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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김정은, 남북대화 결심의 배후

2017년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간 뜨거운 설전의 한 해였다. 일촉즉발의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아시아의 최빈국 북한이 세계 최강의 미국을 상대로 맞대결하는 형국이다.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김정은은 새해 신년사에서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 배짱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젊은 지도자의 호기? 아니면 북방계 한민족의 호전성?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은 70년간 북한의 등 뒤에서 버티고 선 러시아와 중국의 존재다. 북한의 평창행 준비와 함께 남북한 관계가 해빙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판문점 핫라인이 23개월의 침묵을 깨고 다시 재개됐다. 1984년 김일성이 23년 만에 모스크바를 방문함으로써 북·소 관계가 급속히 복원됐던 것을 연상시킨다.

①평양→평창 실크로드: 북한 신년사의 키워드는 한마디로 ‘우물쭈물하는 미국을 평창으로 돌파한다’이다. 김정은은 트럼프가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을 공격하지 못한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젠 미국의 제재와 압박 국면을 넘어서는 ‘평창 전략’ 로드맵의 단계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일 오전 <조선중앙TV>를 통해 2018년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YTN 화면 캡처

북한의 평창 전략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미국에 당당하게 맞선다. 새해 첫날 0시를 기해 불꽃놀이를 즐기면서 핵보유국으로서의 자부심을 한껏 고조시켰다. 둘째, 트럼프 정부의 남은 3년을 버틴다. 당면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 인민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강조했다. 셋째, 유일한 출로는 한국이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한·미 군사훈련 연기를 제안한 것은 북한 참여의 명분을 제공한 반전 카드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북한의 2018년 신년사가 새로운 남북관계의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다.

②베이징→평창 실크로드: 중국 외교부는 1월 2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환영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핵 위기가 진정돼야 미국의 대북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압박을 피할 수 있다. 북한 난민들이 국경지역으로 유입되는 급변사태도 예방할 수 있다. 북·미간 무력충돌시 어느 편에 서서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사드 문제로 인한 한국과의 앙금을 해소하고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의 성공도 담보할 수 있다.

1979년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따라 한·중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고심했었다.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전기를 마련해줬고, 1992년 한·중 수교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1석2조의 외교 성과를 거뒀다. 즉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가장 확고한 나라인 한국에 진출했고, 남북한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로 부상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은 북한이었다. 평창올림픽은 북핵 문제로 인한 북·중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③모스크바→평창 실크로드: 러시아는 소치올림픽 도핑 스캔들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평창올림픽 출전을 금지당했다. 도핑 이력이 없는 선수들만 개인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고 금메달을 따더라도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는 허용되지 않는다. 겨울스포츠 강국으로서 적지 않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극복해야 할 국제 현안이 산적해 있다. 당장 올해 월드컵을 성황리에 치러야 한다. 또한 크림반도 복속으로 인한 서방의 경제 제재와 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과는 제재 대상국이라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입장이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하지만 이면에서는 북한과 공조해 서방의 제재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미·러 관계가 북핵 갈등 때문에 신(新)냉전 체제로 회귀할 개연성도 있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일관되게 강조해온 러시아로서는 평창에서 남북한간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한반도 내 긴장이 완화되길 고대할 것이다.

사회주의 맹방, 북·중·러의 동상이몽

북·중·러 3국은 사회주의 맹방이지만 갈등과 화해를 반복해왔다. 그 중심에 한반도 문제가 있다. 한국전쟁, 서울올림픽, 한소·한중 수교, 북한 핵·미사일 등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합일점도 있었지만 동상이몽을 꾸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북한은 3대째 세습권력을 유지해오면서 중·러간 양다리 외교를 펼치는 틈새전략을 구사해왔다.

북한과 중국은 흔히 ‘혈맹관계’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에는 결코 회복될 수 없는 불신의 장벽이 있다. 중국군의 한국전 참전과 승리의 기록들은 오늘날 북한 역사에서 모두 지워져 있다. 1983년 한국전쟁 30주년 기념 <조선인민의 정의의 조선해방 전쟁사>에서 중국군의 참전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김일성이 자신의 정치신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항일운동부터 북한 현대사까지 역사 기록을 조작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참담한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북한 지도층은 이러한 중국 정서를 무시한 채 제멋대로 행동했다. 중국으로부터 푸대접을 받으면 잽싸게 러시아로 달려간다. 미·중 수교, 한·중 수교 때 그랬다. 특히 1979년 미·중 수교는 북한에는 ‘지구의 대반란’과 같은 충격이었다. 이른바 ‘피와 살이 응결’된 혈맹국이 미제국주의자와 손잡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김정일 시대에 북·중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1983년 6월 김정일은 중국을 수정주의라고 비난했고 덩샤오핑(鄧小平)은 격노했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에게 야단맞고 9월 중국에 가서 사과했지만, 마음속에는 호두처럼 단단한 반중(反中) 심리가 자라고 있었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 때는 덩샤오핑을 ‘중국의 고르바초프’라고 맹비난했다. 1993년 1~4월 압록강변에서 42차례나 도발하고 700발의 총탄을 난사함으로써 중국인 21명이 부상을 입었다.

중국 정부로서는 개혁·개방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한반도를 비롯한 주변국 안정이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원조를 지속하면서 북한을 조심스럽게 다뤘다. 그러나 중국의 대북 태도에는 분명한 선이 있었다. 양국간 약속을 불이행하거나, 국제적으로 중국 노선과 배치되게 행동할 때는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최근 시진핑-트럼프간 공조에 의한 대북제재 강화도 이러한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북·러 관계, 애증의 부침사

북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소련의 축소판이다. 흔히 북한과 소련을 ‘부자(父子)관계’로 규정한다. 하지만 양국 관계사를 보면 부침도 적지 않았다. 특히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10여 년간 소원한 관계를 지속했다. 푸틴 대통령이 2000년 7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체르넨코 집권 후 소련은 북한에 대한 정치·경제·군사적 지원을 대폭 늘렸다. 이러한 배경은 한·미·일 3각 동맹 강화에 대한 대응이었으나 실제로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1984년 5월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군사지원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북·소 관계는 ‘결연한 동맹’으로 재탄생됐다. 이 역사적 협상을 진두지휘한 건 김일성이 아니라 김정일이었다.

1985년부터 소련이 북한에 제공한 첨단무기는 미그-23, 미그-26기, SA-3 지대공미사일, AA-7 공대공미사일, 중·고도용 SA-6 미사일, 조기경보용 레이더 등이다. 소련 항공기가 북한 영공을 통해 중국을 정찰 비행하는 것도 허용했다. 중국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더 우수한 무기를 북한에 공여했다. 미그-29 전투기 30대, SU-25 전투기, SAM-5 미사일은 중국제에 비해 최소한 2세대 앞선 최첨단 무기였다. 이러한 지원도 한·소 수교 후 대폭 축소됐다. 북한의 내부 충격은 적지 않았다. 막강한 한·미 군사력에 맞서기 위해 소련이라는 ‘보호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 위대한 나라 소련이 한국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푸틴의 방북을 기점으로 북한의 외교축이 중국에서 러시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2001년과 2002년 김정일이 러시아를 연쇄 답방했고 ‘푸틴-김정일 우정의 노래’까지 공동 제작해 애창했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때는 러시아 측에 2시간 전에 미리 통보해줬다. 반면 중국에는 20분 전에 알렸다. 2012년 북·러간 최대 장애물이었던 북한의 대러 채무 110억 달러 탕감 문제가 합의됨으로써 양국은 본격적인 협력 모드로 진입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친러 입장은 더욱 심화됐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 때도 러시아에만 사전에 통보했다. 이 핵실험에서 주목할 점은 전자기펄스(EMP) 공격기술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EMP기술은 소련권으로부터 북한에 유입됐을 가능성이 제기됐으며 2000년대부터 러시아가 미국을 크게 앞질렀다는 평가다. 북한은 각국 지도자의 신년 연하장 접수 사실을 보도하면서 연속 4년간 러시아를 중국보다 먼저 호명했다. 북·러 관계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러 관계, 끝없는 주도권 경쟁

중·러 양국은 한국전쟁 때 지울 수 없는 심리적 갈등을 경험했다. ‘조·중 연합사령부’ 설치로 전쟁의 주도권이 소련에서 중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휴전협정 과정에서도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간에는 적지 않은 불협화음이 있었다. 1954년 마오쩌둥-흐루시초프 정상회담 이후 30여 년 동안 양국간 적대관계가 지속됐다. 중국 외교부의 비밀 지침서에는 소련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중국이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서둘러 수립한 것도 소련의 도전과 팽창 때문이었다.

1982년 4월 중국이 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면서 세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고르바초프는 덩샤오핑의 이러한 요구를 능동적으로 이행했다. 1988년 아프가니스탄과 네이멍구에서 소련군을 철수하고, 캄보디아에서 베트남 병력 5만 명을 철수시켰으며, 그 해 12월 중·소 국경 주둔군의 20만 병력 감축을 선언함으로써 양국 관계는 해빙무드로 접어들었다. 중·소 관계 정상화는 전지구적으로 대변혁 사건이었다.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권역별 세력구도가 연쇄적으로 재편됐다. 실용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덩샤오핑과,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로 대변되는 고르바초프가 만나는 지점에서 중·소 화해의 대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한반도 문제는 중·소간 쟁점 사항 중 하나였다. 1989년 중·소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남북한에 대한 기본 입장은 ‘첫째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공동 노력한다, 둘째로 남북한 2국 체제를 인정하고 한국과 경제교류 확대 및 정상적 외교관계를 수립한다, 셋째로 중·소의 대남 관계 개선에 상응해 미·일의 대북 관계 개선을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4강의 남북한 교차승인을 정착시킨다’는 것이었다.

중·소 관계의 정상화는 소련보다 중국의 승리였다. 왜냐하면 주변국들에 중국의 지위를 격상시키는 계기가 됐고, 특히 두통거리였던 북한의 친소화에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다. 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와 중국은 경쟁하면서도 상호 의존 관계를 지속했다. 중국의 고도 경제성장은 러시아의 원자재를 필요로 했고, 경공업이 낙후된 러시아는 중국의 생필품을 수입해야 했다. 국제 안보 현안에 대해서도 미국의 단일패권에 맞서 공조체제를 유지했다. 트럼프 정부는 작년 말 발표한 ‘신(新)국가안보전략’에서 중·러를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1962년부터 경제와 국방의 병진정책을 지속했다. 그러나 자원 배분의 불균형으로 방산 부문이 공룡처럼 비대해졌다. 경제구조의 왜곡과 자본의 만성적 결핍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 없이는 국가 기능을 제대로 유지시킬 수 없었다. 중국은 매년 대규모 식료품을 북한에 지원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었다. 북한 농업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심각하게 산성화된 토질 개선과 전면적인 관개시설 보수를 위해 비료와 중장비 지원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중국의 손길은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북·중간 교역량이 북한 대외무역의 90%를 차지한 지금도 이 문제는 미완의 과제다. 반면 소련의 대북 산업시설·공장 건설 원조는 1980년 대까지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였다. 소련은 1950~82년간 61개 대북 경협사업을 완성했다. 그래서 북한은 ‘몸은 소련의 등에 업혀 있으면서 중·소라는 두 유모의 젖을 먹고 자라는 아이’와 같았다.

중국이 개방정책을 가속화하면서 이념·체제적으로 사회주의권을 이탈해 자본주의 국가들과 손잡는 것은 북한을 불안하게 했다. 게다가 북한으로서는 중국이 ‘북한의 대미 관계 개선’을 돕지 않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못마땅했다. 그렇다고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북한 정권은 체르넨코 집권 후 친소화의 깃발을 높이 들면서도 반중국적 행동을 노골화하지 않았다. 북한이 견지해온 중·소 양다리 외교의 일면이다.

지난해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는 중국 국경까지 10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 날은 중국이 주최하는 BRICs 정상회의 개막일이었다. 그런데도 중국에 일언반구 귀띔도 없었다. 격노한 시진핑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9번째 대북제재에 동참했고 국유은행의 대북 거래정지 등 중국만의 독자적 제재도 병행했다. 김정은은 집권 후 외교의 축을 러시아로 이동시켜왔다. 러·북간 신(新)밀월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3평(평양→평창→평화) 실크로드 맵’의 전도(前途)

‘평양’이 ‘평창’에 동참함으로써 최소한 올림픽 기간 중에는 ‘평화’가 보장될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 종료 후 미국이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재개한다면? 북한의 반응은 불을 보듯 뻔하다. 김정은은 이러한 사태에 대비해 핵·미사일의 경량화·고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평양의 70층 아파트 골조를 74일만에 완공한 만리마운동의 속도전을 감안할 때, 북한의 핵·미사일 실전 배치도 서방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앞당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대북 군사옵션을 선택할까? 선택한다면 한반도는 재앙이다. 트럼프는 이러한 모험을 감행할까? 필자는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의 실행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와 압박은 실패했다. 미국은 1994년 1차 핵 위기 이후 사반세기 동안 제재와 회유를 반복했으나 결과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완성이다. 최근 북한은 한층 강화된 해상봉쇄 제재안을 피하면서 비공식 편법거래를 자행하고 있다. 대북사업과 연계된 전 세계 248개 해운사 중 160개가 홍콩의 유령회사에 등록돼 추적이 쉽지 않다. 러시아도 이를 방조할 수 있다. ‘북한은 풀뿌리를 먹더라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푸틴의 지적을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로 대북 군사행동에 임박해서 취해야 할 불가피한 조치들이 있다. 우선 한국 내 미군과 미국인 20만~30만 명을 대피시켜야 한다. 한·미 연합군의 데프콘(DEFCON)을 상향 조정하고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 인근으로 전진 배치해야 한다. 일본 내 유엔 후방사는 전시 준비상황에 돌입해야 한다. 이런 조치를 일사불란하게 비밀리에 진행시킬 수 있을까?

셋째로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대로가 더 좋을 수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아시아 순방 때 일본에서 168조원, 한국에서 84조원, 중국에서 284조원 등 총 536조원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세일즈던트’(Salesdent)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러한 호재를 버리고 군사옵션을 선택할까? 자칫 북한의 핵물질이 중동 등 제3세계로 이전될 위험성도 상정해야 한다.

물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로서는 김정은 참수작전 등 군사옵션을 부분적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러시아의 KGB 요원들을 초청해 만반의 신변 안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어떤 형태든 대북 군사작전은 북한의 보복과 확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북한은 본질적으로 위험 수용적(risk-acceptant) 체제다. 만일 미국이 군사행동을 개시하면 전면적이고 죽기 살기 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김일성은 1980년대부터 ‘중국을 통한 대미 접근’을 계속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984년 1월 북한은 자오쯔양(趙紫陽) 중국 총서기의 미국 방문 때 남북한-미국 3자회담 주선을 요청했다. 그러나 레이건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미국은 미군 유해 송환 및 대미 비난 선전 중단 등 전제조건 6개가 이행되지 않으면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1994년 1차 핵 위기 때도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 즉 코리아 패싱을 시도했다. 부분적으로 성공도 했다. 중국이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해 외교적으로 대만과의 관계를 완전히 역전시켰듯이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만 이뤄진다면 남북한 관계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북한의 끈질긴 미국 구애작전, 성공할까

오늘날 미국 입장에서 북핵 문제는 오히려 한·미·일 관계의 일체감을 조성하는 호재다. 대북 관계 개선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핵 문제를 대미 접근의 ‘한 고리’로 간주했다. 김정은도 ‘핵단추가 책상 위에 있다’며 미국을 자극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에 트럼프는 ‘내겐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다. 실제 작동한다’고 응수했다. 미국과 북한은 적어도 겉으로는 치열한 기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2017년 5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북미국장이 미국의 토머스 피커링 전(前) 유엔대사와 비공식 회담을 가졌다. 미국의 요청으로 웜비어를 석방했다. 웜비어가 본국 송환 후 4일 만에 사망함으로써 오히려 미국 측의 분노를 자극했다. 현재로서 미·북간 접촉은 답보 상태다. 북한 신년사에서 3년만 버티자는 것은 미국 대선과 트럼프의 재선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북한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미간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되면 6자 회담에 복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끈질긴 구애에도 미국이 무관심하다면 김정은은 ‘로켓맨’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및 핵무기의 실전 배치에 성공한다면 미국은 어떤 입장을 견지할까? 트럼프 정부는 ‘신(新)국가안보전략’ 대로 북한을 ‘압도적 힘으로 제압’할까?

북·미간 대화는 중국과 러시아도 환영하는 입장이다. 특히 러시아는 극동시베리아 개발을 위해 역내 안정이 필요하다. 중국에도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바람직하다. 현재로서 3평(평양→평창→평화) 실크로드 맵의 전도는 어둡지 않다. 우리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플랫폼으로 삼고 푸틴-김정은간 신(新)밀월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하면 ‘한반도 운전대’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박종수/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前 러시아 공사

*이 글은 <월간 중앙> 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필자 주

박종수  chongsoo03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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