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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떠나다(9)심주일 목사의 탈북일기(9)

나의 마음은 완전히 돌아셨다. 마음을 결정하고 나니 평양에 있는 하루하루가 지루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서서히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마음은 떠나기로 결심했지만 정작 떠난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줄은 미처 몰랐다.

노동당으로부터 받아 수행하던 임무는 누구에게 넘겨줄 수도 없는 것이라서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그냥 떠나면 그만인데 다른 문제들은 그렇지 않았다. 우선 가정문제가 그랬다.  그리고 강하게 마음을 다잡았지만 당을 떠나고, 조직을 떠나고, 군복을 벗어야 하고, 동지들을 떠나고, 고향의 땅속에 묻혀있는 조상들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더욱이 김정일을 호위하는 친위대에 나가 있는 맏아들 생각까지 모두 나를 괴롭혔다.

다음의 고민은 '떠난다면 어떻게 서울로 들어갈 것인가'였다. 이럴때 최전방 철책에서 근무를 했더라면 간단하게 철책의 차단물을 통과하고 대한민국 GP나 OP에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신호를 보내 그들의 안내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평양에서만 군 복무를 하였기 때문에 최전방 철책의 구조와 지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중국인데 중국으로 간다면 압록강 아니면 두만강을 도하해야 한다. 도하 지점과 중국 땅을 밟는 순간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혹시 압록강, 두만강을 도하하다가 국경경비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의 감시에 노출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등 모든 것이 참으로 복잡했다. 또한 내가 장도에 오르는 것인만큼 우선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질병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건강까지도 염려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고민되는 것은 '대한민국정부가 나를 받아줄 것인가'였다.

대한민국으로 가는 경로는 어디를 택할 것인가. 다시 베이징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1997년 2월 14일 황장엽 선생의 한국대사관 진입사건을 계기로 은근히 북한 정보원들의 감시망이 더 강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발목을 잡는 장애물들이 더 많아졌다.

떠나는 날짜는 언제로 설정할 것인가.북한군 군사술어를 빌려 쓴다면 C시간 (적의 제 1참호에 탱크와 보병이 점령해야 하는 시간)은 언제로 하며, 주야 일기 계절 조건은 어떻게 할지의 문제까지도 구체적으로 따져보아야 했다.

우선 정찰을 하기로 했다. 백두산을 여러 번 답사하면서 그리 넓지 않은 압록강, 두만강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내가 본 압록강, 두만강은 강을 도하하자마자 중국 쪽에는 전혀 민가가 없는 산악 지형이었다. 나는 강을 넘자마자 민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백두산을 답사할 때 보았던 혜산, 보천 등 량강도 지형에 대해서는 지형상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정찰을 하게 된 것이 바로 자강도 만포로부터 내륙선 철길을 따라 압록강 기슭이었다. 그리고 신원 확인을 한다고 하면서 국경 연선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출장증명서를 발급받아 해당 위치를 직접 정찰했다.

내륙선 철도는 정상적으로 운행되지 않았는데 마침 내가 정찰을 위해 떠났을 때 다니지 않던 내륙선 기차가 그날은 운행을 했다. 기차의 운행 시간은 낮에는 없고 밤에만 있었는데 밤에 기차를 타고 차창으로 중국 땅을 바라보니 불빛이 있는 그곳이 바로 코앞에 있는 것 같았다. 저렇게 가까운 곳이 중국이라면 자신이 생겼다.<계속>

심주일 목사의 ‘탈북 일기’는 책 ‘멈출 수 없는 소명’(토기장이) 내용을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요약, 연재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심주일 목사(부천 창조교회 담임)

심주일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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