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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문제와 한일관계: 타협의 돌파구는 없는가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44호

문제의 본질

올해 2020년은 전후 동북아질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후 남북분단과 냉전체제를 결정지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부터 70주년에 해당하며, 동시에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55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현실은 갈등과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일본의 유네스코 산업유산 등재 합의 위반과 강제징용 피해 기술 왜곡,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 회고록에서 드러난 일본의 북미·남북 대화 방해 공작,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G7에 한국, 러시아 등을 추가하여 G11 체제로 바꾸자는 제안에 일본정부가 반대 의사를 밝히는 등 양국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일 양국간 최대 쟁점은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문제이다. 8월 4일 공시송달이 종료되면서 일본 기업자산에 대한 압류명령이 발효되었다. 한국 국내 사법절차에 따라 자산 평가, 심문 과정을 거쳐서 일본기업 자산을 매각하고,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게 된다. 올해 안에 일본기업 자산에 대해 매각 명령이 나올 경우, 일본은 작년 7월 수출규제에 이어서 제2차 경제보복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한일관계는 전례없이 매우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 것이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말기 한반도 지역 내에서 침략 전쟁을 위한 강제동원이 실시되었다. 당시, 일본 내 탄광이나 공장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으로 고통을 받거나 사망한 한국인은 무려 105만 명에 달했다. 이들 피해자들은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등 전범기업을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하였다. 20년 넘도록 일본과 한국 법정에서 민사소송이 전개되었고, 결국 한국인 피해자들이 최종 승소하였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 현재 일본제철)과 11월 미쓰비시중공업 소송에서, 일본기업이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씩 보상하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은 피해자 권리의 해결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한일간 영토 분리에 따른 채권·채무관계 해소라고 보았다. 따라서, 일제 불법 점거하 침략전쟁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반인도적인 범죄로 인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해 일본기업이 각 1억원씩 위자료를 보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정부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즉각 반발하였다. 고노 타로(河野太郎) 일본 외무대신은 주일 한국대사를 불러 강력하게 항의했으며,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자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맹렬히 비난하였다. 일본정부는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강제동원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모든 사안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해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한 것이며, 한국정부에 국가책임이 있다고 강조하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18년 11월 중의원 예산위원회 발언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으며, 한국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에 따라 잘못된 판단이다. 한일관계 관리를 위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측 노력도 필요불가결하며, 한국정부의 대응을 강하게 기대한다”고 주장하였다.

2018년 8월 한국정부는 일제에 의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한국정부는 ‘삼권분립하에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하며, 20년 넘게 진행된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기업간 민사소송에 정부가 개입하기 어렵고,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서서 일본기업이 판결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작년 10월 1일 한국 외교부는 홈페이지에 강제징용 문제에 관한 사실관계를 게재하였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따른 전후 국제질서를 위협한다는 일본측 주장은 완전히 허구이며, 일제의 불법점거하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 불법행위 배상은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하였다. 2005년 12월 유엔 총회 결의에서도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이 재차 강조되었고, 일본 외무성도 개인청구권이 유효함을 수차례 확인한 바 있다.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일본정부는 한일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청구권협정에 규정된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청하고, 국제사법재판소 부탁(付託)을 검토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2019년 6월 19일 한일 양국기업의 공동기금을 통한 해법을 전제로, 외교 당국간 협의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즉각 거부하였고 7월 4일 수출규제로 사실상의 경제보복을 단행하였다. 한국 총수출의 20%가 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핵심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를 개별허가 품목으로 전환하였다. 수출관리상의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했다는 안보상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였다.

가해자나 다름없는 일본정부가 역사문제를 기술패권으로 악용하는 적반하장식 부당한 수출규제를 감행한 셈이었다. 1965년 이래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누계는 약 7천억 달러에 달했다. 엄청난 적자를 안고 있는 한국이 일본에 대해 수출규제를 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가. 20년간의 민사 소송과정, 피해자의 고통과 사망, 엄청난 대일 무역적자 등을 고려하면 일본의 수출규제는 도저히 상식적인 처사라고 볼 수 없었다. 그것도 아베 총리가 한국을 표현한 바 있는 소위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에 대해서 말이다. 한국 국민은 이에 대해 크게 반발하였고 일본상품 불매 운동, 일본관광 자제 등으로 대응하였다.

한국정부는 일본을 WTO에 제소하였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즉 지소미아(GSOMIA) 파기를 결정하였다. 한일갈등에 놀란 미국은 적극적으로 중재하였고, 그 결과 11월 22일 일본정부는 한일 정부간 수출규제를 다루는 정책대화에 동의하였다. 한국정부는 WTO 제소를 중단하고, 지소미아를 조건부 연장하였다. 12월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한중일 정상회담과 동시에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그리고 강제징용 문제가 폭넓게 논의되었다. 양국 정상은 수출규제 쟁점과 강제징용 해법을 상호간 대화로 풀어나가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한국정부는 일본기업이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대법원 판결 이행을 전제로, 열린 상태에서 양국간 협상이 가능하다고 강조하였다. 수차례 양자간 대화를 통해 일본측에 수용 가능한 제안을 내놓았지만, 일본정부는 번번이 거부하였다. 외교부는 작년 6월 19일 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인 기금출연을 토대로 보상하는 ‘1+1’ 방안을 제시하였다. 작년 8.15 광복절에 청와대는 특사를 파견하여 도쿄에서 고위급 협상을 추진하였다. 일본기업이 먼저 배상한 후 한일 양국 기업과 한국정부가 기금을 마련해 일본기업에 보전하는 ‘1+1+α’ 방안도 나왔다. 6.19 제안과 비교하면 한국정부가 직접 나서는 한층 진전된 제안이었다. 그러나 일본측은 위의 모든 제안을 거부하였다.

한일 정상회담을 앞둔 2019년 12월 18일 한국 국회 문희상 의장은 강제징용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목표로 2개의 법안을 13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제출하였다. ‘문희상 안’은 기금의 자발성을 강조하면서 대법원 판결의 간접적인 이행을 추구하고 있다. ‘문희상 안’은 한국과 일본 기업들의 자발적인 기부금(1+1)과 양국민의 자발적 성금(α)을 더해 ‘기억·화해·미래재단’을 설치하고,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수상관저와 일본 국회는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어떤 일본 언론인은 사견으로, 한국이 수용할 경우 일본 내 정치적 작업을 기대할 수 있다고 예상하였다.

그러나 강제징용 피해자와 원고단, 일본군위안부 지원단체인 정의기억연대 등까지 포함하여 시민단체가 강력히 반발하였다. 일본의 사죄도 없고 전범기업의 보상도 없이 한일 양국 국민과 기업의 공동기금으로 전쟁범죄를 사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었다. 2020년 1월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일 공동행동은 ‘강제동원 한·일 공동협의체’ 설치를 제안하였다. 여기에는 한일 양국의 피해자와 원고단, 학계 전문가, 한일 양국기업이 참여하게 된다. 특히 한일 양국 기업이 출연하는 재단을 설립하여 피해자를 구제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한국정부는 관심을 보였지만, 일본은 즉각 거부하였다.

 

출구없는 터널

2020년 8월 현재, 한일 정상회담, 한일 국회의원간 물밑 대화, 외교부 국장급 협의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6월 1일 대구 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전범기업인 일본제철에 대한 공시송달 기한을 8월 4일 오전 0시로 결정하였다. 일본제철이 투자한 PNR기업에 대한 심문과정, 처분대상 자산감정 평가 등을 거쳐서 연내 매각명령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일본정부는 한국에 대해 즉각적인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고 한일관계는 새로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추가적인 경제보복 조치에 한국정부나 기업이 굴복할지는 매우 의문이다. 일본정부의 제2차 대 한국 경제보복은 국내외에서 받을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6월 2일 한국정부는 일본을 WTO에 제소한 분쟁 절차를 재개하였다. 일본정부가 경제보복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도 매우 제한적이다. 일본 내 한국기업 자산압류나 한국수출품에 매기는 고관세 조치는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일본계 은행이 한국기업에 대출한 약 400억 달러 규모의 자금 회수는 일시적 충격을 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내 외환 보유고는 금년 6월말 현재 4,107억 달러에 달한다. 한미간 600억 달러 통화스와프를 비롯하여 한·중간 560억 달러, 한·캐나다 통화스와프 협정 등이 맺어져 있다. 일본의 금융제재에 대해 관리 가능한 수준이며, 결국 한일 양국이 손해보는 lose-lose 게임으로 끝날 것이다. 내년도 도쿄올림픽이 평화의 올림픽으로 개최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

한일간 외교협상이 실패하여, 일본기업에 대한 자산처분이 강행될 경우, 한일 양국에 모두 커다란 외교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일 양국은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현안까지 걸려 있는 상태이다. 코로나19 위기로 한일 양국 정부, 기업, 국민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현재, 만일 일본이 부당한 수출규제를 재차 감행한다면 한일관계는 거의 파탄에 이를지도 모른다. 한일 양국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극단적인 대립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파국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의 지혜롭고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과연 한일간 타협이 가능할까

첫째, 한일 양국 정상과 외교당국은 남은 시간을 활용하여 강제징용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 이행을 전제로 일본기업의 손실을 즉각 보전하는 한국정부의 제안은 한일 양국에 명분과 실익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일본정부는 일본기업의 실질적인 손해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바, 한국정부의 제안은 그것을 충분히 충족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정부가 참가하는 보상기금이 설치되어, 추가적인 국내 소송과 승소판결에 대응할 수 있다.

둘째, 한국정부가 일제하 피해자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국내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는 물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사할린과 원폭 피해자 등을 포함하여 일제하 과거사문제에 대해 진상규명, 기억과 위로, 추모와 보상 등, 당사자 참여하에 해법을 모색하는 사회적 대화기구 설치를 추진해야 한다. 1965년 청구권협정의 한계, 사법부 판결과 한일 외교적 협상간 괴리, 추가적인 피해보상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위안부와 강제징용 쟁점을 둘러싸고 당사자간 국내 갈등과 대립마저 나타나고 있다.

11월 하순 한국에서 제9차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2021년 도쿄 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정상 개최 지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지지, 한·중·일 3국 코로나19 공동협력, 한·중·일 기업인과 연구자 등을 포함한 패스트트랙 설치, 한·중·일 FTA 등 경제협력 가속화 등 얼마든지 상호 호혜적이고 협력적인 의제 합의가 가능하다.

1870년 보불전쟁, 1914년 제1차대전, 1939년 제2차대전을 잇따라 싸웠던 프랑스와 독일은 1963년 엘리제 조약 이래 완전한 화해와 협력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중국 대신 프랑스와 독일은 작년 4월 다자주의 연대(Alliance for Multilateralism)를 만들어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 등, 국제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을 포함하여 30개국 이상이 참가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이하여, 한일 양국이 강제징용 쟁점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협력의 기회를 모색해야 할 때이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일본 게이오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 취득. 1996년부터 성공회대학교 일본학전공 교수로 재직중이다. 2020년 8월 현재, 제2기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전)세계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주요 논문과 저서로 「강제징용 쟁점과 한일관계의 구조적 변용」 (2020), 「문재인정부 한일갈등의 기원」 (2019),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과 한일관계』 (2016) 외 다수가 있다.

양기호  khyang@s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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