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에서의 우성씨는 억울하기도 했지만 뉘우치기도 했다. 그것은 화교 신분으로서 탈북자로 속이고 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런 벌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간첩’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국정원 수사에서 검찰 조사까지 그가 간첩혐의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던 것은 화교 신분을 숨긴 거나 여권 위조는 수긍하지만 간첩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간첩’보다는 ‘사기’ 증거를 보강했다는 것이다. 1년이 넘도록 간첩혐의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 그를 또 한번 더 죽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3월 19일 화요일
오후에 Y변호사님 오셨다. 변호사님께서 서류를 2500매 넘게 주셨다. 그동안 증거인들(우성씨의 여동생이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했던 진술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편집자 주) 진술이라고 한다. 정말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방에 돌아온 나는 늦은 시간까지 증거기록을 계속 읽어보았다. 많은 증거기록들은 다 거짓말이고 만들어졌다. 어떻게 한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국정원이 가짜 증거를 만들어 나와 동생한테 씌우는지 정말 이해가 안된다. 물론 나 또한 이용가치가 있기에 그렇게 했다고 생각들지만 정말 변호사님들 없었다면 나는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아마 5년 이상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밤늦은 시간까지 증거기록을 보면서 너무 괴로웠다. 또한 동생한테 정말 미안했고, 이렇게 힘든 조사를 어떻게 받았는지 그 심정도 이해될 것 같다.

나는 재판이 잘 끝나면 중국으로 강제 출국될 것이다. 너무 슬프다.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0(제로)이 되고 0(제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내 인생 정말 억울하다.
그러나 이 모든 잘못은 다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저지르면 절대 안된다. 자기 신분을 속이고 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 중국에서 살기 싫다.

2013년 3월 20일 수요일
오늘은 M선생님이 오신다고 하셨다. 밖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김치도 주고 봉사도 했는데 간첩사건이라고 하니 너도 나도 다 도망갔다. 찾아오는 사람 별로 없다. 마음이 많이 서운하다. 간첩사건이라 다들 무서워서 그럴 거라고 생각이 든다. 아무튼 정말 서운하다. 옛날 말처럼 사람이 어려울 때는 그 사람의 진심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잘 될 때는 너도 나도 찾아오지만 이렇게 되니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 유우성씨가 2013년 3월 22일 구치소에서 쓴 일기. 우성씨는 변호사가 건네준 2000페이지가 넘는, 자신의 간첩혐의 관련 증인들의 증거목록과 씨름해야 했다. ⓒ유코리아뉴스

2013년 3월 22일 금요일
아침부터 증거기록 체크하면서 계속 증거될 만한 것을 글로 썼다. 정말 머리를 짜내고 또 짜내면서 작성했다. 옛날부터 이렇게 공부했으면 나는 아마 하버드대학교 갔을 거다. 어릴 때부터 공부에 관심없고 말만 하고 돌아다니는 내 성격, 언제면 고치겠나 생각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걸린 것 같다. 여기서 쓰고 또 쓰고 손에 굳은살까지 생겼다. 옛날부터 이렇게 공부할 걸,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후 2시경 Y변호사님께서 오셨다. 아직 편지도 다 준비 못했는데 마음이 급하다. 나한테 두 번째로 나쁜 버릇이 있다. 그것은 무엇이든 미리 안하고 끝에 가서 한번에 몰아서 하는 것이다. 동생 일도 그렇다. 좀 더 생각하고 고민했으면 동생은 그렇게 되지도 않았을 거고 나는 지금쯤 공무원 정직원이 되어 있고 키 큰 여자친구도 만났을 것이다. 그 누구도 원망할 필요도 없고 다 나 본인 잘못이다.

오후 4시경 J가 접견왔다. 정말 오랜만이어서 너무 반가웠다. 만나면서 여러 가지 말을 하며 농담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곳에서 절대 웃음이 안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도 적응이 되는 것 같다.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고. 걱정한다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냥 여기서 마음 편안히 비우고 기다리는 것이 나 자신 스스로를 돕는 것이다.

2013년 3월 23일 토요일
어제 저녁 밤새 대학원 분들과 지인들에게 편지를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인들에게 편지는 꼭 써야 한다. 앞으로 한국에서 살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 말씀드려야 한다. 맹세코 꼭 쓸 거다.

연세대학원, 시청 사람들에게도 써야 하고, 영한우리, 교회도 써야 한다. 그런데 나는 정말 이전 다른 사람 못지않게 글도 많이 썼다. 그런데 왜 아직도 표현력이나 철자법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부끄럽다. 난 제대로 쓰는 글은 없는 것 같다. 난 정말 바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한글철자법을 정말 고치고 싶다. 동생은 나보다 훨씬 글도 잘 쓰고 문장 구성도 잘 맞다. 연대 나와서 뭐하나. 중국어로 편지 한 장 제대로 못쓰는데.<계속>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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