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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동아시아 역사의 전환에 일본의 동참을 촉구한다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 진단’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8.03.2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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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수용의 충격과 미·일관계의 동요

올해 들어 남북한이 이룬 해빙 무드가 동아시아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편승한 것이 아니라, 남북한의 주체적 역량으로 이룬 것이다. 주변 강대국에 한반도의 자율의지를 포박당한 19세기 근대사 이래 유례가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이 새로운 흐름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본류를 형성해 가고 있다는 것은 일본의 태도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남북대화가 지속되고 북·미 대화의 가능성을 점치면서도 이는 예비적 협의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미국을 통해 상황을 조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은 북한의 ‘미소외교’가 한·미·일 연계를 허물려는 의도라고 보고, 줄곧 남북 화해 분위기를 경계하며 견제하고 있었다. 대북 특사단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뒤에도 이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며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었다. 아베 총리는 모리토모 스캔들의 재연으로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와중에서도,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북한이 대화에 응했다고 해서 제재를 완화하거나 대가를 안겨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한국 정부의 대북 대화노력을 견제했다.

한편 일본은 3월 8일 칠레에서 자신이 주도한 TPP11에 서명하고, TPP에서 이탈한 미국의 참가를 유도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아베 총리는 외교 분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교사를 자부하고 있었다. 그랬던 일본이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대화 요구를 일본과의 사전 협의 없이 전격적으로 수용한 데서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는 가히 상상이 간다.

지난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직전 평창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청와대

아베 총리는 북·미 정상회담 수용에 대한 발표가 있던 9일 오전 방미를 즉각 결정하고 미·일 전화회담을 통해 4월초 방미 방침을 전했다.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전에 미국을 통해 한반도 상황에 개입하여 속도를 조절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한편 일본 외무성 간부들은 방미 특사단의 북·미 정상회담 일정 발표로 ‘완전히 국면이 바뀌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북·미간에 대화가 개시된다고 해도 예비적 회담이 상당한 시간 길게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북·일간의 대화가 개시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납치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북한이 압력에 굴복한 형태로 대화의 장에 나오는 것을 상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 개최의 가시화로 대화 속에서 북한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러시아와 중국이 북·미 대화를 지지하고 환영하는 가운데 일본이 수위조절에 집착할 경우, 국제적 해빙 무드에서 외톨이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일본은 1991년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을 처음 시작했을 때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미국 및 한국과 보조를 맞춰 국교정상화 교섭의 속도를 조절했다. 그러다가 카터 대통령의 전격적인 방북과 이후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 일련의 협상과정에서 국외자가 된 적이 있다. 2008년 10월에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가 지정을 해제했는데, 당시 납치문제로 지정해제를 반대하던 일본에게 미국이 이 사실을 통보한 것은 라이스 국무장관이 지정해제에 서명한 것과 거의 동시였다. 영변 냉각탑의 폭파에 대해서도 일본은 CNN 뉴스로 알았다는 후문이다. 납치문제에 집착하는 일본을 제외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작용한 것이다. 이후 일본은 안보 역할의 확대를 통해 미·일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미·일관계에서 더 이상의 서프라이즈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또 다시 ‘일본 패싱’을 우려하게 된 것이다.

일본 외교의 전환과 북·일 수교의 전망

3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서훈 국정원장이 고노 외상과 아베 총리에게 방북, 방미 성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태도변화가 확인되었다. 13일 아베 총리와의 회담은 당초 15분으로 예정되었으나 1시간을 넘겨 진행되었다. 아베 총리는 이 자리에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고 납치문제 해결에 협력을 요청했다. 14일에는 스가 관방장관이 북·일 교섭의 용의가 있다고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발표 이래 진행된 두 달 동안의 변화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수용으로 불가역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음을 일본이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3월 16일,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40분간 전화 회담을 하는 가운데. 4월 말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납치문제를 논의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납치와 핵·미사일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북·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북·일간의 직접 대화에 의욕을 보였던 것이다. 같은 시간 방미 중이던 고노 외상은 펜스 부통령,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회담을 갖고 ‘북·미 정상회담에서 납치문제를 다뤄줄 것’을 요구하고,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보일 때까지 최대한의 압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존의 방침을 확인했다. 북·일간 대화를 위한 포석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도 대일 협상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3월 8일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가 일본군의 조선인 위안부 학살 영상을 공개한 사실을 들면서 관련 단체 대변인 명의로 “일본의 특대형 반인륜적 성노예 범죄에는 절대로 시효가 있을 수 없다”고 비난한 것을 보도했다. 또한 스가 관방장관이 북·일 국교정상화의 가능성을 언급한 뒤 3월 17일에는 로동신문이 ‘일제 야수들의 특대형 반인륜적 죄악을 만천하에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이들 기사는 북한식 어법으로 북·일 국교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며, 북·일 협상을 염두에 두고 기선제압용으로 발표된 것이다. 식민지 지배 청산 문제를 들어 납치문제 제기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며, 북·일 국교정상화의 과정이 북·미 협상과 별도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신호이다.

지난 5일 북한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북·미 대화의 전망과 북·일 수교의 효과

최근 볼턴의 백악관 안보보좌관 지명으로, 평소 볼턴의 지론인 ‘선 핵 폐기, 후 수교’의 리비아 방식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일 국교정상화는 이를 보완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리비아 방식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해 왔다. 리비아는 핵 폐기를 선언하고, 미국과의 수교를 이루었으나, 약속되었던 경제제재 해제조치와 경제협력을 받지 못하고 5년 후에 정권이 붕괴하고 말았다. 북·미 수교와 함께 북·일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북·일 평양선언’에 약속된 경제 지원이 리비아 프로세스를 회피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보증하는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식 정상국가화의 가능성을 전망하기도 한다.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한 베트남 모델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이 사회주의공화국 출범 이후 10년 만에 ‘도이모이’라는 이름의 개방정책으로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과 베트남의 국교정상화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73년 베트남전쟁의 평화프로세스에 대해 합의하는 파리협정이 체결되자 바로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남)과 국교를 정상화했으며, 1975년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성립하자 바로 하노이에 대사관을 설치했다. 1970년대 초반의 일·월 국교정상화는 일본이 미국의 범위를 넘어 이룬 자주외교의 대표적 성과로 꼽히고 있다. 이는 일본 외무성의 오랜 정지작업이 이룬 성과였다. 미국이 베트남과 국교를 정상화한 것은 1995년이었다.

일본 외교의 기민함은 중국과의 국교정상화에서도 확인되는데, 1972년 2월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자 일본은 일본의 머리 위로 이루어진 미·중 화해에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1972년 7월 다나카의 방중으로 전격적인 국교정상화에 합의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미국의 범위 밖에서 외교적 대안을 살려 놓는 일본 외교의 준비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사실 아베의 외교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발견된다. 겉으로 보기에 미·일 동맹에 올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베의 외교도 러시아와 북한을 상대로 차후의 가능성에 대비한 외교를 전개해 왔다. 러시아와의 평화조약,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는 일본의 정치가라면 누구나 탐을 내는 업적이며 아베 총리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더구나 납치문제를 해결하고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이룰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던 아베 총리는 대북 창구를 열어놓고 기회를 보고 있었다.

일본에는 대북외교의 자산도 풍부하다. 민간 영역, 지방자치체 수준에서 북한과의 교류를 꾸준히 추구해온 단체가 적지 않다. 지난 2월, 후쿠오카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100명 규모의 초당파 지방의원 방북단을 파견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기타하라 마모루(北原守) 후쿠오카현 일·조우호협회 회장이 그 중심에 있었다. 후쿠오카현 일·조우호협회는 2008년 5월에 발족했으며, 이미 10년째 방문 행사를 이어오고 있는 단체이다. 반북 여론에 움츠려 있던 이들이 ‘공기’가 바뀌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납치 일본인 가족들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북한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23일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사진에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는 친필 사인을 해서 보냈다. ⓒ청와대

한반도 평화 구축과 일본의 역할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2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한반도 대전환의 시대와 맞물려 그 의미가 다시 주목받는다. 당시 선언은 두 가지 내용이 중심이다. 하나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를 안겨준 데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하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이 전후 일본의 평화적 발전과 기여를 평가한다는 내용이다. 남북화해와 동시에 진행될 동아시아 평화프로세스를 염두에 둔 김대중 대통령의 원려(遠慮)에서 나온 것이다. 이후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2002년에 북·일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것에서 한반도 평화 만들기에 일본의 일정한 역할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협정의 기본 당사자는 한국전쟁을 직접 치른 남북한과 미국·중국이지만, 일본과 러시아가 중요한 행위자로 개입해 있었다는 것을 도외시할 수 없다. 소련은 북한의 전쟁 계획을 승인하고 지도했으며, 휴전협상에도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에서 전쟁의 숨겨진 당사자이다. 일본 또한 미국의 점령 하에서 아직 외교 주권을 회복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서구 자유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자발적으로 미국의 전쟁에 적극 협조했다. 그 협조의 범위는 전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 걸쳐 있었다. 후방기지 일본에서 전쟁 물자 및 인원의 수송 등에 직접 관여한 노무자만도 약 8,000명이 ‘참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일본은 한국전쟁 이후의 정치회담에 참가할 것을 기대했으나, 국제법상 ‘참전국’의 자격을 얻지 못해 결국 제네바정치회담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일본은 한반도의 현상유지, 즉 통일도 전쟁도 없다는 것을 전제로 외교정책을 구상하고 전개해 왔다. ‘한반도 유사’를 전제로 한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이러한 사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일본이 한국전쟁의 숨은 참전국이며, ‘한반도 유사’에 일본이 얽혀 있다는 것은, 한반도 평화에 일본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 하나가 북·일 국교정상화이다.

북·일 수교는 식민지 지배 책임의 최종적 불가역적 청산

아베 총리는 요즘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이 공문서 조작 사건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약식 헌법개정안을 제출해서 이를 돌파하려 하고 있지만, 오랜 숙원인 헌법 개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위기는 2018년 일본 국내정치를 줄곧 달굴 기세로 번지고 있는데, 설사 이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여 올 가을에 자민당 총재 3선을 달성한다고 해도 2019년 천황 퇴위와 참의원 선거, 2020년 도쿄 올림픽 등이 기다리고 있고, 2021년에는 자민당 총재 임기 만료로 정권의 구심력은 심각하게 약화되어 헌법 개정은 여전히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 대신 다른 분야에서 정치적 업적을 세우려 한다면, 러·일 평화조약과 북·일 국교정상화가 있을 수 있다. 아베 총리는 2021년 러·일 평화조약 체결을 목표로 대러 경협을 추진해 왔으나, 영토문제에서 4개 섬의 일괄반환 요구를 내리지 않는 이상 푸틴을 상대로 성과를 얻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일거에 업적을 올리려 한다면 북·일 국교정상화에 눈독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북·일 수교를 정치적 위기 해소와 업적 올리기의 야심으로 추진한다면 동아시아 역사의 정의로운 전개에서 일본은 영영 주변국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북·일 수교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 구축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각오로 대전환의 시대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식민지 지배의 부정적 역사를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청산하는 길이다.

*본 칼럼의 저작권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 있습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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