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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과 과제 2[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박종화 목사

2. 미래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동북아 평화 공동체

 

<3.1 독립운동>에서 <3.1 민주공화 실천운동>으로

민족 독립을 목표로 외치고 선포한 <3.1 독립선언>에 대한 우리의 평가와 함께 다가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목표로 하는 <3.1 평화통일선언>은 어떠한 원칙과 방식으로 창조적 계승을 하느냐의 과제가 우리 모는 민족 구성원들에게 있고, 특히 종교사회 곧 기독교와 기독인들의 어께에 드리워져 있다. 여기서 먼저 필자가 함께 몸담고 있는 <평화통일을 위한 연대 3.1절 100주년 선언문>이 선포한 내용을 시작하는 담론으로 삼고 싶다. :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에 의해서 발표된 독립선언문은 자주독립의 정신, 자유민주의 정신, 인류공영의 평화정신, 연합과 일치의 정신위에 나아갈 꿈과 비전을 제시한 혁명적 선언문이었다. 3.1절을 기점으로 대한제국은 대한민국으로, 왕권 중심의 세상은 민권 중심의 세상으로, 신민은 국민으로, 왕의 토지는 국민의 토지로 전환되었고, 우리나라는 비로소 민주공화국으로 출발하는 단초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은 3.1운동으로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전문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제 우리는 3.1운동이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발전 시켜야 한다..

우리는 일제하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던 것을 참회한다. 1945년 8월15일 일본제국주의의 패망이 민족해방의 역사로 이어지지 못하고 민족 분단의 역사로 방치했다. 일제하의 적폐를 교회와 국가의 차원에서 청산하도록 제대로 도전하지 못했다. 분단을 해소하여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긴장과 갈등과 대립을 일정부분 조장 했다. 그리고 분단 대결을 고착화 시킨 독재정권에 대해서 예언자적인 정의와 평화의 목소리를 키우지 못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차별당하는 사람들의 인권과 풍성한 삶의 기회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했다. 민주적인 정당제도 하에서 당리당략을 제어하고 건강한 타협을 지향하도록 하지 못했다. 이를 진심으로 자성하고 회개한다...

우리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서 이웃종교들 간에 연대한 3.1혁명을 직시하면서, 우리 민족의 시대적 과제인 민주주의 정착과 평화통일을 위해서라면 지역, 학벌 등의 연고주의와 경직된 이념 또는 종교적 교리의 다툼 등을 초월하여 누구와도 협력하고  연대해야 함을 선언한다..

한국의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3.1운동이 정파와 이념을 넘어 연합했던 것처럼,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지금 여기 한반도에 세우기 위해 교파와 교단을 넘고, 종교와 신념을 넘어 누구와도 협력할 것을 제안한다.“ 6)

위에서 밝힌 대로 3.1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며 발전시키는 과제가 대한민국 자체 내의 과제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3.1 혁명과 8.15 해방으로 쟁취한 “민주공화국”의 정체성과 내실을 명실 공히 정착시켜 민주 선진국으로 승화시켜가자는 것이다. 이 민주공화국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이는 과거의 염원이었고, 현재의 실제이고 미래의 비전이다. 동시에 민주공화국의 주인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따라서 주인이 사는 집이 대한민국인 만큼, 집의 주인은 “대한국민”이다. 예컨대 국가안보는 강조하면서도 국민안보는 무시한 괴리를 수없이 경험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국민이 “을”이고 민국이 “갑”으로 둔갑하여 괴기한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권력 금력을 휘두르며 비공화적, 반민주적 억압과 압제에 시달린 것이다. 여기에 희생당한 수많은 국민과 동행하지 못한 죄책을 우리가 먼저 고백하는 일로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것이다.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죄책고백과 화해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잘못된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밝혀진 진실을 바탕으로 합의에 의한 과거의 청산과 미래지향의 화해를 실현시키는 범국민운동에 나서자는 것이다. 적어도 이 일을 위해서는 우리의 반면교사라 할 수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제시하고 실천한 <진실과 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의 발자취를 배워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실제로 우리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이 살아가는 오늘과 내일은 단순한 과거청산의 보복적 수레바퀴만 틀을 바꾸어 돌아가고 있으며, 진실규명과 이에 따른 합의된 “청산-화해-용서-헌신”의 과정을  통한 미래참여의 길이 막혀있는 것이 아니냐는 안타까운 민의의 함성이 커 감을 알아야 한다. 

이제 21세기의 선진 세계를 살아갈 우리나라의 종교사회는 이 나라를 “진실과 화해”를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수용하는 선진적 민주공화국으로 바꿔가는 일에 헌신해야 옳다. 그것이 종교인들의 종교 신앙적 정체성이고 대한구민으로서의 시대적 과제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세상을 위한 “소금”과 “빛” 그리고 불교가 말하는 사회의 “목탁”의 모범적 담지자가 종교요 동시에 종교적 신앙이 있는 종교인들이라 확신한다. 종교인 연대는 바로  이런 과제와 역할을 중심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고 본다. 그동안 종교인들이 보여준 모습 곧 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온도로 분석하고 알려주는 “온도계”(thermometer) 역할이 아니라 흐름과 변화를 정의롭게 고치고 조정하는 “온도조절기”((thermostat)의 역할이라고 강조하는  미국 민권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호소를 경청하면 좋을 것이다.


<3.1 운동>에서 <평화통일 운동>으로

분단된 독일의 통일(1989/90)은 유럽에서의 적대적 냉전의 해소와 함께 당시의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공산세계의 집단적인 몰락과 맞물려 돌아간 시대적 사건이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시대변화의 전조가 있다. 냉전대결이 최고도에 달하던 지난 1980년대의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이 있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1979)을 빌미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66개국(한국 포함)이 모스크바 올림픽(1980)에 집단적으로 불참했다. 그 다음의 미국 LA 올림픽(1984)에는 소련을 포함한 공산국가들(북한 포함)이 불참했다. 평화 스포츠 축제는 기어코 서울 올림픽(1988)에서 기염을 토했다. 전 세계국가가 동참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89년에는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동구권 공산권이 집단으로 붕괴되고, 동서독은 서독으로 병합되는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어느 누구의 계획도 아니었고 예상도 뛰어 넘었다. 하늘의 임재로 밖에 설명이 안 된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kairos의 역사라고 한다. 일상적인 역사인 chronos의 사건은 아니다. 

그 뒤로 30년이 지난 지난해의 평창 동계올림픽(2018)은 또 하나의 kairos를 쓰고 있다. 전 해 까지만 해도 전쟁의 위기를 말하며 안정부절 못하던 상황을 감안 한다면 2018년에 이어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2018. 4.27/ 5.26/ 9.18-20)과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2018. 6.12/ 2019 2.27-28)의 개최는 정상회담의 쌍방 간에 “밀당”이 당연히 존재하지만, 그래도 유일한 냉전의 잔재인 한반도 분단의 극복이 가시권에 들어온다, 이 역시 한반도에 피우기 시작하는 평화와 통일의 kairos라고 기꺼이 주장할 만하다. 이제 우리는 원군으로 내려온 하늘의 kairo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헌신하는 길을 찾으면 된다. 특히 예상을 뛰어넘는 <북미회담>은 북한의 “핵 개발”이 단초를 제공했으나, 핵 갈등 해법을 시작으로 통일을 향한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집단적 평화가 세계의 공동관심사로 이행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미 남북 정상 간의 <판문점 선언>(2019.4.27.)에서 1)민간 영역을 포함한 남북관계의 전면 위협 해소 노력, 3) 비핵화와 그에 상응하는 체제 보장 및 다자간의 평화협정 체결 등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협력 등을 합의한 것들이 북미 정상 간에도 수용된 점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한 셈이다. 이 합의들을 확정하고 합의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물론 험난하고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분명한 것이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남북의 통일도 남북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평화도 이제는 “전쟁”의 방식이 아닌 “평화적 방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합의된 공감대이다. 결국 이제 우리는 평화 통일의 당사자로서 남한 내부에서 그리고 남북관계에서 결연한 자세로 밀고 갈 것이 있다. 남북 간에 “평화 공존”의 삶을 이어가야 하고, 그것이 평화적인 절차에 의해서 “통일”로 귀결된다는 희망 말이다. 분명하게 말해서 그동안 남과 북을 스스로 옭아매고 괴롭혀 온 일방적 희망사항인 동시에 불신의 단초로 삼아왔던“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이제는 공적 담론에서 아예 장사지내버리자는 것이다. 

전쟁이 아닌 평화공존으로 시작하여 급기야는 평화적 통일을 쟁취한 독일의 경우가 이제는 우리가 참고할만한 반면교사로 채용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측면은 제외하더라도 독일의 민간 종교 세력을 대변/대표하는 독일 기독교의 평화협력의 실상은 귀한 참고가 되리라. 


<평화협력(독일 기독교)의 한 본보기>에서 배우기

참고로 교류협력을 실행하고 통일을 맛보기 까지 17년간(1972-1889) 서독의 동독에 대한 경제협력과 지원을 보면 대충 이러하다. 서독은 동독에 물적 지원(통행세, 관광이나 방문 시 비용을 포함하는 현금지급 포함)은 총 1,044억5천만 마르크(=약62조원)이고, 이 중에서 정부차원의 지원은 약 268억5첨만 마르크(=약 20조원), 민간차원의 지원은 약 748억 마르크(=약 42조원)이었다. 이 중에서 서독교회가 동독교회에 지급한 보조비는 약 56억 마르크(=약 3.3조원)이었다. 

이와 비교하여 남한에서 “퍼주기 논란”을 일으켜 왔던 대북지원의 실상은 이러하다. 지난  1995~2007년 까지 남한이 북한에 지급한 지원(통일부 통일백서 2008)은 약 3조원이고, 이 중에서 정부차원의 무상지원은 약 1조4천억 원, 민간차원의 무상지원은 약 7천2백억 원, 정부차원의 유상(식량차관)지원은 8천8백억 원에 달한다. 이를 다시 나누어 보면 김영삼 정부시절(1995-97)의 지원은 총 2,314억 원, 김대중 정부 시절(1998-2002)에는 약 8,396억 원, 노무현 정부시절(2003-2007)에는 약 1조9,300억 원에 달했다. 

절기만 되면 온갖 선물을 들고 서독 측이 동독으로 방문한다. 양 정부 간의 합의에 따라 심문방송의 시정이 가능해졌다. 서로 간의 실상을 알게 된다. 매체 광고를 통하여 생활상도 자연적으로 알게 된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서독은 동서독 연결 고속도로나 철도 연결을 재정적으로 부담하고도 서독인의 통행료는 동독이 챙기도록 조치했다. 퍼주기가 아니라 미래 투자가 동독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합병이라는 통일을 가능케 했다. 

쌍방 간에 소위 “정치범 석방”(Freikauf)이라는 특별 프로그람이 실천되었다. 정부 통일지원금으로 서독교회가 위임받아 동독의 정치범들을 양쪽 변호인들의 협상과정을 거쳐 대가를 지불하고 석방시켜 서독으로 데려왔다. 17년간 총 33,755 명이 석방되어 왔다. 현금이 아닌 물품으로 지불했다. 동독은 수익을 위해 반체제인사들을 양산 내지 방조했다. 반대급부의 현상이 생겼다. 석방의 대상이 되기 위해 반체제활동이 늘었고 과감해졌고 내적으로 사회이반 현상이 생겨났다. 소리 없는 인권 보호의 한 단면이었다. 북한의 인권을 말하면서 인권유린의 대상을 우리 사회가 아니면 남한의 종교사회가 북의 정치적 “체통”을 지켜주면서 석방을 책임지는 대안을 제안한다.     

경제지원은 사실은 마음의 지원을 내포한다.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자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입증되는 것이다. 1989년이 시작되면서 동독 측에도 변화의 물결이 급격하게 생겨났다. 라이프치히 시내의 복판에 있는 <니콜라이 교회>(Nicholaikirche)를 중심으로 월요일 저녁마다 촛불을 손에 들고 평화기도회를 개최했었다. 점점 인파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동독의 비밀경찰과 안보요원들이 방해하면 할수록 인파가 늘었다. 당의 핍박은 이들을 오히려 강한 의식화와 단결로 내몰았다. 이 소식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동베를린을 비롯한 큰 도시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평화촛불 기도회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엄청난 속도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촛불집회가 계속되었다. 

“우리는 독일 민족”(Wir sind das Volk)이라는 구호로 출발한 운동은 “우리가 바로 한 민족”(Wir sind ein Volk)으로 발전되기 시작했었다. 독일주변 4강 점령국들이 나중에는 통독에 합의하는 쾌거가 있었지만, 동서독 국민들의 마음속에 이미 내적통일이 싹으로 자라나기 시작한 셈이다. 평화에의 열정이 뜻하지 않게 등장한 통일이라는 그릇을 채운 셈이다. 사실 필자는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중심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양 독 시민들이 운집한 가우데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음악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 나오는 “기쁨의 노래”(Ode zur Freude)를 “자유의 노래”(Ode zur Freiheit)로 가사를 바꾸어 오케스트라와 합창으로 천지를 울리던 장면을 기억한다. 통일 자체도 반갑지만 통일이 가져다준 “자유”가 더 반가웠던 가보다. 1989년 12월 24일 성탄절 전야제의 광경이었다. 

 

<3.1 운동>에서 <평화공존 살기>로

이미 우리는 <남북 기본합의서>(1991)에서 “상호간 체제의 인정과 존중”(1장1절)을 합의한 바 있다. 이것은 일종의 잠정적인 합의(modus vivendi)의 형태로서 통일까지의 “평화공존”을 명문화한 것이고, 잠정적인 단계로서의 평화적인 분단관리를 말한 것이다.

이미 남한사회는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양 수레바퀴를 갈등과 협력을 거치면서 달성한 성숙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성립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경제성장 없는 민주화는 배고픈 자유의 현실일 것이고, 민주화 없는 경제성장은 노예생활의 현실일 뿐일 것이다. 인권운동으로 대표되는 선진 민주화가 결국에는 정의와 복지를 지향한 경제발전과 상부상조했음을 인식해야 한다. 북한의 경우도 이미 핵 포기의 대가로 유엔을 통한 제제완화 내지는 철폐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투자와 경협을 간절히 바란다. 중국이니 베트남 발전 모델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북한의 경우 기술과 자본이 월출한 남한과 자원과 인적자원이 풍부한 북한 교류 협력을 통하여 거대한 민족 통합경제의 이익을 공유할 방안을 마련함이 옳을 것이다. 참고로 독일통일의 국제적 초석이 되었던 <헬싱키 협정> (1975.7.30.-8.02)은 유럽의 양극화 된 안보갈등을 해소하고, 상호간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기본인권을 신장한다는 소위 삼각협약(=안보, 협력, 인권)을 합의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1992년부터는 상설기구인 OSCE)의 모델을 남북과 동북아의 상황에서 지혜롭게 적용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남북 간에 체제와 사고의 다양성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조화와 합일을 강구하는 일종의 “화해된 공동체”의 모습을 평화공존의 단계에서부터 실천에 옭길 자세를 가추어야 한다. 독일의 경우 통일이전의 민심은 “풍요로운 서독”과 “부자유한 동독”의 갈등이었으나 통일  이후에는 동독이 서독의 풍요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되면서 “동독주민의 가치절하” 내지는 “제 2등 시민화”라는 열등의식(“Ossi")이 커진 방면, 서독인들은 상대적 교만과 우월의식("Wessi")이 커지면서 사회 심리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과거의 국가적 정치 체제적 분단에서 통일이후에는 「1국 2사회」라는 ”사회적 분단“의 상황으로 이행한 과오를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 한반도 통일 이후로 미리 준비하는 역할과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정치적 통일이후의 “사회적 통합”의 과제를 기독교가 이웃종교와 협력하여 “화해된 공동체” 형성의 정신에 따라 최선을 다할 계획과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본다.

평화공존의 시대에 긴요한 교류협력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먼저 상대방을 있는 그대  “인정”한다는 말은 곧 북에는 추체사상 체제적 공산체제가 지배하며, 남한에는 자유민주 체제가 지배함을 부정하지 말거 상호 인정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도 연맹>이 남한의 기독교의 성격과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과거 동독의 기독교는 사회주의에 “속한” 교회(church of socialism)도 아니고, 사회주의를 “위한” 교회(church for socialism)아니고, 사회주의 체제 “안에” 몸담고(church in socialism) 살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정체성을 고수함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런 제한된 고백이지만 하나님이 제한된 그릇을 통하여 자신의 kairos를 이루신다는 희망을 나눔이 정당한 현실이라 믿는다. 이런 태도는 비단 기독교나 종교사회만이 아니라 잠정적 상태를 살아가는 정치와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타당한 것이라고 본다. 

평화공존은 전쟁이나 폭력의 방법이 아닌 평화의 방식을 통한 가치관의 무한 경쟁의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분단 시절에는 상대방과 공존이 아니라 대립과 갈등으로 살아왔으나 공존의 시대에는 예컨대 자유, 행복, 정의, 인권, 평화, 평등, 복지, 사랑 등의 기본 가치관이 정치영역에서부터 경제와 사회 및 종교의 영역에 이르기 까지 그 구현 여부와 실천을 놓고 무한 경쟁에 돌입한다는 말이다. 이런 질적 경쟁에서 승리하는 쪽으로 통일이 자연스레 귀결될 것이다. 통일국가가 취하게 될 헌법의 내용도 당연히 서문에 이런 승리의 가치관을 명문화 할 것이고, 입법 사법 행정 언론 시민사회의 모든 영역이 당연히 위압이나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통일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자유와 자율로 선택하고 결단하는 귀결일 것이다.


<3.1 운동>에서 <한반도 통일운동>과 <동북아 평화운동>으로

<3.1 선언> 중에 조선의 독립은 “동양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평화 인류행복에 필요한 단계”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일본, 중국, 조선의 3자가 만드는 “동양평화”의 내용과 형식이 무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동양평화 문제는 식자들 간에 널리 통용되었던 것으로 특히 안중근이 여순 고등법원장과의 면담(1910.2.14.)에서 제시했다는 “동양평화” 사상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상세한 내용을 다 언급할 계제는 아니나 한중일 3국이 공통의 유교문화, 언어의 접근성, 인종적 통류, 지역적 인접성 등의 기초여건을 바탕으로 예컨대 “여순”을 3국의 공통관할 항구로 삼고, 이곳에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두고, 은행도 병설하여 공동으로 활용하고...전 세계 인구의 2/3에 달하는 천주교인들을 지휘하는 교황의 동참과 협력을 받는 방식까지 제안하고 있다. 7) 여기서 우리는 최소한 동북아의 지정학적 여건상 조선의 독립과 자주적 생존은 필연코 주변 강국들과의 평화공동체적 협약과 결속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정책을 엿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소위 “동북아 평화체제”는 오늘날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서도 필연적 연결점에 속한다. 남북의 평화공존을 담보할 틀인 “평화협정”과 함께 이를 지원하고 보장할 주변 국가들의 “평화체제”는 필수적 요소이다. 동북아로서는 이런 지역 평화체제의 본보기로 EU의 경우를 통해 지혜와 대안을 가장 잘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위에서 지적한 대로 남북 간의 내적인 “민족 평화공동체”형성과제와 더불어 한반도 주변 4대 강국과의 “동북아 평화공동체”관계에도 유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통일 당시 미국 측은 서독이 통일 이후에도 「NATO」에 계속하여 잔류한다는 사전협상안을 만들어 서독지역 점령국 이면서 통독에 찬성하는 입장이 아니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동의를 구하였다. 이것은 과거 통일독일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일으킨 경험 때문에 통일된 독일의 “무서운” 힘을 우려했던 서구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한 대책이었음을 알릴 필요가 있다. 이미 당시 소련은 “무력한 골칫거리”인 동독을 버리고 자기 자신의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성공을 위해 서독의 경제지원과 서방측의 정치적 협력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이러한 유럽의 <2+4> 협력 등식을 통하여 한반도 중심의 동북아의 <2+4> 협력관계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유럽의 여러 지역통합이 외부로 부터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집단으로 보호하자는 취지보다는 그간 역내 국가들끼리의 수많은 전쟁갈등과 참화를 몸으로 끌어안고 사는 유럽으로서는 “유럽 평화공동체”가 서로 간의 전쟁을 막고 폭력적인 대결을 막아줄 틀로서의 지역평화 체제에 모두가 공감한 것이다. 솔직히 동북아 역시 지난날 청일전쟁, 노일전쟁, 한반도 일제 식민지화,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진입과 일본 패전 등의 전쟁사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미중 간의 무역전쟁과 안보 갈등으로 역내 평화가 풍전등화이다. 결국 한반도 총일과 평화체제는 동북아 당사국 상호 간의 동북아 평화체제 확립과 맞물려 있고,  이를 통해 전쟁이나 폭력적 갈등을 방지하고 “공동안보”와 “경제협력”을 통해 이익을 공유하는 새로운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반도 통일이 주변 국가들에게도 부담이나 손해가 아닌 공동이익임을 설득하고 그에 필요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결실로 이끌 과제가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현재의 종전협정(미·중·북 서명)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이것이 장기적으로 동북아/동아지역의 공동안보와 평화정착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함이 중요하다. 현재의 6자 당사국이 상호안보이익을 위해 직접당사자들 또는 후원자로 참여하는 새로운 평화협정으로 인해서 “동북아판 나토”의 출현을 기획하고, 협력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을 대변하는 주한미군의 위상이 동북아 평화유지군의 일환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동아시아 참여 당사국들 간에 첨예하게 대결구도가 되고 있는 이슈들(예: 독도, 센카쿠 열도 등)에 대한 참여국들 상호간에 대결이 아닌 조정과 화해를 사전에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의 판문점을 “동북아 평화유지군”(가칭)의 사령부로 삼아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대변혁을 기할 수 있다. (예: NATO 사령부가 있는 벨기에 참조) 동시에 이와 연관하여 DMZ를 국제평화의 동산으로 바꾸어 지속가능한 세계생태공원으로의 변화와 동시에 UN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별 국제기구들을 유치하여 명실상부한 국제 평화센터의 보루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안중근의 구상에 나온 “교황”의 동참을 오늘에 적용한다면, 동북아 공동체에 속한 국가들의 기독교 기구들을 묶어 <동북아 기독교평화협의체>(가칭),  나아가 여러 종교들이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종교협의체>(가칭)를 구성하여 지난 시절 유럽의 냉전해체에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동서 양 진영의 유럽국들이 모두 참여한 <유럽 안보와 협력회의>(CSCE/Helshinki 1975; 1992 부터는 상설기구(OSCE/Vienna)의 역할을 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8)  당시 CSCE 는 크게 1) 유럽 안보협력, 2)경제, 과학, 기술 협력, 3)인도주의 및 기타 영역 등에서의 민관 협력체제로 공헌했다. 여기서 특히 유럽의 기독교를 비롯한 각국의 민간단체와 시민사회는 “3) 인도주의” 영역을 맡아 유럽 전반의 인권향상에 크게 공헌한 바가 있다. 동북아 공동체가 기능을 할 수 있다면 위에 말한 동북아 기독교 평화협의체나 같은 종교 평화협의체 등을 통해 역내 국가들의 인권과 인도주의 함양의 과제를 민간차원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북한을 특정한 바탕에서 정치범 중심의 인권탄압 의제만을 주로 다룸으로서 일종의 정치적 반체제 투쟁으로 축소되는 입장을 넘어, 당연히 북한을 포함하되 역내 각국 국민들의 정치 자유권, 식량권, 생명권, 생존권, 아동보호권 등등의 포괄적인 인권신장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들어감으로서 보다 명분과 효율에 있어서 진일보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계인권선언”(UN)의 정신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주)
6) (사) 평화와퉁일을위한연대, 성명서 “3.1 운동의 혁명정신을 계승하고 살아내자”, 2019. 3.1. (3.1절 100 주년)에서 인용
7) 안중근,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 2018 (안중근 의사 기념 사업회 간);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에 관한 다양한 평가를 담은 논문집, 안중근과 동양평화론, (안중근의거 100주년 연구논문집 4)를 참조.
8) 유럽의 통합에 관한 다양한 분석과 특히 동북아 상황과 CSCE의 상관관계 분석으로는 통일연구원, EC/EU 사례분석을 통한 남북 및 동북아공동체 추진 방안 (손기웅 등 공저, 2013); 이종원 등 공저, EU 28 유럽통합의 이해, 도서출판 해남 2014를 추천함.

 

 

 

 

 

 

 

 

* 이 칼럼은 평화통일연대에서 제공했습니다. 

박종화 목사  parkjw10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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