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5일, 이날은 우성씨가 서울구치소 수감 이후 여동생을 처음 대면한 그 다음날이다. 하지만 기쁨이 아닌 아픔이 우성씨를 휘감았다. 검찰이 제기한 증거보전신청 재판에서 제대로 얼굴도 들지 못한 채 흐느끼는 여동생의 거짓 진술, 무엇보다 잠깐 스친 여동생의 얼굴에서 짙은 고생의 흔적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아침, 우성씨는 화병으로 숨을 제대로 못쉬고, 끝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때 이후 심장병과 우울증은 지금도 우성씨를 괴롭히고 있다.

그런데 3월 5일, 이날 우성씨 일기에는 낯선 편지가 하나 등장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시작하는 편지의 대상은 아마 교도관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동생의 안타까운 모습을 접한 우성씨는 어떻게 해서든 동생을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빼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필사적으로 교도관에게 편지를 썼던 것 같다.

그 편지엔 우성씨가 어떻게 자랐고, 왜 탈북을 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과정,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입북한 경위, 아버지와 여동생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중국으로 이주한 내용 등이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자신이 2006년 5월에 어머니 장례식 때문에 북한에 다녀온 사실을 2010년에 이미 국정원에 다 얘기했고, 그 때문에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은 사실도 밝혀놓고 있다. 아마 그 교도관은 변호인보다 먼저 이 같은 소상한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그 편지를 전달받았다면 말이다. 깨끗한 글씨체로 쓴 그의 편지는 하지만 교도관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앞뒤 여백을 비워둔 채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필자 주

2013년 3월 5일

밤새 잠을 못자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너무나 답답하여 아침에 교도관님(을) 찾았다. 그런데 갑자기 숨이 차면서 의식을 차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교도관님(이) 응급용 밀차를 가져왔고 실려 병원 응급차로 대학병원으로 갔다.

대학병원에 도착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엄청 많이 받았다. 심장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받았으며 다행히 정상으로 나왔다. 지금도 가끔 심장이 벌렁거린다. 그렇게 오전 내내 검사받고 오후에는 중환자실로 옮겨갔다. 협심증으로 의심되는 진단이 나오면 조영수술도 해야 될 것 같다고 한다.

나는 무서웠다. 계속되는 심전도 검사, 피검사 등 여러 검사들이 많았다. 혈액을 채취하던 젊은 간호사가 내 혈관을 찾지 못해 내 팔을 벌둥지(벌집)로 만들었다. 찌르고 또 찌르고, 너무 아팠다. 내 현재 죄수복만 안 입었으면 저걸 가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프지만 할 말이 없었다. 다행히 같이 있던 경찰분은 좋은 분들이었다. 나한테 각별히 잘해 주셨다.

중환자실 있는 동안 죽을 만큼 힘들다. 팔과 발에 족쇄를 묶고 화장실도 못간다. 오줌도 침대에서 봐야 하고 똥도 침대에서 싸야 한다. 정말정말 미치겠다. 죽고 싶다. 죽고 싶어.

동생이 너무 불쌍하다. 밖에 있는 변호사님들도 저를 잘 도와주고 있는지 돈 안받고 하는 변호라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다. 밤새 손에 발에 족쇄를 채우고 자다깨다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죽기보다 못한 시간들이다. 너무나 고통스럽다.

▲ 2013년 3월 5일자 우성씨의 구치소 일기. 왼쪽(일기)은 평소처럼 흘림체지만, 오른쪽(편지)은 정자체가 대조적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초면에 인사 한번 제대로 못드리고 이렇게 염치없이 서면으로 제 사연 보냅니다. 선생님을 운동할 때와 변호사 면접(접견) 때 잠깐 몇 번 뵈었습니다. 나는 선생님을 잘 모르지만 잠깐씩 뵐 때마다 선생님께서 인자하신 모습으로 주변 분들과 대화하시고 또한 선생님을 뵙는 분들마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또한 따뜻하고 인자하신 선생님을 뵐 때마다 선생님은 꼭 좋으신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먼저 이렇게 무례하게 제 사연을 들어달라고 부탁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저는 북한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살다 24살 때 탈북하여 2004년 4월에 한국에 입국하였습니다. 고향집에는 그때 당시 아버지와 어머님, 그리고 저보다 7년 어린 여동생 네 식구가 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의 어머님은 심장병 환자여서 무겁고 힘든 일을 못하였습니다. 또한 북한에서 살고 있는 저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가정살림은 어려웠지만 부모님들은 저를 뒷바라지하여 저는 북한에서 의학전문대학을 졸업하고 2002년경 대학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북한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던 당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힘들어 병원에 약도 없고 전깃불조차 제대로 없이 수술을 제때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2002년경 어머님 심장병은 더욱 악화되었고 또한 저는 북한에서 더 이상 발전이 없다고 판단하여 목숨 걸고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2004년 귀순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귀순한 이후 사회정착생활은 힘들었지만 입을 악물고 학원 다니면서 공부하고 노가다 판에서 페인트칠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던 2005년 북한에 계시는 어머님의 심장병은 악화되어 더 이상 수술하지 않으면 안되어 그해 여름 8월경, 어머님은 중국으로 오셔서 북경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았습니다. 비용은 친척 분들과 제가 한국에서 번 돈으로 어머님께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어머님 수술은 성과적으로 잘 되었고 그렇게 두 달 동안 치료받고 어머님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2000년 이후부터는 북한에서도 중국 전화를 북한으로 밀수하여 중국 쪽 신호를 받고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가족들도 한국에 있는 저와 연락을 하기 위하여 중국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중국 휴대폰 전화를 가정에서 가지고 있으면 불법입니다.

그러던 2006년 5월경 한 달에 한두 번씩 휴대폰으로 어머님과 저는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던 중 그만 북한 휴대폰 탐지기에 걸려 어머님께서 휴대폰 단속하는 사람들에게 잡혔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 중국에 계시는 친척 분들의 연락을 받고 알게 되었고 저하고 전화 통화하다 엄마가 잘못되었고 그 죄책감에 정말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 당일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바로 중국으로 들어갔고 중국에서 가짜 중국여권을 만들어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4박 5일 동안 머물면서 어머님 장례식을 마치고 5월 말경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고 그후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어머님 돌아가실 때 당시 오직 어머님에 대한 죄책감과 마지막으로 어머님을 한번 봐야 한다는 마음에 북한에 갔다왔습니다. 그때가 2006년 5월입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동생도 이젠 어른이 되었고 아버지도 어머님 돌아가신 지 오래되어 이전 새 장가도 가셔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2011년 7월경 아버지와 동생을 북한에서 중국으로 데려왔고 셋집 하나 구해서 중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생활비용은 달마다 제가 한국에서 벌어서 중국에 보냈습니다.

저는 또한 2006년에 어머님을 잃고 나서 그 다음해 2007년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고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2011년 5월부터 계약직으로 서울시청 복지정책과에서 기초생활수급자 관련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어렵게 시작하였고 또 누구보다도 저소득층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던 저는 사회복지를 너무 좋아하였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희망을 주는 일은 제가 너무나 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대학교 재학 시기부터 저는 주말에 고아원 등 장애인센터를 다니면서 봉사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저는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더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2011년 5월부터 계약직 공무원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연세대학교 야간대학원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하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살던 저는 가족 한 명도 없어 너무 외로웠고 2011년 7월경에 중국에 모셔온 동생과 아버지를 한국에 데려오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국보다 중국에서 사는 것이 더 편하고 나이가 많고 허리를 잘못 써 그냥 중국에서 살겠다고 하여 저는 2012년 10월경 동생만 한국으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한국보다 물가가 싸고 그냥 막 살기는 괜찮았습니다. 앞으로 동생과 제가 둘이서 같이 중국에 돈을 보내주면 아버지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생만 2012년 10월에 한국에 데려왔습니다. 그에 앞서 저는 2010년에 제가 어머님 장례식 때문에 북한에 갔다온 사실을 국정원에 말씀 다 드리고 그때 남북협력규정(남북교류협력법-편집자 주) 위반으로 가볍게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미 모든 걸 2010년에 국정원에 다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2012년 10월에 입국한 동생을 국정원에서 조사하면서 오빠가 북한에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갔다왔다면서 강압적으로 조사하는 과정에 동생은 국정원에서 하는 말이 맞다고 대답을 하였고 또한 간첩활동 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동생은 현재 서울, 안산에 있는 합신종합센터(국정원 관할)에 있는 독방에 5개월째 구치되고 있습니다.

동생은 국정원에서 어떻게 조사받았고 어떻게 되어 이렇게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였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나는 현재 동생 진술에 의해 간첩 혐의를 받고 구치소에 들어왔고 앞으로 재판받는다고 합니다.

국정원과 검찰조사 과정에 동생과 만나 대조(대질)조사를 하겠다고 수없이 이야기를 하였지만 검찰에서는 절대 동생을 만나게 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억울하고 또한 어린 동생이 그렇게 국정원 독방에 혼자 구리(유리?)되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저는 평상시 악하게 안 살고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면서 한국에서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저에게 일어났는지 도저히 못받아들이겠습니다.

평상시 밖에서 봉사활동을 통하여 알게 된 종교단체 분들이 저의 억울함을 구해보고자 변호사도 선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돈이 없어 이분들에 변호사 비용을 못드리고 밖에 계시는 분들이 조금씩 모금을 하여 현재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변호사님들도 저의 남매를 돕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동생을 만날 수 없고 현재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마음만 타들어가고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습니다.
저의 이 안타까운 심정, 선생님께서 이해해주시고 불쌍한 저의 동생을 좀 구해주십시오. 저는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동생만 구해주신다면 이 목숨 다 받쳐 은혜를 갚겠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순서 없이 제 마음을 간단히 글로 전달합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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