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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통일 이야기[동화] 통일의 꿈을 키우는 어린이들(5)

7월!

매미가 땡볕 아래의 미루나무 가지에 앉아 울었다.

참외서리 하러 등 너머 참외밭에 가는 아이도 생겼다.

“야, 우리 어디 갈까?”

“서울에 안 가니?”

“서울엔 해마다 가냐?”

“금년 여름엔 안 가?”

“응. 너는?”

“나야, 친척도 없는 걸.”

네 명 모두 금년 여름엔 외지로 나가는 아이가 없었다.

“야, 우리 선생님 댁에나 가자.”

“선생님네 농장에 일도 도와드리고 옥수수도 먹고....”

“그래.”

선생님은 학교에서 약 1㎞쯤 떨어진 곳에 텃밭 800평과 시골집 한 채를 두 달 전에 사서 아기자기하게 새살림을 차리고 신나게 지내셨다. 텃밭 800평을 50평씩 16등분하여 옥수수, 감자, 토마토, 오이, 상추, 당근, 콩, 수박, 참외, 쑥갓, 호박, 가지, 제비콩, 부추, 파, 고구마를 심으셨다.

농립 모자를 푹 눌러 쓰시고 김을 매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내려다보이는 등성이에 올라서서 넷은,

“선생님....”

하고 목청껏 불렀다.

일러스터 by 한재진

선생님이 일어나 돌아서서 모자를 벗어 흔들며 답해 주셨다.

“반갑구나.”

선생님이 반가이 맞아 주셨다.

“보람을 느끼니까 힘이 들어도 힘든 줄을 모르겠구나.”

“선생님 농사지어 보신 적이 있으세요?”

“별로.... 하지만 멋지게 농사지어 보고픈 꿈은 있었지. 약 100만 평 내지 120만 평의 땅에 신학대학과 농과대학을 세우고 농사를 짓게 하고 싶었어. 땅은 거짓말을 모르거든.”

“우와. 120만 평이요?”

“기계로 지으면 돼요. 그치요?”

“암.”

선생님은 밭에서 수박을 골라 따오셨다. 옥수수도 쪄 오시고.

“선생님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받겠다고 했지요? 또 남한의 북한 방문 희망자 100명도 방문허락을 하겠다고 했구요. 두만강 근처에 남한의 기업가들이 들어와 공장을 짓게 해 주겠다고도 하구요.”

“진작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니?”

“북한 주민들은 아직도 쌀밥에 소고기국 배불리 먹어 봤으면 한다는데 참 불쌍해요. 우리 남한엔 쌀이 남아서 창고가 모자라 걱정인데....”

“그 쌀 좀 주겠다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못 받겠다고 했다니.... 같은 민족인데 자존심은 찾아서 뭐해요?”

“그러게나 말이다.”

“북한의 사정도 이젠 더 이상 숨기고만 있을 수 없게 됐지요?”

“힘들게 됐지. 귀순자들이 북한의 사정을 폭로하고 있고, 또 북한에 다녀온 외국 기자들이 속속 밝히고 있으니 많이 드러나게 된 셈이지.”

“북한 국민들은 아직도 북한이 지상천국이라는 공산당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고 있을까요?”

“글쎄, 아마 겉으로는 그런 척 하겠지. 그러나 속으로는 자기가 속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거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만나고 싶은 곳에서 자유롭게 만나게 해주어야 마땅한 거 아니니? 그런데 만나기는커녕 편지도, 전화도 자유롭게 못하고 살다니! 같은 민족인데 그걸 막다니 벌 받을 짓 아니니?”

“그래도 요사이 차츰차츰 나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 않아?”

“화끈하게 좋아져야지 뭐. 강아지 오줌 싸듯 찔끔찔끔 그게 뭐니?”

“맞았어. 어른들 하는 일은 왜 그렇게 답답한지 모르겠어.”

“우리 선생님은 빼고 말해라, 너.”

“아참.”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답답한 분 아니시다 너.”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그래그래, 저 북쪽 사람 몇 명들만.”

그 몇 사람이 누구누군지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이야기 하는 동안에 수박도 옥수수도 어느새 다 없어졌다.

“누구 가서 참외 좀 따오렴. 잘 익은 걸 고르려면 배를 두드려 보아야 해. 배꼽에 코를 대고 냄새도 맡아보고....”

남자 아이 둘이 소쿠리를 들고 갔다.

“만약에 북쪽의 제일 높은 사람이 병이 들어 누워 있게 되었다고 하자. 그 주치의가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이야기하는 공주처럼 지난 70여년의 이야기를 슬쩍 지나가는 투로 말을 해준다고 해봐. 주치의의 이야기를 듣고 그 높은 사람은 무슨 말을 할까? 그동안 거짓말 한 것, 윽박지른 것, 억지 부린 것, 소련과 중국에 수없이 손 벌리며 도와 달라고 했던 것, 질 나쁜 지도자들과 친하게 지내며 물들었던 것, 숱한 사람들 가두고 고문하고 죽인 것, 아오지 탄광에 몰아넣고 강제노동 시킨 것 등등 자기가 권세를 쥔 후에 저지른 모든 악한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나게 해주면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그때도 계속 ‘아, 역시 나는 위대한 ○○이었다.’ 이렇게 말을 할까?”

“아닐 거예요. 아마 이럴지 몰라요. 죽을 땐 바른 말을 하게 된다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 그 사람도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내 잘못이 많았습니다.’라고요.”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원래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지 않니? 살다보니 악에 물들어서....”

“아마, 그 사람도 자기의 지나온 날들을 주욱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들이 많을 거야.”

“얘, 얘. 나도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긴데,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아무리 악했던 사람도 착한 마음이 든다더라. 그게 정말일까?”

“정말이겠지. 그러니까 그런 말이 생겼지.”

“그러면 북쪽의 제일 높은 사람도 착한 마음이 들 때가 됐을 텐데.”

“왜 아니냐?”

“내가 재미있는 실화 하나 얘기 해 줄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야.”

“뭔데?”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경기도 하남시에 ‘가나안 농군학교’가 있었는데 거기 교장선생님으로 김용기 장로님이 계셨단다. 그런데 글쎄 이분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북쪽의 제일 높은 사람도 회개하고 새 마음먹고 예수 믿어서 자기처럼 교회의 장로님이 되게 해 주소서’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대.”

“어머머! 그 교장 선생님, 엄청난 기도를 하셨네?”

“엄청난 게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기도라는 게 맞지 않겠니?”

“야, 하여튼 참 놀라운 말씀을 하셨구나.”

“사실 그 높은 사람이 숨을 거두면서 ‘옛날에 옛날에 아주 큰 맹꽁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와 같은 게 바로 나다. 내가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고 온갖 불행을 발생하게 하였다. 다 내 잘못이다.’하며 눈물을 흘릴 것 같아.”

“제발 그래 주었으면.”

“그러면 우리 민족의 장래를 가로막던 큰 장애물이 제거되는 셈인데....”

“통일이 되면 그동안의 불편했던 마음들부터 다 풀어버려야 해. 그 응어리 그냥 두고는 참 평화가 이루어 질 수 없어. 미움, 원한 다 싹 씻어버리고 통일된 조국의 새로운 전진을 다짐해야 해.”

선생님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통일의 꿈을 키우는 사랑스런 제자들을 보며 힘주어 이렇게 말씀하셨다.<끝>

박승일

1942년 12월 23일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났다. 실제는 1940년생이다. 교사로 18년, 목회자로 32년 일했다. 한국문인협회 및 국제PEN 한국회원이다. 저서는 동화, 수필집 등 65권이다. 현재는 춘천장로교회 은퇴목사다. 

박승일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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