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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협상: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07호’

북한이 2017년 11월 29일, ICBM 화성–15형을 실험 발사하고 미국 전역이 타격 가능권에 들어왔음을 확인하면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였다. 그후 1년도 지나지 않은 현재, 북미간의 2차 정상회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핵 대결과 전쟁의 위협이 고조되었던 작년 말까지의 정세에 비교하면, 현재의 상황은 기적적인 전환임에 틀림없고, 한반도에 평화와 희망의 햇살이 비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사이에 관련국 사이에 연쇄적인 정상회담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의 길은 멀고 험하지 않을 수 없다. 70여년 만에 찾아온 기적적인 전환은 결코 기적적으로 찾아온 것도 아니고, 기적적으로 결실을 맺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관련국 사이의 첨예하게 대립되는 전략과 복잡하고 거친 전술 그리고 사활을 건 이익이, 수많은 충돌과 타협을 거쳐 접점을 찾아나갈 때, 기적은 비로소 희망이 아니라 현실로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요즈음 북한의 비핵화문제에 관해서는, 한국 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많은 사람이 수많은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다. 낙관론, 비관론, 회의론은 물론 근거없는 음모론과 가짜뉴스까지도 무수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우려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로는 전문가이든 비전문가이든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더구나 이 사안은, 미국, 북한, 남한의 정상과 각국의 최고 정보책임자 1-2명만이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들의 전략과 생각이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는 협상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도 높고 예측도 쉽지 않으며, 그만큼 추측과 상상도 난무하기 마련이다. 이 협상은 좁게는 오로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만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짧은 기간의 폭발적인 뉴스커버리지 결과, 그만큼 제한된 정보와 다양한 시각 속에서, 희망섞인 분석과 비판적인 예단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향후 북한 비핵화 과정의 행로와 성공 여부를 결정할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누가 무엇을 어떤 시퀀스로 주고 받을 것인가로 축약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조치들(핵시설, 핵물질, 핵무기, 기술인력, 탄도미사일 등을 동결, 신고, 사찰, 검증, 폐기 등)과, 이에 상응하는 종전선언, 경제제재 해제, 평화체제 정착(북미 국교정상화와 투자 등) 등을 북한과 미국이 어떻게 교환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물론, 이 복잡한 거래의 게임은 ‘김정은과 트럼프가 서로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에 의하여 크게 영향 받을 것이다.

북한 비핵화를 분석하기 위한 몇 가지 관점들

북한 비핵화 협상은 일반적인 외교협상의 하나이면서도 많은 특이성을 갖고 있다. 이는 기존의 협상의 기술이 작용하면서도 비합리적 파격과 일탈이 지배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졌던 몇 가지 외교의 통설은 재검토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첫째, 북한 비핵화 협상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혼재되어 있다. 주요 협상 당사자들은 자기는 합리적이고 상대방은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비핵화 협상을 시작하기 위하여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의 전략은 과연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북한의 핵개발에 대하여 과소평가 했다고 얼마 전에야 인정한 미국 내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를 고려하면, 그동안 미국의 대북한 정책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던가? 그동안 제재가 강화될수록 반발과 위협을 높여온 북미관계를 감안할 때, 무엇이 현실주의적이고 무엇이 이상주의적 해결책이었는지 혼란스럽다. 더구나 선악의 기준이 추가될 때 이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비현실적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독특한 개인적 기질과 정책결정 방식은 이 사안이 갖는 복잡성을 더해 준다.

둘째, 관련국들의 핵심적 국가이익을 일반화하기 힘들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모든 관련국들의 핵심 국가이익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접근이 아닐 수 있다. 국가이익은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그리고 특정 국가 내에서도 전체 국가와 정치인을 비롯한 구성원간의 핵심 이익은 다를 수 있다. 일반적인 국가이익을 위하여 리더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희생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리더십 스타일이 민주적이지 않을 때 이 같은 현상은 더 뚜렷하지 않았던가.

셋째, 관련국 지도자들 누구든 국내정치의 역동성과 불확실성이 주는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심지어 지구상에서 가장 전체주의적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도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다. 북한 사회와 국민이 이미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북한의 비핵화 협상은 그들이 직면하게 될 국내적 정치경제 상황에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위협이 될 수 도 있다. 더구나, 대중들에게 이 사안이 갖는 메뉴의 신선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가 국내정치의 곤경을 돌파할 효율적인 카드로서의 효능이 약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 문제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나,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적 출현에 대한 민감도도 많이 줄어들고 있다.

넷째,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는 하나의 시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정치지도자들이 그 시간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으로 결정하고 외교적으로 타협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핵과 관련한 기술적 시간이 있을 수 있다. 쓰나미로 파괴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완전한 폐기에 걸리는 기술적 시간도 정치적으로 단축하기 힘들지 않는가. 더구나, 시간에 미치는 많은 의도치 않은 결과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이 특정 국가나 지도자에게만 불리하거나 유리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9월 26일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에 관해서 시간싸움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비핵화 과정의 시나리오와 전망

북한의 비핵화 협상은 가까운 미래에, 특히 트럼프의 임기가 남아 있는 2년 여 기간에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향후 전개될 시나리오를 분석할 기준은 무엇인가? 주요 국가들이 선택하고 타협할 수 있는 협상의 최대치는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인가? 시나리오별 로드맵은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 위의 질문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상당부분 자신의 대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질문이 아닌가 싶다.

우선,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는 정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일회에 걸친 일괄타결이 정치적,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확인된 이상, 비핵화는 단계별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북한은 2018년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추가 핵실험과 ICBM 발사 중지를 공식 선언하였다. 이는 북한이 실천할 비핵화 로드맵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 향후 북한이 취할 조치는 아래와 같이 단계별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1)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에 대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찰단 수용, (2) 미국의 상응조치를 대가로 영변 핵단지 영구 폐기, (3) 완전한 핵신고: 동결과 점진적 폐기, (4) 완전한 비핵화: 잔존 핵무기와 미래의 잠재력까지 완전 폐기 등이 그것이다. 다른 한편, 미국의 상응조치도 아래와 같은 단계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1) 상징적 의미의 종전선언, (2) 인도적 지원 및 사회간접자본 등에 대한 부분적 경제제재 해제, (3) 1단계 평화체제: 이익대표부 설치 및 경제제재 해제 범위 확대, (4) 2단계 평화체제: 국교정상화와 경제재제 완전 해제 등의 순서이다. 미국과 북한 양측의 단계별 조치들이 어떻게 결합되고 어디까지 진전될 것인지에 따라, 전체 비핵화의 성과와 시나리오는 달라질 것이다. 한마디로 비핵화의 정도와 평화체제의 정착 정도가 연속선상에서 상응하여 전개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 관련 국가들과 최고 정책결정자들이 선택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전략적 타협의 최대치는 무엇일까? 각국과 최고 정책결정자들이 생각하는 핵심 이익은 무엇이고,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무엇일까?

(1) 북한은 핵개발도 비핵화도 생존전략의 하나였다. 따라서 생존이 보장되지 않으면 북한과의 협상은 진전되기 힘들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많이 변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점은 양보하기 힘들다. 이는 외부에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북한으로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대응으로 보여진다.

(2) 미국은 미국 본토에 대한 핵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핵심 국가이익이고, 북한 비핵화도 이를 위한 전략적 옵션의 하나이다. 핵능력을 가진 북한의 존재 자체 보다, 미국 본토까지 날아올 수 있는 핵탄두를 장착한 ICBM의 제거가 더 긴급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이 가져올 비용과 정치적 영향을 계산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계산이 미국의 최종 옵션을 정하게 될 것이다.

(3)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절박하고 타협할 수 없는 핵심 국가이익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한국이 가장 큰 희생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인 노력도 이 같은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필사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과 문재인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4) 중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원하지만, 자기의 앞마당인 북한에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에 위협이 될 만한 정치적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한 국가이익일 것이다. 중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안 된다면 핵능력을 갖춘 북한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강화된 동아시아 신냉전구조 속에서 중국에게 남겨진 옵션이 아닌가 싶다.

(5) 일본 또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바라지만, 일본을 보호해 주고 있는 미국의 핵우산이 없어지는 상황에 대하여 더 우려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북한으로부터의 위협뿐만 아니라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에도 민감하게 행동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 등장 이후 급변하는 미일동맹의 미래에 당황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6) 러시아 또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동아시아 평화를 원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다. 러시아는 비핵화 과정에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고 비핵화가 가져올 커다란 경제적 이익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주도로 전개될 동아시아 안보질서를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고, 중국과의 공동 대응과 협력강화를 더 중시하고 있는 점이 관찰되고 있다.

이 같은 조건하에서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해 볼 수 있다. 우선 제로-섬 게임에 기초한 극단적인 두 개의 시나리오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국과 북한 중 어느 한 국가가 완전한 승자가 되고 다른 국가는 완전히 패자가 되는 시나리오는 실현되기 힘들다.

즉, (1) 미국이 북한에게 모든 것을 먼저 포기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북한은 이에 굴복하여 미국의 상응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지는 시나리오, (2) 북한이 미국과 주변국을 협박하여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 없이,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국제사회의 경제재제로부터 벗어나는 시나리오 이다. 이 두 가지 시나리오는 2018년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이 평창올림픽에 북한 대표단 파견을 위한 회담을 열 것을 전격 제안하고, 이후 남-북한과 미-북 사이에 대화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기에 나타났던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두 시나리오는 전쟁의 위험까지도 감수하면서 미국, 북한, 남한이 긴장을 고조시킨 시기에 나타난 현상으로서 관련국 모두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연속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 의하여 이 두 가지 시나리오는 사실상 폐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화는 서로가 상대하기 힘든 상대라는 것을 합리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현재의 대화국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과정에는 어떤 시나리오가 예견될 수 있을 것인가? (1) 협상 결렬 시나리오: 이 시나리오는 현재의 협상이 결렬되고 핵 전쟁 위협의 전단계로 회귀하는 경우이다. 미국은 북한의 진정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악마 프레임을 다시 꺼내고, 북한은 미국이 과거 협상에서 추가 조건을 제시하거나 말을 바꾸었던 기억을 잊지 못할 수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체결 직후 무산된 이유와, 합의 다음 날 발표된 미국 재무부의 방코 델타 아시아 금융재제에 대하여 양 국은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북한의 목소리에 경청하지 않는 미국과, 미국의 전략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북한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악마의 디테일이 큰 비전과 전략을 무력화 시킬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천사의 결단이 아니라 악마의 결단이 다시 먹구름을 불러 올 수 있다. 미국은 리비아모델에 대한 유혹에, 북한은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파기에 대한 불신에 시달릴 수 있다. 이 경우 동아시아에 신냉전구도가 강화되고 한반도의 긴장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신냉전구도 속에서 활로를 모색해 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1년 전에 비하여 더 큰 전쟁의 위협이 임박할 가능성은 조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관련국과 지도자들이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퍼포먼스와 이로 인해 변화된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정치적 억지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최선의 시나리오: 이 시나리오는 북한과 미국이 신뢰에 기초하여 양 국이 해야 할 몇 단계의 조치들을 동시적 단계적으로 신속히 진행하여,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북한간의 평화체제가 완성되는 시나리오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의 이해관계와 신뢰가 주요한 추동력이 되고,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효과적으로 발휘되어 관련국 모두가 승자가 되는 시나리오이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기술적 문제로 2년 정도의 기간에 완전한 비핵화가 완료되지 못하고 미국 내에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그동안의 진전된 비핵화 및 평화체제 조치의 관성과 국가간 신뢰에 의하여 남은 일정이 중단없이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수출통제법 등 재제 해제를 위한 미국 의회의 협조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적 결단과 용기가 이 시나리오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양 지도자간의 신뢰는, 서로의 대응을 기다리고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별 조치들을 구체화해 나가면서 강해지고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군사적 대립 보다 경제협력과 투자를 위한 협의가 더 비중있게 논의되는 단계에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3) 초보적 단계 시나리오: 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실무회담에서 양 국간 단계별 조치와 거래 방식에 대한 견해차이가 좁혀지지 않음으로써 현재의 교착국면이 장기화되는 시나리오이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북한과 미국이 서로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해소하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은 채, 회의가 춤추는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 전개될 수 있는 최대의 진전은, 북한은 영변 핵단지 영구 폐기까지 진행하고, 미국은 상징적 의미의 종전선언을 하고 소규모의 인도적 분야 및 사회간접 시설에 대한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완전한 핵신고나 본격적인 평화체제 구축은 시작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양국 모두 지금까지의 진전을 부정하거나 후퇴시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와 본격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은 지루하게 가다 서다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4) 부분적 타협 시나리오: 이 시나리오는, 북한의 핵무기가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ICBM을 폐기하는 선에서 북한과 미국간의 암묵적인 타협이 이루어짐으로써,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완성 직전 단계에서 좌절되는 경우이다. 북한은 더 이상의 핵개발을 중단하는 동결 조치와 핵무기의 일부 폐기만을 수용하고, 유엔과 미국은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서 경제제재를 일부 해제하고 연락사무소 설치 등 제한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비핵화 협상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 전략은 9.11 이후 대량살상무기 등 테러리즘의 원인 요소가 다른 대륙으로 이전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에 중점을 둔 미국의 변화된 안보전략과도 상통한다. 어느 정도 핵능력을 갖춘 북한의 존재는 미국이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정치적 군사적 헤게모니를 유지하는데 양날의 칼이 되어 왔다. 북한은 상태가 호전된 상태에서 미국으로부터의 위협과 압박을 줄이고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미국으로서는 북한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나타날 비용과 정치적 리스크를 줄이면서 미국의 핵심 국가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전개될 경우, 한국은 긴박한 전쟁의 위협에서는 벗어나고 한국정치에 미치는 냉전논리의 부작용은 꽤 줄어들겠지만, 핵을 가진 북한과 같이 지내야 하는 안보적 부담과 지정학적 운명은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협상 결렬 시나리오를 제외한 세 가지 시나리오는 모두 최소한 현재의 위험과 긴장이 줄어든다는 의미에서는 진전이다. 그리고 줄어진 위험과 협상의 경험, 그리고 대화를 통하여 변화된 관련 국제사회 및 국가간 관계는 긴장과 대립 보다는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서 시간은 트럼프 편도 아니고 김정은 편도 아니며, 평화의 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거래를 넘어 추구되어야 할 가치와 발상의 전환

하지만, 북한 비핵화 협상은 단순한 협상의 기술 이상의 관점과 철학을 필요로 한다. 북한의 비핵화는 북미관계에만 그치는 문제가 아니고, 한국과 동아시아는 물론 인류 전체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의 기술의 하나로 거론될 수 있는 전쟁의 위협은 결코 어떤 시나리오와 옵션에도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 ‘전쟁 없는 한반도’는 어느 이익과도 교환될 수 없는 가치이자 소망이다. 전쟁 발발 시 서울에서만 백만명 이상이 희생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하여, 미국의 강경파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이 트럼프에게 “백만명이 죽는다 해도, 그들은 거기(한국)에서 죽는 것이지, 여기(미국)에서 죽는 것이 아니다”라고 조언하였던 일화를 폭로한 밥 우드워드의 책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의 내용은, 현재 비핵화 협상을 담당하는 미국과 북한 등의 모든 정책결정자들에게 윤리적 각성과 인류적 책임감을 요구한다. 맨부커 상을 수상한 한국의 세계적 작가 한강이 2017년 10월 7일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미국이 전쟁을 이야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 친다”고 한 표현은 한국인들의 속마음과 역사적 의식을 대변해 준다. 민족주의가 비핵화 및 통일 문제를 해결할 수 는 없지만, 어느 민족이나 지역 및 시기에도 민족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이 때 민족문제는 항상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권과 주권의 문제로 직결되어 왔다.

위에 소개한 초보적 단계 시나리오와 부분적 타협 시나리오를 타개하고, 최선의 시나리오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CVID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개념과 다르지 않다. 다만, CVID를 전제 조건을로 하여 CVID가 완성된 후에야 제재해제 및 평화협정 협상이 시작된다는 전략은 비현실적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미국과 북한 등 관련국들의 발상의 전환과 파격적인 이니셔티브가 절실하다. 2018년 9월 28일자 중앙일보에 소개된 북한 핵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의 제안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커 박사는 북한의 비핵화는 궁극적으로 비무장화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북한의 핵시설과 미사일 기술을 북한과 남한, 그리고 미국의 과학자들이 평화적 기술과 민간용으로 전환하기 위한 공동 작업을 착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이는 긴 비핵화의 여정에서 어려운 고비로 자리하고 있는 완전한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의 조치를 촉진하고 관련 국가들 간의 신뢰를 완성하는 발상의 전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평화를 바라는 한국 국민과 인류는 조금 열려 있는 기회의 창을 활짝 열기위한 지도자들의 결단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류상영은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이고 동아시아재단의 운영이사이면서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의 editor를 맡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1995-2001)을 지낸바 있으며 일본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1992-1994),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교 방문교수(2009-2010) 등을 지냈다. 김대중도서관 관장(2004-2009)을 역임하면서 <김대중 구술사>를 구축하는 등 사료 수집과 연구에 힘썼다. 현재 주요 연구 분야로 한국 정치사 및 민족주의에 관심을 두고 있다.

*본 칼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류상영  syrhy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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