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양심 : 웁살라 단상

웁살라(uppsala)는 스톡홀름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고도(old city)다. 스톡홀름이 수도가 되기 전 정치, 종교적 중심지였던 도시, 북유럽에서 제일 오래되고 제일 큰 대학이 있는가 하면 750년 된 북유럽 가장 큰 규모의 돔(대성당)도 있다.

스톡홀름에서 가는 방법은 기차가 제일이다. 이곳에 오자마자 3일 72시간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티켓을 구입했다. 지하철역에서 이것으로 그곳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교통카드 존(구역)을 두 정거장 더 넘어가기 때문에 돈을 더 내야 한다고 한다. 얼마냐고 했더니 왕복 168크로네(24,000원 정도)란다. 흠칫 놀랐다. 내가 산 3일짜리 티켓이 240크로넨인데 두 정거장 더 가기 위해 그렇게 많이 내라니. 그럼 교통카드 구역이 끝나는 역까지 가서(알란다국제공항) 거기서 티켓을 사도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아니 꼴랑 두 정거장 더 가는데 그리 많이 받는단 말이야?” 나에겐 불합리의 극치다. 그러면서 만약 이 교통카드로 공항을 가면 어떠냐고 했더니 공항에 들어가려 해도 “추가요금을 내야한다”고 덧붙였다. 120크로네. “에이씨, 그럼 공항역까지 가서 공항은 안가고 거기서 웁살라까지 걸어가겠다”고 했더니 여자 직원이 웃으면서 “걸어갈 거리가 아닌데요”라고 한다. 표 파는 직원이 내가 못미더워하는 것을 눈치 채고는, “어차피 중앙역에서 갈아타야 하니 거기 가서 표를 구해가라”고 한다. 남 자존심 세워주면서 다른 데 가서 자기 말 확인해 보라는 것인가?

일단 3일 짜리 카드로 메트로를 타러 들어왔다. 중앙역에 가서 다시 물었다. 대답은 마찬가지. 편도 84크로네를 더 내라고 한다. 공항을 가면 어떠냐고 했더니 “기차 타고 공항가면 120크로네를 더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까와 똑같은 대답이다. “아니 공항이 더 가까운데 왜 더 멀리 가는 것보다 더 받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그렇다고 한다. 나하고 길게 이야기하는 것이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말하기 싫어선지, 아님 내 말을 잘 못알아 들었을까. 할 수 없어 일단 표를 끊었다. “서벌, 되게 비싸네”라고 투덜거리면서.

가는 도중 방송으로 공항가는 역 안내가 나오는데 이 기차를 탄 사람이 공항을 가면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고 안내한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그 추가요금에는 공항사용 수수료가 들어 있구나. 웁살라도 비록 공항보다는 멀지만 나름 수수료 같은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교통으로 싸게 타는 구간을 정해놓고, 이를 벗어나는 구간은 그런 혜택에서 살짝 비켜나게 한 것이었다. 교통카드가 있는 덕분에 그나마 좀 싸게 살 수는 있었다. 공항에서 웁살라는 비록 두 정거장이지만 엄청 긴 구간이었다.

스톡홀름으로 오는 길에 다시 84크로네를 주고 표를 샀다. 그냥 영수증만 주길래 “새 카드 안주면 역에 어떻게 터치(태그)하고 들어가냐?”고 물었더니 “그냥 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속으로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하면서 보았더니 실제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데는 아무른 문제가 없었다. 개방형이었다. 서울역에서 KTX 타러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 순간 크게 자율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내 머리를 쳤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표를 끊든 말든, 누가 보든 말든, 스스로 알아서 표를 사고, 알아서 타고 내리는 것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곳. 정직을 강제받지 않는 삶.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진다. 조사하지 않으면, 강제하지 않으면 양심을 쉽게 저버리려는 삶과 많이 비교되니까 말이다. 갈 때나 올 때나 아무도 표 있는지 묻는 사람이 없다. 지나고 나면 ‘괜히 표 끊었나?’ 생각도 할 만하다.

자율은 양심이다. 양심은 타율을 거부한다. 비양심적인 것은 자신만이 제일 잘 안다. 여긴 그 양심을 다들 믿고 있는 것 같다. 교육의 힘인가? 자율이 기차게 작동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어디선가 본 것 같다. 한 해 지하철 공짜승차가 엄청 많다고. 가로막은 바 밑으로 기어 나오듯 하는 모습도 보이고 그런 사람들 보는 직원이 눈을 두리번거리는 것도 쉽지 않게 보이지 않는가. 기계에 의해 매번 양심을 체크 당하는 삶이라고 할까.

웁살라에서 기차타기 전 얼핏 보았던 슈퍼마켓의 자율계산대가 이 사람들의 삶의 면모를 살 속 깊게 느끼게 한다. 알아서 계산하고 산 물건 알아서 가지고 가는 거래. 양심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호주 이케아엔가 버닝슨가 하는 데서도 보았던 것 같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말 그대로 '자율'이 아니겠는가.’ 한동안 생각이 내 머리에 눌러앉아 있다. 여행은 이래서 좋다. 인간의 생각을 성숙시키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