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하 권한대행)은 어떤 신문을 볼까? 12일자 그리고 13일자 조간들을 훑어보다가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신문(언론)은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하지 않던가.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건, 잘라 말하면 어떤 언론을 보느냐가 결국 그 사람의 세계관(觀)이란 말이다. 물론 거꾸로, 그 사람의 세계관에 따라 비슷한 언론을 대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뜻하지 않은 탄핵 정국 속에서 황 권한대행의 어깨는 무거울 것이다. 외교·안보 상황은 몇 해째 악화되어 왔고, 경제 상황도 IMF 환란 때와 견줄 만큼 모든 지수가 ‘심각한 위기’를 가리키고 있다. 적극적인 행보를 하자니 국회와 민심의 견제가 두렵고, ‘현상 유지’의 소극적 행보를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이래저래 황 권한대행으로서는 복잡한 속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언론을 대하느냐는 그래서 중요하다. 특히 지금 같은 복잡한 상황에서는 ‘더욱’ 말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왼쪽 두 번째)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 현안 관계장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우선 <조선일보>는 ‘경제·안보는 축제 건너편 벼랑 끝에 있다’ 제목의 12일자 사설에서 탄핵 정국 이후 한반도 안보 상황과 경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문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열린 10일 촛불 시위는 축제처럼 진행됐다고 한다. 폭죽까지 터졌다”며 “그러나 지금 나라가 처한 경제·외교·안보 상황은 우리 사회가 자축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위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탄핵으로 인한) 대통령 임기 종료는 결코 축하할 만한 일은 아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있다”(뉴욕타임스), “탄핵안 가결로 한반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탄핵 정국과 관련한 외신 보도를 언급하며 “국제사회는 평화로운 시위의 힘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국 사회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지를 주목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특히 신문은 국내 경제 상황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IMF 외환 위기 이후 20년 만에 가장 심각한 복합 위기 국면’에 빠져들었고, ‘각국의 정치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면서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수도 우려했다. 주로 대기업에 대한 걱정이다. “경제성장은 2%대로 굳어지고 있다. 12년 전과 달리 이번 탄핵 정국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연루돼 있다. 검찰 조사, 청문회에 이어 특검도 기다리고 있다. 대기업들이 내년도 경영 계획을 수립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기업의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다.”

또한 신문은 “우리 경제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답을 훤히 알면서도 국회에 막혀 아무것도 못한 지는 이미 오래”라며 “이번 국정 공백 와중에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어정쩡하게 양립하는 상황도 한 달이 넘었다. 12년 전 탄핵 때 이런 불안정한 경제 운용은 없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 사설 때문일까. 황 권한대행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1차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에서 “경제분야는 유일호 경제부총리 중심의 현재 경제팀이 책임감을 갖고 대내외 리스크 및 경제 현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해달라”고 주문했다. 정치권을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는 이를 ‘유일호 경제부총리 유임’으로 해석했다.

외교·안보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신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한반도 밖에서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한·일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 기존의 정책이 지속될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탄핵안 통과 직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이례적으로 우리 측에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주문한 것은 이런 불안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보 상황이 불투명한데 내년 상반기까지 6개월 이상 정상 외교가 완전히 단절되는 것도 큰 문제다.”

이러한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국정 안정’은 누가 봐도 가장 중요한 과제다. 여기에는 <조선일보>는 물론 여야의 인식이 다르지 않다. 문제는 방법이다.

신문은 “가장 먼저 경제 컨트롤 타워부터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업이 처한 불확실성 해소와 경제의 대외 신인도 추락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당을 향해서는 “허약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과도하게 압박하고 흔드는 행태를 삼가야 한다”며 “외교·안보 정책 기조가 경솔하게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알릴 필요가 있다. 비상 시기에 정부, 여야, 국민 모두의 자중(自重)과 인내가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이 야당의 황교안 직무대행에 대한 과도한 압박을 경계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 유지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중앙일보> 논조는 사뭇 다르다. <중앙일보>는 ‘황교안 대행 권한범위, 국회와 합의해 결정해야’ 제목의 13일자 사설에서 우리에게 맞닥뜨린 국내외 위기 상황을 설명하면서 “황 권한대행은 고건 식의 소극적 행정에 그칠 수 없다. 그렇다고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기도 어렵다. 법적 권한은 그에게 있지만 국정을 이끌 정치적 동력은 국회, 특히 야당에 있기 때문”이라며 황 권한대행이 처한 딜레마를 설명했다.

역사교과서·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등에 대해 야당은 권한대행의 ‘직무범위 밖’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일부 언론과 새누리당, 정부에서는 ‘직무범위 이내’라며 그대로 밀어붙일 태세다. 정부·공공기관 인사 문제도 비슷한 상황이다.

신문은 이에 대해 분명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국회와 협의해 정책·인사권의 범위를 정해야만 국정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문은 황 권한대행과 정치권을 향해 “12일 출범한 여·야·정 협의체에서 속히 머리를 맞대 권한의 범위와 대상을 정해야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황 권한대행에게는 “권력이양을 준비하는 과도정부 지휘자임을 자각하고 국회와의 협치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기 바란다”고 했고, 야당에게도 “(황 권한대행을) 헌법에 의해 국정 권한을 부여받은 공식 책임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드·GSOMIA 등 이미 외국과 체결한 합의들은 황 권한대행에게 전권을 맡겨야 한다고도 했다. 번복하면 국익을 해칠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인사 역시 황 권한대행의 고유 권한임을 인정하면서 협의하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사설의 결론은 여·야·정 협의체를 통해 국정 전반을 ‘협치’로 운영해 나가되, 황 권한대행의 고유 권한에 대해서는 야당이 인정해주는 ‘아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조선일보> 사설은 지금은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위기 상황인 만큼 야당은 황 권한대행에 대해 지나친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야당에게만 일방적인 양보를 촉구하고 있다. 그 결과는 뻔하다. <중앙일보> 사설의 권유를 받아들인다면 쉽진 않지만 앞으로 수개월 걸리는 탄핵 국면을 슬기롭게 헤쳐 갈 여지가 있는 것이고, <조선일보> 사설의 권유를 선택한다면 야당과의 대결이 불가피하고 국정운영의 안정은 멀어지게 된다. 과연 황 권한대행은 어느 쪽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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