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일), 98년 전 독립을 선언한 ‘3.1절’을 맞았다. 그때 선진들은 남녀와 노소, 지역과 계층, 사상과 이념, 종교와 신앙을 초월, 일치단결하여 대한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에 나섰다. 독립선언으로 세우려는 나라는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정 국가, 대한민국이었다. 1, 2차 대전 후 독립한 많은 식민지 국가들은 독립을 선언한 그 해를 그 나라의 건국 원년으로 삼았다. 우리도 독립선언 후 여러 곳에서 국가(임시정부) 건립운동을 벌였다. 그 해 4월 11일 상해 프랑스 조계지에서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그 제1조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만들었다. 제1조는 임시정부 하에서 계속되었고, 1948년 제헌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계승,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48년 제헌헌법을 만들고 대한민국 정부를 출범시킬 때, 이승만은 ‘기미 3.1혁명’을 중시하여 이를 대한민국 건국과 연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법기초위원들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3.1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는 정도로 정리했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이승만은 국회 본회의의 헌법 축조심의 때, 의장석에서 내려와 한 의원으로 발언권을 얻어 “전문(前文)이 중요하다”면서 대한민국이 3.1혁명을 통해 건국되었음을 명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제헌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고 정리되었다.

5.16군사 쿠데타 후에 헌법을 개정하면서 3.1운동과 대한민국 건국과의 관계를 애매하게 처리했다. 신군부에 이르기까지 군사정권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만 했다. 그 뒤 1987년 10월 29일에 개정된 제8차 현행헌법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복원했다. 선진들의 이런 정리에도 불구하고 2008년 이명박 정권 때 건국절 논란을 야기하기 전까지는 ‘대한민국 건국’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고 때로는 혼용해 썼다.

‘3.1절’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 탄생 외에, ‘태극기’와 ‘거족적 대동단결’이라고 본다. 그런데 ‘3.1독립선언’ 98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 모두가 놀라고 있듯이, 이런 상징성이 깨지고 있다.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심화된 이념적 대결이 ‘3.1절’의 ‘거족적 대동단결성’을 헐어버렸고 그 결과 ‘3.1절’의 상징인 ‘태극기’를 사용하는 것조차 어색하게 만들었다. 진영 논리에 관계없이 한국민 누구나가 떳떳이 태극기를 손에 잡고 98년 전 오늘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고, 혼연일체로 선진들의 애족애국 정신에 동참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정치적 차이는 거족적 일치단결의 상징인 태극기마저 막았다.

이만열 전 역사편찬위원장이 1일 서울시의회 본관 기자실에서 열린 (사)평화통일연대 주최 3.1절 성명발표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평화통일연대

탄핵촉구 진영과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측은 오늘, ‘3.1절’의 상징인 <‘태극기’와 ‘거족적 일치단결’>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을까. 두 진영은 평소와는 달리 3월 1일이 토요일이 아님에도 모이기로 했다. 3월 1일에는 토요집회와는 달리 민족적 대의를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았을까. 토요집회가 진영논리에 입각한 것이었다면, 3월 1일만이라도 이날의 의미를, 선진들의 뜻과 같이, 민족의 ‘완전자주독립통일’로 승화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두 진영이 합의하여 오늘 하루만이라도 민족의 성절인 이날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자고 다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탄핵주장 측에서는 촛불 대신 ‘태극기’를, 탄기국 측에서는 태극기 이외의 다른 나라 국기를 일체 활용하지 않았어야 하는 방안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민족의 성절(聖節)마저 진영논리에 복속되어 버렸다. 우리 모두가 민족적 대의를 내버린 세대로 평가될까 두렵다.

이만열 / 전 역사편찬위원장,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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