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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무엇으로 가능한가?

*1월 16일~19일까지 팀비전센터에서 열린 2018 통일비전캠프에서 오대원 목사(84)가 셋째날(18일) 저녁집회에서 했던 '한반도를 위한 샬롬의 언약'(사 54:10) 주제의 메시지를 정리한 것이다. -필자 주

오늘 평화의 언약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창 12장에 하나님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2절) 라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언약은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순종해서 떠났다. 그래서 언약이다.

오늘 저녁에 다 같이 부른 ‘아리랑’ 개사곡 가사대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너무나 중요한 시기에 두셨다. 한반도를 위한 하나님의 평화의 언약이 무엇인지 보고 싶다.

2018 통일비전캠프 셋째날인 18일 저녁 한국예수전도단 설립자인 오대원 목사가 '한반도를 위한 샬롬의 언약'을 주제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한반도를 위한 하나님의 평화의 언약

고후 5장 15절은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16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라고 되어 있다. 더 이상 우리는 다른 사람을 편견 가지고 보지 않고 예수님이 우리를 보듯이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으려고 한다. 편견과 왜곡된 눈으로 본다.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가끔 우리가 예수님 위해 살지 않고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면 평화가 오지 않는다. 그럴 땐 기도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성경에 ‘예수 기도’가 나온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걸 이렇게 해보자.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 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같이 따라해보자. 간단하지만 여기에 모든 게 다 포함된다. 주 예수 위해 살지 않고 날 위해 사는 것, 남을 자꾸 판단하는 것도 용서하소서, 이렇게 되는 것이다. 항상 기도하고 회개하고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 왕이신데 나도 예수님같이 아버지의 말씀이라면 순종하는 게 당연하다.

.하나님의 평화의 언약에 대한 가장 분명한 말씀은 이사야 54장 10절이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통일비전캠프 때마다 읽은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을 맺어주셨다.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나를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나를 통해 하나님이 한반도를 축복하시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내 편에서 할 일은 하나님 약속에 순종하는 것이다. ‘주여 말씀대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마음이 있다.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사 54:1).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54장 12~13절에서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라고 약속하신다.

선지자 이사야가 바벨론에 끌려간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내 백성이 되게 하겠다”라고 선포하지만 정작 백성들은 “글쎄요. 우린 포로가 되고 고생하고..”라며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세우겠다고 하신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굉장히 보배 같은 사람이다. 앞으로 통일되면 북쪽은 어떻게 될 거라 생각하냐고 많은 이들이 내게 묻는다. 겨우겨우 회복시키고 겨우겨우 살게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아이들도 예수님 제자가 되고 그렇게 아름답게 꾸며주시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럴 때 우리는 화평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언약은 화평을 만드는 것이다. 우린 화평을 선포하고 만드는 사람이다. 성경의 평화는 ‘샬롬’이라고 한다. 샬롬은 ‘온전함을 입었다’는 뜻이다. 또는 ‘완성된 것’이란 뜻이다. 영어로 Complete다. 샬롬은 어떤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샬롬이 아니다. 목자가 양떼를 기르는데 양 한 마리가 도망간다, 그러면 그 양떼엔 샬롬이 없다. 그런데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데리고 오면 다시 샬롬이 되는 것이다.

우리 생활 자체가 복합적인, 여러 가지 파트가 있다. 서로 화음이 되고 조화가 되면 참 아름답게 살 수가 있다. 그런데 하나라도 빠지면 결혼생활, 학교생활, 직장생활에서 샬롬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한 민족으로 만들어 한 나라를 살기 위해 창조하시는데 그 민족이 분열이 되고 분단이 되고 원수같이 되면 그 나라는 샬롬이 없는 거다.

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 불광동 팀비전센터에서 '평화의 땅, 통일코리아'를 주제로 열린 2018 통일비전캠프 모습. ⓒ유코리아뉴스

샬롬이 없는 나라

한반도는 샬롬이 있는가? 없다. 왜? 하나가 돼야 하는데 분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리적, 체제적으로 분단됐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건 정서적, 심리적으로 분단되었기 때문이다. 서로 미워하고 무관심하기에 샬롬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샬롬을 위해 우리를 사용하고 싶어하신다. 이스라엘도 솔로몬 왕일 때는 샬롬의 나라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자마자 분단되고 말았다. 한반도는 한 나라이고 한 민족인데 정치적으로나 여러 가지 모양으로 완전히 분단이 되다보니까 한 가족인데 일생 동안 만나지 못하는 비극도 있고, 핸드폰이 다 있는데 쓰지도 못하고, 가족들이 서로서로 만나지 못한다. 샬롬이 없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깨어진 나라(broken nation)이다. 샬롬은 온전함, 완성, 평화다. 샬롬은 각자의 복지가 있는 것이다. 샬롬이 있으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평화스럽게 살고 하나님 믿으며 열심히 살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민족이 된다.

이사야 26장 3절은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뜻은, 주님께서는 내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시켜서 그 분만 바라보는 사람에겐 평강의 평강으로 가득차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어딜 가든지 예수님만 바라보면 그 사람을 평강의 평강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다. 그 분만 바라보면서 열심히 맡은 바 일을 하면 나도 모르게 평안하게 될 것이다.

평화, 샬롬은 설명하기가 좀 어렵다. 그 뜻에 가장 가까운 것은 시편 131편이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이것이 샬롬이다. 얼마나 평안한가. 아기가 어머니 곁에 항상 있으면서 어머니만 바라보는 모습 말이다. 그런 아기는 나중에 크면 나라도 바꾸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속사람은 하나님의 평안이 가득하다.

시편 91편 1, 2절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한 사람의 샬롬, 한 민족의 샬롬

한 사람의 샬롬이 너무나 중요하다. 민족의 샬롬, 남한과 북한의 샬롬이 되면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나. 남북은 반드시 하나가 된다. 이번에 ‘통일이 올까요?’ 이런 질문을 여러 번 받았는데, 물론 한국 사람들 50% 이상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저는 ‘물론이다. 통일이 온다’고 답한다. 왜? 에베소서 1장 10절에 보면 주님의 때가 찰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신다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러면 한반도를 하나되게 하지 않으시겠나? 통일은 하나님 뜻이다. 문제는 내 자신이 분단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미가서 5장 말씀,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4, 5절)를 묵상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전쟁도 계획하지 않고 무기도 만들지 않고 완전한 평화가 도래하는 것이다. 전쟁 없는 그 평강을 우리가 원한다는 것이다. 평화는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주는 우리의 평안이라는 것, 그 언약 때문에 그렇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이사야 말씀을 보면서 위로가 된다. 너희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다.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다(이사야 54:13). 이사야가 바벨론 포로생활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자녀들을 향하여 선포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헤매면서 제일 걱정했던 건 자기 자녀들이 죽을까봐, 그것 때문에 걱정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죽지 않고 오히려 걱정했던 어른들이 광야에서 다 죽었다.

하나님은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다. 나는 북한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예전에 다니엘과 메드락, 사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셨는데 북한 아이들에게도 함께 해주시면 좋겠다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이미 했다’고 말씀하셨다. 북한의 아픈 아이들 고쳐주시고, 먹여주시고, 예수님이 초자연적으로 나타나 친히 가르쳐주시고, 그들을 이 땅의 지도자로 세우신다고 약속하셨다.

그 아이들이 이 땅 열방 가운데도 귀하게 쓰임받을 것을 믿는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 평강의 왕이다. 가장 중요한 건, 여러분의 집이 평화의 장소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혼자 사는 사람도 있고 기숙사에 사는 사람, 좋은 집에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집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몸이 어디 있든지 거기가 집이다. 열방을 치유하는 역사가 시작되는 건 집에서부터다. 내가 사는 곳에서부터다. 내가 참석하는 모임에서가 아니고 각자 있는 곳에 평강이 있다면 평강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열방을 치유하는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평화의 대사가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9절)라고 말씀하셨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을 화해케 하는 사람이 내 아들 내 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7, 1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예수님은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다. 그리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모든 사람을 예수님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게, 평화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서도 화평케 하는 게 중요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직분은 없다.

난 올해가 84세다. 나이가 이렇게 되다보니 몇 번 은퇴도 했다. 내 직업은 뭘까 생각할 때 아마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것인 것 같다. 어떻게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겠나. 할 수 없다. 공부하고 했는데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겐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 생각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자. 어떤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더라도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일은 화평하게 하는 일이다. 평화를 주는 일이다. 이 시간 우리 각자가 한민족을 위해 화평케하는 직분을 감당하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자.

“주님, 당신의 귀한 자녀들이 한반도를 위해 몸 바치고, 한반도에 평화가 이뤄질 때까지 주님이 쉬지 못하도록 기도하고 일하고, 그런 이들을 귀하게 쓰실 줄 믿습니다. 아멘.”

그러면 피스메이커, 평화를 만드는 사람, 평화를 구축하는 사람의 특징은 뭘까? 먼저 평화의 근원을 생각하자. 로마서 5장 1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원을 주셨다는 걸 믿으면 의롭게 되고 하나님과 화목되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복음으로 통일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의 기반을 먼저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게 5가지가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성육신)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십자가) △3일 만에 부활하셨다(부활) △승천하셨다 △평강의 왕이 다시 재림하실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다. 영원토록 하나님 안에 평화를 누리며 살 것이다

오대원 목사 ⓒ유코리아뉴스

화평케 하는 사람의 몇 가지 특징

화평케 하는 사람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미가서 6장 8절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게 3가지다.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고,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행하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정의(justice), 공의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기에 높임을 받으시는 거다. 정의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 것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바른 관계를 갖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아모스는 정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4). 사탄의 죽이려고 하는 것에서 자유롭게 하는 게 하나님의 정의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억압하는 것에서 자유롭게 되는 게 정의다. 보통 교회는 정의, 공의 얘기를 별로 안한다. ‘예수 믿으라’ 그 정도다. 아니면 눈에 보이는 동성애에 반대하는 정도로 여긴다. 이런 건 물론 문제지만 보다 더 큰 죄가 있다. 이사야 58장이다.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가장 정확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3절에 하나님 백성들의 문제가 나온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사람들은 너무 신령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신령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우리가 금식했는데 왜 안 들으십니까?’라고 한다 하나님의 응답은 4, 5절에 나온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금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있다. 그러나 제대로 금식하지 않았다. 금식이나 기도, 성경 열심히 읽는다. 보기엔 굉장히 영적인 사람들 같은데, 그러면서 서로 다투고 싸우고 하나가 되지 않는다.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겐 악하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정의가 없는 것이다.

6, 7절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나온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다. 물론 북쪽도 악하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자신을 보지 않으면서 이중적으로 살기에 화평하게 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그런 걸 볼 수 있는데 미국은 더 심하다.

화평케 하는 삶을 위한 래디컬한 실천

만일 우리가 이사야서 말씀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의 삶을 살기로 한다면 이제부터는 사람을 볼 때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고 예수님이 보시는 눈으로 보겠습니다, 라고 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배고픈 사람을 먹여주고, 집없는 사람은 집으로 데려오고. 그런 래디컬 한 삶을 사는 사람에겐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8~11절이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사야 57장 19절은 이렇게 약속하고 있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이 땅의 평화를 만들 수 있다. 우리 집에서부터, 우리 교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떻게 만들 수 있나? 이중적인 생활을 버리고, 겉으로 보이는 생활을 버리고, 실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실제로 매일매일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작은 일, 큰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민족도 화평하게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중에 간혹 그런 사람이 있다. 어려운 사람 봐도 지나치고, 북한은 생각지도 않는다. 이번에 평창올림픽 개막식 때 남북이 같이 입장하면서 아리랑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서로 화해하고 하나 될 때 이 땅을 고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하나되는 것이다. 각자 평창엔 못가더라도 집에서부터 그렇게 기도하고 행하자. 자비라는 것은 사랑과 행동이다. 하나님의 사랑, 그것은 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교회에서 제일 필요한 것이다.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 궁핍한 사람 찾아주는 것이다.

내 눈이 그리로 간다. 그래서 자비다. 자비의 반대는 무관심이다. 자비가 있다면 무관심할 수가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기 때문이다. 정말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가? 하나님이 북한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가? 자문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 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침마다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서 긍휼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 자비로운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이다. 아이들이 어려움 당하면 어머니 마음이 금방 가질 않나. 그것이 자비다. 자비로운 마음이 있으면 그 속에 보배가 있다. 그게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자비를 얘기하면 정의를 무시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값싼 자비다. 자비는 정의와 함께 한다. 우리가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땅 악한 것들 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반도의 가장 큰 분단은 마음의 분단이다. 남북 모두 큰 아픔이 있다. 그 아픔 피할 수 없다. 자비로운 마음 주셔서 그 아픔을 나도 느끼고 깨닫고 그래서 함께 치유받을 수 있게 하소서, 모든 사람을 향해 긍휼이 많고 자비가 많은 사람되기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자.

마태복음 5장은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이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 받으실 것이요 라고 하신다. 우리는 뉴 코리아를 미래라고 하지만, 뉴코리아는 이미 우리 마음에 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은 주님과 겸손하게 동행하는 사람이다. 겸손이 뭘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우리의 겸손은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고 예수님 안에 있으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캠프에서 여러 사람들이 같이 모이고 공동체가 이뤄진다면 파워가 있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 그런 겸손, 그게 진짜 겸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일생 동안 동방의 예루살렘, 열방의 찬송이 되게 하기까지 쉬지 않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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