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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평화를 만들 것인가?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봄소식을 전하는데 우리는 요즘 매우 불안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교회 공동체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가정에서 드려야만 하는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생겼을까? 한마디로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탐욕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계절은 이렇게 변화를 통해서 보람과 기쁨을 주지만 인간이 만들어가는 탐욕의 현장에는 피조물들이 탄식한다. 어디나 평화가 없다.

지금 세계는 끊임없는 파괴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빼앗고 죽이는 만행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절체절명의 과제는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평화 없이는 생명과 재산의 안전은 물론 자연환경도 보존될 수 없다. 파괴된 자연 속에서는 인간이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고 했다.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갈등과 분쟁의 연속이었다. 가인과 아벨 사건에서부터 인류 역사의 세계는 형제간의 분쟁, 민족간의 전쟁이 지속되어 왔다. 저마다 더 가지려 하고 저마다 중심이 되려고 할 때 세상은 전쟁터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의 메시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 날이 오기를, 즉 평화공존을 꿈꾸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평화에 대한 꿈을 버리는 것은 비관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지는 무책임한 것이며 불신앙이다. 문제는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헌신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어디나 평화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가르치셨다.

남북간 긴장과 대결로 전쟁의 어둠이 깔려 있는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외쳐야 할 말은 전쟁이 아닌 평화가 우선이다. 평화를 만드는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평화는 막연한 의지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남북이 하나 되는 길에는 왕도가 없다. 남극과 북극의 위치가 바뀐 지도가 가능하듯이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관점을 가지고 상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용서하려는 마음,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쉽게 단정하거나 매도하거나 나와 다르다고 구분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처지, 그 그룹의 입장이 어떠한가를 이해하려는 믿음이 있을 때 화해는 가능할 것이다.

목회하던 어느 해 탈북민들을 위해 선교사역을 하는 후배 목사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탈북민들이 하나원에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정부로부터 정착금을 받고 남한의 삶의 터전으로 나가기 전에 1박 2일 과정으로 남한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서 숙박하며 아침, 저녁 식사를 공동으로 하며 교제를 갖게 한다는 것이다. 다음날에는 재래시장과 백화점, 그리고 지하철을 함께 이용하고, 동사무소와 구청을 방문하고, 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교회로 모여 교회가 준비한 만찬을 함께 나누고 헤어지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30여 명을 신청하고 교우들에게 알리며 한 달 동안 예배 때마다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 현실은 달랐다. 당시 예배출석 1,000명이 넘는 교우 중에 탈북 형제들을 가정으로 초대하려는 신청자가 20여 명이 넘지 않는 모습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결국엔 교역자들이 함께 협력하여 탈북 형제자매들 30여 명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교제를 나누었던 경험이 있다. 마지막 날 만찬 후 헤어질 때는 서로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헤어지기를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며 민족의 평화와 통일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민족의 동일성을 회복하며 남북간의 거리를 단축시켜야 한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0년이요, 4·19혁명 60주년, 5·18 광주항쟁 40주년이자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이다. 또한, 앞으로 4년간 나라의 방향과 정책을 다루는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 우리 사회엔 분열과 갈등이 있지만, 오히려 시대 상황을 분별하며 민족의 평화와 화해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본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최우선으로 실천하는 일은 평화를 만드는 일이다.

다행히도 ‘코로나19 사태’로 남북 정상들이 서로를 염려하는 서신을 교환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더 발전하여 질병의 바이러스가 아닌 평화의 바이러스로 우리 민족공동체에 봄의 꽃동산처럼 민족 화해의 새 역사가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신경하/ 전 감리교 감독회장, 평화통일연대 상임고문

신경하  gonanwit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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