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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타령 그만하고, 공북·화북으로 가자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페이스북 통해 '종북(從北)' 폐기 주장


   
▲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며칠 전 어느 교회에서 초기 선교사들에 대한 강의를 했다. 그 강의 끝에 한 분이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대한민국’을 강조하고, ‘선교를 제국주의 침략으로 간주하는 종북 세력’ 운운하는 자기 과시적 질문을 했다. 답하면서 대한민국이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1948년에는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기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하면서 여러 증거들을 댔다. 이것은 이승만을 비롯하여 1948년 당시 정부 수립에 참여한 주체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종북’세력 운운한 질문에 대해서는 ‘종북(從北)’이 구체적으로 무얼 말하는지를 되물었다. 그 분은 ‘대한민국을 부인하고 태극기와 애국가를 사용하지 않는 세력’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나는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사람이 현재도 한국안에 존재하느냐고 묻고, “태극기와 애국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작년 총선 이후 일부 진보세력에 의해 확인된 것이지만, ‘종북’이란 말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활개를 쳐 온 것이 아닌가, 작년 총선 이전에 ‘종북’이란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를 말해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그러나 그 분은 답을 하지 않았다. 답을 할 수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종북’이란 단어는 ‘북을 따른다’는 뜻 외에 그 정의가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채, 대북 햇빛 정책 이후에 나타나 주로 진보적인 세력을 엮어 공격하는 ‘테러적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 분에게 대답하면서, ‘종북’ ‘공북’을 거쳐 ‘화북’으로 가야 한다고 말장난 같은 말을 했다. 이 단어들은 북(北)이란 말 앞에 한자수식어를 붙인 것이다. 이 밖에도 수식어를 더 붙일 수 있지만, 이 정도로 정리하여 말을 풀어갔다. 위의 말 중 종북(從北)이란 말 이외는 필자가 지어낸 말이다. 종북이란 말이 사전에 실려 있는지는 몰라도, 이 단어만큼 괴력(怪力)을 발휘해온 말도 없다. 선거 때만 되면 서슬퍼렇게 날을 세워 앞뒤 가리지 않고 난도질을 해 댄다. 때문에 종북이란 말이 평화와 통일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옆에 두어야 할 말인지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종북(從北)은 말 그대로는 ‘북(의 주장)을 따른다’는 의미다. 이 말은‘좌빨’이란 말과 함께 흔히 사용되고 있다. ‘종북 좌빨’, ‘북을 따르는 좌익 빨갱이’쯤으로 이해해서 틀리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파괴력이 큰 만큼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종북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에게도 무얼 종북이냐고 물으면 정확한 답변이 나올 수 있을까. 앞서 말한 그 분도 거침없이 ‘종북’이란 말을 내뱉었지만 막상 물었을 때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북의 무엇을 따른다는 말인가. 북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태극기를 사용하지 않으니 남쪽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종북’이라고 그는 말했다. 남쪽에서 태극기 걸지 않고 애국가 부르지 않는 사람이 왜 진보측 사람들뿐이겠는가. 진보측의 그런 행동을 추호도 변호할 생각이 없지만, 애국가 태극기와 관련하여 ‘종북’이라고 낚인 찍는다면 ‘종북’을 외치는 사람들도 때로는 태극기 애국가와 관련하여 ‘종북’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간혹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들이 주최하는 예식에서 애국가 제창을 생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외국인들은 애국가니 태극기에 아예 관심이 없을 터이니 설마 그들에게 ‘종북’의 딱지를 붙이지는 않을 것이다.

‘종북’이 북(의 주장)을 따른다는 의미라면, 남쪽에는 ‘종북’ 현상이 없을까. 북은 세습 때문에 비판과 비난을 가장 많이 받는다. 3대 세습을 두고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표면으로 비난하지 않는 사람도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남측에서는 북의 그런 세습행태를 따르는 곳이 없을까. 있다. 세습현상이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데가 재벌과 대형교회다. 요즘은 굳이 세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돈이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 좋은 대학과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고 있다고 한다. 북과 거의 비슷하고 북을 본받았을 지도 모를 세습을 두고 ‘종북’이라고 부르는가. 그렇지 않다. 그걸 ‘종북’과 연계시키지 않았고, 그런 행위를 ‘종북’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 대형교회의 목사들 중에는 ‘종북’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도 세습을 감행하는 그들 자신을 향해서는 북의 세습과 닮았다고 말하지도 않고 더구나 ‘종북’이란 말도 쓰지 않는다. ‘종북’이란 말은 이렇게 진영논리에 충실히 서 있다.

공산주의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붉은 색깔(적색)은 또 어떤가.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면서 이마에 붉은띠를 매었을 때, 그걸 공산당과 동일시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한 때 붉은색깔 사용이 공공적인 데서는 금지된 적도 있었다. 붉은띠만 봐도 격렬한 반응을 일으킨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붉은 색깔을 사용한다고 해서 ‘종북’과 연계시키지 않는다. 지난 해 총선과 대선에서 붉은 색깔은 나라 전체를 누볐고, 그들은 그 색깔로 완승했다. 공산당과 ‘종북’의 상징이 이제 승리의 상징처럼 되었다. 선거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고 최근의 야구의 10구단 선정에서도 회장부터 붉은 색깔 옷을 입고 나왔던 KT가 쟁취했다. 만약 유신 때에 붉은 색 사용을 공공장소에 사용금지한 것을 알았다면 새누리당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이제 대한민국에서 ‘붉은 색’은 승리의 상징이지 공산당이나 ‘종북’과 연계시킬 수가 없게 되었다. 과거에는 ‘붉으스레’하기만 해도 종북에 좌빨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만약 새누리당에서 그 색깔을 사용하지 않고 진보진영이나 제1야당에서 붉은 색깔을 사용했다면, 언론매체나 대형교회들에서 어떻게 반응했을까. ‘레드 컴프렉스’에 빠진 그들은 당장 ‘종북좌빨’로 규정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를 ‘레드 컴프렉스’에서 해방시켜준 새누리당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몇 년 전 서울시장 보권선거를 기억하고 있다. 진보적 색채를 띈 후보를 두고 ‘종북’세력으로 몰아 얼마나 난타했는지 모른다. 보편적 학교급식이나 반값등록금정책을 두고도 ‘종북’에 ‘좌빨’이라고 이를 갈았다. 그런데 작년말 대선 전후의 박근혜 당선인이 제시했던 공약은 과거 ‘종북’으로 낙인찍은 이들의 정책을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좌클릭’을 했다고 지적된다. 0-5세까지의 전면무상보육이나, 노인들을 위한 기초노령연금, 4대 중증질환 무료진료 등에서는 과거 ‘종북 좌빨’세력의 주장을 무색케 하고 있다. 이런 호재를 두고는 과거 ‘종북’타령을 하던 이들이 왜 침묵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분명하게 된 것은 ‘종북’이라는 비난도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한 기준에 입각하여 ‘종북’을 따지는 것이 아니고 어느 쪽이 하느냐에 따라서 ‘종북’이 결정되는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그가 하면 스캔들이라는 식이다. 파스칼의 빵세에 의하면, 강 이편과 강 저편에 따라 가치관이 결정되는 현상이다. 이중 잣대를 사용하는 것이다. ‘종북’타령을 하는 이들의 이중적인 잣대가 어찌 여기서만 사용되겠는가. 무능국방과 관련, ‘노크귀순’을 보고도 ‘가스통 할배들’조차 묵언수행을 계속하지 않는가. 원칙을 잃어버린 ‘종북’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래서일까, 이 땅의 극우 논객 한분은 새로 태어난 대한민국이 “종북(從北)을 종북(終北)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 종북(終北)이란 말이, 그럴 리야 없겠지만, 종북(從北)을 마치(終)도록 하는 예언이었으면 좋겠다.

질문에 답하면서,‘공북’이란 말을 사용했다. 같은 ‘공북’이란 말도 한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공북(恐北), 공북(攻北) 그리고 공북(共北)이다. ‘공북(恐北)’은 북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북한과의 문제가 터졌을 때, 이 땅 최고위층의 병역미필자 몇 분은 청와대 벙커를 사용했다는 전언이 있었다. 그들이 북을 두려워해서 그렇게 했다고는 결코 믿기지 않기에, 이것이 ‘공북(恐北)’에서 나온 행위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들이 벙커에 들어갈 형편이었으면, 국민들에게 먼저 ‘국가적 위기’를 알리고 같이 벙커에 들어가자고 했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그런데 두려움이 많은 자는 역으로 공격적일 수도 있다. 이게 북을 공격하려는‘공북(攻北)’이 된다. 그래서 ‘공북(恐北)’이 때로 ‘공북(攻北)’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공북(恐北)’자의 공격성은 허장성세일 수도 있다. 6.25 직후에도 허장성세를 부렸던 이승만과 국방관계자들의 일화는 지금도 조롱거리다.

‘공북(攻北)’은 무력 사용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무력을 통해서는 평화통일을 기할 수 없다. 그것은 6.25가 입증해 주었다. 한 때 ‘북한붕괴론’을 만지작거리면서 그 때를 대비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붕괴한다고 해도 휴전선에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엄연히 북도 유엔에 가입한 나라요, 중국과의 관계가 어떤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붕괴’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통일 접근성에서 어렵지만 더 빠른 길이 있다. 그게 ‘공북(共北)’하는 길과 그 다음 단계로 ‘화북(和北)’하는 길이다. ‘공북(共北)’은 북과의 공존을, ‘화북(和北)’은 북과의 평화를 모색하는 길이다. 공존하면서 평화를 모색하는 것, 이것이 평화통일의 길이다. 대화와 타협이 때로는 어설프게 보이겠지만 그게 승리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 날 저녁, 질문이 계속되면서 어느 분은 연평도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어떻게 화북(和北)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 대답은 질문하신 선생님이 갖고 계실 것”이라고 하고, 꼭 필요하다면 강의 끝난 후에 대화시간을 갖자고 했다. 과거 연평도 사건에 비길 수 없는 엄청난 6.25 동족상잔을 겪고서도 남북이 다시 만났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또 ‘화북(和北)’‘화남(和南)’의 길에 대해서는, 포탄이 오가는 극단적 대결 속에서도, 화해와 인내로써 교류해야 하는 길 외에 뾰쪽한 수가 없다고 말해야 하는 자신도 안타깝다.

필자는 평소 개성공단 같은 남북협력사업을 열 개만 만들 수 있어도, 평화통일의 시동을 거는 것이며, 백개를 만들 수 있다면 통일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무력대치보다는 서해안에 평화지대를 만들고 금강산관광 벨트를 확충하여 남북이 공생의 길을 마련하는 길은 후손에게 통일의 희망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기업에 활력을 주고 통일비전을 가진 젊은이들에게는 남북협력을 통한 일자리 창출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올해 계사년(癸巳年), 새로 들어설 대통령은 남북관계와 통일을 전망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여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풀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1주갑(60년) 전 계사년에 체결된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승화되도록 간절히 기대한다. 이것이 ‘화북(和北)’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길의 하나다. 편파적이고 진영논리로 오용되고 있는 ‘종북(從北)’이란 말은 역사적 유물로 안치하고, ‘공북(共北)’‘화북(和北)’의 길을 모색하는 새 정권이 창출되기를 기원한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만열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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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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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aaa 2013-01-27 02:10:18

    음. 제 생각은 개성공단10개 혹은 100개 보다는 탈북자분들을 더 따뜻한마음으로 감싸주는게..
    오히려 통일의 첫걸음이라 봅니다..
    그리고 탈북자분들을 변절자라 욕한 분들이 지금도 있는데,,솔직히 믿음이 안갑니다.. 두려워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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