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의 개방화 파고 넘기

개방화에 내몰렸던 한국농업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이후 한국 농업은 시장 개방이라는 큰 흐름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지난 20여 년간 농산물의 대부분이 개방되었고, 2015에는 쌀 시장마저도 관세화 유예조치가 끝나면서 완전 개방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2001년 시작된 DDA(Doha Development Agenda) 협상이 지체되면서 국가간 경제여건에 따라 지역주의를 대표하는 FTA 체결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4년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총 50개가 넘는 국가와 FTA를 맺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한·칠레 FTA, 한·미 FTA, 쌀 시장 개방, 한·중 FTA로 이어진 흐름 속에서 우리 농업은 항상 정치·사회적 갈등과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처음 FTA를 추진하던 당시에 ‘선진 통상 국가’를 지향하던 한국은 농업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시각이 너무나 극명하게 달랐다. 국경 보호가 무너지면 농업과 농촌이 붕괴한다는 주장과 영세소농구조를 개혁함으로써 농업의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대립이 팽팽하게 맞섰다.

한·중 FTA를 정점으로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개방 여부에 대한 논쟁은 거의 종지부를 찍었다. 아직 한국 농업은 붕괴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한국 농업이 경쟁력을 갖춘 것도 아니다. 다만 FTA로 인해 지속적으로 관세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미래에 대응하느냐가 더 큰 문제다. 농산물 수입개방에 대한 대응문제뿐만 아니라 농촌 및 사회·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도 농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수입개방 확대로 2006년 109억불이던 농축산물 총 수입액은 2026년에는 300억불로 확대될 것이며 수입 품목과 국가도 다양해져 국내 농산물과의 경쟁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농가인구는 같은 기간 339만 명에서 197만 명으로 줄어들고, 농촌의 65세 이상 비율은 30.8%에서 48.3%로 급등할 것이다. 다시 말해, 농가 인구의 감소로 농업 공동화 현상이 급속히 진전되면서 노동력 중심의 농업에 한계를 맞을 것이다. 따라서 농업은 기계화, 시설화, 자동화, 장비화로 무장하게 될 것이고 전자통신기술의 발달로 농업은 스마트화 될 것이다.

또한 저출산, 여성의 사회적 역할 확대,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 증대, 젊은 층의 국내 농산물에 대한 인식변화 등 사회·환경의 변화가 농업과 식품산업의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한국 농업에는 다양한 전망이 있을 수 있다. FTA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한국 농업의 미래에 대해 여전히 비관적이다. 이들은 관세 감소로 인해 수입농산물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국내 농산물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2003~2013년까지 수입 과일이 연평균 12% 이상 성장했고 2026년에는 농산물 수입액이 300억$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들의 주장 또한 전적으로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농업인구가 줄어들면서 농업이 스마트화 되고 장치화 되면서 한국 농업에 과거와 다른 획기적 변화가 일어난다면 한국 농업을 비관적으로만 보기 힘들다. 특히 소비자의 니즈(Needs)가 다양화되고 까다로워지면서 다품종소량생산을 하는 한국의 소농 구조가 오히려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농업은 오히려 낙관적일 수도 있다.

비관론과 낙관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농업의 현실에서 한국 농업을 ‘사양화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산업으로서 경쟁력 있는 농업’으로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 농업은 세 가지 관점에서 한국농업의 미래를 바꿔 나가야 한다.

첫째는 농업에 대한 ‘業’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식량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같은 나라와 가격으로 경쟁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먹거리와 다양한 사업을 융합함으로써 농업·농촌의 품격을 높여 소비자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둘째는 이스라엘, 네덜란드와 같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팜을 추진함으로써 노동력 중심의 농업을 탈피하여야 한다.

셋째는 농업의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작지만 강한 농업경영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즉, ‘강소농(强小農)’을 육성하여야 한다.

농업에 대한 “業” 본질 변화

한국 농업에 대한 업(業)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 농업은 더 이상 단순히 ‘먹는(eat) 산업’이 아니라, 관광·체험·레저·예술·문화 등 즐길 거리(entertainment)가 결합된 '먹고 즐기는 산업(eatertainment)’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농업의 스펙트럼이 확대되는 만큼 새로운 가치의 창출 가능성 또한 커지고 있다.

과거의 농업 경쟁력은 ‘더하기’ 합(合)의 개념이었다. 토지, 노동, 자본을 더한 크기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졌기 때문에, 인적ㆍ물적 요소의 확대에 치중하는 전통적 농업이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현대의 농업경쟁력은 ‘곱하기’ 승(乘)의 개념으로 변화되고 있다. 고정적인 요소에 새로운 정보와 창의력이 곱해지면서 부가가치를 몇 배로 높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찾아내면 얼마든지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창의적인 인재를 발굴하고 길러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다.

스마트 혁명

스마트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농업도 이러한 스마트 기술의 개발과 이용 여부에 경쟁력이 좌우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듬지연합영농조합법인의 경우 ICT융복합 스마트팜 도입 이후 토마토 생산량이 75% 증가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같은 과학기술의 접목은 농업의 생산방식과 경영, 농산물의 가공·유통·무역, 나아가 소비자의 소비 패턴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활용이 농업의 경쟁력을 결정함에 따라 토지와 인력에 의존하던 농업은 기술과 자본이 집약된 종합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품목에 따라서는 전통적 우위 요소인 자연조건이 아니라 자본과 기술, 그리고 농업종사자의 경영능력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지게 된다.

네덜란드가 일련의 구조조정을 통해 세계 제2위의 농업선진국으로 도약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네덜란드의 경지 면적은 193만㏊로 한국(170만㏊)보다 조금 크지만, 기후 등의 여건에서는 오히려 불리하다. 그러나 네덜란드 농업은 낙농에서 화훼·양돈 등으로 생산구조를 전환하고 농업 교육의 혁신 등으로 기술·자본집약적인 농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그린포츠(Green Ports)와 시드벨리(Seed Valley)라는 스마트 원예산업 클러스터 단지를 조성하고 기업, 연구기관, 정부가 산·학·연 협업을 이루며 기술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네덜란드의 화훼 수출은 세계 무역량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농산물 수출액은 570억 유로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다. 또한 사막을 농지로 바꾼 이스라엘의 첨단 농업도 한국 농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작지만 강한 농업 (强小農)” 육성

개방화 시대 한국 농업은 수입 농산물과 어떻게 경쟁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가격 위주의 경쟁에서 수입농산물과 경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므로 차별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 농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소규모 농가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농 규모의 확대만으로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암울하게만 느껴지던 한국농업의 토양 속에서 최근 '농업도 경영'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움으로써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작지만 강한 농업(强小農)”을 지향하는 新농업경영체가 등장하고 있다.

이들 新농업경영체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끊임없는 자기개발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통해 경영목표를 지속적으로 달성하는 소규모 경영체를 말한다. 마치 전통적인 제조업체가 IT기술을 도입하여 디지털 업체로 전환(e-Transformation)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이들은 바이오기술이나 디지털기술 등 신기술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마케팅과 네트워크를 중요시한다. 이들 新농업경영체의 성공 사례는 농업도 얼마든지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작지만 강한 新농업경영체가 일부의 특수한 사례가 아닌 한국 농업에 일반화되고 대표적인 특성이 될 때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소개

민승규는 일본 동경대학(Tokyo Univ.)에서 농업경제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을 거쳐, 대통령실 농수산식품 비서관,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 23대 농촌진흥청장,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경제정책실장)을 역임했다. 그는 모험주의 연구자로 모든 것을 농업과 관련 지어 생각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미술 전시회에도 농업을 접목시키고, 음악회를 여는 것도 농업과 관련시키고, 농산물을 주제로 패션쇼를 열고, 인기가수를 농업메신저로 만드는 등 모든 것을 농업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2001년 스타농업인의 산실이 되고 있는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설립하여 농민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민승규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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