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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게임의 판’을 바꾸자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 진단’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7.10.1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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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넘어간 노동당 창건 기념일, 그래도 위기 상황은 여전하다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이 북한의 새로운 도발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북한은 한 번의 핵실험과 열 번의 미사일 도발을 이어왔고, 미국과 북한이 거친 언사들을 주고받으며 한반도 위기를 키워왔다. 그런 터라 북한이 이번 당 창건일에 즈음하여 또다시 핵․미사일 능력을 과시하는 도발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북한의 도발이 없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이것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의미하거나 한반도 안보위기가 해소되고 상황이 조만간 바뀔 것으로 기대할 근거는 없다.

한반도 안보위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번 유엔 총회를 계기로 북미대화가 시도될 수 있다는 일부의 전망도 기대로 끝났고, 이달 초에 중국에서 미국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과 두세 개 대화 채널을 열어 두고 있다”고 발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핀잔 섞인 트위터 문자를 받고 힘을 잃었다. 같은 시기에 북한의 고위관리가 러시아를 방문하여 한반도 상황을 논의했으나 그 결과는 당장 현실 타개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당 창건 기념일을 앞두고 10월 7일 개최된 북한 노동당 제7기 2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도 주목을 받았지만, 한반도 상황변화와 관련된 어떤 조짐도 없었다.

김기남, 최태복 등 노장 당 관료가 뒤로 물러나고 새로운 실세들 몇 명이 전면에 포진했으며, 이미 김정은 리더십 아래 활발한 역할을 하는 최룡해, 김여정 등이 추가적인 감투를 몇 개씩 더 차지했는데, 이 같은 당직 인사만으로는 한반도 정세변화의 조짐을 찾기 어렵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최근 긴장이 크게 고조된 정세 속에서 북한이 강도 높은 대북제재의 압박을 견뎌내기 위해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등 내부결속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정도뿐이다. 이것만으로 북한의 내부적 불안정이 높아질 것이라든가 체제가 공고화될 것이라든가 여부를 전망하기는 이르다.

미국과 북한이 '말폭탄'의 교환을 잠시 멈춘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대로 ‘태풍 전의 고요’일 수 있다. 하지만 '말폭탄'의 교환만 멈추었을 뿐 미국의 전략폭격기들이 북한 영공 근처까지 접근해서 무력시위를 벌이는 등 군사충돌 위기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금의 한반도 게임판에서는 압박도 대화도 성공하기 어렵다

핵․미사일을 거의 완성한 마당에 외부 압박이 더욱 강화된다고 해서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최근 중국이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더라도 북한은 자기 주민들을 희생시켜서라도 핵무기를 지킬 가능성이 더 크다. 북한이 정권보다 주민의 안위를 우선했다면 상황은 벌써 바뀌었을 테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현 조건에서는 사실상 어렵다. 설사 협상의 판이 열린다고 해도 한미동맹이 북한에 핵 포기 대가로 줄 만한 카드가 마땅하지 않다. 그렇다고 북한의 핵 보유가 임박한 상황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해결 방안은 핵전쟁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피해야 할 시나리오다.

딜레마에 빠진 현재의 게임판에서는 입구도 출구도 안 보인다.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판을 바꾸어야만 한다. 북핵 문제를 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판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미 30년 전 노태우 정부가 '7.7 선언'을 통해 탈냉전의 게임판을 제시한 바 있다.

핵무기 자체가 위협의 근원이라는 우리의 생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핵무기 자체가 위협의 근원이라면 10~20개의 핵무기를 가진 북한보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을 더 크게 느껴야 한다. 그러나 동맹의 핵무기는 우리에게 위협이 아니며 우리와 적대관계를 해소한 중국과 러시아의 핵무기도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북한 핵무기가 문제 되는 것은 아직 정전상태가 해소되지 않아 적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비핵화에만 매달려 협상하려는 입구론의 자세를 버려야 한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성과를 거두려면 한반도 냉전구조에 가담한 모든 당사국 사이에 적대관계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먼저 적대관계를 해소한 뒤에 출구에서 비핵화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게임판이 바뀌면,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한 타협점 찾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7.7 선언’은 남북한과 주변국 간 교차승인의 필요성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적성국이던 중국 및 러시아와 수교했고, 북한이 미국 및 일본과 관계 개선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반도의 국제 냉전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7.7 선언’은 한·러수교, 한·중수교 등 절반만 이행되고 북한과 미·일 간의 수교는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한반도의 냉전유산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이 절반만 진행된 채로 30년을 지내오면서 한반도 안보상황은 더욱 엄중해졌다. 이제라도 북한과 미·일 간의 국교정상화를 마무리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의 가능성은 이러한 과정과 맞물려 열릴 것이다.

우리는 냉전구조의 판을 바꾸지 않은 채 한·중, 한·러 수교이후 한반도에서 국제적 냉전질서 고리가 해소되었다는 착시 속에서 대북정책을 편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시급한 것은 북핵 협상을 중재하는 일이다

안보리 대북결의는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유엔회원국들의 대북제재 참여를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평화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당사국 간 협상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제재와 협상은 안보리 결의의 양대 요소다. 유엔 안보리 결의가 아홉 차례 거듭되면서 제재 쪽의 리스트는 계속 길어졌지만, 협상 쪽은 거의 진전이 없었다. 안보리 결의는 반쪽만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이행되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게임판을 마련하는 일도 위기국면의 진행이 중지되고 협상 단계로 들어서야 가능하다. 일단 협상 국면으로 전환되거나 적어도 당사국들이 협상할 의지를 갖고 있어야 게임의 판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아쉽게도 미국과 북한 어느 쪽도 치킨게임에 빠져 먼저 협상 제의를 못 하고 있다. 협상 제의를 하는 쪽이 패배자로 인식되고, 협상 주도권도 뺏길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치킨게임에서 빠져나올 용기를 잃어버렸다. 약소국인 김정은은 사정이 더욱 절박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협상을 중개하며 양측의 명분과 체면을 살려주는 중재자가 절실하다. 과거 리비아 핵위기 때 영국이 미국과 리비아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맡았다. 이란 핵 협상 때는 독일이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중재자가 되었다. 이처럼 강대 강 충돌 분위기에서는 군사적 압박과 제재 일변도에서 벗어나 균형 있는 자세를 가진 중재자가 나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정상회담 환영만찬을 위해 만찬장에 들어서며 환하게 웃고 있다. 2017. 7. 6. 청와대 제공

그동안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중재역을 맡았던 중국은 지금 핵협상 중재보다는 미중관계 속에 자신의 입지에만 신경 쓰고 있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이후 대북정책과 대미외교의 레버리지가 소진되어 중재 역할이 버겁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문제로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고 일본은 대북압박의 선봉을 맡고 있어 한반도 주변에서 협상 중재자를 찾기도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회원국들이 안보리 대북결의를 철저히 이행하고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는데, 회원국들이 협상 중재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주문도 해야 했다.

지금은 미국만 바라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미국은 북한과 협상할 용기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독일의 메르켈 수상이 협상 중재 의사를 수차 밝힌 바 있다. 독일은 우리와 같이 분단국의 경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그에게 남북한 동시 방문을 통한 협상의 중재를 요청해 볼 수 있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 등 중재 역할을 할 만한 누구라도 좋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단초를 열어줄 중재자가 나서도록 하는 일은 온전히 우리 몫이다.

*이 칼럼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제공합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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