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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 방북 30년, 아직도 남아 있는 ‘오해들’문익환 목사 방북 30주년 맞아 ‘시민통일문화제’ 개최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잠꼬대 아닌 잠꼬대’ 中)이라고 외친 늦봄 문익환 목사. 문 목사의 방북 30주년을 맞아 민간 통일 운동 30년을 되돌아보는 시민통일문화제가 30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열렸다. (사)통일맞이와 통일의 집이 주최한 이번 행사에선 김용민 (사)평화나무 이사장의 사회 가운데 문 목사와 인연이 닿았던 이들이 무대에 올라 ‘시민 주도의 통일’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문 목사의 방북을 다채롭게 조명했다. 

30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사)통일맞이와 통일의 집이 주최한 시민통일문화제가 개최됐다. 이날 김용민 (사)평화나무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토크 순서에서 황석영 작가는 “1989년 평양에서 만난 문 목사는 구속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낙천적이고 순수한 모습을 잃지 않았었노라”고 회고했다. ©유코리아뉴스

이 자리에서 김희선 통일맞이 이사(전 국회의원)는 문 목사에 관한 해묵은 오해 한 가지를 풀어냈다. “문 목사님이 평양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바로 구속되셨는데, 이후 목사님이 감옥 안에서 편하게 붓글씨나 쓰고 있다더라, 손바닥으로 글을 쓴다더라 하는 얘기가 바깥에 돌았다. (당시 통일운동 진영 내엔 문 목사의 방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통일의 집 개관을 준비하면서 목사님의 붓글씨를 소장하고 있는 한 분을 만났는데, 당시 교도관이었던 그분이 감옥에서 문 목사님께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고 먹물을 손바닥에 묻혀 찍어달라고 했다는 거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당시 통일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까지 그렇게 험담을 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노태우 정권이 문 목사의 방북을 빌미로 공안정국을 조성한 까닭이 있었다. 김형수 작가가 쓴 <문익환 평전>에는 “반공단체는 물론 교회 내부의 공격도 심각했으며, 연일 그의 방북을 비난하는 성명이 나오고 시위가 일어났다”고 기록돼 있다. 

1989년 비밀 방북해 평양에서 문 목사와 만난 황석영 작가는 문 목사의 낙천적이고 순수한 모습을 엿본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대동강변에 있는 초대소에 문 목사를 만나러 갔더니 방금 시를 썼다며 낭랑한 목소리로 읽더라. (남한으로) 내려가면 당장 구속인데, 뭐가 좋은지 손짓, 발짓해가며 시를 낭독했다.” 그런가 하면 황 작가는 “지난시기의 통일운동을 반성해봐야 한다”라며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대동강변 정자에서 문 목사는 남한으로, 나는 제3국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일본을 거쳐 베를린으로 갔다. 거기서 범민련이라는 조직을 시작했는데, 너무 급진적으로 나가더라. 통일운동은 대중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문 목사와 나의 입장이었는데, 이후 통일운동이 점점 비 대중노선으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문익환 목사와 같은 해 방북했던 문규현 신부는 “89년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은 한반도의 분단에 대해 새롭게 조명할 기회를 줬고, 그로부터 5개월 후에 있었던 조선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한 국제대행진은 한반도 분단의 강고한 장벽을 다시 확인하는 사건이었다”라고 회고했다. 문규현 신부는 1989년 6월 통일염원미사를 올리고자 방북했다가 조선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한 국제대행진에 참석한 임수경(당시 대학생) 씨와 함께 판문점으로 귀환했다. 당시 두 사람은 군사분계선을 넘자마자 구속됐다. 문 신부는 또 “방북 30주년을 맞아 동아시아 모든 인민, 민중과 함께 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운동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문 목사의 방북을 주선했던 정경모 작가(통일운동가)는 영상을 통해 메시지를 전했다. 정 작가는 유신독재에 반대해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가 문 목사 방북 동행 이후 지금까지도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외에도 장유식 변호사(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와 강종헌 재일동포(일본한국문제연구소 소장)가 자신이 만난 문 목사와 그의 방북 의미를 술회하고, 노래패 희망새와 래퍼 수다쟁이는 열정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문성근 통일맞이 부이사장은 가족을 대표해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선 문 목사를 비롯해 민족 화해를 위해 방북했던 이들의 명예회복을 선언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다음은 ‘늦봄 문익한 목사를 비롯한 1989년 방북자 명예회복 선언’ 전문.

2019년은 평화와 번영 통일의 한반도를 향해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뜻 깊은 해입니다.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말미암아 증오와 적대의 관계와 결별하고,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남과 북이 손잡고 열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이제 냉전의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통일에 기여한 자를 응당히 평가하고, 그 종적을 널리 선양하며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평화 번영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30년 전 통일의 물꼬를 트고자 방북한 늦봄 문익환 목사에게 쓰여진 밀입북과 이적행위라는 오명을 아직도 벗겨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유죄를 받았지만 역사에서는 무죄를 받을 것이다” 당당히 외치시며 우리에게 그 책임을 던지고 가신 늦봄의 뜻을 우리는 아직 해결하고 있지 못합니다. 1989년 1월 30일 북측 조국통일평화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초청장을 정부로부터 대신 전달받고, 2월 4일 전민련 고문의 자격으로 초청수락성명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후, 3월 25일 방북을 결행한 것이 어찌 밀입북이 될 수 있으며, 김일성 주석과 면담하고 무력 통일이 아닌 점진적 통일방안을 합의하며 향후 6.15 남북선언의 기초를 만들고 정치 군사적 문제해결을 고집하던 북을 설득하여 사회문화 교류를 약속받아 10.4 정상선언의 밑거름이 된 문익환의 행적이 어디에 이적성이 있단 말입니까? 늦봄 문익환 목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안위를 버리고 오직 민족 화해를 만들기 위해 방북했던 황석영, 임수경, 문규현 신부에게도 똑같은 멍에가 쓰여져 있습니다. 그들에게 선고된 법정에서의 유죄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이미 그 의미를 다했습니다. 이제 평화롭고 하나 된 나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청산해야 할 불행한 과거입니다. 민간 방북 30주년에 즈음하여 우리는 늦봄 문익환 목사를 비롯한 방북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이 자리를 빌려 89년 방북자들의 명예 회복을 온 겨레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우리의 노력에 평화와 번영, 통일을 바라는 국민들의 지지와 동참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2019년 3월 30일 

민간 방북 30주년 기념 시민통일문화제 참가자 일동 

 

정지연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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