소에서 맞이할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외면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어릴 때 점집에서 나는 80년도생 원숭이 띠는 34세 지나야 일이 풀리고 출세한다고 얘기를 들었다. 그건 정말 나에게만 해당되는 건가. 아니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80년생 원숭이띠들에게 다 적용되는 걸까. 그럼 행복하게 살고 있는 80년생들은 뭔가.

인생은 참 복잡하고 힘들다. 왠지 우리집 일이 너무 안되고 자꾸 꼬인다. 왜 그럴까. 조상님들을 잘 모시지 않아서 그럴까. 아니면 정말 전생에 내가 악마여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건가. 이해가 안된다. 누가 나를 좀 설득하고 지금의 상황을 좀 이해시켜 줬으면 좋겠다.

아버지 걱정 많이 된다. 2일만 지나면 설인데 그 큰집에서 혼자 명벌을 보내야 할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

아버지, 죄송합니다. 이 못난 아들 헛똑똑이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시는 엄마, 불쌍한 동생과 아버지, 그리고 나, 우리 가족을 구해주십시오. 언제면 여기 지옥에서 나갈 수 있을까.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간절히 두 손 모아 하느님께 간구하면서 오늘도 이렇게 보낼 것 같습니다.

독방에서 말할 사람도 없고 너무 답답하고 화나고 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글로 정리해 봤다. 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동생은 어떻게 지낼까? 정말 궁금해 죽겠다. 제발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한다. 혹시 아프거나 뭔 일 생기면 나는 엄마한테 정말 씻을 수 없는 죄인이 된다. 동생은 내가 맡아서 공부도 시키고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도 시켜야 한다. 그것이 나의 임무이다.

나는 이 멍청한 거짓말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동생 만나면 절대 원망하지 않을 거다. 이 모든 잘못의 근원은 나로부터 일어났다. 내가 동생한테 피해를 준 것이다. 내가 동생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구치소 벽에 걸려 있는 한 문구가 생각난다. ‘꿈이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다시 0에서부터 시작하더라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오늘도 힘든 하루였지만 기도 잘하고 잘 이겨낸 하루다.

9시다. 잘 시간이다. 밖에 있을 땐 이제 초저녁인데 밥 먹고 소주 한 잔 하고 12시 전 집에 들어간 적 몇 번 없는데 지금은 억지로 자야 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고 당신과 함께한 하루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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