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예레미야서를 읽는다. 그러다가 오늘 21장을 읽으면서 마음에 많이 걸린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언자로서, 자기 시대와 갈등을 많이 빚었다. 그에게는 바로 그것이 애족 애국의 길이었다. 그는 왜 민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그로 인해 자기 시대와 갈등을 빚어야 하는 그런 식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을까.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고 흔히 말한다. 예레미야 당시 자기 조국 유다는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이집트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바빌로니아가 강자로 등장, 유다에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포위, 여러 번(605, 597, 586 BC) 자기 민족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렇듯 유다가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난 예언자가 예레미야다.

국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명령을 따라 예언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예레미야 5:1)” 국가의 존망은 국방력의 강화보다는 ‘정의와 진리’의 실천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는 또 국가 위난의 본질은 사회정의의 붕괴와 종교적 타락에 있다고 보았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5: 30-31)” 이 말씀은 유다 멸망이 거짓 예언자와 권력화된 제사장과 이들을 맹종하는 백성들에게 있음을 지적한다. 이 땅의 사이비 지성인들과 탐욕스런 종교인들이 특히 명심해야 할 구절이다.

오늘 읽은 21장에도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경고는 준엄하게 나타난다. 유다가 바빌로니아의 침략을 받고 있을 때 유다 왕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신하를 파견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이때 예레미야는 아주 엉뚱하게도 “바빌로니아 군대에게 나아가서 항복하는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목숨만은 건질 것이다.(21:9)”고 항복을 권유한다. 민족주의와 항전의식을 고취하고 국민적 기대에 영합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전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예레미야의 강직함과 성실함이 있다. 그는 국왕과 백성의 귀를 즐겁게 하거나 시세에 영합하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지성인이 아니라 진리에 굳게 선,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외세가 곧 들이닥칠 그런 위기를 당했는데도 예레미야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에게 경고하고 한 번 더 기회를 제시한다. “다윗의 왕가는 들어라. 아침마다 공의로운 판결을 내려라. 너희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여 주어라, 억압하는 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주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악행 때문에 나의 분노가 불처럼 일어나서 불탈 것이니 아무도 끌 수 없을 것이다.(21: 12)” 외세가 침략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병력의 강화보다는 공의를 세우고 억압받는 민중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논어 안연(顔淵 7)편의 공자(孔子)를 연상하게 된다.

오늘은 현충일(顯忠日)이다. 조국의 독립과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국군장병, 민주열사들을 추모한다. 진정한 애국 애족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염원했던 조국이 어떤 나라였을까를 고민해 보게 된다. 아울러 예레미야가 고민했던 애국애족의 길이 국력과 방위력의 신장 못지않게 정의와 균등에 있지 않았을까도 생각하게 된다. 비록 자기 시대에는 인기가 없을지라도 사회정의의 실현과 고통받고 억압받는 자들을 구휼하는 그 길 말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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