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출, 돌파구는 있는가?

국제통상환경과 수출부진 실태

최근의 국제통상환경은 글로벌 무역둔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보호무역주의의 부상과 반무역·반세계화 정서의 확산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특히 2000년대 들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세계경제는 고도 성장기를 구가했으며, 세계교역은 더 빠르게 증가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성장률은 물론 교역증가율도 둔화하는 가운데 최근 들어 신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의 부상이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글로벌 무역둔화와 수출부진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선진국은 물론 그동안 수출 성장세를 견인해오던 중국 등 신흥국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수출은 2014년 12월부터 2016년 7월까지 20개월 연속 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한 바 있다. 2016년 8월 반짝 플러스를 기록한 이후 다시 감소세를 보이던 한국의 수출은 작년 11월과 12월에 연속해서 플러스로 돌아선 상황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매년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면서 한국은 매년 5천4백억 달러 이상의 수출을 기록했으나 지난 2년간 무역규모는 1조 달러에 미치지 못했고 작년에는 수출도 2014년의 최고치에 비해 87% 수준에 그쳤다. 그만큼 수출부진의 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 무역둔화와 수출부진의 원인

이러한 글로벌 무역둔화의 원인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의 성숙과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 신흥국 경기 부진, 국제유가 하락 등이 지목된다. Global Trade Alert가 집계한 보호무역 관련 조치의 누적 건수는 미국 993건, 중국 154건 등이며, 2010년대 들어 매년 100여건 전후에서 2016년에만 200건을 넘어서는 등 세계적으로 급증세를 보인다. 철강산업의 경우와 같이 글로벌 공급과잉에 따른 자국 철강업계의 경영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반덤핑, 상계관세 등 무역구제조치의 활용이 급증하고 있다. 또한 조선해운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향후 불투명한 전망은 글로벌 가치사슬의 성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수출부진의 주된 요인으로 세계경기침체에 따른 국제유가와 원자재가격 하락의 영향으로 인한 수출단가 하락을 꼽을 수 있다. 한국 수출품의 단가하락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회복하던 2011년부터 시작되었으나 2014년부터 더욱 심화되어 실제 수출물량에 비해 수출금액이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수출물가지수는 2011년 2분기에 107.41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왔으며 2016년 3분기에 80.59를 기록하였다. 특히 수출물가가 급격히 떨어진 2013년 후반 이후 수출물량지수는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는 반면 수출금액지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수출물량과 수출금액간의 괴리가 더 커진 것이다. 수출부진이 물량감소보다는 가격하락 요인에 의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산업별로 보면, 수송장비, 일반기계, 섬유 및 가죽제품산업의 수출물가는 2011년 이후 비교적 안정적인 반면 전기 및 전자기기, 화학제품, 제1차금속제품, 석탄 및 석유제품산업의 수출가격 변동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물가 변동이 심한 산업 중 화학제품, 제1차 금속제품, 석탄 및 석유제품산업은 수출물가지수와 수입물가지수의 변동이 유사하여 이들 산업의 수출물가가 세계시장가격에 좌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전기 및 전자기기산업의 경우 2016년 11월 수출물가지수(65.9)가 수입물가지수(79.1)보다 현저히 낮아 수출가격변동에 산업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전체 수출물가지수의 22.7%를 차지하는 반도체 및 전자표시장치산업의 수출물가지수가 57.3으로, 이는 전년동기대비 8% 증가한 수치이나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어 한국의 수출물가하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일시적 현상인가, 구조적 변화인가?

최근의 무역둔화와 수출부진이 경기변동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구조적 변화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는 시기상조다.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서는 정치한 실증분석이 필요하며, 분석에 사용할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수출물가의 하락이 경기침체에 따른 것이므로 경기가 살아나면 수출물가의 상승과 함께 무역둔화와 수출부진 현상이 해소될 것인지, 혹은 일부 산업의 경우처럼 수출단가의 하락이 경기변동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글로벌 가치사슬의 성숙과 공급과잉에 따른 무역구제조치의 증가 등 구조적 변화에 기인한 것인지는 실증분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무역의 둔화와 한국의 수출부진이 경기요인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에는 최근의 국제통상환경의 구조적 변화요인이 다양하고 잠재적 파급력도 무시하기 어렵다.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 나타난 세계무역의 급락과 반등과는 달리, 최근에 나타난 무역 데이터의 특이성과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는 통상정책 방향은 향후 세계 무역의 지형과 한국 수출에 미칠 영향에 대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Simon Evenett and Johannes Firtz의 2016년 Global Trade Alert 보고서 「Global Trade Plateaus」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교역은 둔화되는 것이 아니라 2015년 1월 이후 정체상태(plateau)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2015년 1월 세계무역이 정점을 찍었고 그 이후 증가율이 0%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논의되어 오던 글로벌 무역둔화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작년 중국경제성장률이 6.7%로 2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성장세가 둔화하는 것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국내총생산 규모가 정체하는 것과의 차이라고 할까? 기존에 화두가 되었던 글로벌 무역둔화는 단지 무역이 증가하는 속도가 과거에 비해 더디다는 것으로, 여전히 세계무역규모는 커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세계무역이 정체상태라는 의미는 무역규모 자체가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는 국제통상환경의 변화를 예고하는 두 개의 사건을 경험했다. 하나는 6월에 나온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브렉시트 투표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정가에서 아웃사이더로 여겨지던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다. 이처럼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타난 이면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침체가 지속되면서 세계 각국에서 대외적으로는 물자와 생산요소의 국경간 이동, 즉 이민과 자유무역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성장을 통한 이익의 공정한 분배와 안정적인 일자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세계경제에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한편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에 따른 세계교역의 위축 가능성과 함께 세계화의 종식을 알리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마틴 울프 수석 칼럼니스트는 2017년 1월 5일자 칼럼 '길고 고통스러운 세계 혼돈으로의 여정'에서 “우리는 서방 주도의 세계화라는 경제시대와 탈냉전 이후 미국 주도의 패권적 국제질서라는 지정학적 시대가 막을 내리는 시점에 있다”고 했으며, 1월 17일자 칼럼에서도 “트럼프 당선인이 세계무역의 근간을 붕괴시킬 수 있다...(중략)... 이는 곧 2차 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패권주의인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식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1월 20일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품에 대한 국경세 부과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원칙과 규칙보다는 거래를 중시하는 중상주의적 통상정책을 가동시킬 태세다. 국가간에 통상압력과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전망과 과제

최근 2개월 한국의 수출은 반도체, 석유화학 산업 등의 수출단가 상승에 힘입어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수출금액과 국제유가간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점에서 2014년 8월까지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던 국제유가가 급격히 하락하였고 특히 2015년 8월 이후 내내 50달러에 미치지 못하다가 작년 12월 처음으로 50달러를 넘어선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가가 당분간 50달러 선을 유지하면서 상승세를 보인다면 단기적으로 한국의 수출에 긍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지난 2년간 부진했던 한국의 수출은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다. 과거 한국의 입장에서 글로벌 교역경 개선의 일등공신이었던 WTO를 통한 다자무역체제는 2016년 10월 오슬로에서 개최된 비공식 통상장관회의에 모인 24개 회원국들의 나름 신중하고 치열한 토론을 거치고도 기존 쟁점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거나 향후 WTO의 진로에 대해서도 뾰족한 수를 찾는 데 실패하였다. 그 결과 애초 작년 말까지 합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던 서비스무역협정은 물론 합의에 대한 기대가 컸던 환경상품협정마저도 타결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고 말았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으로 인해 다자체제의 한계를 넘어 국제통상의 돌파구 마련을 기대했던 메가FTA, 특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과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이러한 도전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산업의 고도화와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세계무역이 정체되는 시기에 확산 가능성이 높은 보호무역주의와 중상주의에 기초한 근린궁핍화정책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 등 경제대국과의 양자간 통상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다자무역체제의 복원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등 우리가 참여하는 메가FTA의 동력을 살리기 위한 국제적 공조가 필수적이다. 대내적으로는 통상조직과 인력의 효율성 증대를 모색하고 국제무역규범과 원칙에 입각하여 중장기 이익을 도모하는 통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수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최근 급증하는 전자상거래와 디지털 무역과 같은 4차 산업혁명시대의 통상을 선도하는 데 정책적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정철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

정철은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건 대학교(Ann Arbor)에서 국제무역을 전공하여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조지아공대 경제학부 조교수를 거쳐 현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 무역통상본부장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무역협회 수석이코노미스트로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FTA 비준을 위해 활동하였다. 국제통상연구 편집위원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EAER(구 JEAI)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인 국제무역과 경제통합(APEC)에 관한 학술 논문과 정책연구 보고서를 집필하였다.

정철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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