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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시착’과 북한사람들의 ‘동지애’'사랑의 불시착'과 내가 경험한 북한(4)

‘사랑의 불시착’과 북한사람들의 ‘동지애’(4)

사랑의 불시착(‘사불’)드라마 성공에 톡톡히 기여한 그룹이 있다. 리정혁 중대의 군인들 사총사와 군인사택의 아주머니들이다. 이들에게서 나타는 공통적인 특징을 ‘집단주의’와 ‘동지애’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알려진 바, 북한사회의 특성상 이들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에 ‘개인주의’가 스며들기는 쉽지 않다. 북한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어릴 때부터 배우며 길들여지는 집단주의 의식은 자연스럽게 ‘동지애’로 연결되어진다. 때문에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에게서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보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이 부분은 신분제도였던 북한의 계층문제나, ‘고난의 행군’시기를 거치며 자본주의를 학습한 지금의 세대를 논한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포인트는 아니다.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이 받아온 교육의 결과로 나타나는 보편적 행동방식에 대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북한주민들에게 ‘동지애’를 심어주었을까?!

북한에 <동지애의 노래>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김일성의 항일운동을 배경으로 영화화 한 <조선의 별>의 주제가이기도 하다. 여기서 ‘조선의 별’은 ‘김일성’을 의미한다. 어려서부터 배웠던 노래라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노래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노래 하나만으로도 개인주의보다는 저절로 ‘동지애’에 대한 의식이 형성될 수밖에 없음을 잘 알 수 있다.

 

가는 길 험난하다 해도

시련의 고비 넘으리

불바람 휘몰아쳐와도

생사를 같이 하리라

천금 주고 살 수 없는

동지의 한없는 사랑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 보네

 

그런데 남과 북이 말하는 ‘동지애’의 한자 해석에도 다소 차이가 있다. 남한에서 ‘동지(同志)’는 “뜻이 서로 같음”이며 ‘동지애(同志愛)’는 “[동지끼리의]동지로서의 사랑” 정도로 표현된다. 그런데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의 ‘동지애’는 “같은 사상과 목적을 위하여 싸우는 혁명동지들 사이에 서로 아끼고 도와주는 가장 고상하고 가장 귀중한 사랑 또는 그러한 정신과 품성”이라고 밝히고 있다. 얼마나 절절한가?!

북향민의 시선으로 본 ‘사불’ 드라마는 사실 갸우뚱거려지는 장면이 많다. 중대장이었던 상관 리정혁의 지시를 따른다 하더라도 남조선에서 불시착해 떨어진 윤세리를 보호하는 일에 아무런 불평 없이 동원되는 중대원들의 행동이다. 리정혁은 윤세리의 연인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숨기고 보호한다 하더라도 중대원들 중 한 명도 이에 대해 이의제기하지 않는다. 그 역할을 조철강이 했지만 말이다. 오히려 리정혁 중대의 사총사 그룹은 윤세리와 친해져간다.

한국드라마를 많이 봐서 궁금증을 갖고 있던 김주먹은 그렇다 쳐도 표치수나 어린 두 명의 군인들도 함께 서로에게 동화되어간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꽁꽁 묶여 있던 빗장을 열기라도 하듯 남과 북의 다른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서로 주고받는다. 또한 북에서 헤어질 때, 한국에서 다시 만났을 때의 감격적인 장면은 콧등을 찡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총정치국 국장(리정혁 아버지)의 명령이긴 했으나 중대원들은 모두 한국으로 내려왔다 북으로 올라갈 때까지 누구도 배신하지 않고 똘똘 뭉쳐 다닌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케미를 보여준 사택의 아줌마들 그룹이다. 극 중 대좌의 아내 역할을 한 군인사택의 실세 마영애 씨가 어려움을 당할 때 아줌마 사총사가 모여서 했던 이야기가 있다. 인민반장이었던 나월숙 씨는 마영애 씨를 걱정하는 정만복의 아내 현명순에게 괜히 들락거리다 걸리지 말고 모른척 하라 언질을 준다. 북한 현실판에서는 백번 옳은 말이다. 특별히 정치적인 문제로 잘 못 걸리면 북한에서는 그걸로 끝이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정치범수용소’가 따로 있으니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때문에 몸을 사리고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결국 아줌마들은 마영애 씨를 걱정하여 서로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집을 방문했다가 다 같이 만나게 된다. 훈훈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북한에서는 정치적으로 걸려들 위험이 있다면 대부분 모른 척 하는 것이 현실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극에 전개된 내용처럼 정말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면 어려울 때 모른 척 하지 않고 함께 어려움에 동참하기도 한다. 이게 북한주민들이다.

지금도 내게는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10대 시절, 북한의 TV를 통해 자주 소개되었던 다큐멘터리의 감동적인 실화내용들이다. 함께 일하던 동료나 동료가 아니어도 누군가 사고를 당하게 되면 서로 앞을 다투어 피와 살, 뼈를 나누겠다고 줄을 서는 풍경들이었다. 어떤 잘못된 교육방법으로 세뇌되었던간에 그런 ‘동지애’적인 장면들은 오랜 시간 뇌리에 박히고 가슴을 뜨겁게 했다. 그리고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의 진수는 바로 그런 정신이라 믿어왔다. 그리고 북한을 떠나 기독교인이 된 지금 나의 가치관은, 내 주변에 있는 이웃을 위해 ‘순교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다. 실천은 많이 떨어지더라도 정신만큼은 그렇다. ‘인간애’가 없는 세상은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 북향민들이 ‘여기 사람들은 정이 없다’고 말하는 ‘정’에 대한 부분과 연결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처음 정착해 살 때 낯선 것이 많았는데 특별히 내가 사는 아파트의 옆집, 윗집,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북한에서는 인민반별로 모임을 하다 보니 자동적으로 서로를 알게 되고 그러다 친해진다. 명절날 마을에서는 떡 그릇이 오가고 누가 이사 오면 방문하고 금세 친해진다. 기차를 타고 처음 보는 사람이어도 서로 목적지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금방 친해진다. 한국은 기차든 버스든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모두 ‘건들지 마라’ 하고 얼굴에 쓰기라도 하듯 누구도 말 건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달라도 많이 달랐다. 서로를 잘 알거나 모르는 것이 좋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간의 교류가 없어지면 사회분위기가 삭막해지는 것만은 확실하다. 18년간 한국에서 살며 느낀 감정이다. 그래서 오래전에 나는 ‘사람 사는 냄새가 안 난다.’고 표현했던 적도 있다.

코로나19로 사회분위기가 무거운 이때, 한국사회에 이웃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하는 ‘동지애’가 더 깊이 있게 생성되고 확장되기를 바란다. 이제 [‘사랑의 불시착’과 ‘사랑의 정시착’]이라는 주제로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을 다음호에 나누고 연재를 마치려고 한다.(계속)

박예영/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

박예영  ote20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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