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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의 현장에서 하나의 유럽을 배우다유럽 아카데미 연수기(1)

(사)뉴코리아와 코리아연구원이 공동 주관한 ‘유럽 아카데미 연수’가 6월 25일(월)부터 7월 5일(목)까지 진행됐다. 독일, 프랑스, 룩셈부르크 3국을 오가며 이뤄진 이번 연수에는 김해순 박사(전 독일괴테대학교 한국학과 학과장)가 코디네이터로 참여한 가운데 목회자와 시민단체 활동가, 일반 시민 등 24명이 동행했다. 유럽의 통합과 독일 통일 과정을 배움으로써, 한반도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키운 이번 연수를 2차례에 걸쳐 나누고자 한다.

유럽 아카데미 연수가 독일(오첸하우젠, 트리어, 자르브뤼켄), 프랑스(스트라스부르, 파리), 룩셈브루크(솅겐)에서 6월 25일부터 7월 4일까지 진행됐다. 사진은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 본부 건물 ⓒ유코리아뉴스

25일 오후 5시, ‘유럽의 관문’으로 불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에 도착했다. 목적지인 유럽 아카데미 오첸하우젠(Europäische Akademie Otzenhausen)은 이곳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 공항으로 마중 나온 엘리자베스 슈미츠 박사와 함께 옛 켈트족이 살던 오첸하우젠으로 향했다. 독일에서도 가장 숲이 발달했다는 자를란트주에 속한 도시답게 학술원은 온통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1954년, 프랑스와 독일 청년들의 교류를 돕는 시민운동 조직으로 출발한 유럽 아카데미 오첸하우젠은 마찬가지로 프랑스와 독일의 연대가 중요한 동기였던 유럽연합과 궤를 함께한다. ‘다양성 존중’이라는 대원칙 아래 ‘하나의 유럽’을 꿈꾸며, 유럽 시민들이 유럽인(European)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게끔 노력해왔다. 슈미츠 박사는 “1-2주씩 진행되는 세미나에 매년 9천 명가량이 다녀간다”고 소개했다.

1954년, 프랑스와 독일 청년들의 교류를 돕는 시민운동 조직으로 출발한 유럽 아카데미 오첸하우젠은 현재 유럽의 통합을 교육하고 다양한 심포지엄을 통해 유럽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비영리기관으로 발전했다. 이곳에서 진행하는 1-2주 단위 연수 프로그램에는 매년 9천 명가량이 참가한다. ⓒ유코리아뉴스

동독 교회의 역사를 통해 본 독일 통일

도착 다음 날, 오전부터 세미나가 열렸다. 루터교 목사이자 하이덴부르크대학에서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가르쳤던 토마스 버그홀쯔 박사가 ‘독일 통일과 개신교’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주로 동독 개신교의 역사와 통일 과정에서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었다.

“독일은 1919년 민주헌법 제정으로 교회와 정치를 분리했지만, 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은 이후에도 막강했다. 분할되기 전, 동독 지역의 국민 95%가 개신교인이었다. (공산당을 중심으로 개편된) 사회주의통일당(SED)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지만, 실제론 종교 억압 정책을 펼쳤다. 이에 저항하던 교회는 1980년대 이후 평화단체들이 받아들이면서 (일당독재 체제 속에서) 당에 반대하는 유일한 세력이 되었다. 이것은 니콜라이교회의 평화기도회에서 촉발된 대규모 비폭력 시위로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이후 종교 지도자들이 상황을 수습하게 되는 일련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버그홀쯔 박사는 당시 자유선거(1990년 3월)를 기획한 국가 단위 조직에 8명의 목사가 포함되면서, 동독에 ‘목사공화국(Republic of Pastors)’이란 별명이 붙은 일화도 소개했다. 그런 만큼 독일 통일 과정에서 개신교, 특히 동독 교회의 역할을 빼놓을 순 없으리라.

한편, 1990년 3월 실시된 동독 최초의 자유선거에선 서독과 조기 통일을 주장한 세력이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버그홀쯔 박사는 “당시의 선거 결과는 주민들이 경제적 발전을 원한 탓도 있었지만, 더 이상 교회가 지배하는 국가를 원치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재 독일 사회에서 개신교는 사회복지를 통해 디아코니아 신학을 실천하고 있다. 카리타스(가톨릭)와 함께 대표적인 민간복지단체로 꼽히는 디아코니아(개신교)는 복지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자동차 산업의 3배)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흡사 옛 동독의 종교 지형처럼 90% 이상이 개신교도인 이번 유럽 아카데미 연수팀에겐 ‘종교적 가치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이 주어진 시간이기도 했다.

둘째 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출신인 볼프강 파페(Wolfgang Pape) 박사가 ‘유럽연합과 두 개의 한국’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유코리아뉴스

최초로 시도된 국가들의 연합 ‘EU’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 세미나를 이어갔다. 변호사이자 유럽연합의 집행위원회 출신인 볼프강 파페 박사가 ‘유럽연합과 두 개의 한국’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그는 서두에서 “판문점 선언에서 나온 ‘하나의 국가’(One nation)라는 말이 흥미로웠다”며, “남한과 북한은 모두 유엔가입국인데, ‘하나의 국가(Nation)’가 아닌 유럽연합처럼 ‘국가들(States)의 연합’이 돼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회원국들(Member states)이 개별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주권을 양도하는 초월적 거버넌스’인 유럽연합을 설명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파페 박사는 국가명을 각 국가의 언어로 표기한 유럽연합 지도를 통해 개별국가의 정체성, 혹은 문화적 차이를 유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이어서 “그렇기에 유럽연합은 다양성과 평등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며, 실천으로 이어진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24개의 공용어. 유럽연합의 모든 문서는 반드시 회원국들이 사용하는 24개 언어로 써야 한다는 원칙이 놀랍기까지 했다. 우리 사회는 언제쯤 다양성과 평등성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를까.

파페 박사는 또 “유럽연합은 역사상 최초로 군대 개입이나 전쟁 없이 국가와 국가가 서로의 주권을 통합한 사례”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금도 유럽연합은 강력한 경제공동체로서 갖는 힘(또는 이익)에 기반해 전쟁 논리에서 벗어나 있다. ‘어떻게 강력한 군사력 없이 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는가?’ 남북이 오랜 군사적 긴장 관계를 이어온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 사이에 유독 많은 질문이 오갔다.

 

경계도시에서 중심도시가 된 스트라스부르 여행

셋째 날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두 시간 거리의 스트라스부르로 향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으로 유명한 알자스 지방인 이곳은 오랫동안 수난의 역사를 경험한 지역이다. 프랑스-독일 전쟁으로 원치 않게 수차례 국적이 바뀌는 동안, 소설의 내용처럼 국어교육을 금지당한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스트라스부르는 ‘유럽의 수도’라고 불린다. 독일, 프랑스, 룩셈부르크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자, 유럽연합의 다양한 기구(유럽의회와 유럽인권재판소, 유럽평의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유럽의회 본부 건물. 유럽연합의 입법기구인 유럽의회는 이곳에서 한 달에 1번 회의를 개최한다. 누구나 이 회의를 참관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사흘 뒤에 회의가 잡혀 있었다.

“프랑스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지도자이자, 최초의 여성 EU의원인 루이즈 바이스(Louise Weiss)의 이름을 딴 본부 건물은 구조와 재료 하나하나에 유럽연합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가령, 건물과 건물 사이의 타원형 복도는 공공의 광장인 아고라를, 유리로 된 외관은 유럽의회의 투명성을, 빨간색 줄을 두른 건물 내부의 공사 구역은 유럽연합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각각 상징한다.”

가이드의 소개를 듣고 보니 루이즈 바이스 빌딩이 한층 의미 있게 다가왔다. 다음으로 간 곳은 본회의장. 우리는 평소 통역관들이 앉는 자리를 차지하고서 유럽의회 구성에 대해 더욱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는 “28개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5년에 한 번 직접선거로 선출된 751명의 의원은 이곳에서 각 나라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당에 소속, 초국가적으로 활동한다"고 했다. 도무지 낯선 유럽의회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사이, 견학 온 청소년들이 회의장으로 밀려들어 왔다. 다들 생경함보단 호기심 어린 시선이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유럽의회와 시내 관광지를 둘러본 날에 마침 한국과 독일의 월드컵 경기가 열렸다. 잠시 노천카페에 앉아 대한민국 선수들을 응원하며 기뻐하는 연수팀의 모습 ⓒ유코리아뉴스

유럽의회 건물에서 빠져나와 스트라스부르 시내로 들어갔다. 경계도시에서 중심도시가 된 스트라스부르는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18세기, 19세기 건물들 사이로 흐르는 아름다운 일강, 중세 유럽의 풍경을 잘 보존한 쁘띠 프랑스, 파리의 동명 성당과는 또 다른 장엄함이 느껴지는 노트르담 대성당. 그러나 우리 일행을 가장 오래 붙든 것은 한 노천카페의 대형 TV에 생중계된 한국과 독일의 월드컵 경기였다. 결과는 2 대 0 승리. 뛸 듯이 기뻐하는 우리에게 독일인 슈미츠 박사와 파페 박사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돌아보니 그 모습이 더 감동적이다. 다시 국경을 넘어 오첸하우젠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여권은 필요 없었다. 순조로운 월경(越境)은 ‘어떻게 유럽인, 특히 젊은이들이 민족적 정체성 버금가게 유럽인(European)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갖는지’ 어렴풋하게 느끼게 했다.

(2회에 계속)

 

정지연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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