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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유튜브와 함께 하는 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금세기의 기독 지성이었던 C.S. 루이스와 댈러스 윌라드 박사, 기독 영성가 유진 피터슨 목사, 리처드 마우 미국 풀러신학교 총장, 크리스천 변증가 조시 맥도웰 목사 등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말이 있습니다. 바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 모두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도, 라이프스타일도, 신념도 아니다. 그 이상의 어떤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를 아십니까? 아마 한국의 많은 분들, 크리스천뿐 아니라 비신자들도 본회퍼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본회퍼는 1945년 4월 9일 교수형에 처해져 39세에 삶을 마감한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사입니다. 히틀러의 나치에 대항해 크리스천으로서, 지식인으로서 끝까지 목소리를 높이다 짧은 생애를 마쳤습니다.

이 본회퍼 목사가 평생 강조했던 말이 바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는 행동하는 신학자로서 수없이 많은 귀한 말을 남겼습니다. 히틀러 암살단에 참여하면서 했던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미치광이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 차에 올라 그 미치광이 운전사를 끌어내려야 한다.” 그리고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 했던 “이것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라는 말 등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비록 39세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본회퍼 목사는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아낸 행동하는 크리스천의 전형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은 모든 크리스천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더라도 그 소망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본회퍼가 모든 크리스천이 원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내는 삶’을 살 수 있었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본회퍼의 이야기가 시대가 변해도 계속 회자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아직도 우리가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살아내지 못한 사람들’은 ‘살아낸 사람’을 그리워하기 마련입니다.

본회퍼가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의 전형이 된 것은 바로 일찍부터 기독교는 종교가 아님을 알았고, 체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928년 22세이던 본회퍼가 고등학생들에게 한 강연에 믿음의 본질이 들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종교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인물과 관계가 있다. 종교는 죽은 것,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 기독교의 핵심에는 전혀 다른 것, 바로 하나님 자신이 생생히 자리하고 있다. 기독교는 그분을 대면하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메시지는 근본적으로 도덕 및 종교와 관계가 없다”면서 ‘비종교적 기독교’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를 이해한다는 건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요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헌신에 대한 그분의 절대적 요구를 진지하게 수용하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메시지 가운데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지만 음미하다 보면 맛을 알 수 있는 말들도 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영원한 타자(他者)의 메시지다.” “기독교는 무가치해 보이는 것의 무한한 가치와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의 무한한 무가치를 선포한다.”

간단히 본회퍼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1906년 2월 4일 독일 브레슬라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행복한 유년기를 지냈습니다. 뛰어난 피아노 연주가이기도 한 그는 천재성을 지닌 신학자였습니다. 1923년 17세에 튀빙겐 대학교에 입학했고요, 21세에 베를린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24세에 대학교수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직전 미국에서 공부했습니다. 미국의 친구들은 그가 전쟁의 위험을 피해 미국에 남을 것을 강권했습니다. 특히 유니언 신학교의 라인홀드 니버는 본회퍼가 미국에 머무르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회퍼는 조국 독일 교회의 앞날과 넘어지는 양떼를 돌보기 위해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귀국을 단행했습니다. 나치 치하에서 그는 줄기차게 평화를 외치며 신앙 영역과 정치 영역의 일치를 꾀했습니다. 목사의 신분으로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습니다. 1943년 체포된 그는 1945년 4월 9일 새벽, 39세를 일기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도대체 이 39세의 짧은 삶을 산 한 인간이 어떻게 지금의 하이테크 시대, 인공지능의 시대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었을까요? 바로 그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알고, 부활의 능력을 믿는 믿음 가운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리스도처럼 죽을 수 있었습니다.

본회퍼에게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현실을 살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을 떠난 현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선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선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라는 완전히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본회퍼는 유복한 가정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는 평화롭게 피아노를 치고 신학적 담론을 즐기며 이 땅을 살다 행복한 노년을 보내며 편안한 임종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알아버렸습니다. ‘잠시 가는’ 이 땅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나를 따르라!”는 그분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죠.

그는 생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세 가지를 하나님께 위탁했다”면서 “나도 정말 그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세 가지는 생명과 업적, 명예였습니다. 오랜 신학적 성찰 끝에 그는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만이 믿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시대에 왜 본회퍼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과연 이 시대에 누가 필요합니까? 신앙과 삶, 목회와 신학의 균형을 잃지 않는 사람, 생명과 업적과 명예를 내놓을 수 있는 사역자, 주의 말씀을 급진적(Radical)으로 믿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닐까요?

수년 전 온누리교회를 창립한 하용조 목사가 소천하셨을 때, 추도식에서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는 본회퍼의 마지막 말을 인용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본회퍼도, 그가 끌어내리려고 했던 히틀러도, 하용조 목사도, 그리고 무수한 사람들도 이 땅을 떠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떠나며 잊혀지지만 기독교가 종교가 아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나 그 뜻대로 사는 사람은 흔적을 남깁니다. 영원히 빛이 납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고, 생명과 업적, 명예를 하나님께 위탁한 본회퍼 목사를 통해 참된 제자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이태형/ 기록문화연구소장

이태형  justin105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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