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승리를 극화한 영화 한편이 한 여름 극장가를 맹타하고 있다. 신문을 보니 과거 개봉영화가 세워왔던 모든 기록들을 <명량>이 파죽지세로 갱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휴가철이라 사람들이 바다로 산으로 떠나 도심의 도로가 한산하고 사무실들도 빈 책상들이 많아 한가로운데 개봉영화 [명량]은 왜 공전의 인기를 누리는 것일까?

“카타르시스”! (Catharsis: 비극의 감상과 고뇌로 평소에 마음속에 억압되어 있던 감정을 해소하고 마음을 정화 함. 필자 註)

필자의 마음에는 그 답이 “카타르시스”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팽목의 세월호 참사에서 비롯된 너무나 기가 막히고 억울하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안타까운 죽음들로 국민 모두가 울화병을 앓고 있던 차에 이순신 장군이 전선 12척으로 일본 전선 330여 척을 일망타진 하고 나라를 위기에서 건진 울돌목의 명량해전 이야기 <명량>은 돌덩이에 눌린 것 같은 우리 마음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너무나 시원한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이다.

▲ 영화 <명량>의 한 장면

울돌목과 팽목은 진도의 북단과 남단에 위치한 협수로로 서해와 남해 간의 간만의 차이로 생기는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물때에 따라 숨가쁘게 넘나들며 급한 조류가 형성되는 물길이다.

울돌목은 해남군의 화원반도와 진도의 녹진리 사이에 위치한 폭 300m 내외의 협수로이고 물살이 시속 17km에 이르러 바닷물이 협수로 양쪽의 바위에 부딪힐 때 4km의 먼 거리에서도 들린다는 괭음이 마치 맹수가 울부짖듯 돌 우는 소리 같다 하여 이름을 울돌목이라 전해온다.
“尙有十二隻”(신에게는 아직 전선 12척이 있나이다)이라는 위대한 말을 남겼지만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돌아온 정유년(1597년) 7월에는 원균이 지휘하다 패전한 칠천량 해전에서 후미에 있다가 도망갔던 배설 휘하의 전선 10여척 외의 전선 300여척은 다 깨어졌고 수군은 이미 괴멸되어 있었다. 제해권은 일본 수군의 수중에 있었고 패전 후의 심각한 군량미 부족으로 밥도 잘 먹지 못하였던 조선 수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전혀 싸울 힘이 없었다.

속 좁은 임금 선조가 다급하여 이순신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은 하였으나 거북선은 한 척도 없고 칠천량 해전에서 도망갔던 전선 12척으로 330여 척의 일본 수군과 맞서야 했던 당시의 상황은 정녕 “절망” 그것이었다. 그 상황을 다루면서 백병전 부분을 비중있게 삽입하여 긴박감을 높이는 등 뛰어난 극화로 감동을 더한 영화 <명량>의 탁월한 구성이나 급한 물살과 물 때를 교묘하게 이용한 이순신 함대가 330여 척으로 중과부적인 일본의 도도 다카도라 함대를 통쾌하게 격파한 명량해전의 관전은 세월호 참사로 짓눌린 우리 가슴을 확 트이게 하는 강력한 카타르시스로 안성맞춤이라 할 만큼 손색이 없다.

팽목은 진도 북단 울돌목의 반대편인 진도 남단 임회면에 위치한 협수로로 역시 물살이 빨라 항해하기 어려운 물길이다. 울돌목은 찬란한 명량해전과 더불어 우리 국민의 가슴에 자긍심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는 곳이지만 팽목은 지금까지 그리 알려진 적이 없는 곳이다. 지난 4월 16일 팽목의 맹골수도에서 세월호가 침몰하여 탑승자 476명 중 172명이 구조되고 304명이 사망 실종되는 어이없는 해난 사고가 발생하여 팽목은 연일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며 갑자기 유명한 곳이 되었다.

울돌목의 명량해전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기적같이 승리를 거두었다면 팽목의 세월호 참사는 상식적으로 보아 도저히 그런 참사가 발생하기조차 어려운 어처구니없는 해난사고였다. 울돌목의 승리에는 명장 이순신의 초인적 지도력과 준비가 있었지만 팽목의 참사에는 관계 공직자들의 태만이 있었고 일부 종교단체 지도자를 포함하여 세월호를 둘러싼 사람들의 탐욕과 태만과 인명 경시의 모습들이 보인다. 울돌목의 명량해전은 제해권을 회복하고 정유왜란의 전쟁 국면을 조선 주도로 돌렸지만 세월호 참사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국격을 추락시켰고 모든 국민의 마음 위에 무거운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온 나라를 침울과 실의에 빠지게 했다.

영화 <명량>은 그래서 야구경기의 4번 타자처럼 적시타를 쳤다. 영화를 만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흥행에 크게 성공하기 바란다. 우리는 팽목의 불행을 잊어서는 안되고 같은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달라지는 노력을 게을리해도 안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계속 팽목항에 갇혀서 실의에 빠져들어 가는 것은 더더욱 안될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옷깃을 여미며 나를 바로 세우고 나라를 바로 세울 때이고, 팽목의 좌절을 떠나 울돌목의 희망으로 힘차게 나아갈 때이다.

정의승/ 우양재단 이사장

정의승  e.s.chung@wooy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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