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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정부’가 탈북민을 끌어안아야 하는 이유

지난 2월, 미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내 집무실 오벌 오피스로 탈북민 8명을 초청하여 이들의 아픔과 용기에 공감을 표현하였다. 참석자 중 누군가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미국의 독자적인 움직임에 깊은 감사를 표했고, 또 다른 이는 최근에 획득한 미국 시민권에 대해 미국 국민이 되어 매우 영광이라며 감격해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하고 환상적인 일이라고 화답했다.

혹자는 이런 자리 자체가 남북한 대화와 해빙 무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려스럽게 볼 여지도 있으나, 탈북민 지원 사업의 현장에서 오랜 기간 이들을 지켜 본 필자의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혹은 미국에 대한 탈북민들의 감격에 관하여 수용되는 대목들이 있다.

2013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컨퍼런스의 연사이자 《The Girl with Seven Names(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의 저자인 이현서 씨는 이날 배석한 자리에서 북한을 떠난다는 것은 어떤 나라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우주를 떠나는 것과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분단 이후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 3만 2천명, 우리 사회는 이미 형성된 ‘떠나온 우주’에 관한 그들만의 정서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들의 감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7개월 전 북미 양국의 지도자가 주고받았던 거친 언사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모처럼 찾아온 한반도의 봄은 냉전적 시각에서 분단을 사유해왔던 우리의 반색을 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실은 저마다의 이유로 그 이상의 진전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한 사람들은 평화협정으로 전쟁 리스크가 속히 종식되기를 기대하며, 일부 탈북민들은 생각보다 이른 시일에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상대와의 긴장된 관계에서 해빙무드로 이완되는 과정에서는 상대의 치부를 드러내거나 공략하지 않는 외교관례가 있다. 극비리에 이루어진 폼페오 CIA 국장의 평양 방문에 이은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선언 환영 발표로 2018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나아가 평화협정과 북미수교로 이어질 거라는 낙관론도 등장하고 있다. 때문에 북미회담의 가교역할을 자임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메인디쉬로 탈북민과 북한인권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협상전략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부분을 탈북민들도 일면 이해하고 있다.

다만 적절한 시기에,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은 국내외로부터 지지를 획득한 외교적 자신감을 기반으로 국내에 정착 중인 탈북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무연고 탈북 청소년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이들의 삶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등의 정책적 퍼포먼스를 고려할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도모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한반도 긴장 이완의 흐름상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대목이긴 하나,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김정은 정부로부터 남한 내 탈북민에 대한 우회적인 지지를 끌어내거나 국제사회에 북한인권상황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역 제안할 수도 있다. 향후 추진될 가능성이 유력한 이산가족 상봉시 분단 이후의 실향민인 탈북민 가정을 포함시키는 것도 고려 대상이다. 이러한 제안들은 파격의 파격을 거듭 중인 남북대화 국면의 진전 정도에 따라 바게닝 칩(bargaining chip)으로서 부가적 의제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탈북민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경기서북부하나센터 개소식이 지난 3월 21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렸다. ⓒ통일부

기본적으로 탈북민들은 독재정권의 피해를 입은 자들이며 숨길 수 없는 분단의 후과(後果)이다. 더군다나 남한사회 내 소수자 진영에 머물러 있어, 한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한 진영의 역사와 그 역할에 합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은 한국 국민이기 이전에 탈북민인 것이 아니라, 탈북민이기 이전에 한국 국민인 것이므로 고향 땅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정치적인 고려로 쉬이 생략되어서는 곤란하다.

그간 목도한 바와 같이 탈북민 아젠다는 보수 진영에 선점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UN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립을 끌어내며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험난했던 역사를 알리는 데 기여한 측면은 인정받아야 한다. 다만, 전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아젠다 세팅과 프로세스가 여러 단체들의 진정어린 활동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옷을 빌려입은 채, 응보적 관점과 해석에 머물렀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해당이슈는 정치적 국면에서 정체되거나 사안의 접근방식이 제한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탈북자'라는 소수진영에 가두어 그들의 아픔을 종편 등의 일부 미디어를 통해 곡해하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혹은 안보 아젠다로 활용하기에 급급했다. 이런 연유로 북한주민들은 보통사람의 꿈을 안고 분단 이후 끊임없이 우리 사회를 노크해 왔음에도, 대중은 이들을 이웃, 소시민이라는 관점 이전에 ‘냉전의 스페셜리스트’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탈북민 커뮤니티 내에서도 이런 고정된 시선에 대해 불만어린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전 국민의 70% 지지를 받는 현 정부가 이들에게 적용되던 보수-진보 프레임에 손수 균열(crack)을 내어주길 바란다. 그리하면 진보진영은 탈북민 문제를 외면한다는 세간의 오래된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다. 필자가 경험한 북한이탈주민은 그리 정치적이거나 계산적이거나 진영 논리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이기에 이와 같은 정부의 노력에 고마움을 표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진보 정부-탈북민 커뮤니티 모두 각자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 국내 정치 지형에서 해당 이슈에 관해 수세적이었던 여권의 전략적 과제로서도 숙고해 볼 대목이다.

전망컨대 탈북민 이슈는 안보, 인권, 소수자적 인식을 넘어 통일 준비 과정에서 우리 생각 이상으로 파급력있는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차원의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개념의 원용, 진보진영이 탈북민을 대상으로 침묵했던 과거를 청산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한기호/ 탈분단 칼럼니스트

*본 칼럼의 저작권은 블로그 ‘분단사회’에 있습니다. 

한기호  kyosom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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