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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에 내리는 순간심주일 목사의 탈북일기(20)

정부의 보호 속에 서울로

하나님은 나의 소원을 이번에도 들어주셨다. 드디어 대한민국의 해당기관에서 나의 편지를 분석한 후 나에 대한 테스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내용을 이곳에 다 쓸 수는 없다. 대한민국 해당 기관의 문제이므로 더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어쨌든 하나님이 정부를 감동시켜 정부 차원에서 그들의 안내를 받아 직항로로 1998년 10월 13일 김포공항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땅을 밟게 된 것이다.

나는 더도 덜도 없이 내 모습 그대로 대한민국 정부 앞에 나의 신분을 검증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상식이다. 본질적으로 북한은 적대 국가이며 나는 적대국의 장교였다. 이런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평양을 떠나면서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기 위한 서류를 가지고 나왔다. 당원증은 빼놓지 않고 몸에, 그것도 심장이 제일 가까운 곳 가슴에 품과 왔으며, 장교 신분증도 그대로 가지고 왔다. 그 다음은 대학 졸업증을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대학졸업증도 가지고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사진첩에서 상등병 때부터 군사칭호(계급)가 달라질 때마다 찍은 사진을 한 장씩 떼어서 차근차근 정리하여 작전 가방에 넣어왔다. 평양을 떠날 당시 부서안의 세포비서로 있었기 때문에 평양에서의 마지막 달인 1998년 3월 당비까지도 다 납부하고 당원증에 납부 도장까지 찍고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가 대한민국 정부로 직항하기에 충분한 자료는 아니었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조선인민군 안의 작전 및 일반 모든 규정들을 비롯한 정말로 가치 있는 자료들을 가지고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귀중한 정보자료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몸으로 체험한 바이다. 단지 위에서 말한 증명서와 사진 이외에 더 이상의 어떤 자료도 없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귀한 분들을 동원시켜 나를 경호했고 안내해서 입국하게 해주었다.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위대한 하나님, 나를 감찰하시는 그 분께서 이렇게 행하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미 나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행하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나를 안내하도록 임무를 받은 그분들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은 정부로부터 임무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책임이 클 수밖에 없고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매우 엄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긴장은 중국 공항을 통과할 때가 절정이었다.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중국공항의 출입국관리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탑승 직전 대기실에 있을 때에도 그들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조금 있으니 방송에서 분명 중국말로 '한성'이란 말이 들려왔다. 서울을 한성이라고 불렀다는 역사적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한성이란 말에 직감적으로 서울로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안내하는 분들의 뒤를 따라 탑승구로 나가는데 앞에 있는 비행기, 내가 분명 타야 할 비행기에 '대한항공'이라는 글자와 국적을 표하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가슴이 뭉클했다고밖에는 달리 표현을 할 수 없다. 기내에 들어서는 순간 승무원 여성들이 인사를 건넸다. 그런 서비스는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았다. "어서 오세요"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그 톤이  우는 아이도 금방 잠재울 것 같았다. 북한군 사관학교에서 남조선을 배울 때 남조선 말의 특징은 마지막에 '요'자를 붙인다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승무원 여성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정말로 '요'자를 말끝마다 사용하는 것이다.

기내에 들어서자 나를 안내하는 분들이 나의 손을 잡고 "선생님, 이제는 서울입니다. 마음 놓으십시오"라고 탄성을 올리며 기뻐했다. 정부에서 받은 임무를 완수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분들은 기내에서 주는 음식 이외에도 다른 먹을거리를 꺼내놓고 마음 놓고 먹었다. 그런데 나는 음식이 입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비행기는 곧 이륙하였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지라 이륙을 위해 가속을 할 때 귀가 멍멍했다. 그들은 그럴 때 침을 한번 꿀꺽 삼키라고 가르쳐 주었다. 말한대로 하고 조금 있다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바다였다. 

중국에서 나는 변변한 옷 한 벌 없었다.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나를 안내하러 오신 분들을 통해 트렁크에다 정장 한 벌, 신발, 양말, 하여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준비해온 의류를 착용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과연 이렇게 나처럼 대한민국으로 입국한 탈북자가 어디에 또 있으랴. 나는 정말 복을 타고난 사람이다. 정말로 타고난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인치심에 있지만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속에서도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이것은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아주 놀라운 특권이라고 믿는다.

한편 대한민국의 중요한 간부들이 중국까지 와서 나에 대한 모든 것을 테스트하였고 또 북한의 라인을 통해 2중, 3중으로 나에 대한 신원을 확인했기에 대한민국의 비행장에 내리면서 시작될 나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는 간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하면 일주일 정도면 되지 않을까. 내 나름대로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을 하였다. 적대국에서 그것도 평양 방어사령부 정치장교로 근무하던 사람이니 분명히 조사가 있을 것이고, 그 조사의 강도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일주일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정부에 요구한 조건

중국에 있으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심 선생님을 빨리 모셔오기로 결정을 했습니다"라고 전해들었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의하였다. 우선 첫째, 평양에 있는 가족을 중국까지 데려오면 나를 안내한 것처럼 가족을 안내해달라. 둘째, 대한민국의 일체 언론을 통제해달라. 이 두가지 조건을 제의했으며 제의한 모든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나는 대한민국으로 들어오고, 제 3국에 있는 분이 평양에서 나의 가족을 안내하려고 떠났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김포공항에 내리는 순간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인 KBS가 "북한군 정치장교 중좌 000가 지금 대한민국으로 귀순하고 있다"는 내용의 생방송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내 몸은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북한에 두고온 가족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 이후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쓰지 않겠다. 지금도 북한의 가족을 생각하면 호흡이 딱 멈춰버리는 거 같아서 자다가도 깨어나기를 몇 번인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항상 옆에 있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그것으로 위로를 받고서야 다시 자리에 눕는다.

비행장에서 나를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몸을 실었지만 나를 안내하는 분들의 인상은 좀 경직되어 있었다. 이미 그때는 중국에서 나를 안내했던 분들과는 헤어졌을 때였다. 그분들은 중국에서 김포까지 나를 안내하는 것이 임무였기 때문이다. 승용차를 타고오면서 경직된 얼굴을 한 그분들이 좌측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국회의사당을 가리키며 "저것이 국회의사당입니다"라고 설명을 할 때 "예, 저도 압니다"라고 답변을 했더니 "심 선생, 우리와 함께 할 일이 많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해당 기관에 도착한 나는 처음부터 불평이 많아졌다. 첫째는 왜 나를 신뢰하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만큼 중국에서 나를 테스트했으면서 말이다. 둘째로 어떻게 북한에서 성경을 볼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중국에 있을 때에도 제기되었던 문제였다. 그때도 나는 나를 테스트하는 분들에게 북한에서 성경을 누구에게 받았는지와 제주극동방송을 듣던 이야기, 그리고 성경과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서 은혜받고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이야기를 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들도 은혜를 받았다고 했는데 다시 그 문제를 들고 나오니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세번째로 위장 귀순이 아닌가 하는 문제였다. 이 모든 것은 조사과정에서 상식적인 문제인 만큼 나는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리 오래지 않아 해결되었다. 그저 한 일주일 정도였던 것 같다. 

그 다음부터는 해당 실무 일꾼들(북한의 육해공군 전문가)과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 기간이 한 1년 걸렸다. 비행기 안에서 '한 일주일이면 되겠지' 라고 예상했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순진했었는지...

어떤 내용으로 어떤 사람들과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 하여튼 조사를 받는 기간과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여러 곳을 가보았다. 한번은 남산타워에 올라갔는데 나는 군인이기에 어디를 가든지 자연스럽게 현 위치에서 방위, 즉 동서남북을 판정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남산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방위를 목측으로나마 판정하고 나니 사관학교에서 배웠던 서울 지리에 대한 기억을 살려 보았다. 그리고 한 바퀴 휘익 둘러보니 북한산, 청와대, 기타 대표적인 지형들이 떠올라서 나 혼자 소리로 "아 청와대, 아, 북한산"하면서 모든 것을 확인했더니 나를 안내하던 분들이 나에게 "심 선생, 언제 한국에 한번 왔다간 적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 물음에 담긴 의도를 알기에 그냥 웃었다.

성경 14번 읽은 다음에

중국에서 마지막 기도제목이 바로 이것이었다. 첫째는 제주극동방송에 보낸 편지로 인해 한국 정부를 감동시켜 주시며 만일 한국정부가 감동이 되었다면 사람들을 중국에 보낼 것인데 믿는 사람들로 보내달라고 한 것이었다. 둘째 기도제목은 성경을 14번 읽은 다음에 한국으로 가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성경을 14번 읽은 다음에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한 기도제목은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기도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성경을 읽을 때 마태복음 1장 17절을 보다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까지 14대, 바벨론부터 예수님까지가 14대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을 14번 읽은 다음에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한 대로 나를 테스트 하려고 온 대한민국의 귀중한 일꾼들 그 가운데 팀장으로 온 분이 바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교회의 제직으로서 교회를 치리하고 섬기는 분이었다. 사실 내가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안내를 받아 입국을 하게 된 데는 이분의 공로가 크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이 이분을 통해서 역사하셨다고 믿는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나를 안내하려고 온 일꾼들은 내가 성경을 14번 읽은 다음날 도착했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이 너무도 분명했다. 그렇게 중국에서 드린 나의 마지막 기도는 응답되었다. (계속)

심주일 목사의 ‘탈북 일기’는 책 ‘멈출 수 없는 소명’(토기장이)에 나온 내용을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요약, 연재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부천 창조교회 담임목사>

심주일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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