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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한반도 평화권’을 이야기 할 때[특별칼럼] 윤은주 유코리아뉴스 대표 – 인권과 한반도평화권을 위한 제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평화선언문을 낭독하는 윤은주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가운대). (자료사진)

인권과 국제 정치

인권은 언뜻 생각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다. 홍익인간이나 인내천 사상 등 인간 존엄성을 중시하는 전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승리하면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사회 개혁의 보편적 가치로 인식하게 되었다.

국제 사회에서 인권 제도는 좀 더 복잡하고 긴 역사 과정을 거쳐 실현되어 왔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내세웠던 1789년 프랑스혁명 정신은 자유시장 민주주의의 근간인데 기실은 절대 왕정에 맞섰던 신흥 사회 세력들, 즉 부르조아지(Bourgeoisie)의 이념적 근거였다. 마르크스(Marx)의 자본주의 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발발한 1919년 소비에트(Soviet) 혁명은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계급투쟁을 주창했다. 인권은 모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누구에 의한’ ‘누구의 인권인가’에 따른 정치적 역학 작용 속에 구현된다.

학자들은 자유주의 인권을 1세대 인권으로, 사회주의 인권을 2세대 인권으로, 이후 형성된 인권을 3세대 인권으로 칭하기도 한다. 인권 실현의 역사성이 그대로 반영된 명칭이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방지를 목적으로 출현한 유엔 국제기구에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에 속한 국가들이 참여하고 식민지에서 해방된 제3세계 국가들도 가입하면서 인권에 대한 규정은 더욱 정치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은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한편, 사회주의 국가들은 인권의 집단주의적 성격을 중시하는데 논쟁 끝에 각각의 인권규약(약칭 : 자유권 규약과 사회권 규약)을 만드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이들에 비해 뒤늦게 가입한 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은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을 중시하며 발전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국제 사회 인권 담론이 순수하게 보편적 가치만 추구한다고 볼 수 없는 이유는 개별 국가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자국 이해를 바탕으로 이슈화되기 때문이다.

미국 지미 카터 정부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타국 정치에 관여하는 외교 정책을 표방한 이후 인권 논의는 현실주의 국제 정치와 직접적으로 맞물리게 되었다. 누가 어떤 맥락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이야기하는지 정치적 배경을 간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실례로 미국은 2003년 이라크와 전쟁을 시작하면서 사담 후세인을 ‘악의 축’으로 비난하며 있지도 않은 생화학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2001년 9.11사건 발생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천명한 이후였지만 미국의 ‘마이웨이’ 식 군사행동은 부정직한 모습이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도 2004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면서 불량 국가 이미지를 강조했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총회에서도 2003년부터 해마다 북한인권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지던 때여서 일각에서는 미국이 순수하게 북한주민의 인권 보호에만 관심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권을 내세운 정치적 속셈이 있는지 의구심을 사기도 했다.

미국의 이러한 행보에 우려를 표하는 까닭은 미소의 탈냉전 선언 이후 30년 가까이 국제 사회에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미국의 단일 패권이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유엔 기구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독보적이다. 무엇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각지 150개 이상의 국가, 1000여 곳의 군사기지에 15만 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시켜 놓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8만 명 이상(일본 5만 2000명, 한국 2만 5000명), 유럽에 6만 명 이상(독일 3만 7000명, 이탈리아 1만 2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법을 고쳐 2011년부터 매해 5% 국방예산이 줄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은 전 세계 군비 총액 중 3분의 1 이상을 감당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를 겪으며 휘청거리는 미국이 군사력 중심의 패권에 집착한다면 미국의 국익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는지 살펴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경의와 기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이후 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권을 찬탈하는 과정에서 광주민주항쟁을 짓밟았는데 평시 작전권을 갖고 있던 미국이 군대 이동을 눈감아 주었기 때문이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주동자들이 반공의 보루로 여겨졌던 천주교와 개신교 출신 청년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미국에 대한 배신감이 역작용 했다고 할까.

전쟁 이후 재건 과정에서 대규모 경제 개발 원조를 해주었던 미국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민주주의와 번영을 구가하는 선망 국가였다.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도 미국 CIA가 개입해서 해결한 것으로 알려져 미국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우방국이란 믿음에 이견이 없었다. 광주민주항쟁은 이런 미국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 계기였다. 미국이 과연 국제 사회에서 착한 경찰국가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주창하는 미국이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제의 적과도 동맹이 되며(일본) 동맹국도 얼마든지 적으로 바꾸고(소련) 군사 행동을 서슴지 않는 현실을 냉철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반도 군사 긴장 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불사를 천명하면서 동맹국인 우리나라의 인명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한 속마음을 내비쳤다. 외교상 전례 없는 행태이긴 하나 그것이 미국 정치권의 민낯인지도 모르겠다. 북한이 미국의 인권 공세에 대해 수 십 년간 ‘자주권’으로 응수하며 ‘미 제국주의의 공화국 말살 정책’이라고 받아치는 데에는 또 다른 속사정이 있음도 이해할 수 있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장준하 선생은 “모든 통일은 선이다!”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는 남과 북이 체제 경쟁을 하며 내세웠던 일방적인 흡수통일론이 전쟁을 불렀던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또 한반도 분단 구조가 어떻게 반 인권적인지부터 생각해야 할 때이다. (자료사진)

분단의 반 인권적 상황

한반도 분단은 38선 남북으로 실시된 미군정과 소군정, 남북에 별도로 설립된 정부, 한국전쟁 등 여러 계기들을 거쳐 구조화됐다. 국토와 정부, 그리고 민족 등 차례로 진행된 3단계 분단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후 남과 북은 체제 경쟁과 더불어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어 왔다. 특히 1972년 남북 대화 이후 헌법을 고치면서 장기 독재의 길을 마련했던 김일성과 박정희는 전쟁의 비극적인 상흔을 소재삼아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키우도록 부추기며 권력을 다지는 데 열중했다. 남한에서는 특히 인권을 위한 정당한 민주화 요청도 쉽사리 ‘불온한 세력들에 의한 공작’이라며 색깔 논쟁으로 몰아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분단은 이해관계에 따른 먹이사슬을 구조화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방위산업체와 군부대 상층부의 유착이다. 휴전 이후 한 해 평균 예산의 10% 이상을 국방비로 쓰면서도 정작 대북 군사억지력은 한미동맹에 기대다 보니 고질적인 부패 구조가 생긴 것이다. 한반도는 냉전시대 미·소의 최전방 대결 지역이었는데 1989년 탈냉전 선언 이후로도 분단 구조를 개혁하지 못한 채 다시금 북한 핵을 빌미로 중국과 미국의 군국주의식 패권 다툼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장준하 선생은 “모든 통일은 선이다!”라고 주장했었다. 통일이 가장 절실한 민족사적 사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는 남과 북이 체제 경쟁을 하며 내세웠던 일방적인 흡수통일론이 전쟁을 불렀던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이젠 통일보다 평화와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이다. 한반도 분단 구조가 어떻게 반 인권적인지부터 생각해야 할 때이다.

장준하 선생은 통일을 주장하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의문사를 당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문익환 목사님 또한 분단 상황 속에서 빚어지는 인권과 민주주의 탄압에 분연히 맞서 싸웠다. 분단을 악용한 독재 정권이 인권을 추구하는 민주화 인사들을 공안 통치 논리로 억압하자 자연 ‘인권과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통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작용 변수와 같았다. 즉, 한반도에서의 인권 추구는 독재 정치라는 장애물은 물론 북한과의 적대적 대결의 과제도 풀어야 가능한 일이 된 것이다.

1980년 광주민주항쟁에 이어 1987년 6월항쟁, 2008년 촛불집회 그리고 2017년 3월 광화문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과정 속에는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추구하는 흐름이 맞물려 녹아 있었다. 이러한 사회 개혁 움직임이 북의 지령을 받는 종북주의자들 소행이라는 주장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과 군 기무사에 의한 조직적인 선거 개입은 여전히 집권 세력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대공 조직을 동원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적화 통일 된다.” 선거전에서 만들어낸 이 정치적 구호가 단적인 예이다. 2017년 대선에서도 동일한 전략이 가동됐지만 다행히 촛불혁명을 경험한 국민들은 어느 때보다 의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립을 지켜야 했던 현직 강남 구청장은 SNS상으로 같은 내용을 퍼날라 허위사실 유포와 선거법 위반 혐의로 현재 불구속기소 상태이다. 개신교 내부에서는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가 동일한 취지로 강연을 하며 활발하게 움직였는데 국정원 지원을 받는 SNS 대응팀 ‘알파팀’을 운용한 것이 밝혀져 대표적 국내정치 개입 사례로 남게 됐다.

분단을 악용하는 정치 개입 말고도 분단 상황이 한반도 주민들의 인권 향상에 미치는 영향은 광범위하다. 국방 예산을 과도하게 지출하는 재정적 불균형은 교육이나 복지 등 다른 분야의 희생을 강요한다. 세계의 화약고가 된 한반도에서 남북 주민들은 4대 강국의 무력 결집이 국지전으로 전화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해방 된 한반도야 말로 참된 해방이요 인권을 보장 받는 조건일 것이다. 1년에 4차례 실시되는 한미합동군사훈련 때마다 항상 한반도 군사 긴장이 높아졌다. 최근에도 다시 8월 위기설이 도는가 하면 미국과 북한은 군사 강경 대응 발언을 쏟아냈다. 이 와중에도 남한 사회는 조용하다며 이상하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64년간 계속된 전쟁 위협 앞에 만성화된 주민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 아닌가.

북한에서는 상황이 또 다르다. 전시동원체제가 여전히 작동되고 있는 북에서 주민들은 30일 전투 혹은 100일 전투 등 국가 동원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가 내세우는 갖가지 사업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한미합동군사훈련 시기에는 그에 맞춰 군사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자라는 재원을 군비로 돌려야 하니 경제난 측면에서 엎친 데 덮친 꼴이 반복된다. 한미합동군사훈련 감축 요구는 현실적인 재정 압박이 더 큰 요인이다. 북한의 북미 수교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요구는 1990년대 이후 지속되어 왔다. 탈냉전 시기 국제 사회가 북한의 요청대로 정상적인 국가 발전을 도왔다면 북핵 문제나 정치범수용소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옛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요즘 상황이다.

1995년 북한이 국제 사회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나선 이후 미국을 비롯한 유럽과 유엔 기구, 그리고 우리나라 민간단체와 정부는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 공식적으로는 30만, NGO 통산 100만 이상의 아사자를 발생시킨 북한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자료사진)

북한 인권

우리 정부와 국제 사회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생존권과 자유권 신장을 위해 노력해왔다. 1995년 북한이 국제 사회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나선 이후 미국을 비롯한 유럽과 유엔 기구, 그리고 우리나라 민간단체와 정부는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 공식적으로는 30만, NGO 통산 100만 이상의 아사자를 발생시킨 북한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에너지난을 해결해야 하고 산업이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인프라 건설이 선행되어야 했다. 사회주의 경제 블록으로부터 고립된 상황에서 세계 시장으로부터도 고립된 북한은 고질적인 자연재해로부터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다. 김일성 사망 전후는 1차 북핵 위기가 한창이었다. 김일성 사망이 체제 붕괴로 이어질 줄 알았지만 오판이었다.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집권한 김정일은 김일성 교시를 내세운 유훈통치를 이어갔고 정권을 안정적으로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과는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하면서 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다. 우리 정부도 KEDO를 통해 북한의 신포지역에 경수로가 들어설 수 있도록 기반구축 사업을 지원했다. 2000년에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코뮤니케가 채택되었다.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미국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페리프로세스는 우리 정부가 제시한 로드맵이었다. 아쉽게도 미국의 정권교체와 함께 이 모든 합의들이 수포로 돌아갔고 2003년 제2차 북핵 위기가 벌어졌다. 6자회담을 통해 2005년 9·19합의를 도출할 때까지만 해도 과거 합의도 있으니 곧바로 최종 결론이 날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공교롭게도 북핵 2차 위기 국면이 전개되면서 2003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북한 인권 결의안이 채택되기 시작했다. 정치범 수용소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한 것이다. 당시 유럽연합은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유일지도 체제 하의 사회통제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던 듯하다. 이론적으로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독재를 당연시 한다. 자본가들의 착취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이 더 큰 전선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은 김일성 수령 우상화와 함께 유교적 충성기제마저 덧붙여진 통치 담론이 자연스런 국가이다. 2000년대 이후 인권 논쟁에 있어서 북한은 외부로부터의 내정 간섭을 거부하며 자주권이 곧 국권이고 인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외부에서 인권을 내세우며 북한의 내정에 간섭하려는 것은 체제를 압살하려는 ‘제국주의적’ 침탈 행위라는 것이다.

2003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북한 인권 결의안이 채택되기 시작했다. 정치범 수용소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한 것이다. 당시 유럽연합은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유일지도 체제 하의 사회통제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료사진)

유럽연합은 북한에 대규모 인도주의 지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인권 대화’나 ‘정치 대화’ 등을 통해 접근했다. 통일독일 사례에서 경험했던 헬싱키프로세스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엔 인권위원회에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을 제안하자 북한은 단번에 대화 테이블에서 물러났다. 미국은 아예 2004년 북한인권법을 국내법으로 제정해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 문제 등 자유권 중심의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와 맞물려 있는 북한 인권 문제를 “인권과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불량 국가가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핵이나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 안 된다” “정권을 바꿔서라도 제지해야 한다” 식의 익숙한 논리로 북한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제3의 길을 찾아봐야 한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힘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길러져야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인권

남한 사회에서 인권이 사회개혁의 주된 지표로 자리 잡게 된 시점은 1970년대부터일 것이다. 노동운동 1세대라 할 수 있는 전태일의 분신은 청계천 노동자들의 폭압적인 노동 현실을 압축적으로 고발한 사건이다. 이후 노동운동은 사회적 약자 편들기에 나선 뜻있는 헌신자들을 불러 일으켰다. 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 인권운동과 노동운동은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했고 공안 통치로 무마시키려는 독재 권력에 맞서서 아래로부터의 통일운동이 시작되었다. 안보를 내세우며 통일 담론은 오직 정권 차원에서만 논의가 가능했던 시절, 분단 상황에 밀리고 밀렸던 인권운동은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통일운동으로 확산된 것이다.

남한 사회에서 인권이 사회개혁의 주된 지표로 자리 잡게 된 시점은 1970년대부터일 것이다. 노동운동 1세대라 할 수 있는 전태일의 분신은 청계천 노동자들의 폭압적인 노동 현실을 압축적으로 고발한 사건이다. (자료사진)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외부에서 정확하게 해법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분단 상황이 북에서도 쉽게 독재 권력의 정당성 확보에 명분이 될 수 있음은 자명하다. 폐쇄적이고 집단주의 문화에 잠겨 있는 북한 주민들이 개인적 자유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국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은 현재로선 없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는 그런 면에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배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끊임없는 공안 통치에 동원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최근 ‘전쟁 불사론’, ‘선제 타격론’ 등 북한과 미국의 신경전이 계속되자 북한 청년 347만 명이 군대에 입대하거나 재입대하겠다는 신청을 했다고 한다. 외부의 적은 내부를 단결시킨다. 진리이다. 1990년대 국가 위기 시 내세웠던 선군정치도 같은 맥락에서 등장했고, 성공했다. 수령 결사 옹위를 위해 인민과 군대는 총폭탄(총과 폭탄)이 되어 충성하겠다는 구호가 난무했다. 당 간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인민이 나서서 자기들의 체제를 수호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 과연 누구에게 유리할까.

우리는 지난 1994년과 2005년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합의가 한반도 냉전 질서 개혁에 주춧돌이 되길 기대했었다. 당장 통일국가를 이루지 않더라도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미국과 북한이 수교하면 남북 관계는 ‘국가 연합’(3단계 통일 과정 중 2단계)까지 발전할 수 있고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역사는 단번에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2000년 6·14 남북 정상회담과 10·12 북미 코뮤니케 체결이 바로 그 길이었다. 아쉽게도 미국의 정권 교체와 불행했던 9·11사태 발생으로 한반도 평화의 문은 다시 닫히고 말았다. 세월은 흘러 한반도는 다시금 군사 패권 대결의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정전협정 체결 이래로 64년 동안 겪어 온 한반도 전쟁 위기. 1989년 탈냉전 선언 후 미국과 소련이 나 몰라라 했었던 한반도 분단 문제. 이젠 미국이, 국제 사회가 한반도 주민들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북한의 독재 정권만 탓할 일이 아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초는 따뜻한 인류애에 있다. 두려움, 적개심, 그리고 자만심으로는 세울 수 없다. 우리는 북한인권 문제에 그토록 장기간 많은 관심을 보였던 유엔과 미국에 되 물을 때가 됐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도 괜찮겠는지. 이토록 불안한 정전체제를 평화협정 체결로 바로 잡을 수는 없겠는지. 그리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내려놓고 악수할 수 있도록 양보할 수는 없겠는지.

독일에서 신 베를린 선언을 선포한 문재인 대통령. 내년이면 남과 북에 독립된 정부가 출범한 지 꼭 70년이 된다. 독일 통일이 유럽 통합 과정과 긴밀하게 맞물려 진행되었던 과거를 기억하며 동북아 경제공동체 추진 과정에서 남과 북도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젠 남북 주민 모두의 인권, 한반도 평화권을 추구해야 한다. (청와대)

전쟁 없는 한반도는 동북아 평화의 전제 조건이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군사 패권을 겨루지 않고 평화적 경제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는 길이 코앞에 놓여 있다. 한반도 평화권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수교를 통해 확보될 수 있다.

내년이면 남과 북에 독립된 정부가 출범한 지 꼭 70년이 된다. 독일 통일이 유럽 통합 과정과 긴밀하게 맞물려 진행되었던 과거를 기억하며 동북아 경제공동체 추진 과정에서 남과 북도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젠 남북 주민 모두의 인권, 한반도 평화권을 추구해야 한다.

윤은주 북한학 박사. 유코리아뉴스 대표이자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이다.

윤은주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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