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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지원 민간단체의 어제와 오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가장 기대하며 반겼을 이들 중 하나가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지난 10년 가까이 ‘완전한 단절’과 절망을 경험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가 2010년 5·24조치를 단행하자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고, 민간단체들의 대북 지원 사업도 하루아침에 전면 중단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자 수많은 사업자가 설비, 물류, 자재 등을 북에 고스란히 두고 내려온 것처럼,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 역시 차곡차곡 쌓아왔던 북한주민들의 민심, 북한과의 신뢰를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개점휴업’ 내지는 ‘폐업’이 그들의 지난 10여년을 설명해주는 단어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이 와중에 드라마처럼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문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천명했다. 남북관계 단절로 인한 오랜 침체기가 종식될 거란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기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그간 막혀 있던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북한주민 사전접촉 신청을 승인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대북제재라는 틀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재제 방침을 문제 삼아 민간의 지원과 방북을 승인하지 않고 있으며, 우리와 대화하기보다는 미국을 직접 맞상대하며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가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들도 점점 잦아지고 있다. ‘대화와 제재’를 병행한다는 신 베를린 선언이 이전 정부와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다. 북한은 ‘제재 상황에서는 대화는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남북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겨우 100일째지만, 또 이렇게 5년이 흘러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고, 새로운 정부 아래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이 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어제(태동기) : 1995년 북한의 국제 구호 지원 요청에서 2000년 김대중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이 활동을 시작한 지도 20여년이 지났다. 대북 지원 민간단체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면 태동기, 발전기, 침체기로 대별하여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을 어제, 오늘, 내일로 구분하면 좋겠지만 침체기가 현재만 아니라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과거(태동기), 어제(발전기), 오늘(침체기)로 구분하고자 한다.

과거는 1995년에서 2000년 김대중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전까지다. 전문가들은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 활동이 본격화한 시점을 1995년으로 본다. 당시 북한은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와 김일성 사망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큰물’(홍수)이라고 하는 수해와 가뭄 피해를 겪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때문에 ‘고난의 행군’이라고 일컬어지는 유례없는 식량난을 돌파해야 했다. 아사자가 30만에서 100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돌았다. 북한은 국제사회에 구호를 요청했고, 남한 시민사회 역시 인도적·동포애 차원에서 대북 지원 민간단체를 설립하고 북한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여기엔 그동안 북한 체제를 비난해왔던 보수 단체, 보수 교회도 동참했다.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초기 활동은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이나 약품 등을 전달하는 긴급구호에 초점이 맞춰졌다. 당시 상황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일단 살리고 보자’는 인식이 강했다. 수해로 인한 전염병, 결핵 등이 확산되면서 사망하는 이들도 늘어갔다. 이때 설립된 대표적인 대북 지원 민간단체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어린이어깨동무, 유진벨재단 등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1996년 6월 21일 북한의 식량난을 긴급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6대 종단과 주요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국민운동 형태로 꾸린 것이다. 설립 첫 해에는 북한동포돕기 성금 2억 원으로 밀가루 5만 포대를 북에 전달하는 등 긴급구호에 전념했다. 이듬해에는 옥수수 1만 5천 톤과 수수 등 곡물 1만 3천 톤을 지원했고, ‘사랑의 옷 보내기 운동’을 펼쳐 의류 40여 만 점과 운동화 5,000여 점 등 생필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현재는 북한이 스스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농업과 보건의료 분야의 개발복구 지원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남북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 교육 기관이다. 남북한 어린이들에게 평화교육을 실시하여 남북의 갈등과 분쟁의 역사가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설립목적이다. 북한 내 교육 분야뿐 아니라 영양·의료·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북한 사회가 극심한 식량난에 처한 1996년 설립됐다.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하는 것으로 첫 활동을 시작했고, 1997년에는 ‘북녘 어린이에게 쌀을!’ 캠페인을 펼쳐 결식아동들을 도왔다.

유진벨 선교사의 4대 손인 인세반(Stephen W. Linton) 박사가 대북 지원 사업을 목적으로 1995년 설립한 유진벨재단 역시 초기에는 대북 식량 지원을 중심 사업으로 삼았다. 1996년 북한의 자연재해로 식량 보내기 운동을 전개했고, 현재까지도 영양식 보내기 활동에 힘쓰고 있다. 1997년부터는 북한 내 영양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핵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결핵퇴치를 위해 인도적 의료 활동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1998년 북한 지역의 13개 결핵병원과 63개 결핵요양소에 결핵약, 이동 X-ray 검진차, 현미경, 콩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2012년 가을 방북했던 유진벨재단 인세반 회장이 평안도 주민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유진벨재단 제공)

초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북 지원 민간단체의 초기 활동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긴급구호에 국한한 지원 활동에 머물렀다. 이는 당시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에 처했음을 비춰볼 때 민간단체 쪽 한계라기보다는 상황적 한계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북한은 인도적 긴급구호품 외에 다른 형태의 지원을 거부했다. 남한 시민사회와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유진벨재단은 북한의 ‘큰물피해대책위원회’로부터 직접 결핵퇴치 협조 요청을 받았는데 이는 유진벨재단이 미국에 기반을 둔 국제 구호단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다른 한계는 경험 미숙이었다. 당시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은 인도적 지원 사업을 펼친 경험이 많지 않았다. 아니 전무했다. 그러다보니 조직과 체계, 모금에 이은 지원 활동 구석구석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여기에 북한에 대한 정보 부족도 한몫 했다. 대북 지원 활동을 통해 북한에 드나들기 전까지 이들에게도 북한은 미지의 세계였던 것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북 지원 민간단체의 태동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 이들의 활동이 인도적·동포애 정신에서 나온 자발적인 행위였다는 점이다. 대결과 반목으로 점철된 분단사에서 민족화해의 물꼬를 터는 데 이들의 역할은 주효했다.

어린이어깨동무가 1998년 1차 어린이 방북 때 북한 어린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어린이어깨동무 제공)
어린이어깨동무가 1998년 1차 어린이 방북 때 북한 어린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어린이어깨동무 제공)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의 어제 : 2000년 김대중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에서부터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 이전까지

긴급 구호 중심으로 시작된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 활동은 2000년 김대중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남북 민간교류가 확대되고 지속되면서, 대북 지원 민간단체는 그 활동 방식에 있어 체계화와 전문화를 요구받게 된다. 대북 지원 초기에는 인도적 지원 사업 경험과 북한 정보 부족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대북 지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실무전문가가 생겨나고, 지원 단체의 조직도 정비되는 등 대북지원 사업의 규모와 내용은 짜임새를 갖춰갔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대북지원 방식이 다양해졌다. 옥수수, 밀가루, 의류 등 생필품이나 긴급 구호 활동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북한이 스스로 인도적 상황을 구조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비료, 농약 등 농자재를 지원했다. 기술진을 북에 보내 젖염소 목장 착유 및 가공설비를 지원한 게 대표적이다. 2001년부터는 경운기 및 콤바인, 트럭, 트랙터 타이어 등 농기계와 부속품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를 유지 보수하기 위한 농기계 수리 공장 물자 지원 및 기술진을 파견하기도 했다.

어린이어깨동무의 대북 지원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 역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다. 이 기간 어린이어깨동무는 신의주, 남포, 강남군, 개성, 평양, 원산, 양강도 등 북한 전 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한 의료품, 영양식, 교육자료 등을 지원했다. 산모와 아기 전문 병원인 장교리 인민병원을 강남군에 세웠고(2006년),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폐렴과 설사 전문 병원인 평양 어깨동무어린이병원을 건립했다(2004년). 2008년에는 평양의학대학병원에 220병상 규모의 어깨동무 소아병동을 준공하는 등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의료시설 확충에 힘을 쏟았다. 이밖에 1일 1톤의 콩우유 생산이 가능한 장교리 콩우유 공장, 룡교리 콩우유 공장(2006년)과 1일 2톤 콩우유 생산이 가능한 평양 어깨동무 콩우유 공장도 설립했다(2001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어린이어깨동무가 다양한 분야로 대북 지원 활동을 확대시켜 나간 시기에 유진벨재단은 북한 결핵 퇴치를 위한 독보적인 의료지원 단체로 발전해 나갔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영양결핍으로 인한 결핵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자 1997년을 기점으로 북한 내 결핵퇴치로 사업을 전환했고, 그 후로 10년 동안 결핵과 진단장비 지원 등 결핵퇴치를 위한 의료지원 활동에 전념했다. 2000년에는 한국에 ‘재단법인 유진벨’ 법인을 등록하여 국내 후원자가 북한의료기관들과 자매결연을 맺는 ‘파트너 패키지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결핵치료를 위한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지원환경을 마련했다. 유진벨재단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 의료기관 70곳에서 치료한 결핵 환자 수는 25만 여명에 이른다.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이 이처럼 활발한 대북 지원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데는 정부의 대북정책이 결정적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민간의 대북 지원 활성화를 위한 창구를 기존 정부 일원화에서 지자체, 민간단체 등으로 다원화했다. 또한 여러 대치 국면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남북교류협력 기조를 유지해 나갔다.

북한과 민간단체들의 개별적인 접촉이 이뤄지면서 상호간 신뢰와 협조 관계가 형성되었고, 이러한 신뢰 관계 아래 민간단체들의 대북 지원 사업도 다양화될 수 있었다. 기존의 긴급구호나 일회성 지원, 단순물품 지원에서 벗어나 북한에 기술을 전수하거나, 자립능력을 향상시키는 프로젝트 사업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지원 분야도 일반구호지원 분야·농축산 지원 분야·보건의료지원 분야·우선복지 지원 분야·사회 인프라 지원 분야 등으로 확장 및 전문화 되었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액은 7,033억 원에 이르렀으며, 1999년 9개에 불과한 대북지원사업자는 2007년 말 73개로 늘었다.

2011년 8월 말라리아 방역지원을 위해 방북했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팀과 북한 관계자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제공)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오늘: 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에서부터 현재까지

1995년부터 시작된 민간단체들의 대북 지원은 15년간 점진적으로 발전, 확대되었다. 긴급 구호의 성격에서 출발하였지만 점차 지원 분야가 다양해졌고 전문성도 향상되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밝혔든 이러한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발전에는 민간의 노력이 가장 컸지만 정부의 정책기조도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부 차원의 배려와 적극적인 남북교류협력 의지가 없었다면 민간의 대북 지원 활동은 결코 발전할 수 없었다.

보수 정부의 등장과 함께 위축된 민간의 대북지원 활동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 활동은 점차 위축되기 시작하여 2010년 5·24조치 이후에는 거의 모든 활동이 중단되고 말았다. 이러한 극단적 단절 상황은 박근혜 정부까지 약 9년간 이어진다. 일례로 2007년 정부·민간을 포함한 대북 인도적 지원액은 그 해에만 4,397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2015년에는 254억 원으로 급감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이던 개성공단을 전면 폐쇄했다. 그때부터 정부는 민간단체의 북한 주민 사전 접촉을 전혀 승인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은 북한 관계자들과 직접 접촉은 물론 서면, 유선 접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민간단체의 대북 접촉, 지원은 아예 문을 닫고 만다.

어린이어깨동무의 경우 어깨동무어린이병원이나 평양의학대학병원 어깨동무 소아병동 등 그간 북에 지원한 의료시설을 모니터링하고 추가 지원하는 활동이 아예 막혀 그곳 소식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유진벨재단은 국제 비영리단체라 대북 지원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유진벨재단은 2007년부터 일반결핵 퇴치에서 나아가 다제내성결핵 치료를 주력 사업으로 삼았다. 그해부터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결핵 약에 내성이 생겨 일반결핵치료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다제내성결핵 환자는 18개월간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밖에 완치 방법이 없으며 2주 이상 치료가 중단되면 약 복용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로 악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정부는 유진벨재단의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을 위한 약품 반출을 수개월 간 승인하지 않고 있다가, 마지못해 반출을 승인한 바 있다. 당시 통일부는 “국제 NGO가 대북 지원을 하는데 남쪽에서 물자 반출하는 것을 승인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르게 말하면 국내 민간단체는 여전히 대북 지원 물품을 반출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당시 유진벨재단은 환자 1500여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을 중국을 거쳐 북한에 보냈는데, 만약 유진벨재단이 국내 대북 지원 단체였다면 결핵퇴치를 위한 의약품 지원 또한 막히고 말았을 것이다.

이 같은 대북 지원 단절에는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확산된 ‘북한 퍼주기’ 논란이 주효했다. 북한의 식량난을 돕기 위해 인도적·동포애 차원에서 추진된 대북 지원이 핵무기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상황이 더해지면서 민간의 대북 지원은 침체기를 맞게 된 것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강영식 사무총장. 그는 대북 지원 사업과 관련 “남한이 북을 돕는 게 아니라 남과 북이 협력해서 한반도가 보다 정의롭고 인권이 보장되고 평화로운 곳이 되도록, 공동의 번영을 보장하고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개념으로 인식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코리아뉴스)

문재인 정부 출범과 대북 지원 민간단체의 현황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은 과거(태동기)와 어제(발전기)를 거쳐 침체기이라는 오늘을 거치고 있다. 그리고 그 9년간의 긴 터널 끝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기대감에 곧바로 부응하는 듯했다.

통일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 교류를 위한 민간단체의 북한주민 사전 접촉 신청을 잇달아 받아줬다. 일례로 통일부는 지난 5월 26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북한주민 접촉 신청을 승인했다. 이 같은 정부의 승인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 이후 처음이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계속 반려되던 어린이어깨동무, 어린이의약품 지원본부 등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사전접촉 신청 역시 잇따라 승인됐다.

하지만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은 여전히 북한 주민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대북 지원 물품은 여전히 창고에 쌓여 있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제재 방침을 이유로 우리 민간단체들의 방북을 허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경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대북 지원 사업으로 말라리아 공동 방역을 신청했지만 북한 당국의 거부로 무산됐다. 어린이어깨동무는 지난 10년간 방치되다시피 한 북한 내 어린이 병원과 관련 물자 지원 및 모니터링을 실시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두었지만 이 또한 북한의 거부로 무기한 보류됐다.

어린이어깨동무 기금홍보팀 공웅재 간사는 “지난 10년간 우리가 북한에 설립한 어린이병원을 지원할 수도 모니터링 할 수도 없었다”며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방북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지금은 기대가 꺾인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북한에서 핵·미사일 문제가 터져 나오는 마당에 (대북제재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는) 문재인 정부를 탓할 수는 없지만, 남북한 정부 양쪽에게 민간차원의 대북 지원만큼은 개방적인 자세로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새 정부가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은 여전히 ‘개점 휴업’ 상태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유진벨재단 등 외국 구호 단체들의 지원만을 허가한 상태다. 통일부는 지난 6월 27일 “유진벨재단이 신청한 의약품과 병동 건축자재 등 19억 원어치의 물자의 대북 반출 신청을 어제 승인했다”고 밝혔다. 반출 물자 중 의약품이 15억 원어치로 가장 많고, 3억 5000만 원어치 병동 건축자재도 반출 품목에 포함됐다. 유진벨재단은 8월, 선박 편으로 중국을 거쳐 북한 남포로 이들 물자를 실어 날랐으며, 스티븐 린튼 회장 등 미국 시민권자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은 올해 11월 방북해 북한 전역에 건립된 결핵 병원 12곳을 돌아볼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에 바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침체된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의 상황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민간단체들의 대북 지원 사업이 남북 당국의 정치적 입장 및 국제상황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대북 지원 단체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어떤 정치적 상황에서도 민간차원의 대북 지원은 이뤄져야 한다. 특히 긴급구호와 같은 인도주의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이를 통제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최근 유진벨재단이 정부에게 요청한 ‘대북 인도주의단체 면허제’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방북이나 물자반출 때마다 정부의 승인을 받는 게 아닌 일정 기간 자유롭게 인도주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해주는 제도다. 정부가 인도주의 목적에 반하거나 반출금지 품목 상품에 관해서만 수동적으로 관리해도 큰 문제는 막을 수 있다. 이 같은 면허제를 통해 정치상황과는 별개로 대북 지원 민간단체의 활동은 보장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의 대북 인도주의 활동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앞서 밝혔든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 사업은 그동안 중앙정부의 대북정책기조에 따라 좌지우지 돼왔다. 대북포용정책 시기인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대북 지원 민간단체의 활동이 활발했던 반면, 대북제재 시기인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민간단체들은 철저한 고립을 맛봐야 했다. 중앙정부가 외교·안보 특성상 좌고우면 할 수밖에 없다면,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 활동에 자율성과 독립성을 부여하여, 대북 지원 통로를 상시적으로 운영하게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방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며 적절한 시기에 평양에 가겠다고 한 발언이 이와 일맥상통한다. 박 시장은 지난 8월 10일 새 정부 대북통일정책토론회에서 ‘동서베를린 도시교류가 통일에 큰 기여를 했다’며 “서울시는 서울-평양 포괄적 협력방안을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대북 지원 민간단체가 중앙정부가 아닌 시, 도, 군 단위의 지자체와 협력하여 북한 주민을 지원하는 것은 정치상황과 무관하게 상시적으로 대북지원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궁극적으로는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에게 완전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엔 역시 대북제재 국면에서도 국제기구와 구호 단체들의 방북이나 인도주의적 지원 활동을 막지 않는다. 사실 이들의 활동을 막을 만한 국제법이나 국내법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만이 국내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 활동을 정부 입장이란 이유로 막아온 것이다.

민간의 대북 지원 활동은 더 이상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남북 상호 협력을 통한 공동 개발로 발전하고 있다. 이들이 북한 주민과 접촉하고 북한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할수록 한반도 평화는 강화된다. 한편으로 한반도에 대한 우리의 권리(이니셔티브)도 강화된다.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한반도 주도권’은 사실 우리 정부의 외교정책으로 획득되기보다는 민간차원의 활발한 교류와 이를 통한 같은 민족이자 동포라는 인식의 확산으로 가능해진다. 또 북한이 미국 정부와는 갈등하더라도 미국 국적의 비영리 단체인 유진벨재단과는 교류를 지속하는 것처럼 정부정책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북과 교류할 수 있는 민간단체의 독립성은 꼭 필요하다.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은 5년의 태동기와 10년의 발전기, 그리고 9년간의 침체기를 겪었다. 국제정세와 국내 정치적 상황 때문에 마땅히 항구적이어야 할 인도적·동포애적 지원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면 이 또한 문재인 정부가 청산해야 할 우리 사회의 구조적 적폐가 아닐까.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이 문재인 정부 아래서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 마음껏 활보할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이민혁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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