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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지난 12월 초의 예산 국회를 지켜보면서 지난해 연말에 이어 우리 국민들은 또 한 번 자괴감에 빠졌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라고 한탄하면서 한 겨울 내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덕분에 탄생한 새 정부는 첫 번째 예산부터 보수야당들에 의해 발목이 잡혔다.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아동수당 지급과 기초연금 인상이 두 달이나 늦춰진 것이다. 무엇보다 예산 국회의 정치과정에서 여야 3당 원내지도부가 합의했던 ‘소득 하위 90%에게 지급하는 아동수당’은 보편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말았다.

국민을 괴롭히고 무시하는 정치권

720만 노인의 약 49%가 상대빈곤선 이하로 어렵게 생활하는 우리나라에서 한 푼이라도 더 지급해도 모자랄 판에 정치적으로 약속된 기초연금 인상 금액(20만6천 원에서 25만 원으로)의 지급 시기를 애초의 4월에서 9월로 늦추는 결정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한 달에 약 5만 원이면 가난한 노인들의 삶에서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보수야당들은 그렇게 기초연금의 지급 시기를 늦추어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노인들이 계속 그들을 찍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 전체가 국민들을 무시해도 좋은 “호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 발생한 이대 목동병원의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이나 제천 사우나 화재의 집단 참변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필수적인 보건의료 인력의 부족이나 국민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의 과도한 규제 완화와 소방 방재 관련 인력의 부족 때문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공공부문의 인력을 늘리는 것을 마치 시장에서 장사꾼들이 흥정하듯이 협상한 정치권에 대해 국민들은 “환멸”을 느낄 정도에 이르렀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이 바뀐 것은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듯이 여전히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행동하고 있다. 특히 보수야당들이 그렇다.

정치과정에서 이렇게 ‘상식적이지 않은 결정’이 내려진 것은 우선적으로는 국민들에게 줄 것을 깎아도 선거에 불리하지 않다는 것, 즉 우리나라 선거제도가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정치구조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비례대표제에 기반을 둔 내각제를 도입한 나라들의 경우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정당이 특정 지역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비례성이 강한 선거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없는 제도이다 보니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이 국회에서 이렇게 내려지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의 이합집산들도 마찬가지다. 바른정당 소속 의원 9명의 탈당과 자유한국당 입당도 궁극적으로는 선거제도 때문이다. 거대 야당인 자유한국당으로 구심력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선거제도 때문인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역의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 특히 영남지역의 의원들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기초의원에 출마하고자 하는 지역 정치인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자유한국당이 있는 상태에서 바른정당으로 출마하면 승산이 없다고 본다. 그래서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지방선거에 나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홍준표 대표도 대대적인 당원협의회 위원장 물갈이를 통해 이번에 들어온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에게 길을 열어준 것이다. 선거제도가 이처럼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로 유지되는 한 합리적 개혁보수는 설 자리가 없다.

국민의당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민의당 소속 다수 국회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대표가 자신의 신임을 걸고 당원 투표를 통해 바른정당과 무리하게 합당을 추진하려는 것은 그 배경에 민주당 때문에 가능성이 없는 호남을 포기하더라도 당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지역에 출마하고자 하는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들의 요구가 합당의 동력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소선거구 제도에서는 선거구에서 1등만 하면 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정당의 몸집을 불리는 것이 최대한 유리하다.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자신들 만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분당과 합당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낡은 정치 지형은 결국 승자독식 형 선거제도의 한계와 불합리성 때문이다. 국민의 뜻과 여론을 존중해야 할 정치인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 국민의 표를 먹고 살아야 하는 정당들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일을 저질러도 겁을 내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의 대의정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대통령의 직접 개헌 발의가 필요하다

국민들은 속이 터지는 데도 이대로 참고 2020년 총선이 올 때까지 손을 놓고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제 촛불혁명을 통해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우리 헌법에 개헌안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가 발의할 수도 있고 대통령이 발의할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개헌과 선거법 개정 논의의 물꼬를 터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는 것이 요구된다.

올해 초 정세균 국회의장 주도로 야심차게 출범했던 국회 개헌특위는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올해 12월 31일 활동 시한을 만료한다. 여야 협상에도 불구하고 개헌특위 운영 시한의 연장도 불발되었다. 대선 이후 6월 27일 국회에서 출범한 정치개혁특위도 성과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정도면 국회에 충분히 시간을 준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국회 스스로가 개헌안을 합의해 낼 능력도 선거법 개정을 통해 정치구조의 개혁을 단행할 의지도 없음이 이미 증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여야의 모든 후보들이 공통 공약으로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추진을 약속했다. 특히 문재인 후보가 발표한 민주당 공약집에는 “기능을 다한 1987년 헌법” 개정으로 새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국민 중심의 개헌과 분권과 협치의 개헌, 그리고 ‘국가 대 개조’를 약속하는 선거제도와 정부 형태를 혁신하는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약에서는 마치 무능한 국회나 야권의 반대 등 지금의 정치 상황을 예견이나 한 것처럼 구체적으로 대선 이후 정부에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민 참여 개헌논의 기구’를 설치해 2018년 초까지 국회가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실시하도록 명기하고 있다. 특히 선거법 개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국회 구성의 비례성 강화 및 지역 편중 완화를 위해 “국회의원 선거에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과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를 공약했다. 이런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직접적인 개헌안 발의가 필요하다.

민주당은 지난 12월초 2018년도 예산안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국민의당과 ‘선거구제 개편’을 포함한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중대선거구제를 포함한 선거법 개정을 공론화하는 데 대해 국민의당과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는 정치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일본에서도 부작용이 더 커 이미 폐기된 제도이고, 유럽의 정치 선진국들에서는 아무 데서도 도입하지 않고 있는 근본이 없는 제도이다. 옳지 않다. 민주당의 공약사항인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옳다.

국민 참여 형 개헌의 구체적 추진 방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또 다시 국민 참여 개헌과 함께 국민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선거제도로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언급을 했다. 그런데 개헌이든 선거제도의 개혁이든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개헌은 국회의원 200명이 동의해야 가능해진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이미 탈당파가 합류한 자유한국당에 애국당과 야권 무소속 의석만 더해도 120석 가까이 되므로 자유한국당이 끝까지 반대하면 어떤 개헌안도 국회를 통과하기 어렵다.

개헌만큼 중요한 선거제도의 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선거제도의 개혁은 개헌 사항이 아니고 공직선거법만 바꾸면 된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이 걸림돌이다.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180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법안 통과를 추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다면 야권을 포함한 국회가 동의할 수 있도록 개헌안에 쟁점사안인 권력구조(정부형태)와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내용을 담아내야 한다.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 내용은 꼭 필요하지만, 이 내용만 담은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낮다. 개헌안 발의는 대통령이 할 수 있지만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것은 국회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야당들은 핵심 쟁점인 권력구조와 정부형태 문제를 개헌안에 담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소신이자 민주당의 대선공약인 선거제도의 비례성 강한 개혁 방안도 개헌안에 담아야 한다. 핀란드나 오스트리아 같은 국가들은 헌법에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성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내용을 헌법에 명시하면 국회가 법 개정을 통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여야간 협상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필요하다면 국민투표의 시기도 내년 6월 전국동시 지방선거 때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동수당 지급이나 기초연금 인상 시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민투표의 시기를 9월로 연기하거나 심지어 2019년 초로 미루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다음 총선은 반드시 비례성 강한 선거제도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합의제 민주주의가 이 땅에 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정치 질서가 국민행복의 복지국가를 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정부 주도로 구체적인 개헌안을 만들라는 것은 아니다. 공론화의 과정을 밟으면 국민의 의사를 폭넓게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탈핵에 대한 입장과 신고리 원전 공사의 계속 여부를 묻는 공론화위원회를 이미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500여 명의 위원들은 수개월 동안의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했다. 마찬가지로 개헌에 대해서도 대선 공약에서 밝힌 ‘국민 참여 개헌 논의 기구’를 구성해 개헌안을 만들도록 하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 발의하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국회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만드는 개헌안에 개헌 논의의 쟁점인 권력구조 및 정부 형태와 관련해서도 2가지 정도로 압축해 의견을 수렴하면 될 것이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도 나왔듯이 여전히 대한민국은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이 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야당이 주장하는 대통령 임기 단축이나 중임제 여부는 핵심이 아니다. 실질적인 쟁점은 국무총리 선임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부분이다. 지금처럼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할 것인지, 아니면 책임총리를 제도화하는 차원에서 국회의 다수파 연합이 총리 후보를 추천할 것인지, 여기로 모아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과 같이 비례대표성이 부족하고 정쟁만을 일삼는 무책임한 국회에 총리 추천권을 준다면 국민들의 불안과 반발이 클 것이다. 내각 구성권의 상당부분을 포함한 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주려면 국회의 구성과 정치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선거제도의 비례성 원칙을 헌법에 명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방안을 대통령이 제안해서 보수야당 내부의 개헌 찬성파들을 개헌 논의에 끌어들여야 한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야당 국회의원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지금의 조건에서 오히려 당선 확률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동의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의 낡은 정치 행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정당들의 분당이나 합당도 특정 지역의 제1당이 되기 위한 몸집 불리기가 목적이 아니라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기 위해 정책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하는 형태로 달라질 것이다. 다수파 연합을 구성하기 위해 몇 개 정당의 정치인들도 연정에 참여하게 되고,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정책 과제들은 70% 내외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국회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야당들이 무조건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것으로 표를 얻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국민을 위한 의정 활동을 하는 것으로 재선이 결정되는 구조가 된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국회에서 저절로 정책들이 논의되고 신속하게 표결되는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특정 지역이나 계파에 줄서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표방하는 것이 선거에 유리하게 되고, 내각에 참여할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에 일하는 국회와 유능한 국회로 전환될 것이다.

복지국가를 위한 제2의 촛불혁명은 선거제도의 개혁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국민 70~80% 이상이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10월 국회의장실에서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2.9%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했다.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참여하고 있는 ‘비례민주주의연대’는 외연을 확대해 노동계와 전국의 시민사회단체 등 550여 개의 단체들이 참여하는 <정치개혁 공동행동>을 결성하고, 지속적으로 전국을 다니면서 강연회도 하고, 광화문 광장에서 <정치 페스티벌>을 축제 형식으로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매우 높고 논의도 상당히 진전되어 한가지로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산적한 수많은 과제들은 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을 필요로 한다. 주력 5대 산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차세대 먹거리가 될 새로운 산업은 아직 구체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매일매일 힘든 삶을 살아내야 하는 젊은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의 심각한 저출산으로 항의를 하고 있다. 수년 내로 노인 1,000만 명 시대가 예고되고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구체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이 시급하지만 경제 주체들은 아직 자신의 체질을 바꾸려는 노력을 시작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유능한 국회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시대적 요구인 역동적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하고, 정치 시스템은 선거제도의 비례성 강한 개혁을 통해 바뀔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개혁과 이를 담보할 개헌이 필수적이다. 촛불혁명과 지난 대선을 통해 복지국가를 만드는 사명을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대통령은 직접적인 개헌 발의를 통해 지금까지의 수세를 공세로 전환하고, 대선 공약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한 거대한 첫걸음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본 칼럼의 저작권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 있습니다.

이상구  21welfa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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