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하 프란치스코)이 18일 오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함으로써 4박 5일간의 역사적인 한국 방문 일정을 마무리했다. 1200여년 만의 비유럽권 교황,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 역대 교황 266명 중 3명의 개혁적인 성향의 교황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프란치스코. 격식을 따지지 않고 가난한 자를 위하는 파격적인 행보로 지난해 3월 취임 때부터 전세계인의 주목과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방한 자체가 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특히 그가 세월호 참사와 분단 상황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그의 메시지와 행보는 향후 세월호특별법 제정 등 사회정의 확립은 물론 화해와 평화의 통일시대를 여는 데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가 던졌던 주요 메시지를 정리해봤다.

정부엔 평화와 소통, 관용과 정의를

우선 프란치스코는 방한 첫날인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연설을 통해 평화와 소통, 관용과 정의를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에게 주문했다. 그는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바탕을 두는 것”이라고 말하고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다. 그리고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며 “정의는 상호 존중과 이해와 화해의 토대를 건설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유익한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가겠다는 의지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전쟁을 치른 남북한이 지금까지도 증오, 분열, 불통이 계속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그 해결책으로 상호 비방이나 무익한 비판, 무력시위가 아닌 용서와 관용, 존중과 대화를 제시한 것이다.

▲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희생자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프란치스코교황 한국방문준비위원회

프란치스코는 또 “점점 더 세계화되는 세상 안에서 공동선과 진보의 발전을 단순히 경제적 개념으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며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간적, 문화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양극화 문제, 세월호 참사로 대변되는 국민과 정치권의 불통현상 등을 가치관 변화, 대화와 배려를 통해 바꾸라는 엄중한 메시지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남북한엔 용서를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에 대해서는 마지막날인 18일 오전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강론에 잘 나타나 있다. 한마디로 용서하라는 거였다. 프란치스코는 “예수님께서는 용서야말로 화해로 이르게 하는 문임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신다”며 “우리의 형제들을 아무런 남김없이 용서하라는 명령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전적으로 근원적인 무언가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불가능하고 비실용적이며 심지어 때로는 거부감을 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분께서는 당신 십자가의 무한한 능력을 통해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고 또한 열매를 맺게 하신다”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분량의 간격을 메우고 모든 상처를 치유하며 형제적 사랑을 이루는 본래적 유대를 재건하는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용서의 좀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프란치스코는 “그러므로 이제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이 샘솟듯 생겨나도록 우리 모두 기도하자”며 “또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함에 있어 관대함이 지속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코리안이 같은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더욱 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원조 확대를 남한 사회에 주문하면서 남북한이 서로 적이 아니라 한 형제자매라는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남북한 모두에게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기독교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할 것을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프란치스코가 가난한 자들과 사회 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관심과 참여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기독교에 있어 가난한 자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정치권력에 희생된 사회적 약자이면서 때론 하나님 자신으로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잠 19:17). 프란치스코는 14일 ‘한국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교회의 정체성을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고 밝힘으로써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요소로 여겨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교회의 풍요한 유산인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한 강론과 교리교육을 통하여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들어야 하며,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한한 이들의 교회’라는 사도 시대의 이상은 여러분 나라(대한민국)의 첫 신앙 공동체에서 그 생생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기독교의 세속화와 물질숭배 경향에 대해서도 프란치스코는 “예언자적인 복음의 증거는 한국교회에 특별한 도전들을 제기한다”며 “한국교회가 번영되었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서 살고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사목자들(목회자들)은 기업 사회에서 비롯된 능률적인 운영, 기획, 조직의 모델들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준보다 우선하여 취하려 하는 유혹을 받는다”며 “십자가가 이 세상의 지혜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잃어 헛되게 된다면 우리는 불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서도 파란치스코는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양보해 타협하고 복음의 근원적 요구를 희석시키며 시대정신에 순응하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며 “그러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를 모신 것 위에 최우선으로 모시고 그 다음에 이 세상의 다른 온갖 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원한 나라와 관련해서 보아야 함을 상기시켜 준다”고 강조했다.

또한 “막대한 부요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며 “우리가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는다면 우리는 순교자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간직했던 그 숭고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단과 갈등 극복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대해서는 먼저 이것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부터 성찰할 것을 요청했다. 프란치스코는 마지막날인 18일 오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지난 60년 이상 지속되어 온 한반도의 분열과 갈등을 언급하면서 “참의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얼마나 질적으로 기여했는가를 점검해보라는 부르심에 직면해 있다”며 “이 부르심은 여러분 각자가 개인으로서 또한 공동체 차원에서 불우한 이들, 소외된 이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 많은 이가 누리는 번영에서 제외된 이들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복음적 관심을 증언하는가에 대하여 반성하도록 도전해 온다”며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한국인으로서 이제 의심과 대립과 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그 대신에 복음의 가르침과 한민족의 고귀한 전통 가치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해 나가도록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프란치스코의 메시지는 그가 세월호 유가족들을 수차례에 걸쳐 언급하고, 광화문 시복미사 때는 직접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는 행보 등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고 봐야 한다. 그의 방한을 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사회가 치유로 나아갈 수 있을지, 특히 남북 갈등이 화해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이제 한국 사회가 응답해야 할 때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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