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국방부가 규정하듯 주적(主敵)인가, 헌법에 명기하듯 통합의 대상인가. 기독교인에게 북한은 주적이거나 단순한 통합의 대상에 불과한가. 아니, 복음을 저버렸으니 구원의 대상이기도 하겠다. 북한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은 주적이고, 그럼에도 통합의 대상이고, 또한 기독교인들에게 북한은 전세계 수많은 잃어버린 양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인가. 정녕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는 뭔가 다른 복음을 믿고 있는 것이다. 감히 그렇게 단언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통일을 가로막고 분단을 조장하는 세력들이 많지만 그 중의 주역이 소위 ‘통일 전문가들’이다. 일부 전문가, 관심자를 모아놓고 세미나니 토론회니 하는 걸로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행사를 진행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유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대중에게 흘러가지 못하는 통일은 '그들만의 리그'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통일을 전문가나 특별한 사람들이 독점하는 한 통일은 요원하다. 세계복음화가 열두 제자나 풀타임 사역자들만의 몫이라고 여기고 평신도들은 손놓고 만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주님의 재림 약속은 끝내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다. 통일은 결코 전문가나 특별한 사람들의 몫이 아니다. 전문가나 특별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각자가 통일을 기도하고 연구하고 연습할 때 겨자씨가 자라듯 통일코리아는 성큼 내 곁에 와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단언컨대 이들이 바로 통일의 전문가다.

1995년 경실련에서 제1회 민족화해아카데미를 열었을 때다. 필자는 대학생으로 거기에 참여했었다. 그때 한 강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지나야지 통일이 될 것 같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가고 있지만 이념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좌익, 빨갱이에서 요즘은 종북이 공격의 대상이 됐다. 정권 비판만 해도 졸지에 ‘종북’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분단도 모자라 사회를 갈가리 찢어놓는 이념논쟁은 이제 끝나야 한다. 모든 이념을 초월하면서도 아우를 수 있는 기독교가 그 일에 최적임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1989년 봄, 문익환 목사는 민간인으로서는 처음 방북길에 올라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 통일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통일부에 통보를 했지만 그는 귀국과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사회는 공안정국이 됐다.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감상주의’ ‘영웅주의’라며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그의 방북은 1~2년 후 남북 당국자간 회담의 물꼬를 텄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도 냉전 종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남한에서 북한을 욕하고 ‘빨갱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쉽다. 누구나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 그러나 방북해서 북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위험이 따른다. 몇몇 선교사들처럼 북한에서는 잡혀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힐 수도 있고, 문 목사처럼 남한에서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인신 구속이 따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이 더 성서적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후자(문익환 목사의 경우)라고 말하겠다.

통일은 한국 기독교의 사명이다. 복음의 본질에 충실하면 할수록 거역할 수 없는 사명으로 다가온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바라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가 이것을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전적으로 순종할 때 신뢰도 회복, 교회 개혁과 부흥은 보너스로 주어질 것이다.

▲ 남북한을 동시에 보고계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한국교회를 보시며 뭐라고 하실까. 사진은 지난해 6월 6일 열린 쥬빌리 기도큰모임 때 참석자들이 기도하고 있는 모습. ⓒ유코리아뉴스DB

지난 한 해 북한에서 가을수확 전까지 필요한 식량은 50만 톤. 하지만 내부 수확과 외부 수입을 통해 확보한 식량은 65%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280만 명의 취약계층에 대한 외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유엔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다. 남한에서 한 해 쏟아져 나오는 음식쓰레기는 500만 톤, 돈으로 환산하면 20조 원에 달한다. 한 해 음식쓰레기의 10분의 1만이라도 절약하면 북한을 1년간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런데도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조차도 기껏 영유아들이나 먹을 수 있는 분유 얼마를 지원해놓고 인도적 대북 지원 운운하고 있다. 생색내기다. 한 쪽은 극심한 식량난, 한 쪽은 극심한 낭비, 남북을 동시에 내려다보실 하나님은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실까. 남한에 대해 뭐라고 하실까.

대북 식량 지원을 반대하는 논리는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면 80~90%는 군부로 전용된다는 것이다. 독일 역시 똑같은 비판에 직면했었다. 지원 물품이나 재정의 80%가 동독 정부나 군부에게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독 교회는 디아코니아재단을 통해 나머지 10~20%가 동독 주민들에게 지원될 것을 바라보며 지원을 거두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조건적인 지원이었다. 동독 주민들이 ‘서독과 통일하자’고 들고 일어난 데는 이런 감동 때문 아니었을까. 반면 북한 주민들은 한국교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탈북자 돕기, 대북 지원, 북한 인권 등 교회의 대북 사역이 많지만 관건은 사랑이다. 사랑이 빠진 이들 행위는 헛된 명예와 교만만 살찌울 뿐이다. 대북 사역의 알파와 오메가는 사랑이다.

분단은 국토를 나누고 역사를 가르고 꿈을 찢어놨다. 분단은 신앙마저도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온전한 신앙, 그것은 온전한 하나됨에서 온다.

독재는 늘 적을 과장하고 공포심을 조장한다.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고 맹목적인 충성심을 강요한다. 여기서 진실은 질식하게 되고 불의는 똬리를 튼다. 그것이 북한의 세습독재, 그리고 남한의 군사독재가 분단이라는 악을 이용해 저지른 죄악이다.

북한은 비정상 사회다. 독재, 세습, 공포정치, 폐쇄정치가 그렇다. 그렇다면 남한은 어떤가. 국제무역 세계 7위, 휴대폰 출하량 세계 1위, 국제회의 개최 건수 세계 5위. 자살률 1위, 연간 노동시간 1위, 출산율 146위. 겉과 속의 이 심각한 부조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북한의 변화는 당연한 거지만, 남한도 바뀌어야 한다.

죄는 분리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은 분리됐다. 민족의 분리, 분단은 그래서 죄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과 하나님을 화해시키러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을 잇는 다리이시다. 민족 화해와 통일의 원리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통일을 기뻐하신다.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열망이다. 통일을 향한 도상(途上)에 있는 사람, 그에게 하나님의 마음은 머문다.

분단은 하나님의 슬픔이고, 통일은 하나님의 기쁨이다.

분단의 고난을 각오하는 자라야 통일의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다.

분단은 비정상이다. 공인된 폭력, 획일화된 문화, 꿈을 포기한 현실, 속임수와 불신, 이 모든 비인간화는 감히 분단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통일은 이 모든 비정상의 정상화다.

*이 글은 <빛과 소금> 4월호에도 게재됐습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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