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10시 반 서울 중앙지법 고등법원 417호 대법정 풍경. 유우성씨는 재판 내내 자리에 서서 고개만 살짝 떨군 채 숙연한 표정이다. 판사는 판결문을 차분하게 읽어 내려간다. 한 시간이 훌쩍 넘기자 재판장은 참석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그리곤 유 씨에게 서 있지 않아도 된다고 슬쩍 덧붙인다. 그러나 그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판결이 결론에 이를 무렵, 우성씨의 손이 얼굴로 향한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다.

그러다 시선이 내 앞좌석 아래에 놓인 한 송이 꽃으로 향한다. 그 자리에 앉은 마른 체구의 남성의 것으로 보인다. 꼬깃한 비닐로 둘러진 꽃 한 송이를 자신의 발 아래에 두고 있었다. 재판장은 경호원의 매서운 눈빛에 긴장감이 감돌고, 쉼 없이 들리는 자판 두들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꽃은 아무래도 여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 25일 서울고법 항소심 무죄 판결을 받고 법정을 빠져나오고 있는 유우성씨. 한 손에 꽃 한송이가 쥐어져 있다. ⓒ유코리아뉴스

▲ 유우성씨 손에 들린 한 송이 꽃

재판이 마치고 법원 문을 나서자 마른 체구의 그 남성은 우성씨에게 꽃을 전했다. 아마도 그는 재심판결 이전부터 우성씨가 다시 무죄 선고 받을 거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재심 결과에 상관없이 지난 1년 6개월간 힘겹게 버텨 온 그를 위로하고 싶었던 걸까.

우성씨는 잠시 기자들에 둘러싸여 간단한 인터뷰에 응했다. 재판 결과, 우성씨가 화교 신분을 이용했다며 사기죄가 인정된 점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한 기자가 묻자 유씨는 이렇게 답했다. "북한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해서 어떤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한숨)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곧장 앞을 향해 걷던 우성씨를 뒤에서 누가 부른다. "우성아, 어디가? 일로 와(웃음)" 변호인단이 친구처럼 그를 부른다. 우성씨는 1년 4개월간 무료로 변호해 준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일주일 안에 항소하면 다시 오게 될 곳이지만, 그들은 밝은 표정으로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솔직히 이 사건의 진실이 명확하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성씨의 마음속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법적인 지식도 부족하고,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는 더더욱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재판과정을 뉴스로 보아 온, 그리고 오늘 직접 본 유 씨의 행동, 표정, 말투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경우엔 '사실'보단 '진실'이, '진실'보단 '진심'이 더 깊은 공감을 준다고 믿는다. 그런데 '진심'이 중요한 건 비단 우성씨 사건 만은 아닌 듯하다.

성상현 기자  jacksung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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