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 뜨는 것이 두렵고 TV 켜기가 겁난다. 대한민국의 국격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무능한 대통령의 모습 속에 ‘최순실’이라는 탐욕의 실체가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는지, 누구를 위해 대통령이 되고자 했는지. ‘박근혜’를 지지했거나 혹은 지지하지 않았거나,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잘 이끌어주기를 바라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배신을 가장 싫어한다며 몸서리치던 박 대통령 자신은 왜 국민을 배신하는 길을 갔는가. 모든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

최순실과 같은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의 중심에는 박 대통령이 서있다. 기구하고 굴곡진 삶이었지만 무수한 사람의 동정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자신을 연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도 잘 알고 있다. 귀족적이며 온화한 미소 이면에 뱀처럼 차갑고 냉혹한 또 다른 인격이 존재하는 야누스(Janus)적인 측면이 카리스마로 작용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위 최순실 게이트의 피해자가 아니다. 누가 누구를 조종했다고 말할 수 없다. 자석이 철을 끌어당기듯 인간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상처받은 박근혜의 영혼을 최태민이 위로했을 것이다. “지금의 고통은 미래 큰일을 맡기기 위한 신의 훈련이요, 이 땅의 대통령으로 일어나 온 백성이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는 말이 부모를 총탄에 잃고 빼앗긴 행복에 대한 복수심을 불타게 했을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권력에 대한 욕심은 박근혜로 하여금 교주 최태민과 후계자 최순실을 맹목적으로 의지하고 유일한 조력자로 믿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예언은 삶의 원천이요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최태민의 예언이 현실이 되자, 박근혜의 최 씨 일가에 대한 믿음은 절대 신앙으로 승화했다. 그들이 가는 길에 거칠 것이 없게 만들었다. 결국 영혼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최순실이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해 줄 수 있으며, 어떤 상황도 모면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최태민과 최순실 그리고 박근혜의 관계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 리프톤(Robert J. Lifton)이 말한 사교 교주의 특성과 놀랄만하게 일치하는 것 같다. 처음, 자신만이 완수할 특별사명을 하늘이 부여했다는 거짓말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력한 유대감과 사랑으로 상처와 아픔을 나누며 그 안에서 위로 받고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게 만든다. 하나 된 것에 안도하게 되며, 교주에게 강한 신뢰감과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차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친구·가족·친척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한다. 머지않아 종말의 때가 오기 때문에 교주와 함께 남아서 종말의 때를 함께 겪어야 한다는 주장도 곁들인다. 이는 물리적 현실감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자신의 당면 문제를 더욱 교주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스스로를 고립시킴으로써 결국 이치에 어둡고 조종을 받는 자로 전락한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최순실에게 맡겨졌던 것이 아닐까? 최순실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일반인이 대통령 연설문은 물론, 국정 전반을 주물렀던 것을 무엇으로 변명할 것인가? 지난 기간 소통의 통로를 차단하고 최순실을 위한 판이 벌어지도록 한 것이 드러나고 있다.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피를 나눈 동생보다는 자신의 버팀목인 최순실을 더 소중히 여긴 것도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 박 대통령이 겪었던 고난과 슬픔을 하찮은 일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으로서 견뎌내기에 쉽지 않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아픔을 아는 많은 국민은 애틋하고 심지어는 미안한 마음까지 가지며 살아왔다.

그러나 냉혹하게 말해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도덕성을 상실한 사람이다. 국민과 참모들에게 자신의 무지를 감추고, 국정의 중요한 결정을 사이비 교주가 하게 만들었다. 애초 대통령이 되지 않았어야 했다. 자신을 믿고 뽑아준 국민들을 배반하고, 그들을 돌아서게 만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히 쉬는 것이다.

정경화 칼럼니스트 / 남북물류포럼 사무국장

정경화  kolofo-jen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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