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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의 전환: 장기적 접근 전략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67호

북한의 핵 능력은 이 순간에도 증가하고, 협상은 교착의 시간만큼 어려워졌다. 2021년 들어 북한은 영변의 5MW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 실험실을 가동했고, 최근에는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확장했다. 핵물질인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을 늘리고, 동시에 수소폭탄 제조에 필요한 삼중수소를 추가 생산하기 위해서다. 9월에 들어와서는 1,500㎞를 비행하는 순항미사일을 발사했고, 탄도미사일을 기차에서 발사했다. 운반수단의 다종화다.

북핵 협상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의 실패 이후 중단되었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했지만, 북핵 협상의 재개 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해결의 기회를 놓치고 교착이 장기화하면서, 협상의 피로감도 높다. 협상 환경도 악화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북한은 문을 걸어 잠갔고, 미중 전략경쟁으로 한반도도 서서히 대결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여전히 협상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북핵 보유를 인정하고 상응 억지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북핵 문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북핵 협상, 3개의 딜레마

북핵 협상은 3개의 딜레마 때문에 장기교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첫째는 미·중 협력이 필요한데,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었다. 미·중 전략경쟁은 북·중의 전략적 밀착으로 나타나고, 북한은 대미 협상에 소극적이다. 바이든 정부 역시 중국과의 전략경쟁을 북핵 협상보다 우선한다. 군사 분야의 미·중 전략경쟁과 남북 군비경쟁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북핵 협상의 환경도 악화하였다.

둘째, 남북당사자 역할이 필요한데, 강력하고 포괄적인 제재 때문에 남북관계의 공간이 협소하다. 남북관계의 구조적 제약은 남한의 중재 능력을 약화했다. 2005년 6자회담의 교착 국면에서, 남한이 마련한 남북송전 구상은 실현 가능성과 별개로 6자회담의 재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제재 국면에서 남한의 중재 역할은 결과적으로 약속 불이행과 불신의 근거로 작용했다.

셋째, 더 높은 비핵화를 기대하지만, 불신이 늘어난 만큼 속도를 내기 어려운 현실이다. 협상은 실패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협상 재개를 위해서는 영변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실패로 신뢰를 잃었다. 비핵화의 속도는 신뢰수준에 달려 있는데, 정반대 상황에 직면했다. 북핵 협상을 위한 실무회담이 열리기도 어렵겠지만, 열린다고 하더라도 상호 견해차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북핵 협상이 직면한 구조적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① 미·중 전략경쟁에서 미·중 협력을 분리하고, ② 남북관계의 공간을 마련하여 남한의 중재적 역할을 강화하며, ③ 신뢰를 구축하면서 속도를 높여나가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① 미·중 전략경쟁은 격화되고 분야가 넓어지고, 한반도로 옮겨오고 있다. ② 남북관계의 불신이 높아지고, 군비경쟁이 가속화되었다. ③ 불신이 늘어나 실무적 협의가 더욱 어려워졌다.

 

북핵 대응 전략: 억지, 무시, 관리의 한계

북핵 해법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억지, 무시, 관리, 협상이다.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고 북핵 능력이 고도화하자, 협상의 기대가 줄어들고 상응하는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상응하는 핵무기로 억지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랜드연구소가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북핵위협,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021.4))는 “북한의 핵무기가 일정한 수준(대략 80~100개)을 넘어설 때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와 선제공격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를 주장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협상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나, 협상의 문을 닫을 때는 아니다. 외교의 역할을 부정하면, 남는 것은 군비경쟁뿐이다. 현재의 확장 억지와 비교해 볼 때, 전술핵의 억지 효과도 의문이다. 과거 한반도에서 전술핵을 철수한 이유는 전략핵의 기술향상 때문이며,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군사 분야의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전술핵이나 혹은 미사일 능력의 강화는 북핵 문제와 무관하게 한중관계를 악화시키고 구조적인 안보딜레마를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핵 능력 강화에도 불구하고, 관계 개선과 평화 정착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한마디로 핵 문제를 무시하자는 주장이다. 눈을 감는다고 엄연한 현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제재는 북한의 핵무장에 따른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른 것이며, 우리는 국제규범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비핵화의 진전 없이, 교류 협력의 전개나 종전선언을 비롯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기도 어렵다. 핵 문제를 둘러싼 현재 상황, 환경, 그리고 구조는 남북당사자 관계로 극복할 수 없다.

비핵화, 평화 체제, 경제공동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경제협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제재를 완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비핵화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비핵화 협상은 동시에 상응 조치인 평화 정착과 동시 병행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종전선언의 경우도 비핵화의 진전과 연계되어야 미국의 참여가 가능하다. 북한은 실효적 조치가 뒷받침되지 않은 형식적인 종전선언에는 소극적이다.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된다고 하더라도 비핵화, 평화체제, 경제공동체의 포괄적 병행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협상이 어려워지면서, 현 국면의 안정적 관리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현상의 관리는 안정적이지 않다. 교착 국면이 길어지면 북한의 핵 능력은 그만큼 강화된다. 북핵 문제를 방치한 채, 세계적인 차원에서 비확산 체제를 유지할 명분은 없다. 재협상을 시작한 이란 핵 협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북핵 협상의 장기교착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언제나 현상 악화로 이어졌고, 미중 전략 경쟁과 부정적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한반도를 군비경쟁의 무대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북핵 해법과 관련하여,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도 결국 시간변수에 대한 오판이었다. 제재의 효과가 과거보다 포괄적이고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도적 위기가 발생해도 그것이 북한 지도부의 핵 포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도 여전히 유효하다. 바이든 정부에서 북핵 협상의 우선순위는 높지 않고, 의도와 무관하게 전략적 인내를 재연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핵 문제에서 현상 유지라는 개념은 일종의 착시다. 적극적 관여가 없으면 현상은 악화하고 시간을 잃는 오바마 정부의 실패를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단기간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할 때가 왔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의 실패로 협상의 현실이 드러났지만, 이미 그 이전인 2018년 1월 북한이 핵무장 완성을 선언하고 협상에 나왔을 때, 협상의 구조적 어려움이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노이 회담이 실패한 이후 불신은 높아졌고, 협상의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비핵화의 진전이 어려우면, 당연히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도 진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협상을 포기할 수는 없다. 북한의 핵무장을 인정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장기적인 제재 체제를 지속하고, 막대한 국방비로 재래식 억지 능력을 늘리고, 그래도 부족해서 미국의 핵우산을 구체화하고, 그러면 군사 분야의 미·중 전략경쟁이 한반도에서 격화하는 군비경쟁과 안보딜레마의 취약성이 악순환하는 미래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가지의 전략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단기적인 접근에서 장기적인 접근으로 전환할 때다. 30년에 접어든 ‘풀기 어려운 분쟁’을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다. 북핵 문제의 해결은 장기적인 과정이고, 결코 한두 번의 협상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말 그대로 북핵 협상은 산 하나를 넘는 것이 아니라 산맥을 넘는 일이다.

마라톤 경기를 단거리 경주하듯이 할 수 없듯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면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조급한 중재는 협상의 교착으로 이어지고, 불신을 낳고,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어렵게 한다. 협상의 피로감을 느끼는 여론과의 괴리도 문제다. 특히 젊은 세대의 남북관계에 대한 냉소와 비관은 그들이 통일미래 세대라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 외교·안보 정책의 국민적 지지기반을 갖추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관료적 비밀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며, 협상에서 물밑이 아니라 물 위의 비중과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공감을 유지해야 오래 멀리 갈 수 있다.

둘째, 남북관계보다 지역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 전쟁 이후 남북관계는 동아시아 지역 질서와 무관하게 움직인 적이 없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1~2년의 남북기본합의서 국면, 2000년대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은 모두 동아시아 지역 정세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물론 지역 질서의 변화가 저절로 한반도 질서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세계적인 혹은 지역적인 질서 변화를 한반도 질서 변화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확고한 전략과 능동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면서 한반도 질서의 환경이 달라졌다. 1971년 이후 동아시아 질서를 규정했던 미·중 협력의 시대, 즉 키신저 질서는 막을 내렸다.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새로운 질서 전환기에 남북 협력을 유지하면, 지정학의 비극을 피할 수 있지만, 북한은 미·중 전략경쟁에 편승했고, 북중 밀착을 선택했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남북관계의 공간은 축소될 것이다. 최소한 미·중 전략경쟁이 한반도에서 격화되지 않아야, 북핵 해법의 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중 협력을 전략경쟁과 분리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셋째는 협상의 목표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북핵 협상은 이행과정에 진입하기 전에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까지의 과정을 모두 설계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협상 목표만 확인하고 이행하지 못하고, 교착의 시간을 거쳐 다시 협상해서 목표만 재확인하는 ‘이행이 없는 합의’를 반복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는 최소한 8년 동안 북한의 핵 능력을 동결했다는 점에서 그 이후의 합의와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목표의 반복적인 재확인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행이다. 작은 합의라도 이행을 해야 그만큼의 신뢰가 쌓이고 다음 단계로 전진할 수 있다. 지금은 어렵지만, 어느 정도의 신뢰를 쌓으면, 북한의 핵 능력 동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고, 신뢰 수준이 이행의 속도를 결정한다. 동결은 후진에서 전진으로 기어를 변경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후진하는 차를 우선 멈춰야 하는데, 당분간은 그러기 어렵다는 점이 안타깝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질서의 대전환이 시작되었다. 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구조적이다.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고,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은 상투적이지만, 동시에 상황 악화에 편승하는 주장은 위험하다. 익숙한 과거의 전략에서 벗어나, 좀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인식을 전환할 때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김연철은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서 북한의 정치경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통일연구원 원장,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현재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이며,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2001) 『협상의 전략』(2016) 『70년의 대화: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2018) 등이 있다.

김연철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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