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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대화를 넘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북미 하노이 회담, 뒤통수 맞은 김정은 위원장

지난 달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번째로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헤어졌다. 냉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역사적인 두 번째 대화인 만큼 기대가 컸던 터라 아쉬움도 크다. 그러나 이걸로 끝이라고 낙담하기엔 이르다. 북미는 70여년을 대결해왔는데 두 번 만나서 우리의 기대치를 다 채울 수 없는 것 또한 분명한 현실이다. 협상은 계속될 것이고 그 과정에는 높고 낮은 파도가 찾아올 것이다. 어떻게든 합의점을 다시 찾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하노이 회담 자체를 놓고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시쳇말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다. 예측불가 고도의 협상가 트럼프의 전형적인 막판뒤집기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 외에 다른 핵시설이 추가로 있다며 협상테이블에서 깜짝 발표를 했다. 영변핵시설 폐기와 대북제재 해제를 맞바꿀 수는 없다며 영변+α, 즉 완전한 비핵화를 거래조건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테이블에 마주 앉은 김 위원장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이후 최성희 외무상의 야밤 긴급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의 협상계산법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김정은 위원장의 뒤통수를 친 것일까? 첫째, 추가 핵실험장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동안의 실무회담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막판 회담장에서 꺼내들었다. 즉 대놓고 한 방 먹인 것이다. 만약 추가 실험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회담 전부터 공개압박을 했더라면 애초에 이런 하노이 회담판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까지 다 작성해놨지만 서명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즉 막판에 거래조건이 맞지 않다며 결렬시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같은 시간에 터진 마이클 코헨 청문회 등 국내정치가 영향을 줬을 수도 있지만 결국 김 위원장의 벼랑끝 전술을 트럼프 대통령이 역으로 이용한 셈이다.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 성립될 수 없는 거래

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민 거래조건 자체가 성사될 수 없는 조건이라 생각한다.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는 같은 레벨의 거래조건이 못된다. 잘 생각해보면 완전한 비핵화는 김 위원장의 목숨, 즉 체제의 명운이 달린 거래다. 대북제재 해제를 얻어내려고 저렇게 30년 가까이 핵에 집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의 거래조건은 결국 정상국가로서 인정받는 것, 즉 북미수교다. 김 위원장은 대북제재 해제로 핵을 포기할 리가 없다. 대북제재 해제로 핵을 포기할 거면 애초에 핵을 만들 이유도 없었다. 대북제재는 핵 때문이지 않았나. 그리고 대북제재는 언제든 다시 내릴 수 있는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너무 얕잡아 본 측면이 있다. 급기야 최 외무상은 미국의 조건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새로운 길 모색, 즉 비핵화 협상 중단을 고려하겠다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의 자신감과 절박함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장에 들어서면서 “비핵화 의지가 없었으면 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필자는 우선 이 발언을 믿는다. 김 위원장은 이 길 외엔 뾰족한 방도가 없고, 30년 전부터 이 목표를 위해 달려왔다. 이는 북한 체제의 생존을 건 투쟁이었다. 미국과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핵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핵 없는 북미대화, 상상이나 되는가?

지난 해 김 위원장은 기존의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핵무기 완성을 선포하며 경제건설 총력집중으로 변경했다. 그동안 핵무기 완성이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전 단계로서의 정당성을 부여했는데 이제 완성했으니 실제로 경제를 살려야만 한다. 그 방법이 바로 미국과의 핵담판이다. 지금 김 위원장은 굉장한 자신감에 차 있다. 그러나 자신감이 있으면서 동시에 절박한 상황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지 않으면 내부 통제가 점점 만만치 않아질 게 분명하다. 지금 북한 내부 사정은 우리가 외부에서 제한적으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경제 시스템은 지금 거의 자본주의 전 단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그 상위에는 여전히 공포정치가 작동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주의 배급제는 옛말이다. 시장이 경제를 움직이고 민생도 시장에서 해결된다. 인민들의 시선이 정권에서 시장으로 오래 전 돌아섰다. 물론 평양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듯 평양이 중심이지만 그 외의 지역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역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으로서는 핵 만들어놨다고 마냥 손 놓고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66시간 기차 타고 하노이로 갈 만큼 절박한 것이다. 자신감과 절박함이 공존하고 있다. 김 위원장으로선 북미회담으로 얻어내는 것 외엔 뾰족한 방법도 퇴로도 없기 때문에 대화에 목말라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자존감과 체면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동등한 대우만이 그를 대화의 장으로 불러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정상국가로의 인정투쟁

김 위원장의 목표는 정상국가로 인정받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등 외교행보에서 과거와는 다른 점이 많다. 이번에 이례적으로 북에서도 실시간급으로 하노이 회담 소식을 전했다. 과거에는 안전 등 이유로 시간차를 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는 김정은 체제의 정상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자신감과 내부권력 및 통치의 시스템화가 자리 잡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지난 남북정상회담 때에도 부인 이설주를 대동한 게 대표적인 정상국가 인정투쟁의 일면이다. 북미회담에서도 자세히 보면 작은 액션 하나에도 정상국가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가령 트럼프 대통령의 전담 통역이 이연향 통역국장인데 여성이었다. 김 위원장 통역은 당초 남자였는데 갑자기 여자 신혜성으로 바뀌었다. 이것도 정상국가로 동등한 이미지와 대우를 위한 행태로 읽을 수 있다. 북한에 대해 정상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예측가능하지 않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있다. 김 위원장의 행태를 보면 이걸 해소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직접 인터뷰에 답을 하는 등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사실상 합의된 체제공존

좀 더 근본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필자는 이번 1, 2차 북미회담과 그동안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그 이전의 여러 남북간의 합의 등을 볼 때 국제사회가, 또 우리 사회가 기존 통일의 대상으로서의 북한에 대한 관점이 많이 전환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흐름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이제는 남북 ‘체제공존’의 길을 걷는 것이 대안이라는 인식에 사실상 합의됐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런 논의가 한 번도 공론화되지 않았고 또 공론의 장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북한이라는 전혀 다른 체제의 국가와 사실상 공존하겠구나 하는 사실을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한다. 미국도 사실상 북한을 그렇게 대하고 있기 때문에 북미대화에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선언, 4.27판문점선언 등 그 동안 남북간에 있었던 합의들은 전부 상호 인정, 즉 다른 말로 공존을 전제로 한 합의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 대통령의 “따로 살든, 같이 살든”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런 정상적인 2국가 체제를 염두에 둔 자세로 해석된다.

지금 젊은 세대는 더 이상 ‘민족’이라는 가치나 관점으로 통일을 바라보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도 통일에 대한 관심은 점점 낮아지고 오히려 평화적 공존, 즉 급격한 변화보다는 현 상태 유지를 선호한다. 이는 통일을 원하지만, 현재의 상황변화는 원치 않는다는 말이다. 즉 통일은 ‘가치’라는 담론에 머물러 있고, 현실은 ‘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일이라도 가족을 만날 수 있다면 통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일 뿐이다. 독일처럼 갑작스런 통일이라도 된다면 좋겠지만 그건 먼 나라 이야기다. 베트남 식이든 예멘 식이든 무력으로 상대를 흡수해버리는 통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항상 전쟁의 희생자는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아닌 이유도 모른 채 죽어나가는 백성들이다.

필자는 이제 우리 사회가 남북 체제공존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저 북한을 바로 쓰러뜨릴 수 없다면 공존 외엔 뾰족한 대안이 없다. 우리가 지금 북한이라는 독재 체제와 공존할 수 없다는 거부감은 우리 안의 모순이다. 사실 우리는 부정하지만 실상은 70여년을 공존해 살아왔다. 다만 서로 인정을 안 했을 뿐이다. 지금 체제공존을 인정한다고 우리의 위치가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앞으로 북한과 만들어갈 통일의 과정과 방법론만이 달라질 뿐이다. 결국 북한 인민들이 한국에 매력을 느끼고 한국을 선택할 때 통일은 혼란이 없을 것이다.

 

여전히 소환되는 이데올로기 투쟁

여전히 한국은 이념논쟁에 멈춰 있다. 우리 사회는 색깔론, 이념공세, 종북론 등 여전히 냉전담론이 사회를 지배한다. 이제 이념논쟁에서 벗어나 현실적 대안을 논쟁할 시간이다. 나는 한국사회를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공포라는 트라우마가 지배하는 사회라고 본다. 6.25 트라우마가 소위 특정 기득권층에게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며 냉전담론이 조금씩 해체되고 있는 것 같다. 최장집 교수의 표현대로 “지금 남북관계는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로 하여금 토대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소위 보수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왔고 정당성을 부여했던 냉전이데올로기 담론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보수가 분열되는 것이다. 더 이상 기존 반공논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보수라 지칭되던 세력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일부가 분열해서 ‘진짜 보수’의 길을 간다고 선택하기도 했다. 필자는 한국의 보수정당이 정말 잘 되기를 바란다. 진짜 보수라는 가치를 가지고 말이다.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좌파냐 우파냐로 구분하는 건 매우 기괴한 기형적 분단에서 나오는 트라우마와 상처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로 증오의 정치, 갈등과 반목의 정치, 집권하면 상대와는 대화하지 않는 배제의 정치를 하게 된다. 통일정책의 연속성도 없다.

 

결국은 평화의 길, 공존의 길

독일의 할슈타인 독트린은 ‘힘의 우위’에 의한 통일을 지향하던 서독의 아데나워 수상 집권 시기 공산권 국가들과는 대화를 않겠다는 외교노선이었다. 그러나 브란트 수상이 집권하면서 할슈타인 독트린을 폐하고 쉘 독트린을 기본 노선으로 했다. 쉘 독트린은 공산권 국가들과의 교역 개시, 근본적으로 동독에 대한 통일정책이었는데 독일은 “사실상 두 개의 체제”라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북한과 공존할 수 있는가?” “정상국가로서의 북한으로 대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공론의 장이 곧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열려야 한다. 지금 우리가 북한을 어떤 방식으로든 무너뜨릴 수 없다면 방치할 수도 없으니 교류밖에 없다. 바로 공존을 전제로 한 대화이다. 남북이, 북미가 협상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주제는 아직 한국사회에서 익숙하지 않다. 종북 빨갱이라고 몰아세울 것이고 다시 싸움터가 될 게 뻔하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남북통일을 달성하는 것이다. 결국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로 북한이 변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우리는 서로 마음의 문을 꼭 닫은 채로 이미 오랫동안 북한과 공존해왔다. 사실 무지에 대한 공포만큼 두려운 공포는 없다. 우리는 모두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북한에 대한 공포다. 이는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오는 공포다. 저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 “아 저들도 사람이구나” 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북한을 너무 모른다. 무지는 공포를 키우고 신비롭게 포장시켜서 더욱 두렵게 한다. 북한이 우리에게 더 이상 신비한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통일의 노력을 가로막는 우리 안의 강제된 무지와 공포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가 북한을 알려고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그런데 통일의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지 우리는 몰랐다. 아니 알 수도 없었다. 그렇게 공포가 우리들 안에 상존해 있는 동안 통일의 소원은 사라져갔고 ‘굳이 왜 통일인가’ 라는 질문만 오히려 키워왔다. 그래서 통일 이전에 평화가 먼저다.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평화다. 그래야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소원이었던 통일에 실제적으로 한 걸음 더 다가 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어떤 통일인가?”라는 질문에 우리 스스로가 답해보려 시도해봐야 한다.

현재 “어떤 통일인가?”에 대한 공론화도 없이 여야는 집권할 때마다 자기만의 유효기간 5년짜리 통일원칙을 발표한다.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의가 없으면 통일원칙 또한 철학이 부재한 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논의돼왔거나 시도되어 왔던 통일론들이 결국 이념논쟁과 남남갈등을 불러온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 것인가”, 즉 “북한체제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공론화와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통일인가에 대한 합의와 철학이 부재한 정책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조경일/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 북향민

*이 칼럼은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이 발행하는 소식지 <통일을 사는 사람들> 최신호에도 게재됐습니다. 

조경일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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