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독일은 분단의 원인과 상황에서 서로 다르다. 하지만 과거 서독의 대동독정책과 접근방식, 그리고 독일통일의 경험은 우리의 통일정책을 논의하고 구상하는 데 종종 참조된다. 상이한 분단상황을 고려해 독일의 분단관리 및 통일경험을 그대로 빌려오기보다 우리에게 맞게 창조적으로 활용한다면, 독일사례로부터 적잖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내독 도시간 자매결연’은 바로 그러한 사례들 중 하나다. 물론 이 사업이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분단시기동안 그리 큰 성과를 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예상치 않은 독일의 통합과정에서 지방행정체계의 성공적인 전환과 이를 통해 구동독지역에 참여민주주의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실 햇볕정책 추진 이후, 한동안 우리의 지자체들이 대북교류·협력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해왔다. 지자체들의 적극성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그리 크지 못했으며, 사업추진의 혼란스러움도 적지 않았다. 사실 남북한 중앙정부간 교류·협력이 제도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지자체 차원의 대북사업이 중앙정부 차원보다 더 효율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웠다. 또한, 북측 파트너의 선정을 비롯해 남한의 지자체가 대북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남북한 지자체들 사이의 교류·협력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중앙정부간의 포괄적 관계 발전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획일성 내지 전체성 대신에 지역특성에 부합하는 다양한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 및 통일기반 구축에 기여할 수 있을뿐더러, 언젠가 한반도 통일이 이뤄질 경우에 자자체간 교류·협력은 행정 및 문화 차원에서 효율적 통합의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방정부 차원의 대북사업은 남북관계의 전반적 침체와 더불어 중단돼 있지만, 향후 남북관계가 재개되고 발전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러므로 분단시기 독일이 도시간 자매결연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우리 지자체들이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나아가 독일통일이후 도시간 자매결연이 긍정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된 경험을 통해 우리 지자체들이 중장기적 대북사업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에 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독 도시간 자매결연 사업의 추진과정
내독 도시간 자매결연에 대한 필요성은 이미 분단 직후부터 동·서독 양측에서 제기됐으나 1985년 말에 이르러 비로소 도시간 자매결연 체결에 관한 구체적인 협상이 시작됐다.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을 통해 관계정상화가 이뤄지고, 각 분야별 교류·협력이 제도화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간 자매결연이 그처럼 늦어진 것은 일차적으로 동독의 차단정책, 즉 교류·협력과정에 수반되는 서독의 사회문화 유입을 차단하려는 동독정권의 노력 때문이었다.

최초의 자매결연은 1985년 말 동독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Honecker)의 허락에 따라 1986년 4월 서독의 자알루이스(Saarlouis)시와 동독의 아이젠휘텐슈타트(Eisenhüttenstadt)시 사이에 체결됐다. 최초의 자매결연이 성사된 후, 동독도시들을 향한 서독도시들의 자매결연 신청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기 시작했다. 서독도시들은 동독 도시당국과 접촉하기 위해 주로 ‘내독성’(우리의 통일부에 상응하는 서독 연방정부의 부처)의 도움을 받았으나, ‘서독의 독일 도시간 회의,’ ‘도시 및 자치단체 연합,’ 정치나 경제분야의 엘리뜨, 동독상주대표부 등에 신청하거나 또는 동독 도시당국에 직접 접촉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동독정권은 내독 도시간 자매결연이 동독체제에 미칠 영향력을 우려해 자매결연 체결과정을 통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매결연 숫자가 증가했다. 연도별로 보면, 1986년 6건, 1987년 32건, 1988년 18건, 1989년 10월 평화시위 이전까지 17건이 성사됐다. 이러한 수적증가를 통해 동독정권이 도시간 자매결연에서 얻는 이익을 중요하게 평가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도시간 자매결연 초기, 이미 내부적으로 상당한 준비를 해온 동독과 달리 오랫동안 자매결연 의사만을 표명했을 뿐, 별 준비를 하지 못했던 서독은 갑작스러운 협상 및 조약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예컨대 연방정부, 주정부, 자치단체간의 협조 부족현상이 곳곳에서 속출했으며, 야당이 집권했던 지방정부는 자매결연 조약 체결과정에서 연방정부의 독일정책노선과 일치하지 않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서독 내부의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도시간 자매결연 사업의 성과
내독 도시간 교류·협력사업은 매년 갱신되는 연간 실행프로그램에 의해 확정됐다. 대체로 실행프로그램에 명시된 교류·협력사업의 기본 골격은 유사했으며, 구체적 사업내용은 6가지로 대별된다. ①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 문제들에 대한 경험을 교환하기 위한 시정 각 분야의 전문가 교류 ②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육교류 ③모든 사례에서 예외 없이 추진된 청소년 교류 ④동독측의 요구에 따른 평화회의 ⑤전시회 및 공연 등 다양한 문화교류 ⑥절반정도의 도시들이 시행한 신문교류 등이다. 실행프로그램은 매년마다 비교적 쉽게 갱신됐다. 다만, 갱신 시 대체로 내용상의 변화는 거의 없었으며 매우 예외적으로만 새로운 사업이 추가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동독측은 재정적·기술적 문제를 구실로 전년도에 비해 교류·협력의 양을 더욱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인적 접촉의 확대 및 심화 덕분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교류·협력은 점점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도시간 자매결연 사업의 성과는 양적 및 질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양적 측면에서 보면, 분단시기 전반적 내독관계 발전에 대한 도시간 자매결연의 기여는 그리 크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이 사업을 통해 매년 약 12,000명 정도의 동서독 주민이 상호 방문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연 평균 600만 명의 동서독 주민들이 교류·협력 차원에서 상호 방문한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자매결연사업의 질적 성과는 무시할 수 없다. 비록 통일이 생각지 않게 실현됨으로써 자매결연 사업이 독일통일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줬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내독관계 발전에 대한 간접적인 기여가 있었으며 그 의미는 결코 무시될 수는 없다. 몇 가지로 정리하면, 무엇보다 양독 주민간 접촉 및 대화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했고, 상호 접촉면과 대화를 확대함으로써 상호 유대감을 증대했으며, 도시간 자매결연을 통해 내독간 교류와 대화의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공간이 마련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매결연사업의 성과는 통일과정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부터 독일통일의 실현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은 두말할 것도 없고, 통일 이후 행정체계의 통합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던 1991년 말까지 도시간 자매결연은 양적 팽창은 물론이고 질적인 측면에서 매우 큰 역할을 담당했다. 통계에 의하면, 통일이 실현된 당시에는 총 854개의 도시간 자매결연이 체결돼 있었다. 또한, 1993년 초 연방내무성의 자료에 의하면, 구동서독 지역의 기초 지자체간 협력사업은 최소한 1,993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베를린 장벽붕괴직후 동독체제의 전환과정에서 도시간 자매결연 사업의 기여는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분단시기 형성됐던 동서독 주민들의 이질성을 극복하기 위한 주민들 개개인이나 단체간의 접촉이었다. 과거와 달리 주민들 개개인이나 각종 민간단체들의 자발적 참여가 가능해짐으로써 상호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사업들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여행, 교육, 예술, 문학, 체육, 구호단체 등 모든 종류의 교류가 포함됐다. 특히 동독지역의 식량, 소비재, 그리고 의약품 부족 사태와 관련해 자매결연 차원에서 대동독 지원이 급증하기도 했다. 이 경우, 과거부터 자매결연 사업이 지속됐던 도시간에는 경제적 지원이 더욱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

둘째, 더욱 직접적이고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것을 들자면, 구동독의 행정체계 재건을 위한 서독 지자체들의 도움을 들 수 있다. 동독 지자체 선거 이후 체제전환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통일 이후 통합과정에서 동독의 행정구조와 규정들이 새롭게 구성되거나 경우에 따라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기구가 창출돼야 했다. 이러한 재건과정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돼야 했으나 구동독지역에는 업무를 감당할 인력과 재정이 결핍돼 있었다. 따라서 구동독지역의 주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조직을 신설·재편하기 위한 서독측의 지원은 필수적이었다. 서독측 자매결연 도시들은 통일 이전부터 동독측 파트너 도시에 자문관 파견, 세미나 개최, 인력 파견 등을 통해 행정개편을 도왔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동독도시들의 약 65%가 서독측 자매결연 도시로부터 행정개혁을 위한 각종의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도시간 자매결연 사업의 한계와 문제점
이러한 성과와 대비되어 도시간 자매결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독은 대부분 동독측의 소극적 태도로 말미암아 사업의 양적·질적 발전에 한계를 경험했으며, 동시에 준비부족 등 서독내부 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도시간 교류·협력 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서독도시들이 경험한 한계에서 공통되는 다음의 일곱 가지 문제들이 항상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첫째, 동독측의 경직성과 관련된다. 동독측은 일반적으로 연간 실행프로그램에 명시된 행사에 대해서는 성실한 이행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양과 내용에 있어서 이미 합의된 사항 이상을 기대할 수 없었으며, 더욱이 서독주민과의 교류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하지 않았다. 둘째, 동독측은 교류·협력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접촉을 가능한 차단하려고 노력했다. 이와 관련해 서독의 자매도시를 방문한 동독대표들이 민박 등을 통해서 서독주민들과 사적으로 어울릴 기회가 거의 마련될 수 없었다.

셋째, 동독측의 관료주의가 야기한 장애다. 단적인 예로서 동독방문에 필요한 비자 발급기간이 너무 오래 걸렸을 뿐 아니라, 동독측은 모든 협의과정에 시장 또는 고위 당국자들이 반드시 개입하도록 했다. 넷째, 서독측의 높은 기대와 동독측의 호응부족이다. 서독 도시 내 수많은 체육·예술단체들은 자매결연체결과 동시에 동독측 교류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대다수의 단체들은 파트너를 찾지 못했다.
다섯째, 동·서독도시의 자치능력 차이와 동독 자치단체의 교류·협력 사업 결정권 부재에서 연원하는 문제이다. 서독도시들은 지방자치행정을 보장하는 기본법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자매결연 추진 및 체결 권능을 인정받고 있는 데 반해, 동독도시들은 헌법상 보장된 자결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중앙집권적 체계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동독도시들은 소위 ‘민주적 중앙집중주의’라는 미명아래 수직적·종속적 행정조직 틀에 묶여 있었으며, 그나마 행정조직 면에서 이중적 종속 상태, 즉 각 단위 인민대표회의와 상위 행정조직으로부터 통제를 당했다.

여섯째, 사회체제적 상이성으로 인하여 문화적 교류·협력의 범위가 한정됐다. 대표적인 예로, 서독측의 프로 체육팀들은 스포츠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인정하지 않는 동독에서 교류상대를 찾을 수 없었다. 일곱째, 동독측 참가자들의 심리적 위축으로 인한 교류·협력 성과의 한계다. 교류·협력 프로그램 참가차 서독을 방문하는 동독의 민간인들은 출발 직전까지 일행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서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더욱이 대표단을 통제·감시하는 자의 지시에 따라야 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따라서 동·서독 주민간의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한 교류·협력 성과를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이러한 동독측의 태도로 말미암은 한계들 이외에도 사업 추진과정에서 서독 내부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즉, 도시간 자매결연 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서독은 효율적 대응 및 관리의 문제를 항상 안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그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도시간 자매결연 추진 초기에 나타난 혼란은 대개의 경우 준비부족에 기인했다. 비록 서독측은 동독에 자매결연 사업을 지속적으로 제의해왔지만, 실질적·구체적 사업계획을 준비해 두지 못했다. 특히, 서독 지방정부에는 내독관계를 실무적으로 취급해 본 경험자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정치가들의 동독정치 및 행정체계에 대한 지식은 매우 일천했다. 따라서 초기 서독 도시의 대동독접촉 노력은 오해와 실망으로 점철되었으며, 대개의 경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둘째, 지방분권주의에 기초한 서독체제 특성상 연방차원에서 도시간 자매결연에 관한 통일된 지침이 조기에 마련되지 못해 중앙집권적 행정체제를 가진 동독측과의 협상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다. 지방정치 차원에서는 ‘기민당/기사당 지방정치 연합(KPV)’, ‘쾰른 소재 서독의 도시간 회의(DST)’, ‘도시 및 자치단체 연합’, ‘기초자치단체 회의(Deutscher Landkreistag)’, 연방차원에서는 내독성과 전독연구소가 내독 도시간 자매결연 문제를 체계적으로 취급할 수 있었던 유관기관이었다. 그러나 어느 기관도 도시간 자매결연에 대한 공식 통계조차 집계하지 않을 정도로 체계적 관리 및 협조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때때로 도시당국의 자매결연 추진 사실조차 내독성에 미리 보고되지 않고 추후 통보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중앙과 지방간의 협조 또는 통일된 지침 부재의 결과, 서독도시 당국의 개별적 사업추진은 지지부진했으며, 심지어 둘 이상의 서독도시가 동독의 한 도시에 대해 동시에 자매결연을 요청함으로써 경쟁을 유발했다.

셋째, 자매결연 조약체결과 관련해 정부의 권능을 둘러싼 연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갈등이다. 이 문제는 지자체의 대외관계를 어느 정도 보장하고 있는 서독의 기본법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러한 것은 실제로 자매결연 성사 초기부터 우려됐다. 연방정부는 뒤늦게나마 가능한 자매결연 협정에서 정치적 입장 표명을 피할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자매결연 사업은 도시 당국의 관할권에 속하지만, 가능한 유관기관들의 협조를 얻을 것을 강조했다. 또한, 내독 도시간 자매결연에서 지자체가 유의해야 할 사항을 제시했다. 즉, ①지방정치차원에 직접적 연관성을 갖지 않는 정치적 기본입장표명을 자제할 것, ②기본조약 및 내독협정을 인용할 경우에 독자적인 해석을 피할 것, ③협상 및 협정체결과정에서 가능한 개인 및 단체차원의 시민간 접촉확대에 역점을 둘 것 등이다. 그러나 자매결연의 협상 및 협정체결과정에서 연방정부의 권고가 반드시 존중되지는 못했고, 결국 연방과 지방정부간에 갈등이 적지 않게 노정됐다.

통합과정에서 긴요하게 활용된 내독 도시간 자매결연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부터 1990년 5월 6일 동독의 지방자치선거 실시와, 1990년 10월 3일 독일통일의 실현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은 두말할 것도 없고, 통일 이후 행정체계의 통합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던 1991년까지 도시간 자매결연은 매우 큰 역할을 담당했다.

통일의 기운이 싹터가던 1990년 초부터 서독의 지자체들은 민주화된 동독지역에 새로운 지방행정체계의 구축을 돕기 위해 내독 도시간 자매결연 통로를 활용했다. 동독 지자체에 대한 서독 지자체의 도움은 제대로 운영되는 지방자치체계를 확립하는 데 매우 유용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통일에 따르는 체제전환 문제의 효율적인 해결에, 중장기적으로는 동독지역에서 서독과 같은 수준의 생활조건 마련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서독 지자체의 지원은 초기에는 주로 전화나 팩시밀리와 같은 통신수단과 각종 정보유인물 등을 동독측 파트너에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통일협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1990년 중반부터는 행정자문, 업무개선 세미나, 강사파견, 행정인력파견 등의 인력지원과, 건축자재, 자동차, 사무용기기 등 물자 지원도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인력지원과 관련하여 처음에는 동독 지자체에 파견된 인력들의 상당수가 은퇴한 공무원들로 구성됐다. 이러한 행정지원에 필요한 재원은 서독의 주 및 지방정부가 스스로 마련했다.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매우 좋은 반응을 보임에 따라 내독 도시간 자매결연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애초 내독 도시간 자매결연은 대부분 5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동독도시에만 해당되었던 탓에 동독의 중소도시들이 충분한 행정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1990년 7월 29일 서독지역 각주 내무장관회의에서는 동독의 중소도시들이 서독도시들과 자매결연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통일조약이 체결되기 이틀 전인 1990년 8월 29일에는 연방과 서독주가 신설주들의 행정인력 소요를 충족하기 위해 연방과 주들 사이에 새로운 제도(clearingsstelle)가 창설됨으로써 더욱 체계적인 행정인력의 지원이 가능하게 됐다.

1990년 10월 3일 독일통일이 실현되자 통일조약 15조에 명기됐듯이, 서독 연방 및 주정부는 구동독지역의 주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조직을 신설·재편하기 위해 본격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이를 위해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연방내무성에는 ‘연방-주 조직정비처’(연방정부, 신·구연방주 및 지자체 대표로 구성)와 ‘신연방주 재건단’이 설치됐으며, 동시에 연방내무장관이 주도하는 ‘연방자치단체협의회’가 설립됐다.

연방자치단체연합회의 활동은 주로 내독 도시간 자매결연을 적극 활용해 구동독지역에 행정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으며, 그 목표는 구동독 신설 지자체의 실정을 고려한 체계 구축과 조속한 시일 내 양독지역의 생활조건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연방자치단체연합회는 몇 가지 업무를 중점적으로 수행했다. 예컨대, 구동독지역의 자치단체장이 긴급과제에 익숙할 수 있도록 각종 정보 제공과 상담을 해주고, 구동독지역 부흥을 위한 공동대책을 포함해 연방정부의 각종 지원 대책에 관해 보고하며, 주정부의 각 기관, 연합회, 신탁청 및 기타 유관기관들 사이의 의견 교환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또한, 연방자치단체연합회는 자매결연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통해서 신설주를 도왔다. 특히, 연방내무성의 재정지원 아래 추진된 ‘신연방주 지방자치행정 구축지원’ 프로젝트는 서독지역주의 전문가들의 자문지원뿐만 아니라 행정에 관한 각종 업무협조지침서 발간을 통해 구동독 지자체들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했으며, 각종의 교육훈련과 연수교육을 통하여 구동독의 행정조직 재건에 도움을 줬다.

이러한 행정지원은 구동독의 공무원들이 서독의 행정조직의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서독에서 온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배우는’ 방식의 현장학습이 애용됐다. 통일 이후에는 구동독지역으로 전출한 서독 지자체의 공무원도 적지 않았다. 1992년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당시 8375명의 서독출신 주 공무원이 구동독지역의 주정부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그중에서 1159명은 전출한 사람이고 나머지는 파견된 사람들이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연방주 지방자치행정 구축지원” 프로젝트의 실천과정에서 구동독지역 지자체들은 경영인이나 연방에서 파견된 전문가보다 자매결연 도시에서 파견된 서독 공무원을 더욱 선호했으며, 더 높은 신뢰를 보였다. 이는 서독에서 파견된 경영전문가나 연방 공무원이 대체로 경쟁사회의 효율성을 강조했던 반면, 자매결연 지자체 파견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지자체의 특성에 맞게 적용시킨 결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도시간 자매결연은 사회통합과정에서도 매우 긴요하게 활용됐음이 입증된다.

지자체 교류 경험이 통일과정에 미칠 파급효과
한반도 분단 상황을 고려하면, 머지않은 장래에 남북 지자체간 자매결연사업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전의 지자체 사업들도 엄밀하게 말해서 남북 지자체간 교류·협력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업은 우리 대북지원 민간단체의 사업에 동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직접적인 북한당국과 접촉을 했더라도 그 상대가 북한의 지자체는 아니었으며, 다만 북한의 중앙기구를 통해 북한의 특정 지역을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남북관계가 향후 개선되더라도 상당기간 그러한 방식의 사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직접적인 교류·협력사업의 성사가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 지자체는 어떠한 경로를 거치든지 북한의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대북사업을 집중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독일사례에서 보았듯이 당장 우리가 원하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과정상 수많은 난관이 돌출할 가능성이 높지만, 남북한 지자체의 교류 경험이 통일과정에 미칠 파급효과를 염두에 둔다면 철저한 준비와 인내력을 가지고 사업을 구상하고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 지자체들은 사업의 계획과 추진과정에서 스스로의 능력 내에서 실현가능한 대북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주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사업추진을 위한 법·제도적 기반과 재정적 뒷받침, 그리고 주민의 지지가 없는 사업은 오히려 역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중앙정부의 대북사업과 어떻게 차별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야 할 것이다. 어떠한 사업을 선택할 것인지는 지자체 특성과 능력에 적합한 사업, 북한당국의 관심 사업, 우리 중앙정부와 지역주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사업 등의 실현 요건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전의 경험에서 드러나듯이 현실적으로는 점진적·단계적인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각 단계에 맞는 사업종류의 선택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자체의 대북사업을 위한 대북접촉창구와 관련해 일단, 북측과 신뢰를 구축하기까지 대북지원 민간단체나 중앙정부의 조력을 구하는 것이 효과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남북 지자체 사이에 교류·협력의 통로를 확보해 둔다면, 어떠한 방식의 통일이 실현되더라도 남북한 통합과정에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김학성/ 충남대학교 평화안보대학원 교수

김학성  hskim03@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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