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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89호

우리 안에 내재한 두 개의 미국

한국 사회의 인식 체계에는 두 개의 상반된 미국이 존재해왔다. 하나는 우리가 제국주의 일본의 35년 압제로부터 벗어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이후 전쟁과 빈곤의 나락으로부터 구해주고 지켜주는 ‘구원자' 또는 ‘보호자’의 이미지다. 해방 이후 국가건설의 과정에서도 미국의 역할은 지대했다. 초기에는 미국의 원조에 의해, 그리고 후에는 미국식 시장자본주의를 받아들여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분단 구조 고착과 북한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위협은 군사동맹을 통해 극복해왔다. 정치 및 군사는 물론이고,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한국에 끼친 미국의 긍정적 존재감은 부인하기 어려운 범위를 형성해왔다는 인식이다.

한국 사회 속에 존재하는 다른 하나의 미국은 제국주의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단죄도 없이 일본의 부흥을 돕고, 오히려 한반도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냉전패권대결과 분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대한민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는 데 있어 미국의 공헌을 전적으로 외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역사의 여러 지점에서 독재정권들을 비호했고, 패권 경쟁의 수단으로 동맹을 이용해왔다. 마찬가지로 미국식 민주주의가 우리 민주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나, 자신들의 이익과 충돌할 때는 쉽게 민주화에 역행하는 선택을 했다. 이런 인식에서 규정되는 미국은 결코 정의로운 구원자가 아니다.

물론 어떤 국가 관계도 일면으로만 인식될 수는 없으며, 이중성을 지니는 법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인식 체계에 존재하는 두 개의 미국은 상호영향을 끼침으로써 보다 객관적이고 균형적으로 발전하지 않았고, 편향된 이미지만 추종함으로써 이념 분열에 매몰되게 만들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전자에 충실한 세력에게 미국은 한국이 반드시 의지해야 할 대상이며,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친(종)북의 프레임을 덧씌워 배척한다. 분단 구조의 고착으로 전자의 미국관은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부여받았고, 이는 기득권 유지의 핵심인 동시에 대다수 국민에게도 신성불가침의 신화나 상식의 수준이 되었다. 반면에 미국에 대한 비판의 스펙트럼은 배척 속에서 소수 세력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독재의 비호세력이자 제국주의 국가로 비판하면서 미군 철수나 동맹 철폐를 주장하는 급진적 주장부터, 비판적이면서도 분단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현실론까지 다양하다.

한미동맹 65년을 돌아보면 ‘구원자 신화’를 지닌 사람들은 인식의 편향성을 유지한 반면, 비판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성과 균형을 잡아왔다고 볼 수 있다. 급진적 반미 세력은 규모도 크지 않았고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으며, 당연히 권력으로부터 배제되었다. 친미주의자들이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해왔고, 그 권력의 핵심 기반이 친미·반북 노선이었다는 점이 편향적 인식이 내구성을 가지는 데 막대한 기여를 했다. 이런 가운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은 대미의존이나 동맹지상주의에서 탈피하기 위해 자율성을 모색한 것은 전례 없는 변수의 출현이었다. 특히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이전 정부들과는 전혀 다르게 북한을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포용을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진보 정부 10년의 한미관계의 변화 모색

두 진보 정부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이끌어냄으로써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서 한국이 자율성을 거의 행사할 수 없었던 양국관계에 대전환점을 이룬 시기였다. 햇볕정책은 국민의 지지와 미국의 동의도 획득하게 되는데, 이는 진보 정부의 철학적 신념에 의한 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냉전체제가 붕괴하면서 한반도 대결 구조가 약화된 덕택이기도 했다. 냉전구조에서는 한미동맹의 존재 이유와 친미 노선의 절대성은 감히 건드리기 어려웠지만 변화의 틈이 생겨났던 것이고, 이를 진보정부들이 적극 활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미자율성 모색과 친미주의 신화에 대한 객관화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네오콘 부시 행정부 등장과 9.11 테러라는 과거 회귀의 강력한 동인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내적으로도 일정부분 성과에도 불구하고 고착화된 구조를 혁파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반미종북 프레임의 역공에 휘말려 정권기반까지 흔들렸다. 결국 1998년~2000년 사이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한미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발생했던 파장들을 극복하지 못했고, 양극화된 국내 여론도 통합해내지 못했다. 이렇게 된 데는 한미 양국 상황과 동북아 환경 변화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등한시하고, 남북관계 개선만으로 모든 문제가 자동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던 진보세력의 아마추어적 이상주의 탓도 크다. 하지만 미국의 강경일변도의 전략 틀 속에서 김대중의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미동맹의 공존 모색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결코 용이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김대중은 미국과의 정책적 이견이 확대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북관계 개선과 보다 자주적인 대미관계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했으나, 양국의 보수 진영이 공격하는 것처럼 동맹의 근간을 흔들 의도까지는 없었다. 오히려 지나친 비대칭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일방적인 친미전략보다 주변국들과의 보다 다변화되고 균형 잡힌 외교를 해야 한다는 실용적 조정이 진짜 목표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노무현 정부 역시 한미동맹을 파탄 위기로 몰아갔다는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대북화해정책을 계승했고, 동북아균형자론을 위시한 자주성 확보에 노력함으로써 부시 행정부의 노선과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동맹 반세기의 대미 의존 관성은 이런 시도를 배은망덕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역시 한미관계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자주성을 확보할 생각은 없었다. 동북아균형자론이 문제가 되자 불과 3개월 만에 자체 폐기한 것이 곧 한미동맹의 틀을 넘을 생각은 없었음을 보여준다. 집권 전과 후의 대미 인식이 확연히 달랐고, 시간이 갈수록 대미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으며, 한미 FTA 체결에도 적극 나서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한미 보수 세력들에게 반미 및 반동맹론자로 낙인 찍힌 후였다.

한미동맹을 두고 벌인 이념 분열은 이후 보수 정부가 연속 집권하면서 증폭되었다. 이들은 진보 정부가 훼손한 한미관계의 복원이라고 주장했지만, 한미동맹이 조정기에서 겪은 어쩌면 불가피했던 갈등을 동맹 파탄의 위기로 과장하고, 이를 회복한다는 명목 하에 반미종북 프레임을 부활시켰다. 대북화해협력정책들은 북한의 핵개발 가속화를 조장했다는 비판과 함께 용도 폐기되었으며, 선핵폐기론에 기초한 대북강경책을 고집했다. 오바마 정부의 등장으로 북미대화와 협력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을 기대했지만 재정위기와 더불어 산적한 국내문제에 쫓기면서 어떤 실제적인 개선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이념적 뿌리를 공유했지만 대선 당시 전임 정부의 대북강경책과 친미일변도 외교에 대해서 비판적 견해를 표명했으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균형외교를 약속했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기대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정권 출범 후 얼마 가지 않아 당초의 기대는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2013년 초 북한의 도발과 안보 위기가 영향을 끼쳤던 것도 사실이지만 박근혜 정부는 선거 승리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박근혜의 포괄적 전략 동맹 역시 이명박이 시동을 건 전략 동맹의 연속선상에 있었는데, 이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미동맹이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 동원될 여지를 남겼다. 즉 동맹의 미래비전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대미 의존 관계가 답습될 수 있게 만들고, 동맹의 연루 위험을 증가시켰다.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친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군사동맹을 기반으로 하고,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을 내용으로 오랜 기간 구조화되어 왔다는 점에 있다. 비극적인 전쟁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남북분단의 대결 구조가 지속됨에 따라 한미동맹을 통한 안보는 절대가치가 되었다. 미국은 수호자로서 한국의 운명을 책임지는 존재이며, 한국은 자신의 역량과 위상의 증진에 상관없이 의존적 지위를 기꺼이 수용한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며,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내용과 상관없이 이념의 주홍글씨가 새겨진다. 미국은 한국에게 있어 이미지의 호불호나 또는 교류심화·감소에 따라 변하는 차원은 결코 아니다. 이를 두고 동맹의 견고성으로 포장하겠지만, 실상은 미국 없이는 시스템 작동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국제정치적으로는 한미관계가 미국의 세계전략을 위한 군사동맹과 미국의 번영을 위한 자본주의 이식이라는 두 가지 핵심 축에 의해 구조화되어 왔다. 미국은 이를 유지·확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개입해왔는데, 군사, 정치, 경제 영역을 넘어 전 방위적이었다. 친미엘리트들을 적극 양성해서 친미정권을 수립해왔으며, 언론, 교육, 문화를 총동원해서 우리 사회 전반을 미국을 닮은 그리고 미국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구축되었다. 미국의 개입에 대하여 한국사회는 단지 순응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동조와 협력을 제공하였다. 사실 긴 세월을 놓고 보면 미국을 통째로 한국에 이식시켜온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70년 동안 반복되고 축적되면서 사상과 의식까지 점령했다.

누가 뭐래도 한미관계의 근간은 여전히 군사동맹체제다. 동맹은 우리의 대외정책을 규준하고, 이는 다시 대북정책과 국내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역사상 명멸했던 수많은 동맹들이 실제 전쟁에서는 파기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한미는 오히려 동맹의 법적체결보다 먼저 전쟁에서 함께 싸운 후에 체결된 역사상 매우 드문 사례인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강력한 태생적 기원에다, 역설적이게도 전쟁을 치르고도 해소하지 못한 분단 구조는 양국의 비대칭동맹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리더십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동맹의 중요성을 호흡처럼 반복하고, 수십조 원 규모의 미국산 무기를 도입해 세계 1, 2위를 다툰다. 70년에 이르도록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면서 우리 군의 의존도는 높아졌다. 무기체계와 조직 등도 상호 운용성을 이유로 미국과 동일체계화 되어 왔기 때문에 전시작전권 부재라는 형식논리보다 한국군은 스스로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기회와 의지가 거의 없었다.

경제 역시 한미동맹이라는 맥락에서 작동한다. 우선 미국 달러에 전적으로 연동되어 있기에 달러 자산이 부족하거나 미국경제가 불안정해지면 여지없이 흔들린다. 한국의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화폐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달러로 환산·평가된다. 초기에 미국의 원조와 차관을 독점해 성장한 재벌들이 우리 경제의 중심축이자 아킬레스건이다. 무역, 성장, 투자는 물론이고 경제학 영역까지 미국시스템의 하부구조처럼 되어 있다. 언론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는데, 미국 언론의 콘텐츠를 그대로 번역해 기사를 쓰는 것은 애교 수준이라고 할 만큼의 친미 성향은 미국의 국익을 우리 국익과 동일시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FTA를 포함한 통상 문제나 해외파병, 무기구매 등 거의 모든 이슈를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동맹의 차원에서 접근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친미와 동맹절대주의로 인해 때로는 한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심기를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 북한 위협을 과장하고 친미와 반미로 국민을 분열시킴으로써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공식이 한국정치를 규정해왔다. 이것이 촛불 혁명을 거부하는 소위 ‘태극기집회’가 성조기를 함께 드는 이유인 것이다. 박근혜의 국정 농단과 그로 말미암은 탄핵은 미국과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그들에게 성조기는 태극기와의 동일하거나, 심지어 더 소중한 초월적 상징으로 내세워진다.

한미동맹 신화의 세속화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미동맹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판단된다. 우선 트럼피즘은 미국발 한미 동맹신화붕괴의 조짐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선 기간부터 시작된 트럼프의 언행은 국내외 할 것 없이 편 가르고 싸움을 거는데, 여당인 공화당과도 충돌하고, 자신이 임명한 국무장관까지 조롱한다. 평화의 전당 유엔에서 북한을 궤멸시키겠다고 퍼부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말폭탄과 기싸움이 초래하는 공포분위기에 편승하여 한미 FTA, 주둔분담금, 미사일방어, 한미일 군사협력 등에서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 품격이나 정당성도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조급함은 동맹국들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중 경쟁이 초래하는 신냉전의 지정학적 난관에다가 트럼프와 김정은의 대치 사이에서 한국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그동안 북한의 전유물이었던 전쟁위협이 미국에 의해 커졌다. 미국은 대한민국 생존의 보루이자 닮아가야 할 모델인 신성불가침이었는데, 미국 자신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발이면 비판과 저항으로 인해 곧바로 복원되겠지만 미국이 주도한다는 면에서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피즘이 지향하는 ‘미국제일주의(America First)’는 보통국가라면 얼마든지 당연한 국익 우선의 대외정책을 추구하겠다는 차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상대가 동맹이든 적이든 상관없이 자국이익을 위해 수단방법을 불문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단기적이고 사업적인 이익만 추구할 뿐 더 이상 인권, 민주주의, 평화 등 가치를 덧입히지 않는다. 미국은 그동안 가려왔던 허물을 벗어 던짐으로써 막대한 동맹 비용에 대한 현실감을 상승시키고 있다. 이를 수용하면 전형적인 동맹 딜레마의 하나인 연루의 압박이 커지고, 이를 거절하면 동맹결속이 약화된다.

한미동맹이 아무리 비대칭이라고 하더라도 상호성을 완전히 잃어버릴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발칸반도와 함께 지정학적 저주로 불리고 있는 한반도에서 미국을 동맹파트너로 삼고 있다는 것은 분명 자산이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브레이크 없이 자국이익을 위해 부담을 가중시킨다면 피로감과 함께 동맹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며 또 가져야 할까? 지정학의 귀환으로 불리고 있는 복잡하고 불안정한 동북아와 한반도의 역학에 국가의 명운이 걸려 있다. 이런 와중에서 지나친 친미주의와 맹목적 동맹지상주의는 도리어 한국외교의 손발을 묶어버릴 수 있다. 쉽지 않겠지만 자율성 강화에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분단 구조의 약화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강대국들의 권력 재편의 소용돌이에 그대로 함몰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역설적 희망이 보이는 것은 미국이 동맹의 신화를 스스로 깨트리고 객관화와 세속화를 추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결책은 바로 촛불 혁명이 가리키는 지점과 일치한다. 탄핵된 세력들은 민주주의 훼손과 국정농단만큼이나 반(反)평화집단이었으며, 분단체제를 권력유지 수단으로 이용했던 세력이었다. 남북한 모두 상호적대감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이른바 ‘적대적 공생’ 구도였다. 이 때문에 신정부의 탄생은 분단체제의 극복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지난 65년간 군사안보분야를 넘어 사회규범과 정체성마저 일체화되면서 한미동맹은 실용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신화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다. 한미동맹에 중독되어 동맹을 신성시하면서 남북대결구조는 강화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한 한미동맹도 대한민국의 국익보다 앞설 수 없는 수단에 불과하며, 신성시될 수는 없다. 하루빨리 실용화되고 세속화될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양국의 성숙한 동반자관계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김준형은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학위를, 미국 George Washington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청와대 안보실, 외교부정책실, 통일부 혁신위원회 위원이다. 또한 한반도평화포럼 외교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미국 Fullbright 교환교수로 미국 George Mason 대학에서 강의했다. 그의 관심 및 연구 분야는 동북아국제정치, 미-중 관계, 한-미 관계이며, 주요 저서로는 <전쟁하는 인간>,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아베 정부의 안보정책전환과 미국의 재균형전략: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미외교에 나타난 동맹의 자주성-실용성 넥서스, “G2 관계 변화와 미국의 대중정책의 딜레마 등이 있다.

*본 칼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김준형  jhk@han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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