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으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개성공단을 전격 폐쇄하고 국제사회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대북제재에 나선 그였다. 그러다 중국 측 협력이 미온하다싶었는지 지난 7월에는 사드배치마저 밀어붙여 성주와 김천 등 해당 지역에서는 사드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마당에 북한이 9월에 보란 듯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더 이상 대응수단을 찾지 못하고 발작적으로 내놓은 얘기가 김대중・노무현 시절 대북지원 탓이다. 지난 9월 22일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나왔던 대통령의 발언이다.

“대화를 위해 준 돈은 핵 개발 자금이 됐다” “협상 동안 북한은 물밑에서 핵 능력을 고도화하는 데 그 시간을 이용했다”라고 대북지원을 토대로 한 남북교류협력 및 평화통일 노력을 싸잡아 핵개발 원인제공이라 다시 거론한 것이다. (일명 ‘퍼주었더니 핵으로 돌아왔다’는 대북 퍼주기론)

참, 서글플 정도로 놀라운 대통령의 인식이다. 우물가 아낙네들의 수다도 아니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발표된 북핵문제에 대한 대통령 인식이 이 정도라면 대북정책에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 위기관리 능력에 불안감까지 깃든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나 윤병세 외교통상부 장관, 그리고 홍용표 통일부 장관 등 정부내각관료들의 참모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심스럽다.

수없이 말을 바꾸며 개성공단 임금 전용문제를 거론한 통일부 장관. 미국과 중국관계 균형을 논하다가 맥없이 잠잠해진 외교통상부 장관. 사드배치는 우리를 위한 방어가 아니라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에 편입되면서 동북아 신냉전질서 가져온다는 우려에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 치는 국방부 장관.

북한의 핵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3년 제1차 북핵위기 이후 도출된 제네바합의를 국제사회가 지키지 못했다. 이어 2003년 재차 불거진 북핵위기 역시 2005년 6자회담에서 이끌어낸 9·19합의를 실행하지 않아 막지 못했고 결국 2006년 1차 핵실험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당시 부시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2차례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를 언급한 바 있다. 그 결과가 10·4정상선언 4항에 반영되게 된 것이다.

“4.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 박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북한의 핵개발을 초래한 것은 대북지원금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제공)

9·19공동성명과 2·13합의는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합의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실행내용이다. 이명박 정권이 그 뒤를 잇지 못했고 남북관계에서 ‘선 핵폐기’를 철칙처럼 굳혀놓고 접근했기 때문에 절호의 기회를 살려내지 못한 것이다. 지금 와서 보니 2013년 년 초 기자회견에서 떠들썩하게 나돌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역시 국제사회가 결단하고 남북정상이 합의한 점진적 평화통일론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터뜨린 해프닝이었다. 이번 수석비서관 회의 발언 중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이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단순한 불안 요인이 아니라 우리 안보에 매우 심각한 현재의 위협이 되고 있다…북한은 핵무기 소형화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탄도미사일에 핵을 탑재하게 된다면 우리 국가와 민족의 생존이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서 왜 악명유지전략을 펴는지 꿰뚫고 한두 발짝 앞장서서 해결사로 나서야 할 우리 정부이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각료들과 정책비서관들이 국민 앞에서나 대통령 앞에서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한민국 대통령 발언에서 이처럼 인식부족과 전략 부재의 발언이 쏟아져 나옴은 그야말로 국가안보에 위해가 되는 상황이다. 대통령을 보좌할 능력이 없으면 물러나는 게 옳다. 

윤은주 전문기자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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